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28
“미안하게 됐네요. 괜히 헛바람 들게 해서.”
“헛바람이요?”
“내가 볼 땐, 아무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 이용해서 제작비나 깎으려는 것 같거든. 괜히 휘둘리지 말라고요.”
손지수는 한껏 여유를 가장한 태도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쯤 말했으면 알아들었겠지.’
손지수는 자신이 20대 남자배우들 중에서는 꽤 희소성 있는 연기파 배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하면서 연기를 잘한다는 말도 제법 들어왔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온갖 장르에서 주연을 맡아왔다. 정확히는 주연’만’을 맡았다.
그러나 요즘 그는 안팎으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최근 그가 주연이었던 드라마들의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탓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에게 주연 자리를 내미는 시나리오도 거의 없었다.
그렇게 짜증나던 타이밍에 딱 구찬익 감독의 신작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근데 주연도 아닌 주연 친구라니. 그것도 신인한테 밀려서!
“앞으로 기회도 많을 텐데,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진 말고. 그냥 이 바닥이 그런 거니까. 알죠?”
“···음, 글쎄요.”
손지수는 눈썹을 들어올린 채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이상할 만큼 여유로운 태도가 신경쓰였다.
한유일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윽고, 유일이 입을 열었다.
“적어도 구찬익 감독님께서 한번 말씀하신 걸 잘 번복하지 않는 성격이다, 라고 알고 있습니다.”
“···엉?”
한유일의 입에서 아이를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선배님.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진 마세요.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이 더 흥미로울 때도 많으니까요.”
한유일은 반짝이는 미소와 함께 손지수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그가 방금 민우진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봤기 때문이었다.
– 민우진 매니저 형 : 감독님이 너 주인공으로 쓰고 싶대!!!!
– 민우진 매니저 형 : 스케줄 비는 날 잡아서 미팅 시간도 잡아놨다
“그럼, 좋은 하루 보내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한 유일은 때마침 올라온 엘레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던 손지수는 한유일이 사라지자마자 포효하듯 욕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저··· 저거 지금 나 엿먹인 거 맞지? 저 새끼 뭐냐? 하하, 와··· 나 X발··· 아오 X발!”
그리고는 옆에 있던 자판기를 발로 차며 분을 풀기 시작했다.
본인의 무례함은 까맣게 잊어버린 자신의 담당 배우를 바라보며, 매니저는 한숨을 삼켰다. 그는 하루에 몇 년 씩 늙어간다는 기분이 뭔지 요즘 정확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다음 달에는 꼭 그만두고 만다···’
그는 아련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
며칠 뒤, 늦은 오후.
차에서 내린 유일은 잘 정돈된 정원이 있는 하얀 벽의 주택으로 들어섰다.
정겨운 모습의 집이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곳은 구찬익 감독이 작품에 들어갔을 때 머물며 작업을 하는 별장이었다. 그가 초대한 소수의 인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반갑습니다.”
한유일은 구찬익 감독의 작업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했다.
낡았으나 멋스러운 가죽 소파에 앉아있던 구찬익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매서워 보였다. 나이는 먹어도 눈빛만은 여전히 먹이를 앞에 둔 독수리 같았다.
유일의 인사에도 구찬익 감독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왼쪽 손을 살짝 들고는 오라는 제스처를 해보였다.
한유일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소파는 3인용 정도로 보였고, 소파 앞에는 기다란 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소파를 제외하고는 앉을 만한 가구는 보이지 않았다.
유일이 그의 앞에 서자, 구찬익은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매우 귀찮은 듯 보였다.
“···그냥 앉지.”
“아. 네. 감사합니다.”
한유일은 군말없이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낡은 가구 특유의 삐걱거림이 들릴 거라 생각했으나, 생각보다 소파는 튼튼했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우롱차를 내리고는 작은 잔을 유일의 앞에 두었다.
“난 말일세, 하이틴 스타들을 싫어해.”
“···네?”
