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ing the Villainess RAW - Chapter (50)
EP.51)또 다른 이름은 수강신청 # 4
051 – 전쟁의 또 다른 이름은 수강신청 # 4
“할파스…!”
나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최근 시력에 대한 검사를 했을 때였다.
측정사가 보여주었던 한 단어 할파스. 그게 나의 머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할파스? 그게 뭔데? 설명해 봐. 설명하지 못하면 네 패배야.”
다만 에프사이드는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미간을 찌푸렸다. 꾸우우욱. 녀석의 손아귀가 나의 목을 더욱 거세게 쥐고 있을 때.
푸다다득.
푸드더덕.
파닥, 파닥.
어딘가 강렬한 움직임의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곧 여러 기척 같은 것이 내 주변으로 강하게 느껴지며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하는데.
“으어, 뭐야, 뭐야 이거!”
그것은 에프사이드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내 목을 쥐었던 손을 탁 놓고는 무언가에 공격당하며 이리저리 버둥거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서야 겨우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눈을 뜰 수가 있었다.
그런 내 눈에는 어딘가에서 날아왔는지 모를 종류의 다양한 새들이 에프사이드를 공격하고 있는 게 보였다.
“뭐야, 시발! 이게 뭐야!”
━뀌이이잉! 뀌이이잉!
━까악, 까아아악!
“태오 가스펠! 뭔 짓을 한 거냐!”
“…….”
뭐야, 시발. 나도 모르겠다.
━까아아악!
다양한 종류의 새들은 월급이 밀린 회사원처럼 매우 화가 나 보였다.
그래서 나는 혹 나까지 그들의 공격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엉금엉금 뒷걸음질을 쳤다.
━삐이이이익!
바로 그때 누군가가 삑-하고 귀가 다 아플 만큼 날카롭고 강렬한 소음을 냈다.
이것은 인위적인 소음이었다. 호각이나 피리 비슷한 걸 불은 것이 아닐까?
“읏-!”
그래서 내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움츠리자니 누군가가 아크 생도들의 틈을 가르며 나타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튼튼해 보이는 가죽 신발이었다. 워커나 군화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튼튼한 신발.
그 위로는 몸에 쫙 달라붙는 갈색의 가죽바지와 군살하나 없이 날렵한 배와 배꼽 그리고 하얀색 탱크탑과 그 위에 걸치고 있는 표범무늬의 가죽재킷이 있다.
“트위티, 이리 와!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니?”
낯선 등장인물은 무리지어 사람을 뜯어 발기고 있는 새들에 대고 소리쳤다.
찰랑이는 그 머리칼이 짙은 보랏빛으로 깔끔하게 자른 단발이라 신비롭고 활동성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어떻게 사람 머리가 보라색이야.
슥.
보라머리 여자가 다시 입술에 새끼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얇은 호각을 가져다댔다.
“삐이이이익-!”
퍼덕, 퍼덕, 퍼더덕.
━지지배, 지지배!
그것으로 우글우글 몰려 있던 새들이 멀리 날아가 버린다. 그 중 한 마리의 거대한 맹금이 여자의 팔에 장착된 가죽 아대 같은 것에 얌전히 앉았다.
“트위티. 왜 멋대로 날아간 거야? 평소에는 그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피르륵.
어린아이 크기만한 맹금을 쓰다듬는 남색 단발의 호피무늬 여자라니. 이제 보니 귀도 제법 길고 뾰족하다.
뾰족한 귀면 엘프인데, 엘프에 맹금을 다루는 호피무늬…. 나른하게 끝이 내려간 눈꼬리, 호박색 눈동자에 오른쪽 눈 가에 눈물 점까지.
그 모습을 보자 무언가 떠오른다.
“벨호크-. 당신은 혹시 스텔라 벨호크 맞습니까?”
“벨호크 교수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보다 뭐야, 너는 신입생? 지금 여기서 뭣들 하는 거야?”
벨호크 가문의 영애가 이 자리에 나타난다니. 교수는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이것은 내게 있어서 큰 기회였다.
