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76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76화
176. 검은 낫을 쫓는 사람들
11라운드가 시작된 이후, 마경록은 주위를 돌아봤다.
여느 때보다 당황한 얼굴로.
‘젠장, 뿔뿔이 흩어져 버렸잖아?’
팀전이라고 해서 다 함께 움직이는 줄 알았는데 개인전처럼 흩어졌다.
예언자에게도 들은 적 없던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지? 예언자가 잊어먹고 말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설마…….’
마경록은 고개를 저었다.
설마 예언자가 일부러 정보를 빼놓고 말했으리라고.
이득 될 것도 없을 텐데.
‘흩어지는 줄 몰랐던 거겠지.’
완벽해 보이는 예언자도 가끔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빼먹곤 한다.
‘쳇, 이래 가지곤 크리스틴을 찾을 방도가 없잖아.’
마경록은 약혼녀인 크리스틴을 지켜줄 생각이었다.
구하는 척 액션이라도 취해야 꼬투리 잡히지 않을 테니까.
‘솔직히 사랑하진 않아. 몇 개월 만났다고 외국인한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겠어.’
허울뿐인 약혼녀.
그렇다고 그녀에게 문제가 생기길 바라진 않았다.
세상 어느 사업가도 비즈니스 관계가 깨지길 바라진 않을 테니까.
‘지켜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추적도 못 하겠어.’
닉네임이 크리시인 건 알고 있어도 이계에서 만난 적은 없기에 얼굴을 모른다.
이러면 조건이 안 돼서 추적이 불가하다.
크리스틴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이거 퀘스트 하면서 포인트나 쌓아야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크리스틴을 도울 방법이 없다.
그나마 도와주는 거라면 열심히 포인트를 쌓아서 팀을 생존시키는 것뿐.
‘걱정할 필요 없을 거야. 예언자가 말했잖아? 크리스틴을 구해주는 생명의 은인이 나타난다고.’
예언대로만 된다면 죽지 않는다는 뜻이니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서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포인트나 쌓는 데 집중하자. 어디로 가야 퀘스트가 있을까?’
마침 눈앞에는 마차가 다닐법한 잘 닦여진 길이 있었다.
그 길의 끝에는 성벽이 쳐진 커다란 도시가 보였고.
‘왕국인가? 저기에 퀘스트가 많겠군.’
걸음을 옮기던 마경록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다니다가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면 어떡하지?’
한국 플레이어라면 웃으며 인사하겠지만 타국 플레이어라면?
‘규칙상 타국 플레이어와 함께해서 좋을 건 없어.’
사는 곳도 다르고 같은 팀도 아니다.
포인트를 공유하지도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다.
오직 떨어트려야 하는 경쟁 상대일 뿐이다.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면 포인트를 얻는다고 했지? 그것도 많이.’
그런 면에서 타국 플레이어는 죽이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걸어 다니는 포인트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내가 죽이지 않으면 놈이 먼저 나를 죽이려 들 거야.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테니까.’
생각 끝에 마경록은 결정했다.
타국 플레이어를 만나면 상황을 본 뒤에 죽이기로.
생존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깐. 어쩌면 퀘스트 따위를 하는 것보다 타국 플레이어를 찾아서 죽이는 게 포인트 쌓기에 더 좋지 않을까?’
잘하면 랭킹 1위를 찍고 구역 대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지. 구역 대표가 돼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어. 검은 낫에게 죽임을 당하고 바로 뺏길 테니까.’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는 지배권이 통하지 않으니 구역 대표가 되어도 검은 낫은 막을 수가 없다.
‘지금으로선 랭킹 2위를 찍는 게 베스트다. 어차피 1위는 검은 낫일 테니.’
일단 서브 퀘스트 하나를 깨보고 포인트를 쌓기에 어떤 방식이 더 나을지 생각해 봐야겠다.
플레이어를 죽이는 게 빠를지, 퀘스트를 깨는 게 빠를지.
‘우선 주변에 사람이 있나 볼까?’
주변 탐색 스킬을 사용하여 빨간 점들이 있는지 확인해 봤다.
‘어? 내 뒤에…… 있어?’
뒤에서 자신을 향해 접근하는 빨간 점을 보고 마경록이 검을 빼 들며 돌았다.
“어떤 새…… 안 실장?”