“주본희··· 유희재··· 걔네부터 시작해서 하이틴 스타들이랍시고 나온 애들은 다 거기서 거기지. 연기는 기본도 못하면서 얼굴만 믿고 말이야. 자존심이 아주 하늘을 찔렀어.”
주본희와 유희재는 40년 전 활동하던 스타들이었다. 일명 ‘책받침’ 스타들이라 불리던 이들.
짧은 연예계 활동을 뒤로 한 채, 지금은 추억 속에 묻힌 이름들이었다.
유일은 갑작스레 불린 대선배 배우들의 이름에 조금 놀랐다. 브윈 역시 상황을 판단하는 중인지 잠잠했다.
유일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기로 했다. 구찬익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지. 워낙 세상이 빠르게 바뀌기도 했다지만··· 하지만 말야, 인기가 사람을 망치거든.”
그렇지만 또 모르지, 내가 늙은이어서 그런 걸지도.
유일은 점쟁이 같은 말투로 중얼거리는 구찬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구찬익이 고개를 돌려 한유일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자네를 주연으로 앉히겠다 했는지 알고 있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는 바람 빠진 소리처럼 웃은 뒤 책상 위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자. 한번 보게.”
그리고 구찬익은 유일에게 종이뭉치를 건넸다.
‘이건···’
시나리오다.
가장 위에 올려진 표지에 흘림체로 제목이 써져있었다.
[기묘한 정원]제목부터 구찬익 감독스러운 작품이었다. 한유일의 심장이 점차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 읽어도 됩니까?”
“당연하지. 읽으라고 준 건데.”
구찬익 감독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가 은은한 연녹색 차를 홀짝이는 사이, 유일은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와.’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70대의 감독이 쓴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이야기였다.
과거가 의심스러운 꽃집 사장 혁진과 싸가지는 없어도 머리는 좋은 아르바이트생 수일. 그 둘이 함께 꽃집에서 일한다. 중반부까지는 잔잔한 힐링물처럼 진행되던 작품이 서서히 변해간다.
터닝포인트는 꽃집 사장의 비밀이다. 그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액션 추격물이 결합되기 시작한다.
초침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작업실. 유일은 집중한 채 시나리오를 한장 한장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장에 다다랐다.
한유일은 눈을 반짝이며 감독을 바라보았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습니다, 감독님.”
“허, 벌써 다 읽었나?”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유일을 바라보았으나, 유일이 시나리오의 내용을 줄줄 읊기 시작하자 금세 의심을 거뒀다.
【특이한 작품이군요. 기존의 구찬익 감독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장르입니다.】
유일 역시 브윈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까지 쓰셨던 시나리오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네요.”
“그걸 느꼈나? ···하긴, 당연하지.”
어쩐지 그는 뿌듯한 것 같기도, 슬픈한 것 같기도 했다.
“이건 내가 쓴 게 아니니까.”
“···아, 작가님이 따로 계십니까?”
“그래.”
차를 천천히 들이킨 그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이 글의 작가는 내 딸이네. 내가 좀 덧붙이긴 했지만 말야.”
“···!”
생각을 더듬던 유일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다물었다.
브윈이 담담하게 말했다.
【···세상에 알려진 구찬익 감독의 딸이라면, 8년 전 교통사고로 죽은 ‘구혜영’이 있습니다.】
‘···그래.’
구혜영은 구찬익이 40대에 얻은 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구찬익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몇 년 전에 딸애가 쓰던 방을 정리하다가 이걸 발견했는데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걸 영화로 만들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더라고.”
유일의 눈이 점점 깊어졌다.
구찬익 감독은 그 이후로도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짧게 했다. 지금껏 구찬익은 그는 단한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늘어놓은 적이 없었다.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말을 아끼던 그였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던 유일이 나지막히 말했다.
“주인공인 수일이 작가님을 많이 닮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유일의 말에 구찬익은 그를 조금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래. 혜영이와 아주 닮았지.”
대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러나 유일의 얼굴을 바라본 순간, 구찬익은 불현듯 깨달았다.
