Swordmaster’s Youngest Son RAW novel - Chapter (906)
제 999화
228화. 격전의 그로쉬에 성(3)
쩌엉-!
다일러스가 진의 공격에 튕겨 나가며 진마계군 함선에 처박혔다. 부서진 잔해에 잠시 시야가 가려진 틈에 살점을 사용하고 싶었으나, 진은 이미 그가 파묻힌 함선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번쩍이는 검기가 함선을 양단했다. 다일러스는 겨우 몸을 틀어 치명상을 면했지만, 도무지 진의 검을 읽기가 어려웠다.
그 속도와 궤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분명 좌측으로 날아든 검기를 방어하면 별안간 등으로 찔러 들어오는 칼날이 느껴졌고, 그것까지 피했다고 생각하면 몸 어딘가에서 이미 초재생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초재생은 활성화되기만 할 뿐, 영원화는 초재생보다 더 빠르게, 집요하게 그의 살과 뼈와 장기를 파고들었다.
초가 지날 때마다 진의 공격은 점점 더 거세졌고, 다일러스는 조금씩 둔해질 수밖에 없었다. 피를 많이 흘린 인간이 쉽게 지치듯이 말이다.
“보아하니 네놈이 이들 중 수장 격인 마왕 같은데, 이게 전부인가? 처음에 감히 내게 반격한 그 호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대답할 수가 없다. 입안은 긴장감에 나무처럼 바싹 말랐고, 머리와 눈은 진의 검을 따라가느라 터져버릴 것 같았다.
결코 꺾을 수 없는, 강대한 적.
다일러스는 깨닫고 있었다. 자신 따윈 룬칸델의 소가주 앞에서 그저 한낱 짐승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답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도 이 인간으로부터 살아남을 길이 없어.’
살점을 꺼내는 찰나의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으니 도주는 말할 것도 없다.
병사들을 제물로 바쳐 어둠계 귀환 마법을 시전하는 것도 불가했다. 여전히 방어선엔 수백만 단위의 일반병들이 존재하나, 진과 무라칸이 있는 쪽엔 그저 재가 된 시체들만 빽빽할 뿐이다.
일반병들은 감히 그 반경을 좁혀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장군, 만인대장 등의 상급 병력들도 마찬가지였다. 진과 무라칸에겐 그들이나 일반병이나 아예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간혹 근처에 있던 대장군들이 어떻게든 상관을 돕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몸을 던졌으나, 업화와 흑쇄, 전투로 인한 충격파가 문제였다.
게다가 연합군의 지원 포격과 마법까지 쉴 새 없이 적지로 쏟아지고 있으니 괜히 나선 대장군들은 개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티카노 쪽의 상황도 좋지 않다. 베겔과 슬람의 빙결, 역병 권능도 이들에겐 아무런 위해가 되지 않아.’
심지어 베겔과 슬람은 성공적으로 지토의 살점을 사용해 강화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베겔의 얼음은 무라칸의 비늘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슬람이 퍼뜨린 역병의 기운은 진과 무라칸을 동시에 휘감았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진과 무라칸은 구정물처럼 탁한 역병의 기운을 그냥 들이마시며 싸우는 것이다. 피를 토하기는커녕 기침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진과 무라칸은 명백히 과시를 하고 있었다. 진마계의 수백만 병력들이 그 모습을 목격하고 있었다. 일반 마족들에겐 하늘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는 마왕들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벌레처럼 짓밟히는 모습을.
‘라갈 이 자식은 대체 뭘 하고 있는……!’
크적!
다일러스의 왼팔이 뜯겨나갔다.
검, 혹은 검기에 베인 게 아니었다. 다일러스를 덮치고 지나간 검풍이 사납게 그 왼팔을 뜯어낸 것이다.
검풍엔 영원화가 묻어있지 않기에 재생은 가능하나, 지금 뜯어진 왼팔 재생에 잠시라도 집중했다간 다음엔 온몸이 찢겨질 터였다.
