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98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98화
98. 배신
류민은 곧장 비명이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미, 민주리?’
민주리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었다.
바닥엔 피로 흥건하다.
류민이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얼굴로 다가갔다.
“미, 민주주의! 어떻게 된 일이지?!”
“거, 검은 낫…… 아니, 민아…… 나 좀 도와줘.”
류민은 깜짝 놀랐다.
‘내 정체에 대해 알고 있어?’
어떻게 된 거지?
속마음을 읽었을 때 그런 낌새는 전혀 못 느꼈는데?
동공이 흔들리는 와중, 민주리가 이어서 말했다.
“민아……. 류민아. 너 류민이잖아. 맞지……?”
“내 정체를…… 어떻게?”
“당연히…… 알지. 왜 몰라. 내…… 첫사랑인 걸…… 숨기려고 애써도 다 티 난다구…….”
“그럼 여태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거야?”
민주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지…… 그동안 모른 척하기 힘들었어…….”
“그, 그건 그렇고 배는 왜 이래? 어떻게 된 거야? 누가 그랬어?”
한눈에 봐도 부상이 심각했다.
이러다간 어느 순간 죽을 거 같다.
‘아, 응급치료!’
바보같이, 곧장 썼어야 하는 걸 당황해서 떠올리지 못했다.
샤아아아-
뒤늦게 사용하자 상처가 수복되고 민주리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고마워, 민아.”
“누구야? 누가 널 찌른 거지?”
“안상철…… 그자가 그랬어.”
“뭐?”
류민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글거리는 분노가 안상철을 향했다.
“그 개새끼 어디 있어?”
“여기 있지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류민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안상철이 전형적인 악당처럼 실실 웃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서아린이 악녀처럼 입꼬리를 비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이 민주리를 죽이기로 공모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개 X발 연놈들이.”
“워, 말이 험하네요, 예언자님?”
“…….”
일그러졌던 류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분노가 가라앉고 냉정함이 찾아왔다.
“내가 예언자라는 걸 알고 있었나?”
“아니요. 당신이 예언자라는 건 저기 있는 민주리라는 년을 고문해서 알아낸 거예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고요.”
“미, 미안해, 민아.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민주리를 탓할 생각은 없다.
류민은 흉신 같은 표정으로 안상철을 노려봤다.
“큭큭,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제가 당신 정체를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설마 그 허약한 예언자 놈이 검은 낫이었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고, 흐흐.”
“입 찢어버리기 전에 변명부터 들어보자. 왜 민주리를 공격한 거지?”
“그야 당신과 긴밀한 관계인 것 같았으니까, 정보 좀 얻을까 싶어서 기습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수확이 컸네요? 예언자가 검은 낫이었다니, 하하핫! 대표님이 알면 정말 좋아하시겠어!”
안상철이 웃건 말건 류민은 데스 사이드를 꺼내 들었다.
“과연 네가 살아서 그 말을 전해줄 수 있을까?”
“워워, 거기까지. 더 이상 다가오지 마시죠. 안 그러면 민주리 몸에 숨겨놓은 폭탄을 터트릴 테니까.”
“뭐?”
그때, 안상철의 뒤에서 허태석이 걸어 나왔다.
“흐흐, 이 친구가 도움을 좀 줬죠.”
류민은 대번에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 이 새끼 설마…….”
“죄송합니다, 검은 낫님.”
“설마 민주리의 몸에 검은 씨앗을 심어둔 거냐?”
허태석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간단한 행동이 류민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닌 게 아니라 흑마법사는 40레벨이 되면 [검은 씨앗]이란 스킬을 배운다.
땅속에 심어둔 뒤 사용하면 랜덤으로 악마의 소환수 중 하나를 소환할 수 있는 스킬.
그런 스킬을 사람의 몸에 심어서 사용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몸이 폭죽처럼 터지며 소환수가 튀어나온다.
좋게 보면 스킬의 응용이었지만 나쁘게 보면 잔인한 행위다.
물론 류민의 경우엔 후자에 속했고.
“이 개새끼가……. 네가 언제 40레벨이 됐지?”
“저라고 놀고 있었겠습니까? 검은 낫님처럼 강해지고 싶어서 열심히 사냥했죠.”