한유일은 단순히 그의 상황을 이해한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그것도 온 마음을 다해서.
그 순간, 구찬익의 머릿속에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스치듯 들은 탓에 거의 잊어버렸던 이야기.
한유일의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게도 그런 물건이 있거든요.”
유일은 손바닥을 펴보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크기는 이쯤 되는, 제 손바닥만한 노트입니다. 진흙과 물에 젖어서 내용도 하나도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제겐 가장 중요한 물건이죠.”
“그건···.”
한유일은 구찬익의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모님과 가장 마지막까지 함께 있던 물건이었습니다.”
그 낡은 노트는 한유일이 가진 것 중 가장 귀중한 물건이었다.
구찬익은 차로 입술을 축였다.
뜨거웠던 차는 어느새 차게 식어있었다.
“자네.”
구찬익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한유일의 눈동자는 맑게 빛나고 있었다.
그를 본 늙은 감독은 확신이 생겼다.
‘그래, 이 사람이라면···’
그가 지금껏 미뤄온 숙제를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 줄 수 있겠나?”
────────────────────────────────────
────────────────────────────────────
────────────────────────────────────
────────────────────────────────────
재미있겠네, 이번 촬영.
구찬익이 대표로 있는 제작사, ‘구필름’에서 미팅을 마치고 나온 장재이 실장은 상기된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단한데?”
구찬익은 한유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그것도 아주. 분명 처음 한유일과 미팅을 잡았을 때는 ‘그냥 만나만 볼 테니 기대하지 말라’는 뉘앙스로 말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유일 씨 아니면 안 하겠다고 하니···’
“유일 씨. 대체 어떻게 한 거예요?”
“네?”
장재이의 얼굴에 장난기가 섞인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다른 감독도 아니고 ‘그’ 구찬익이다. 대체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유일의 어깨라도 붙잡고 묻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작 지금 장재이의 옆에 있는 한유일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이었다.
장재이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워낙 꼼꼼하기로 소문난 감독님이라 곧 배우들만 따로 부를 거예요. 촬영은 가을쯤 시작할 것 같고.”
“알겠습니다.”
“참, 오늘 유일 씨 스케줄 있죠?”
“넷!”
대답은 옆에서 들렸다. 민우진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두 시간 뒤에 넘버 녹음이 있습니다!”
“아, 그래. 그게 있었지.”
고개를 끄덕인 장재이는 유일을 물끄러미 보다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화이팅이에요.”
장재이 실장이 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는지, 유일은 얼마가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어렵네.’
노래를 녹음하는 일은 후시녹음 보다 어려웠다.
싱인하에서는 매 화 노래가 나오는데, 그중 유일이 녹음해야 하는 노래는 총 세 곡이었다.
– ···아, 유일 씨. 이번 거 좋았는데 조금만 더 밝게 해볼까요?
– 중간에 톤을 조금 더 올려도 좋을 것 같아요.
– 여기선 가성으로 마무리해볼까요?
···그나마 구체적인 피드백이 있어서 덜 힘들었다. 전문가들을 모았다는 게 정말이었는지, 음악의 완성도가 꽤 높았다.
처음에 배우들에게 가이드로 줬던 음원도 꽤 좋다 싶었는데, 완성된 음원을 들으니 느낌이 전혀 달랐다.
“···와.”
유일은 노래에 대해 빠삭한 편은 아니었음에도 알 수 있었다. 이 음원을 마음에 들어할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마지막회와 함께 음원이 모두 풀리는 날.
HM은 조촐한 저녁과 함께 텔레비전을 틀었다. HM은 다른 채널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곧바로 오튜브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에선 이제 막 ‘싱 인 하이스쿨’ 자막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설레네.’
솔직히 처음에는 김하랑만 보려고 틀었던 드라마였다. 애초에 하이틴물이 취향도 아니었고 오글거리는 건 더더욱 싫어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드라마 자체가 재미있었다. 오글거릴 법한 내용이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유치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하랑을 포함한 주연 배우들이 갈수록 연기를 잘했다···!