“재생을 포기했군, 좋은 판단이야. 네놈이 지토가 아니라 내 아래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무력하게 죽음을 기다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너 정도면 정말 귀한 인재인데, 지토는 그저 소모품처럼 쓰는군. 이렇게 써도 될 만큼 진마계에 너 정도의 마왕은 흔한 건가?”
결코 흔하지 않다.
다일러스는 마왕 중에서도 명백히 상위권에 드는 인물이었다. 진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으나 일부러 적들의 사기를 꺾고 있었다.
아마 지금 상대하는 적들이 마족이 아니라 같은 인간이었다면, 이미 병력 대부분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족들은 여전히 진과 무라칸보다 지토를 더 두려워하고 있었다.
“나와 지토, 어느 쪽을 더 두려워해야 하는지…… 너희 모두는 오늘부터 차차 알게 될 것이다.”
핏, 지지짓……!
다일러스의 창이 깨지고 있었다. 연속으로 이어진 광속 찌르기가 창날의 같은 부분을 정확히 때린 결과였다.
그는 부서진 왼팔보다도 창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왼팔보다 무기를 잃는 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황급히 마기를 주입해 파손을 유예했으나, 광속 찌르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반응이 아니라 예측해서 피해야만 하는 룬칸델의 비기. 진의 광속 찌르기는 한계점에 닿아 완성된 상태다. 진은 다일러스보다 훨씬 많은 수를 내다보며 결국 그의 창날을 부수고 말았다.
마기를 덧대 사용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다 약한 상대와 전투를 할 때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실상 다일러스가 순수하게 자력으로 어떤 작은 반전을 만들어내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순간이었다.
이제 다일러스에게 남은 건 남은 마왕들이 생각지 못한 분전을 해주는 경우뿐.
그게 실현된다 할지라도, 다일러스가 살아서 돌아가는 경우의 수는 아예 존재치 않았다. 갑자기 지토나 파엘리토, 혹은 ‘리돌로스’나 ‘비델루체’ 같은 최강자들이 지원을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올 일은 없고, 무라칸은 이미 티카노를 반쯤 죽여놓은 채 베겔과 슬람, 라갈에게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푹!
브라다만테가 다일러스의 복부를 관통했다. 진은 칼날을 돌리며 영원화를 증폭시켰다.
“커, 어…….”
“네놈이 지토의 살점을 썼다면 내가 조금은 더 피곤했을 테지. 이제 쉴 시간이다, 마왕. 유언을 남기겠나?”
다일러스는 잠시 생각했다. 그는 진과의 격차를 확인한 순간부터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죽음이 목전에 있으니 불현듯 그간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가령, 부하로 보이는 이들과 경로를 어긋난 인간의 영혼들을 붙잡으러 가던 날, 우연히 숲에 있던 한 마족과 만난 순간.
그리고 그 마족과 연을 맺고 아이를 낳던 때가 떠오른 것이다.
‘이 여자는…… 누구지. 그 옆에 있는 아이는……?’
분명 그간 다일러스에겐 전혀 없던 기억이었다. 대체 저 부하들은 누구인지, 자신과 함께 사는 여인은 누구인지, 아이는 누구인지,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확실한 건 그저, 그들을 보자마자 참을 수 없이 마음이 괴롭다는 사실.
‘……눈물?’
진은 갑자기 다일러스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에 일순 흠칫했다.
지금 다일러스의 기억 속에 되살아난 풍경은 당연히 그가 잊고 있던 사람들이다.
몇 번의 망각주기, 그리고 지토의 고문과 세뇌에 의해 그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연소되어버린.
그들이 떠오른 건 지금 다일러스에게 걸린 지토의 세뇌가 잠시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나 진의 영원화가 그에게 걸린 세뇌의 고리를 건드린 것이다.
왜 우는가? 진이 그렇게 물으려는 찰나, 별안간 다일러스의 얼굴이 악독하게 일그러졌다.
잊고 있던 사람들이 기억이 떠오른 건 한순간뿐이다.
직후에 곧바로 세뇌된 정신이 깨어나며 그를 다시 진마계군 다일러스 클라우피노로 만들고 있었다.