“대표님!”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반갑게 뛰어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안상철이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안 실장. 절 쫓아온 겁니까?”
“그럼요. 이상한 곳에 떨어지자마자 추적하기로 대표님부터 찾았죠. 같은 팀이니 같이 움직이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마경록이 끄덕거렸다.
안 그래도 혼자 다니기 껄끄러웠는데 오른팔이 옆에 있으니 든든했다.
“같이 퀘스트하러 가볼까요?”
“네, 대표님. 그런데…….”
“……?”
“이왕이면 버퍼의 도움을 받고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버퍼라면 민주주의 말입니까?”
“네. 항상 옆에서 버프 받다가 안 받으니 허전하고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서요.”
그럴 만했다.
버프 한 번에 70%나 스탯이 상승하니 받는 것과 못 받는 것의 차이는 컸다.
못 받은 지금은 디버프에 걸린 기분마저 들 정도.
“그건 그렇네요. 그 블레스라는 버프를 받으면 3시간은 거뜬할 테니.”
“그럼 민주주의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추적하기 스킬을 쓰려던 안상철을 마경록이 막았다.
“아니, 민주주의보단 검은 낫에게 가보죠.”
“예? 검은 낫이요?”
“민주주의는 분명 검은 낫과 함께 움직이려 할 겁니다. 친하지 않은 저희가 민주주의에게 가봤자 괜한 경계심만 심어줄 거고요. 차라리 그나마 친분이 있는 검은 낫에게 붙으면 자연스레 민주주의의 버프도 받고 그가 어떻게 포인트를 쌓는지도 옆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하긴 검은 낫은 어떤 라운드든 독보적인 성적을 유지했으니까요. 대표님 말대로 하는 게 좋겠습니다.”
두 사람은 웃으며 방향을 틀었다.
추적 대상은 다름 아닌 검은 낫이었다.
* * *
같은 시각.
다른 나라에서도 마경록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았다.
“천사가 분명히 그랬지? 다른 플레이어를 죽이면 포인트를 얻는다고.”
“그렇습니다.”
중국 플레이어 [시즈캉]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살인에 거리낌을 느끼겠지만 그는 아니다.
남다른 소질로 20대 후반의 나이에 흑사회의 간부 자리를 꿰찬 그에게 살인은 쉬운 일이었다.
“포인트 벌기 졸라 쉽네. 그냥 보이는 새끼들 잡아서 죽이면 되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형님. 대신 중국인은 죽여선 안 되고요.”
“내가 그걸 모르겠냐, X발럼아? 확, 씨!”
때릴 것 같은 모양새를 취하자 부하가 곧장 사과했다.
“주제넘은 소릴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계에서도 꼬붕짓을 하는 부하였지만, 불만은 없었다.
사람 죽이는 실력만큼은 알아주는 시즈캉이었으니까.
“다들 오늘 뒈지기 싫으면 내 말 잘 들어. 끝까지 살아남아서 간부 자리도 앉아보고 해야 할 거 아니야. 쯧!”
“죄송합니다!”
“시즈캉님만 믿고 따르겠습니다!”
부하 아홉 명이 머리를 숙이자 시즈캉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말을 잘 들으란 말이야. 내가 다 생존시켜 줄 테니까.”
앞으로는 플레이어가 주축이 된 세상이 올 거다.
일반인 따위는 노예로 전락하고 오직 끝까지 살아남는 플레이어만이 왕으로 군림할 거다.
‘흑사회도 마찬가지야. 라운드를 버티기만 하면 경쟁자들을 모조리 떨굴 수 있어.’
현재 흑사회는 플레이어들이 장악하고 있다.
나이만 먹은 일반 간부들은 이미 척살해서 물갈이한 지 오래.
지금 실권을 쥔 플레이어들은 당연히 20대들이었으며, 자신도 그중 하나로 실력을 인정받아 빠르게 간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힘 있는 자가 흑사회를 먹는 게 아니야. 라운드를 버티는 자가 결국엔 꼭대기를 차지하는 거지.’
시즈캉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위해서라면 타국의 플레이어쯤은 얼마든지 죽여 버릴 수 있었다.
