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70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70화
270. 17라운드 시작
“거, 검은 낫 님!”
허태석과 알렉스는 황망한 얼굴로 무기를 내렸다.
자신들이 검은 낫을 공격하다니.
고의가 아니라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괜찮으십니까!?”
“보다시피.”
“죄, 죄송합니다. 검은 낫 님.”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허태석의 물음에 류민은 보이지 않는 미소만 지었다.
차마 알렉스를 미행했다고 말할 순 없었으니까.
‘엄준석에게서 연락이 왔었지. 알렉스가 파벌을 꾸미고 있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알렉스를 추적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허태석과 싸우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같은 편인 너희가 왜 싸우고 있었냐는 거지.”
“검은 낫 님.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침 잘 됐다는 듯 허태석은 알렉스를 쏘아보며 류민에게 일러바쳤다.
“지난 일주일간 저 녀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도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도로시, 빅터, 소피아, 러셀, 조용호 등. 국적이 다른 그들을 은밀하게 만나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필시 우리 사신교를 무너트리기 위해 신도들 사이에서 파벌을 만들려는 간악한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엄준석에게서 들었던 것과 같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사해 봤는지 내용이 좀 더 상세하다.
“한쪽 말을 들었으니 다른 쪽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지.”
류민의 고개가 알렉스에게 향했다.
“알렉스.”
“예, 검은 낫 님.”
“나한테 할 말 없나?”
유창한 영어로 묻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열변을 토해냈다.
지팡이로 허태석을 가리키면서.
“검은 낫 님! 허 교주를 조심하십시오! 거짓 문자로 저를 이곳에 불러내더니 갑자기 스킬로 저를 속박하며 죽일 것처럼 협박했습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고?”
“모르겠습니다. 꿍꿍이가 있는 거 안다며 자꾸만 실토하라고 하는데 결코 그런 적은 없습니다!”
“흐음…….”
알렉스는 세상 억울한 표정이었다.
그의 말이 진실일까?
속마음의 룬이 이럴 때 좋다.
상대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진실이군.’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어도 한 번 의심하면 한없이 의심할 수야 있겠지만 알렉스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네 주장과 달리 허 교주는 뒤에서 간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여기던데…….”
“제가 음모를요? 말도 안 됩니다!”
“네가 전 세계의 다른 신도들과 접촉하는 걸 봤기 때문이지. 남몰래 파벌을 만든다고 여긴 거야.”
“아…….”
“사실인가?”
“사실이 아닙니다! 팀을 만들려던 건 맞지만…….”
“팀을 만들려 했다고?”
알렉스는 순순히 자신이 팀원을 모으던 이유에 대해 털어놨다.
“16라운드 때 다 같이 몬스터에 맞서는 걸 보고서 느꼈습니다. 뭉치면 이렇게 강하구나. 팀워크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지만 천사에 의해 동료들이 학살당하는 걸 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팀워크가 언제까지고 지속될 순 없겠구나. 576명을 전부 살릴 순 없겠구나. 언젠가는 줄고 줄어서…… 소수 정예만 살아남겠구나.”
알렉스의 목소리는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좀 더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팀을 꾸리기로. 실력 있는 멤버들을 추려서 팀워크를 맞춘다면 살아남는데 더 수월할 것 아닙니까?”
“288명 전원이 팀워크를 맞추기엔 무리니까 말이지?”
“바로 그겁니다. 훗날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을 미리 선정하고 소수 정예처럼 팀을 꾸려 맞춰나간다면, 위기가 닥쳤을 때 훨씬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류민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의 주장은 이랬다.
20라운드까지 살아남을 만한 우월한 인재들을 미리 선별하여 일찌감치 팀워크를 짜자는 것.
어떻게 보면 냉정한 처사 같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여태 류민이 해온 것과 어떤 의미론 비슷하기도 했고.
“그래서 정예로 쓸 만한 사람들을 모아서 미리 팀워크를 맞출 계획이었군.”
“그렇습니다. 결코 리더 자리에 욕심이 있거나 나쁜 일에 사용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허 교주는 그리 생각하지 않더군. 네가 파벌을 만들어 사신교를 배신하려 한다고 여기고 있어.”