“내 할파스에 어서 답해 보시지, 야만인 놈아.”
“그으으….”
나는 옷과 머리 그리고 피부가 난도질당해 바닥에 엎어져 피흘리는 에프사이드를 향해 자신있게 소리쳤다.
그러나 새들에게 당했던 상처가 생각보다 깊지는 않았던 것인지 녀석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할파스면, 스피드. 그래, 스피드. 아니, 이제 이딴 건 아무래도 좋아. 태오 가스펠. 나 에프사이드 씨콜렉터.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피를 위부터 아래로 세수하듯 문지르는 야만인 에프사이드.
그 모습을 보자 문득 사람들을 산채로 잡아먹는다는 남만의 야만족이 떠올라서 간담이 서늘해진다. 내 연기력이 없었다면 다리가 후들거렸겠지.
나는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결투? 그게 뭔 소리지?”
“말 그대로 결투지. 때마침 교수도 있으니까 결투의 중재자가 되어달라고 하고. 날 이렇게 까지 화나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야.”
스윽.
에프사이드의 눈이 스텔라 벨호크에게로 향한다. 다만 스텔라 벨호크는 이 상황이 이해 안된 다는 듯이 새처럼 고개를 갸웃거릴 뿐.
“결투? 그보다 태오 가스펠?”
“교수 님. 입회 좀 해 주십쇼. 공정한 결투를 벌일 거니까.”
그에 스텔라 벨호크가 말했다.
“그치만, 에프사이드. 너는 실버 티어. 여기 신입생 친구는 브론즈. 별로 공정해보이지 않아. 그럼 대신 싸워줄 대전사를 부를 수 있어야 하겠지.”
“대전사…. 좋수다. 대신 대전사는 이 아크의 생도는 금지로 하죠. 교수나 이사진도 금지. 그렇지만 아크의 내부자여야 할 것. 그리고 대결은 1시간 후, 이 자리에서 당장.”
“그 정도면 좋은 대결 규칙이네. 신입생. 동의하니?”
내가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이야기가 착착 진행됐다.
대전사를 삼아도 된다는 규칙은 내게 있어서 무척 좋은 일이었으나 이 학교 학생을 금지로 한다면 엘가나 아이라를 부를 수 없어진다는 소리.
교수나 이사진도 금지면 내게 호의를 갖고 있었던 영감님들도 부를 수가 없어진다.
“전 과목 낙제점인 네가 입학할 수 있었던 건 이사진들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어쩌냐. 이제 네 편은 아무도 없을 텐데.”
흐흐흐-하고 웃는 에프사이드는 그야말로 악당 그 자체였다.
내가 막 입학한 신입생이라 이곳에서는 연줄도 인맥도 없다는 걸 교묘히 파고들어 공격한다니.
“거절해도 좋아.”
“아니, 좋아. 수락하지 뭐.”
하지만 거절할 이유가 내게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좋아.
* * *
그리하여 한 시간 뒤.
나는 많은 이들이 보는 가운데 결투를 하게 됐다.
이 난데 없는 상황에 수강신청을 끝낸 사람들이 온갖 곳에서 몰려와 경기장을 만들고 있는 상황.
“태오, 네가 결투? 이게 대체 뭔 일이야?”
엘가가 나를 향해 다가와 이 영문 모를 상황을 물어온다. 내가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해주자 인상을 가득 찌푸리는 엘가.
“규칙대로라면 내가 대신 싸워줄 수는 없어. 네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괜찮겠냐?”
엘가가 나를 걱정해준다.
“너 싸움은 좆밥이잖아.”
“…….”
이건 팩트였다. 하지만 엘가 옆에 어디선가 가져온 고급 의자에 나른히 앉아있는 아이라는 걱정이 없다는 것처럼 웃었다.
“엘가, 설마 나의 태오가 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쟤가 뭘 할 수 있겠어?”
엘가가 아이라에게 따지듯 묻자 아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엘가 너는 아직 멀었구나. 태오는 나 다음으로 똑똑한 남자야. 이런 문제 정도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지.”