“노폐인노게이. 당장 씨앗을 해제해라.”
“싫습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거절에, 류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쳤나? 네가 감히 나한테 대항해? 속으로 날 동경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
“물론 검은 낫님은 저에게 있어서 신과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이 상황을 잘 헤쳐나갔을 때지요. 완벽하지 못하다면 더 이상 검은 낫님을 추종할 이유도 없지 않겠습니까?”
“…….”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안상철, 서아린, 자신을 신으로 추앙하던 허태석까지.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뒤통수의 여파는 꽤 컸다.
“원하는 게 뭐냐.”
“흐흐, 저 여자가 너한테 꽤 소중한 사람인가 보지? 꼼짝도 못 하는 걸 보면?”
“닥치고 말해라. 그리고 약속해라. 원하는 걸 들어주면 민주리를 죽이지 않겠다고.”
“크학학학학!”
안상철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러지. 큭큭.”
“약속했다.”
“그래. 원하는 걸 들어준다면 말이야.”
“그래서, 원하는 게 뭐지? 다음 라운드에 대한 정보? 히든 피스의 위치?”
“그딴 건 관심 없고.”
“…….”
“너 따위가 감히 우리를 속이고 마 대표님을 조종하려 드는 게 어이가 없어서 말이지.”
씨익 웃은 안상철이 순간 정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자살해라.”
“…….”
“우리가 보는 앞에서 자살해. 그럼 이 년을 살려주지.”
“알았다. 약속 지켜라.”
류민은 주저 없이 자신의 목에 낫을 갖다 댔다.
스걱-
툭 하고 힘없이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순간 민주리의 비명이 들린 듯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새는 없었다.
‘민주리를 살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된 거야.’
시야가 흐려졌다.
자신을 비웃던 얼굴들이 저편 어딘가로 사라진다.
[숨겨진 서브 퀘스트가 있습니다!]‘메시지?’
치직- 치직-
순간 보고 있는 모든 것에 균열이 인다.
내가 보는 세상이 원래 보던 세상이 아니라는 듯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아!’
연이어 떠오른 메시지에 류민이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망설임 없이 자살하기
└성공 시 ▶ ?? ??? ? 지급
[서브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은 구역별로 한 명에게만 지급됩니다.] [결과 집계 시 보상이 지급됩니다!]어느 순간 몸이 돌아왔다.
잘렸던 목은 붙어 있었고 바닥에 흥건했던 피도 없어졌다.
안상철도, 서아린도, 허태석도, 민주리도.
모두가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류민이 보고 있는 풍경은 다름 아닌 처음의 장소.
초원이었다.
“이건…… 환상이었구나.”
메시지를 본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조금 전까지 본 것은 내적 불안감이 형상화된 환상이었음을.
그 사실을 99회차를 거쳐온 류민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시스템은 류민이 자각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아니, 시스템이 아니야. 나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도록 만든 거지.’
류민이 임시 스킬인 지배권의 정보를 살펴봤다.
[임시 스킬 – 지배권]-남은 기회 : 9회
-사용 대상 : 검은 낫
지배권이 1회 사용되어 있었다.
그것도 검은 낫, 자신을 대상으로.
‘역시 그랬나.’
뒤늦게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환상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도록 지배권을 사용해 스스로 제약을 걸었었군.’
류민은 7라운드에 들어서자마자 아이템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지배권을 사용했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에게만 통하지 않을 뿐, 동 레벨인 경우엔 지배권이 통하니까.’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명령은 간단했다.
-서브 퀘스트를 완료할 때까지 환상일 거라는 생각을 품지 마라.
7라운드의 메인 퀘스트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하지만 환상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으면 환상이 걸리지 않는다.
즉, 시작부터 퀘스트 진행이 막힌다는 뜻이다.
‘그러면 결국 퀘스트 참가에서 제외되고 소멸하고 말지.’
어떻게 아냐고?
한 번 소멸당해 봤기에 안다.
환상임을 인지한 채로 7라운드를 진행했다가 경고 메시지를 받더니 소멸하고 말았다.
‘그때 참 허무했지. 마치 20라운드 보스룸에서 당했던 것처럼.’