“하…… 절대!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얻을 게 뭐라고 배신하겠습니까? 검은 낫 님이 계시는데 무슨 깡으로요.”
억울하다는 듯 소리친 알렉스였고 그의 절규는 진심이었다.
오히려 팀을 꾸려서 검은 낫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가지고 있는 알렉스였다.
“네가 만난 사람들은 네 의견에 전부 동의했고?”
“그렇습니다. 모두 제 뜻을 좋게 봐주시고 그런 의도의 팀이라면 흔쾌히 들어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도로시와 소피아는 친하지 않아서 몰라도 빅터, 러셀, 조용호가 흔쾌히 수락했다?
그것만으로도 류민은 알렉스가 신뢰할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팀을 꾸리게 놔둘 순 없지만.
“의도는 알겠다. 다만 보기에 좋지 않으니 팀은 관두도록. 벌써 배신자라고 오해받지 않았나?”
“으음…… 그건 그렇지만 효율적인 면에서 보면 팀을 만드는 게…….”
“아니, 굳이 팀워크를 맞추지 않아도 문제 될 건 없어. 어차피 내가 전부 조율할 테고 너희는 내 말에 따라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팀워크는 성립된다. 사신교 자체가 팀이나 마찬가지이니.”
“그, 그렇군요. 검은 낫 님이 그러시라 하면…… 알겠습니다. 혼자 멋대로 행동해서 죄송합니다.”
사과까지 하는 알렉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언어가 달라서일까?
그 진심을 느낄 수 없었는지 허태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검은 낫 님. 저 자식이 뭐라고 변명하던가요?”
“꿍꿍이가 없다는군. 자신은 결백하다고.”
“그럴 리가 없습니다. 고문해서라도 털어놓게 만드는 게…….”
“그럴 필요 없다. 애당초 오해였으니까.”
“오해요?”
“내가 설명해 주지.”
류민은 알렉스에게 들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설명해 줬다.
납득할 만한 이유였지만 허태석은 그럼에도 인상을 풀지 않았다.
“거짓말입니다! 저 녀석 지금 거짓말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왜 절 먼저 공격했겠습니까?”
그 말에 류민이 고개를 돌려 알렉스를 바라봤다.
“네가 먼저 허태석을 공격했나?”
“예.”
“왜?”
“살려고 그랬습니다. 사지를 묶고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공격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알렉스는 방어 차원에서 대응했던 것뿐이었다.
그 사실을 그대로 통역해 줬지만, 허태석은 여전히 믿지 않았다.
“분명 거짓을 말하는 게…….”
“거짓이 아니야. 내가 알 수 있어. 그동안 서로에게 오해가 있었던 거 같군.”
“…….”
그렇게 판결을 내리자 허태석도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오해란 걸 알았으니 서로 화해하도록.”
양쪽 다 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도 말했지만 두 사람 사이엔 침묵만 흘렀다.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하지?”
“미안합니다.”
“미안했습니다.”
약간의 불편한 기색을 내비친 뒤에야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두 사람이었다.
여전히 데면데면한 둘을 보며 류민은 가면 속에서 혀를 찼다.
‘이게 뭔 난리람?’
사소한 오해로 같은 편이 서로 죽이겠다고 칼을 빼 들다니.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
멋대로 수상쩍은 행동을 한 알렉스의 잘못도 있지만, 자세한 상황도 모른 채 의심부터 하고 본 허태석의 잘못도 크다.
‘들어보니 사지를 결박해서 실토하게 만들 작정이었나 본데…….’
심증만으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게 류민은 믿기지 않았다.
그 정도로 허태석의 인성이 꼬여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힐끔-
류민이 눈을 돌려 허태석의 속을 들여다봤다.
‘음?’
뭔가 있을까 싶어서 본 그의 마음엔 또 다른 오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참에 바로잡아줘야겠다.
“허태석.”
“예, 검은 낫 님.”
“노파심에 오해할까 봐 말해두는데, 호명한 순위에 집착하지 마라. 결코 마음에 드는 사람 위주로 부른 것이 아니니.”
허태석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발언이었기에.
“아, 아니었습니까? 중요한 사람 순서대로 호명한 것이…….”