HM은 선기현의 클로즈업이 나오자 자세를 고쳐잡았다.
‘···쟨 처음부터 잘했긴 했지.’
그리고, HM은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의 최종심에 올라간 효빈의 팀.
최종심의 테마는 ‘리메이크’였다.
기존 음악을 얼마나 잘 자신만의 스타일로 편곡하는지가 주요 심사 포인트였다.
사회자는 손뼉을 치며 멘트를 꺼낸다.
– 자, 다음은 팀 이름이 꽤 특이한 팀이죠? ‘오합지졸~!’
‘오합지졸’은 팀원들의 공통점을 찾다가 포기한 혜나가 붙인 이름이었다.
스포티하게 머리를 올려묶은 혜나와 스카프를 머리에 묶은 효빈이 먼저 무대로 올라간다.
운동복을 떠올리게 하는 무대의상을 입은 하랑이 그 둘을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가고, 그 뒤로 임시로 화해를 한 선기현과 이태우가 무대 위로 올라간다.
팀원들은 앞선 무대들로 흥미가 식은 관객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 슬슬 지루하네··· 1등은 아까 걔네가 할 것 같지?
– 이따가 뭐 먹을래?
수군대는 관객들을 지켜보던 선기현은 천천히 눈을 감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 서 있는 팀원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친 선기현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떠오른다. 언제나 차갑고 표정이 없던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얼굴.
그리고,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
반주를 들은 심사위원들의 눈이 커졌다.
‘이 노래는···.’
80년대를 지나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노래. 신현철의 였다.
「그래 네가 맞아
나는 아무것도 몰라」
누구든 추억에 젖어들게 만들만한 전주는 신스 사운드가 더해지며 묘한 변주가 되었다. 익숙함은 가져가되, 기존 음악의 묵직함은 덜어낸 편곡이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저 지금이」
가장 먼저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부른 효빈은 순식간에 뒤로 빠진다. 그 앞으로 하랑이 화려한 스텝을 선보이며 등장한다.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는 시간이란 것」
다음 순간, 드라마 속 관객들은 모두 숨을 들이켰다. 허리춤에 달려있던, 모두가 그저 의상이라고 생각했던 반짝이던 폼들이 반짝거리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팔을 걷어붙이고 뛰어보자 힘차게」
다섯 명의 학생들이 모두 색색의 폼을 하늘 위로 높이 들어올린다.
「상쾌한 바람이 불어 구름 위를 걷는 기분」
-···오.
심사위원은 놀란 얼굴로 그들의 치어리딩을 바라보았다.
– 컨셉을 잘 잡았네.
눈빛을 교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신현철의 는 응원가로도 많이 쓰였던 음악이었던 만큼, 치어리딩 컨셉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김하랑을 선두로 팀원들은 칼같이 안무를 맞췄다. 통통 뛰면서도 표정과 호흡을 잃지 않은 채 하이라이트를 불렀다.
「달리자 숨이 가쁠 때까지 힘껏
달리자 길의 끝이 나올 때까지」
HM은 금방이라도 스크린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몸을 숙였다. 눈 하나 깜박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HM은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은 하이틴물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은 드라마가 취향이었을 뿐이었다.
「날이 좋지 않아도 상관 없어
달리기는 멈추지 않을 테니」
그토록 투닥대던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맞춘다. 서로의 발소리를 듣고, 호흡을 들으며 움직인다. 마치 하나의 몸인 것처럼.
「넘어진다해도 괜찮을 거야」
이태우와 선기현이 화음을 쌓고, 색색의 목소리들이 그에 힘을 보탠다.
「우린 함께 뛰고 있을 테니」
하늘을 향해 높이 뛰는 다섯 명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무대가 끝이 났다.
HM은 결국 1위를 얻어낸 뒤 얼싸안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뭔데··· 이거 뭔데···.’
무대 위를 방방 뛰어다닌 애들은 텔레비전 속에 있는데 왜 자신의 심장이 이렇게 뛰는 걸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
.
.
수박 차트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