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32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32화
132. 9라운드 대표 선발전
시간은 빠르게 흘러, 9월 1일 자정.
플레이어들은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다.
눈 깜빡할 사이에 무채색의 공간으로 환경이 바뀌어도.
수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허공에서 속속들이 나타나도.
하늘에서 재수 없는 천사가 빛과 함께 번쩍여도.
장장 8개월을 버텨온 플레이어들은 묵묵한 얼굴로 천사를 올려다볼 따름이었다.
[반가워요, 인간 여러분! 매번 이렇게 보니까 정들 것 같아요.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플레이어들이 침묵하자 천사 아리엘의 고운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하하…… 바, 반갑죠.”
“맞아요. 반가워요, 반가워.”
플레이어들의 얼굴에 억지웃음이 걸렸다.
‘X발, 갑질 쩌네.’
바보가 아닌 이상 입바른 소리라는 걸 알겠지만 천사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듯 빙그레 웃어 보였다.
[호호, 좋아요. 저도 인간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라운드를 끝으로 저를 보진 못할 것 같네요. 이번 라운드에는 구역 통합이 있을 예정이거든요!]“구역 통합?”
“또?”
“되게 자주 하는 느낌이네.”
남아 있는 플레이어는 900명 남짓.
구역 통합할 때가 되긴 했다.
‘이번이 우리나라끼리 하는 마지막 구역 통합이다. 11라운드부턴 다른 나라와 통합될 테니.’
류민의 말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천사가 설명했다.
[자주 한다고 불평할 것 없어요. 이번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치르는 마지막 구역 통합이니까요.]“마지막 구역 통합……?”
[인원이 적은 탓에 한국에 남아 있는 7개의 구역을 모두 통합해야 하거든요.]“남아 있는 구역을 전부 통합한다고?”
“그럼 구역이 하나밖에 안 남는 거야?”
[그렇죠. 모두 한 구역으로 통일이 되는 거죠. 뿔뿔이 흩어진 한국 플레이어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기회라고요!]무슨 이산가족 상봉하듯이 말하는 천사였다.
[그럼 곧바로 통합을 진행할게요.]드드드드드드-
땅이 울리더니 배경이 조각나고 합쳐진다.
흩어졌던 대한민국 플레이어들이 한데 모였다.
그 수는 대략 6천 명.
새로운 얼굴들을 보며 플레이어들은 생각했다.
‘여기 있는 전부가 대한민국에 남은 유일한 플레이어라고?’
‘그럼 우리끼리 또 경쟁해야 하는 거야?’
‘여기서 더 줄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모르긴 몰라도 여기서 살아남으면 플레이어의 가치가 더 올라가겠지?’
서로를 향한 생각들은 달랐다.
누구는 경쟁심을 보였고, 누구는 동지가 줄어드는 걸 안타까워했다.
[드디어 한국의 모든 플레이어가 한자리에 모였네요! 인원은 정확히 6,008명. 통합된 구역명은 C3-ESKA001이에요.]“6천 명?”
“우리나라에 남은 플레이어가 그것밖에 안 된다고?”
900만으로 시작한 플레이어는 고작 8개월 만에 6천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마저도 계속해서 줄어들 예정이지만.
[그럼 구역이 통합됐으니 이번에도 구역 대표 선발전을 치러야겠죠? 저희 천사들은 이에 대해 상의하고 올 테니 그동안 서로 인사라도 하고 있으세요. 친구들끼리 모여서 회포라도 풀고 있던가요!]천사가 사라지자 6천 명이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토로했다.
“경쟁해야 할 판국에 서로 인사나 하라고?”
“뭐? 친구들끼리 모여서 회포나 풀어?”
“여기가 무슨 만남의 광장이라도 되는 줄 아나? 참나.”
구역이 하나로 통합되었다 해도 아는 얼굴이 있을 리 없다.
친구나 지인이라면 대부분이 라운드에 탈락해 먼지가 되어버렸으니.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주…… 아니, 검은 낫님!”
류민에게 가장 먼저 다가온 사람은 얌띠였다.
이미 구역이 통합될 거라고 귀띔을 줬던 류민은 통합 즉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지시했었다.
‘언젠가 얌띠와 만나게 될 텐데 현실에서처럼 모른 척할 순 없으니까. 게다가 앞으로의 퀘스트를 진행하는데 얌띠가 필요하기도 하고.’