“아니다. 3위까지는 보상이 들어오니 가장 기여도가 높은 프리스트와 버퍼를 부른 것이 맞지만, 그 이후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막 불렀을 뿐이다. 특정한 기준을 잡고서 부른 게 아니야.”
“아…….”
“그러니 내가 널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고 생각한다면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군. 내가 바보도 아니고 사신교의 창시자를 홀대할 리가 있겠나?”
“검은 낫 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노에 이글거리던 눈이 감격에 겨운 눈빛으로 바뀌었다.
약간의 사탕발림에도 쉽게 무너져내리는 허태석이었다.
‘누가 추종자 아니랄까 봐.’
이것으로 서로 간의 오해가 부른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가자. 사신교로.”
* * *
영웅의 룬 스택을 쌓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신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검은 씨앗으로 소환한 악마를 제거하면 그만.
[영웅의 룬 스택 : 100/100] [영웅의 룬 효과로 모든 스탯이 100 증가합니다.] [스택 100을 소모하여 ‘영웅의 보호’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좋았어. 이걸로 동생을 지켜줄 수 있겠군.’
만족한 류민은 허태석의 곁을 지나가며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잘했다, 허 교주. 큰 도움이 되었어.”
“아…….”
무슨 도움이 되었다는 건지는 모르지만 허태석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벅찬 고양감에 사로잡혔으니.
‘가끔 이렇게 칭찬 좀 해줘야겠군.’
뒤늦게 허태석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한 류민이 만족스레 웃으며 단상 위에 섰다.
17라운드 공략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 * *
5월 1일 자정.
지난 라운드와 달리 사람들은 아바타의 몸으로 눈을 떴다.
“우리 몇 달 만에 아바타로 돌아온 거지?”
“두 달?”
“그것밖에 안 됐어? 체감상 몇 개월은 지난 줄 알았는데.”
“아바타로 시작하니 은근히 반갑네.”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사람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묻어났다.
이제는 이계에 진입할 때 아바타로 눈을 뜨지 않으면 어색할 지경이다.
“그나저나 이제 번역기 안 써도 되니 편하네.”
“그러게, 맥스.”
“하이, 페르난도.”
“왔어? 미스터 왕?”
인원이 줄어서일까?
아니면 지난 라운드 때 다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겨서일까?
나라가 다름에도 사신교 신도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그중 파티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던 민주리와 크리스틴이 가장 인기가 많았다.
“안녕하세요, 버퍼님?”
“네에, 안녕하세요.”
“크리시 님. 저번에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 와중 알렉스와 허태석의 눈이 마주쳤지만, 금세 고개를 돌리며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 모습에 류민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차차 나아지겠지.’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없었다.
동생에게 영웅의 보호를 걸어서인지 마음이 평화롭다.
‘대천사가 나타나더라도 동생은 이제 안전해.’
변수라면 자신이 이계에 있는 사이 대천사가 동생을 노린다는 점인데,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천계의 존재가 인간계로 넘어가면 힘의 9할이 소진된다고 하니까.’
대천사들의 속마음을 읽고서 얻은 정보였다.
‘아마도 미카엘이라는 놈은 이번 라운드에 나타나겠지.’
두렵기도 했지만 얼마나 강할지 기대도 됐다.
그동안의 상대는 류민의 기대에 턱없이 못 미쳤기에.
게다가 녀석만 잡으면 영혼 결속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다.
어떤 보상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
‘갑자기 나타나서 드래곤 잡는 데 방해나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
류민은 이번 라운드에서 드래곤을 잡을 계획이었다.
18라운드는 전쟁이 벌어지기에 기회는 이번 라운드, 혹은 19라운드뿐이다.
그때 무채색의 하늘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288명의 인간 여러분. 17라운드에 오신 걸 환영해요.]말은 환영한다고 하지만 천사는 뭔가 불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미간에 주름을 만들던 천사가 활짝 웃는 낯으로 말했다.
[뭐, 이번에 많이 떨어져 나가겠죠. 여태까지와 달리 힘이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하는 라운드니까요.]천사의 말에도 플레이어들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이미 검은 낫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17라운드 퀘스트를 공개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