“라갈, 저 쓰레기에겐 내 시체를 넘기지 마라. 이 작은 승리를 마음껏 즐기고 있어라, 지토 님께서 내 죽음을 갚아주실 것이다, 이보다 더한 고통으로!”
진은 다일러스가 눈물을 흘린 게 의아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 마라, 너는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테니.”
화르륵……!
영원화가 다일러스를 빠르게 잠식했다. 다일러스는 불타는 고통에 괴성을 지르며 전장 곳곳으로 흩어졌다.
돌아보니 티카노 벨가시움도 무라칸의 숨결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베겔과 슬람도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었는데, 유독 라갈만이 별다른 큰 부상이 없었다.
‘라갈 펀, 내내 전투에 소극적으로 임했군. 무슨 꿍꿍이지?’
단지 바로 수준 차이를 알아보고 개죽음을 피하려는 심산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더 있나.
어느 쪽이든, 라갈은 지금 살기 위해 수를 쓰고 있었다. 함께 온 마왕들이 죽건 말건 자신만 살아 돌아갈 생각을 하는 건 분명했다.
당연히 베겔과 슬람도 그 저의를 알아보고 있었다.
“……라갈! 대체 무슨 생각이냐, 설마 혼자 도망치려는 거냐?”
결국 참다못한 베겔이 물었다. 라갈은, 숨길 생각도 없는 듯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난 네놈들이 뒈지게 맞는 동안 살점을 일부 분리해서 이미 튈 준비를 끝냈지.”
“뭐, 뭐라고?”
“뭔 생각인지 이해할 수 없는 건 내가 아니라 사키엘이야, 이 머저리들아. 우리 따위로 저 괴물들을 어떻게 감당할 건데? 마왕 넷이 목숨을 바쳐서 시간은 얼마나 벌었냐? 10분? 15분? 그게 의미가 있어?”
“라갈, 사키엘의 명령은 곧 지토 님의……!”
“아, 지토 님께는 내가 알아서 잘 말씀드릴 테니 걱정 마라. 그럼 난 갈 테니, 다들 욕 봐라.”
라갈의 등 뒤로 차원 문이 열렸다. 지토의 살점을 제물로 바쳐 연 차원 문이었다.
이어 라갈은, 남은 살점을 그때야 깨뜨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진마계군은 들어라! 현 시간부로 정면 1차 방어선은 포기다. 살고 싶은 놈들은 지금부터 열심히 2차 방어선까지 뛰도록.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지만 말이지.”
라갈이 차원 문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차원 문이 닫히자마자, 그 자리에서부터 지토의 살점으로 강화된 라갈의 독무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 독무는 진과 무라칸에게도 꽤 거슬리는 수준의 독기를 품었고, 순식간에 1차 방어선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꼬마, 저 이상한 새낀 뭐지?]“그건 이 독기가 다 가라앉으면, 발레리아가 이곳의 기록을 뒤져서 알아봐야겠지.”
남은 마족들이 라갈의 독무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진과 무라칸은, 독무를 피해 달아나려는 이들을 찾아 마무리했다.
십여 분 뒤, 1차 방어선엔 살아있는 진마계군이 단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았다.
* * *
같은 시각, 진마계 나락 벨가시움 제2성.
레일라는 난데없이 자신을 찾아온 켈리악 지플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세에 있어야 할 자가 지옥에 들어올 수 있던 건 필시 마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 왜 나를 찾아왔나?”
“레일라 벨가시움, 나는 자네를 지토로부터 빼앗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네.”
“다시 말해봐라. 뭘 하겠다고?”
레일라가 대번에 분노한 기색을 드러내자 켈리악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자네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지토에 대한 한 가지 비밀을 알려줄까 하는데. 어떤가, 들어보겠나?”
레일라는 검을 뽑으려던 동작을 멈추며 켈리악과 눈을 맞췄다.
“……말해봐라, 켈리악 지플.”
“그는 이 세상 전체를 고통으로 물들이는 게 목적이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말이야. 그러나 최종적으로 지토가 고통에 빠뜨리려는 대상에는, 아랫것들이나 인간들뿐만이 아니라…… 자네들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