“…….”
엘가는 말을 멈췄다. 더 이상 자신의 사촌에게 말을 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겠지.
“야, 태오. 정말 방법이 있는 거야?”
“저는 지는 싸움 안합니다. 물론, 제 싸움이 아니게 될 거지만.”
나는 눈앞의 남자 에프사이드를 바라봤다.
그는 못을 잔뜩 박아 넣은 방망이를 쥔 채 나를 바라보며 흐흐흐-웃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공정한 결투야. 뒤끝 부리기 없어. 알겠냐? 네 뒤에 여왕님과 후작 영애도 똑똑히 알고 있어야 해.”
“나중에 너나 딴말하지 마라. 비겁한 야만인 놈아.”
“흐흐흐, 좋아. 그래서 네 대전사는 어디에 있지? 네가 직접 나를 상대할 셈이냐?”
“아니, 이제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내 대전사는 어디에 있어도 금방 티가 날 텐데.
쿵-.
쿵-.
그때 내 귀에 지축을 울리는 느낌이 났다.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서 거대한 덩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 왔네. 여기입니다.”
나는 손을 들어 내 대전사를 향해 신호를 줬다. 그러자 거대한 덩치의 거인이 나를 향해 다가오며 미간을 찌푸린다.
━고르고르. 할 일 많다. 잔업. 너무 많다. 늦을 뻔 했다.
그와 동시에 많은 이들이 크게 경악했다.
━이 씨발, 저거 뭐야. 저거 오거잖아?
━오거가 대체 왜 여기에 있어? 사람도 잡아먹는 괴물이잖아!
난데없는 거대 마물 오거의 등장에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야 그럴 것이 오거는 단신의 몸으로 성채를 점령할 정도의 괴물이니까.
그런 오거를 홀로 상대하려면 소드마스터나 5위계 이상의 대마법사는 데려와야 한다.
물론 비겁하고 추잡한 야만인 에프사이드가 소드마스터나 대마법사일 리 없는 법. 원래 뭣도 없는 사람들이나 비겁한 수를 쓰니까 말이다.
내가 비겁해서 잘 안다.
에프사이드가 매우 흥분해서 소리쳤다.
“이, 이 씨발. 이게 뭐야! 교수! 이거 반칙 아닙니까? 대전사로 마물을 데려오는 법이 어디있습니까! 분명 대전사는 아크의 관계자에 한해서라고 했을 터!”
그에 오거 고르고르가 흐흐흐-하고 웃었다.
━나. 고르고르. 교직원 채용 됐다. 교직원 할 일 많다.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 월급.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나온다.
“이, 이 씨발!”
핏발서린 야만인의 눈이 나를 향했다. 방금까지 압도적인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던 자의 얼굴이 경악과 당혹으로 물 드는 것은 언제 봐도 즐거운 것이다.
“이 비겁한 새끼야! 더러운 요승새끼! 이건 사기야! 이건, 이런 건 인정 못해!”
이제 와서 날 비난한다고?
좆같은 새끼.
저런 놈한테는 일말의 동정도 가지 않는다.
“이미 결투는 끝났어. 여기서 패배를 인정하고 도망치면 네 브로치 강의 전부 다 내꺼야. 넌 이번 학기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는 소리고.”
“이 시발….”
에프사이드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경기장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금빛 브로치를 내건 100등 미만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눈을 마주친 에프사이드는 흠칫 몸을 떨더니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까짓 거. 마물 새끼 하나 못 죽여서 용사라고 할 수 있겠어? 내가 고향에 있을 때는 트롤들 네 마리까지 한 번에 상대해봤던 몸이거든.”
침착하게 전의를 다지는 에프사이드.
그에 고르고르가 제법 놀란 것 같았다.
━트롤을 네 마리? 너. 보기보다 대단한 전사다. 인정한다. 하지만 나 고르고르. 너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과 싸워봤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너 나보다 약하다.
“좆 까, 마물새끼가! 덤벼 새끼야!”
타닷.
에프사이드가 못 박힌 방망이를 쥐고 거한 고르고르를 향해 덤벼들었다.