얌띠를 활용하려면 곁에 두고 아는 사이처럼 보여야 하는 데 그럴 거면 일찍이 보여주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검은 낫님. 이렇게 만나서 반가워요. 저희 구면 맞죠?”
“그만. 단둘이 있을 땐 연기 따위 안 해도 된다.”
“아, 그, 그렇죠? 헤헤, 주인님을 이계에서 보니까 정말정말 반가워요!”
“쉿. 말할 때는 목소리를 낮춰라. 혹시 모르니까 주변 30m에 투명화를 쓴 암살자가 있는지도 파악하고.”
“앗, 죄송해요.”
그리 말한 얌띠가 즉시 주변을 경계하더니 류민에게 붙으며 속삭였다.
“그런데 처음에 제 연기 어땠어요? 이만하면 봐줄 만하죠?”
“글쎄. 너무 오바하는 거 같던데. 감정을 좀 덜어내면 좋을 거 같군.”
“히힛, 조언 감사드려요, 주인님.”
“그나저나 너무 가까이 붙지 마라. 누가 보면 어쩌려고.”
“앗, 네에…… 알겠어요.”
귀에 속삭이다가 내심 서운한 표정으로 떨어지는 얌띠였다.
그때 30m 범위 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기척 감지로 읽은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어…… 검은 낫님?”
민주리였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검은 낫을 찾아왔다가 놀라고 말았다.
별안간 처음 보는 여자와 꽁냥거리고 있었으니까.
“그쪽은……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얌띠라고 해요.”
“닉네임을 물어본 게 아니라요, 검은 낫님과 무슨 관계시냐고요.”
까칠한 말투에 얌띠가 순간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인지 일부러 콧소리를 내며 한쪽 입꼬리를 올린다.
“흐응, 글쎄요? 제가 그걸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나요?”
“뭐라고요?”
“그러는 그쪽도 처음 보는데 검은 낫님과 무슨 관계세요?”
“저요? 저는 검은 낫님의 동…….”
민주리가 말하다 말고 검은 낫의 눈치를 봤다.
동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과연 검은 낫도 자신과 같은 생각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났을 뿐, 동료라는 말은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었기에.
“료…….”
“뭐라고요? 잘 안 들리거든요?”
“저, 저는…….”
“그만해라. 둘 다.”
차마 여자들의 기 싸움을 지켜보기 힘들었던 류민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미리 말을 맞춘 대로 설명했다.
“여기 있는 얌띠는 현실의 나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지인이다. 혹시라도 여자친구 같은 건 아니니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도록. 그리고 민주주의는…….”
류민이 민주리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 동료다. 같이 여러 번 파티한 전적이 있지.”
“아.”
그토록 듣고 싶었던 동료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여자친구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일까?
놀라던 민주리의 입술이 긴 호선을 그렸다.
가슴속이 뻥 뚫리는 기분.
참을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검은 낫님과 현실에서 아는 분이었구나. 예민하게 굴어서 죄송해요. 낯선 얼굴이라 경계심이 들었거든요.”
조금 전의 감정은 털어버렸다는 듯 민주리가 웃으며 사과했다.
먼저 이렇게 나오니 얌띠도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죄송해요. 저도 날카롭게 반응했죠?”
대답은 류민의 입에서 나왔다.
“날카롭다 못해 초면에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
그렇게 말하며 민주리 몰래 얌띠를 노려봤다.
‘노예 주제에 쓸데없이 내 지인이랑 싸우지 마라. 혼쭐나기 싫으면.’
눈빛의 의중을 읽은 얌띠가 꾸중 듣는 강아지처럼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때 멀리서 익숙한 얼굴의 무리가 다가왔다.
서아린과 안상철, 그리고 마경록이었다.
“안녕하세요, 검은 낫님.”
“안녕하세요!”
마경록을 제외한 두 사람의 표정은 평소보다 밝았다.
서아린은 현실에서도 봤던 검은 낫을 다시 만나자 반가운 눈치였고, 안상철은 마경록을 만나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옆에 그분은?”
류민이 모르는 척 마경록에게 시선을 주자, 안상철이 안 그래도 소개하려 했다는 듯 나섰다.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검은 낫님. 이분은 우리 회사의 대표이신 마…… 천마님이십니다.”
“마천마?”