류민이 예언을 말할 때 환상이라고 밝히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미리 환상인 걸 알고 있으면 가차 없이 소멸당할 테니까.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하는 방법도 써봤지만 소용없어. 마음속에 환상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떠올리기 마련이거든.’
그런 위험성을 배제하기 위해 생각한 방법이 지배권이다.
지배권으로 자신의 기억 자체를 지워버리면 문제는 없다.
‘자신에게 지배권을 쓸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알았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공략에 있었다.
라운드를 진행할 수는 있어도 공략하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서브 퀘스트가 어려웠어.’
망설임 없이 자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생존을 중요시하는 류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게다가 환상이라는 걸 모르고 있으니 의도적으로 자살할 수도 없고.’
그렇기에 7라운드를 수십 차례 진행하며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다 결국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았다.
‘이계에 오기 전부터 자신에게 세뇌를 걸면 돼. 목숨을 바쳐서라도 민주리를 구해야 한다고. 민주리를 사랑한다고.’
7라운드는 내적 불안감을 토대로 환상을 보여준다.
류민의 경우 정체가 들통나면서 믿었던 동료들이 배신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
이를 토대로 시스템이 환상을 만들어내고 서브 퀘스트의 목적대로 자살해야 하는 상황을 유도한다.
‘그렇다면 내가 민주리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시스템을 속이면 어떨까?’
시스템은 그에 대해 스토리를 꾸밀 것이다.
그리고 자살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 결과 망설임 없이 자살했지.’
민주리를 사랑한다고 사전에 세뇌하듯 생각했었기에 가능했다.
“다행이야. 계획대로 진행돼서.”
만약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분명 자살하라고 했을 때 주저했을 것이다.
‘과거에도 숱하게 서브 퀘스트를 실패했었지. 자살하라고 했을 때 순간적으로 망설여서.’
그때는 민주리를 만나기 전이었기에 다른 사람이 인질로 잡혔었다.
‘내 동생 말이지.’
7라운드 퀘스트를 끝내고 돌아오자 류원이 괴한에게 납치 협박당하는 뻔한 스토리였다.
류민은 그때 자살하라던 협박범의 말에 약간 고민하고 말았다.
‘그래서 회차를 반복할 때마다 항상 서브 퀘스트에 실패했었지.’
스스로 환상이라는 걸 모르게끔 지배권을 사용하지 않으면 딱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라운드 전에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는 방법을 생각해 낸 거지.’
류원을 구할 상황이 생기면 고민하지 않고 목숨을 바치겠다.
그렇게 속으로 수백 번을 되뇌고 7라운드에 진입하면 망설이지 않고 자살할 수 있었다.
이번엔 그 대상이 민주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다행히 세뇌는 통했고 서브 퀘스트는 성공했다.’
류민이 씨익 웃고 있는데 갑자기 서아린이 나타났다.
“앗, 검은 낫님. 7라운드 퀘스트 통과하셨어요?”
“그래. 너도?”
“네…… 저도 환상에서 벗어났어요.”
수줍게 웃던 그녀가 힐끔거리며 류민의 눈치를 봤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른 사람이 없는지 살피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은…… 아직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봐요.”
“그랬나 보군.”
“저어, 검은 낫님.”
갑자기 진지한 분위기를 잡던 서아린이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갑자기 이런 말 해서 놀라실지 모르겠지만…….”
뭘 말하려는 건지 주저주저하더니 간신히 말을 잇는다.
“저 사실…… 검은 낫님을 많이 좋아하거든요.”
“장난치지 마라.”
“하하……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죠? 알아요. 장난처럼 들린다는 거. 그런데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에요.”
“…….”
“단둘이 있어서 이렇게 용기 내는 거라고요.”
“…….”
류민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오히려 뭔가를 기다리듯 낫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다.
분위기가 이상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서아린이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저, 검은 낫님. 저랑 사귀…….”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서아린의 머리가 허공을 날았다.
툭-
류민이 서늘한 눈으로 시스템을 향해 중얼거렸다.
“같잖은 수작은 이제 그만 부리지.”
그에 응답하듯 서아린의 몸이 사라지며 메시지가 떠오른다.
[메인 퀘스트 ‘2시간 내로 유혹에서 벗어나기’를 완료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