“아르르르으으르!”
그 박력 있는 돌진은 마치 황소와도 같아서 만약 저것이 향하는 게 나였다면 나는 아마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고르고르의 거대한 손바닥은 야만전사를 파리처럼 짓눌러버렸다.
쿵-.
“구에에엑-!”
━역시. 이럴 줄 알았다.
압도적인 피지컬 차이.
━머리 나쁘면 이렇게 된다. 사람. 배워야 한다.
머리 나쁘기로 소문난 오거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는데.
방금 에프사이드를 한 손으로 짓눌러버린 괴물을 향해 누구도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방금 봤어…?
━사람이 무슨 벌레처럼….
━에프사이드 새끼, 그렇게 으스대더니 꼴 좋구만!
그때 아이라만이 이 상황이 무척 재미있다는 것처럼 웃었다.
“사람의 목숨이 마치 파리와 같이 사라지는구나.”
━아니. 고르고르. 안 죽였다. 그게 약속. 대신. 온몸의 뼈. 으스러졌을 거다.
스르르르.
고르고르가 거대한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고장 난 장난감처럼 망가져버린 에프사이드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게 보였다.
“으이익….”
겨우 목숨을 부지한 정도. 기사를 맨 손으로 찢어 죽이는 오거의 일격이니 당연하겠지. 나는 그런 에프사이드의 허리춤에 달린 ‘티타임’강의 패와 가슴팍의 브로치를 때어냈다.
“이, 이 자식…. 노린 거구나. 내가, 내가 이렇게 도발에…. 넘어갈 줄 알고….”
야만인들의 생명력이 질기다고는 들었는데.
과연 진짜 대단하긴 하구나.
나는 에프사이드의 생존력에 대한 점수를 머릿속에서만 높여주었다.
“그, 그 웃기는 끝말잇기도 전부 노렸던 거냐? 그 병신 같은 끝말잇기도…. 일부러 나를 도발하기 위해….”
병신 같은 끝말잇기라니. 나는 나름 진지했는데.
━그게 전부 노렸던 거였나 봐!
━그래, 나는 갑자기 끝말잇기를 왜 하나 했지. 우리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하긴 끝말잇기는 좀 너무했어. 그게 전부 저 에프사이드를 결투로 끌어내기 위한 노림수였다면 대단하긴 하지만.
내 진지했던 승부수가 마구마구 짓밟히는 것을 보며 나는 눈물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끝말잇기도 전부 노림수였지. 넌 걸려들었고! 그렇지 않고서야, 끝말잇기라니. 그런 생뚱맞은 걸 진지하게 했겠어? 널 화나게 만들어서, 결투로 이끌고 싶었을 뿐이다!”
내 자신만만한 외침에 주변이 크게 웅성거렸다.
━세상에, 대체 몇 수 앞을 내다 봤던 거야?
━완전 저 브론즈 티어의 손에서 놀아난 거 아냐? 진짜 브론즈 티어 맞아?
그 웅성거림에 에프사이드는 피를 쿨럭 토해냈다.
“시발…. 요승이라더니…. 안 믿었는데….”
“다들 그렇게 말하지.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을 때는, 자기 것을 빼앗길 각오도 했어야지. 이대로 브로치를 빼앗기면 넌 퇴학인가?”
“그이엑….”
에프사이드는 그것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는지 기절해 버렸다. 마음 같아선 발로 차주고 싶었는데.
오거의 손바닥에 짓눌려 워낙 끔찍하게 뒤틀려있기도 했고.
이 이상 자극적인 걸 보여줬다간 아이라가 칼날 여왕으로 각성할지 모르는 일이라서 나는 녀석의 몸 위에 내 겉옷을 벗어서 덮어주었다.
슥.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원하는 강의와 은색 브로치를 얻을 수 있었다.
━고르고르. 학점 얻었다. 강의 수강한다. 아는 게 많아야. 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거 고르고르는 천 등의 브로치와 에프사이드에게서 빼앗은 12학점의 강의를 수강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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