“아, 아니요. 천마입니다, 천마.”
천마, 마경록이 앞으로 나서더니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검은 낫님.”
류민이 손을 맞잡으며 뻔뻔하게 모른 체했다.
“천마라…… 전 구역 랭킹 2, 3위에 드는 네임드를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하하, 네임드라니요. 이제는 3위권에도 못 드는 실정인데요, 뭘.”
마경록은 초면임에도 친근하게 대했다.
검은 낫에겐 그간의 빚이 있었으니.
“안 실장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2라운드 때 불한당으로부터 도와주셨다지요. 그 외에 6라운드에서도 같이 파티해서 광렙 시켜주시고요.”
“뭐, 그랬지.”
“대표로서 여러모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직원을 도와주셔서.”
“감사는 됐다.”
류민은 컨셉상 반말을 고수했다.
다행히 마경록은 기분 나쁜 눈치가 아니었다.
80레벨이 반말하겠다는데 38레벨이 뭘 어쩌겠는가?
그때 서아린이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검은 낫님. 저기 저분은……?”
그녀가 가리킨 사람은 얌띠였다.
지목당하자 얌띠가 새침하게 고개를 들었다.
“반가워요. 검은 낫님 동료분이신가요? 전 검은 낫님의 현실 지인인 얌띠라고 해요.”
“현실…… 지인?”
서아린의 동공이 흔들렸다.
현실의 검은 낫은 자신만 알고 있던 게 아니었단 말인가?
‘하긴, 검은 낫님 정도의 실력자라면 주변에 사람이 많겠지.’
지금도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지 않은가?
‘잠깐, 그러면 저 얌띠란 사람은 검은 낫님의 실제 얼굴을 아는 거야?’
자신이야 흰색 가면으로만 봤을 뿐, 실제 얼굴은 알지 못한다.
서아린이 얌띠를 향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냈다.
마음 같아선 자신도 검은 낫의 현실 지인으로 불리고 싶었다.
[회포는 잘 푸셨나요? 한국 플레이어 여러분?]그때 천사들끼리 상의가 끝났는지 아리엘이 돌아왔다.
[현재 7개의 구역이 통합되어 7인의 구역 대표가 있는 상황인데요, 앞서 말했다시피 이 중 한 명을 구역 대표로 선발해야 합니다. 이번에 뽑힌 대표는 사실상 한국 플레이어의 대표가 되겠네요.]천사의 말을 마경록이 주의 깊게 들었다.
다름 아니라 그 역시 한 구역의 대표.
검은 낫과 경쟁하는 처지에 있다.
데스매치라는 말에 마경록이 움찔하며 류민을 쳐다봤다.
‘데스매치는 자신 없는데…….’
80레벨과 싸운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저희가 상의한 결과, 이번 대표 선발전은 공정하게 투표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투표?”
[모두 2라운드에서 투표를 진행해 봤지요? 그때처럼 7명의 후보 중 원하는 대표 플레이어를 지목하시면 됩니다.]투표라는 걸 알자 마경록의 얼굴에 희망이 생겼다.
‘이거 어쩌면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지도?’
데스매치는 자신 없지만, 투표라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생긴다.
[그럼 바로 투표를 진행해 볼까요? 선택하지 않는 인간은 그대로 소멸시킬 테니 빨리 골라주세요.]천사가 날개를 펄럭이자마자 사람들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다음 중 통합 구역 대표로 선발할 한 명에게 투표해 주십시오.]└ 1. 검은 낫 (Lv80 사신)
└ 2. 천마 (Lv38 다크 나이트)
………………
…………
└ 7. 똥 멍청이들 (Lv38 샤먼)
[투표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0:00:59]플레이어들은 고민 끝에 손가락을 터치했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선택창이었기에 눈치 볼 필요는 없었다.
[참고로 구역 대표들은 후보이기에 투표 권한이 없습니다. 운명에 맡기세요.]천사의 말대로 마경록은 침을 삼키며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검은 낫을 제치고 구역 대표가 될지도 몰라.’
마경록은 기대하며 검은 낫을 바라봤다.
‘겉으론 내색하진 않아도 아마 똥줄이 타겠지.’
이번만큼은 그도 불안할 수밖에 없으리라.
어쩌면 구역 대표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잠시 후 1분이 지나고 천사가 말했다.
[결과가 나왔네요. 바로 확인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