사람 죽이는 건 광전사 클래스인 자신의 특기이기도 했고.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나라 플레이어를 사냥한다. 몬스터라고 생각해. 보는 즉시 일말의 자비도 없이 죽여버린다. 그게 우리가 살아남는 길이다.”
“그런데 시즈캉 님. 다른 나라인지는 어떻게 구분합니까? 닉네임도 보이지 않고 외모도 커스터마이징 한 거일 텐데요.”
“멍청한 새끼. 그거야 대화해 보면 알 수 있지. 언어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아아.”
“알아먹었으면 이제 움직이자. 주변 탐색 스킬 켜고 눈에 보이는 새끼는 전부 찾아서 죽이는 거야.”
“큭큭, 알겠습니다.”
부하와 함께 웃음 지은 시즈캉은 즉시 실행에 옮겼다.
마침 근처에 빨간 점 두 개가 보였다.
“가자!”
검을 들고서 달려갔더니 금세 거리가 좁혀졌다.
생김새로 보아하니 서양 쪽 플레이어들로 추측된다.
“왓 더?”
기척 감지로 접근을 알아차린 서양인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야, 너희들. 중국인 아니지?”
“왓…….”
“아닌 줄 알았어. 코쟁이 새끼들.”
시즈캉은 주저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핏빛의 손아귀.’
허공에서 난데없이 붉은 빛의 거대한 손이 나타나더니 서양인 한 명을 잡아챘다.
순식간에 코앞으로 끌려온 서양인의 머리 위로 붉은빛의 검신이 떨어져 내렸다.
서걱-!
“호, 홀리 쉿!!!”
동료가 당하자 당황한 서양인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시즈캉의 부하들에게 찔리기 전까지는.
푹- 푹- 푹-!
“꺼허어억…….”
꼬챙이처럼 죽은 서양인을 보며 시즈캉이 부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막타 먹었어?”
“제가 먹은 거 같습니다.”
“포인트 얼마 들어왔냐?”
“290 포인트 들어왔습니다.”
“그래? 난 350 포인트인데. 이상하네.”
높고 낮음을 떠나서 왜 사람마다 다르게 포인트가 오르는 걸까?
시체를 앞에 두고 시즈캉이 상념에 빠졌다.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설마 레벨에 따라 다르게 오르는 건가?’
레벨이 낮으면 적게, 높으면 더 많이 포인트를 따는 구조인가?
‘그럼 레벨이 높으면 높을수록 포인트를 많이 주겠네?’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플레이어 중 독보적인 레벨을 차지한, 전 구역 랭킹 1위 검은 낫.
‘그 녀석의 레벨이 90이었지?’
만약 검은 낫을 죽일 수만 있다면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많은 포인트를 독식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 새끼가 한국 플레이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죽이기만 한다면 단숨에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구역 대표가 되는 건 덤이고.’
입가에 히죽 미소가 지어졌지만, 문제는 놈을 어떻게 죽이느냐다.
고민하던 시즈캉의 시선이 슬그머니 부하들에게 향했다.
‘여기 있는 부하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게다가 난 한국말을 조금 할 줄 아니까.’
한국인인 척 접근한 뒤에 부하들을 방패 삼아 치명상을 입힌다면 승산 있지 않을까?
의외로 가능성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부하들에겐 비밀로 해야겠어. 검은 낫이라는 이름만 듣고 겁먹는 병신이 있을지도 모르니.’
그때였다.
부하가 어떤 동양인 한 명을 질질 끌고 왔다.
“시즈캉 님! 근처에 도망가던 녀석을 잡아 왔습니다. 직접 죽이셔서 포인트를 쌓으시지요.”
“왜, 왜 이러는 거예요! 전 싸울 생각 없어요. 그냥 지나가던 중이었다고요!”
“잠깐.”
시즈캉이 녀석의 말을 듣다가 눈을 빛냈다.
“너 한국인이냐?”
“예? 어, 하,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조금.”
“하하, 다행이다. 이, 이 사람들 좀 놓으라고 해보세요. 부탁…….”
“그 전에 하나만 묻자. 너 검은 낫 본 적 있냐?”
“검은 낫이요? 본 적 있죠. 같은 구역이었는데.”
“그래?”
씨익 웃은 시즈캉이 한국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히익!”
“너 추적하기 스킬 있어, 없어?”
“이, 이, 있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검은 낫에게 안내해. 뒈지기 싫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