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ting genius began RAW novel - chapter 36
눈에 띄게 아쉬워하던 팀장은 유일에게 천천히 읽어 보라고 말한 뒤, 속삭이며 덧붙였다.
“···배우님, 보다가 마음에 드시는 거 있으면 출연하고 싶다고 대표님께 말씀드려보세요!”
“그래도 되나요?”
“어머, 당연하죠!”
팀장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외쳤다.
“배우님이 하고 싶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반기실걸요?”
【사실입니다. 여기 있는 시나리오들은 모두 TN ENM과 JJ엔터테인먼트가 추가적인 협의 없이 공동제작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자체 IP들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유일은 더욱 열심히 기획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온갖 이야기들 사이에서, 유일의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이 하나 있었다.
장르는 미스테리 호러. 8부작 시리즈물이다.
볼드체로 써진 로그라인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의문의 실종사건. 경찰조차 진범을 찾지 못하던 중, 귀신을 볼 수 있다는 한 소녀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빠르게 트리트먼트를 훑은 유일의 눈이 반짝였다.
‘···이건.’
완성도가 높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마음이 가냐’의 문제였다.
‘해볼만 한데.’
유일의 손에 들린 기획안을 본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 그거 5년 전인가? TN에서 했던 호러 공모전 당선작이에요. 사실 그 작품은 기획안보다 시나리오가 재밌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눈독 들이는 감독들도 많았어요.”
팀장의 말에 직원도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어? 진짜요?”
“응. 근데 프리까지 간 적도 없다네.”
프리프로덕션.
각본을 완성시키고 콘티를 짜고 로케이션을 정하는 등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는 모든 작업을 일컫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요?”
“글쎄.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 엎어진 이유는 다들 쉬쉬하잖아.”
팀장이 어깨를 으쓱이며 직원의 질문을 넘길 때, 브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의 경우, 작가와 제작사 사이의 갈등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처음 제작에 참여했던 감독과 작가 사이의 의견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후 작가가 지속적으로 다른 감독을 제안했으나, 제작사 측에서 거부했습니다. 】
‘왜?’
【대부분의 제작사는 소속 감독들이 있거나 함께 일하고자 하는 감독들이 내정되어 있습니다. 그 이외의 감독들이 함께 일하려 하는 경우 이를 반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유일은 턱을 괸 채 생각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TN ENM에서 붙인 감독이랑 작가가 거하게 싸웠고, 작가가 다른 감독 데려오려고 했더니 제작사가 막았다는 거네.’
【정확합니다.】
유일은 작가의 이름을 보았다.
기주현.
【7년 전 SBC 공모전에 단막극 최우수상을 받으며 작가 생활을 시작한 인물로, 그 다음 해 SBC 4부작 드라마 으로 입봉한 작가입니다. 5년 전 으로 TN ENM에서 주관한 ‘짜릿 호러 공모전’에 최우수작으로 당선되었고, 이후에는 영화 , 에 각색으로 참여하였으며···】
기주현의 이력을 듣던 유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본적으로 실력도, 재능도 있는 작가인 듯했다.
“저, 혹시 괜찮으시면 시나리오를 읽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실까요?”
“그럼요, 배우님! 어차피 남은 업무는 시나리오 검토뿐인걸요.”
“편하게 읽으세요.”
유일은 꼼꼼히 시나리오를 읽기 시작했다.
기획안과 함께 붙어있는 시나리오는 2부작까지였다. 유일은 70페이지 가까이 되는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었다.
“···어? 배우님, 벌써 다 읽으셨어요?”
“완전 속독가시네~!”
유일은 천천히 시나리오를 내려놓았다.
직원과 팀장의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재밌네.’
만약 캐스팅 제안이 들어온다면 당장 하겠다고 할 만한 극이었다.
“그 작품은 각본도 끝까지 있을 거예요. 감독만 있으면 금방 프리 들어갈 수 있을 텐데.”
【기주현 작가가 TN ENM에서 제안한 감독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낄 확률은 89.9%이며, 현재 이 제작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확률은 2.3% 입니다.】
이런 일에 끼어들어도 될까.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에 배급을 어디서 하지?’
【 배급사는···】
유일은 이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다.
그만큼 탐이 났다.
【···TN ENM입니다.】
유일의 생각을 읽어낸 브윈은 몇 초 뒤 다시 목소리를 냈다 .
【의 제작 성공 확률을 재검토합니다.】
【한유일 님이 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경우, 해당 드라마가 제작까지 성공할 확률은 82.4%입니다.】
···왠지 길이 보이는 것 같다.
*
기주현.
철학과를 졸업하고 작가교육원에 들어가 입문반에서 데뷔를 해버린 뒤 아직까지도 교육원의 전설처럼 회자되는 인물이었다.
작가 교육원은 입문반, 연수반, 전문반으로 나뉘었다. 입문반에 들어가는 이들은 작가를 꿈꾸며 이제 막 시작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연수반이나 전문반도 아닌 입문반에서 최종심까지 가는 것도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
기주현은 자신의 재능을 잘 알았다.
물론 세상엔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신이 있었던 이유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담긴 글을 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름 탄탄대로인 작가생활 중이었으나, 그런 그녀에게도 골칫거리가 하나 있었다.
TN ENM의 호러 공모전에 냈던 시나리오. 오랜 시간 공들인 시나리오였기에 애정도 남달랐다.
다른 곳도 아닌 TN의 공모전에 낸 것은 특별한 이유는 아니었다.
신인이든 기성이든 실력으로만 판단하겠다는 공모전의 취지와 쏠쏠한 상금, 그리고 드라마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내지 말 걸 그랬나.’
좋은 감독을 붙여주겠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자신의 작품을 1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 이건 그냥 아이돌들만 넣어서 찍으면 끝나는 드라마예요. 아시죠, 작가님? 다 팬덤빨인 거.
– 여기서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멋없는데. 아예 좀 격하게 가보죠. 재밌을 것 같은데.
처음엔 웃으며 대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다. 감독과 기주현의 의견 차이는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주현이 폭발했던 것은 어느 날 오후, 감독이 비웃음과 함께 던진 말 때문이었다.
– 요즘 누가 작가주의 영화 봅니까? 작가니 연출이니, 다 자기들끼리나 하는 말이지. 작가님이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으니 이해는 갑니다만. 이 시나리오 제가 만지면 정말 시청률도 화제성도 같이 잡을 수 있을 텐데··· 참.
그 순간 기주현이 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떨어졌다.
– 지금 무슨 개소리 하시는 거세요?
– ···작가님? 그 말 지금··· 나한테 하는 겁니까?
– 예. 그쪽한테 하는 말인데요? 사람이 좀 말다운 말을 해야지, 안 그래요?
기주현은 벙찐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감독을 똑바로 바라보며 외쳤다.
– 빽으로 연출 시작한 주제에 누가 누굴 가르쳐요! 감독님이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돌들 그득그득 나오는 웹드라마도 말아먹었으면서 시청률, 화제성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정신을 차렸을 땐 손에 들린 기획안이 잔뜩 구겨져 있었고, 자신의 몸은 어느새 제작사 건물 바깥에 있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직원들이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었고··· 그 뒤는 뭐.
사장과 친분이 있던 그 감독은 바락바락 화를 내며 기주현을 자르라고 며칠간 떼를 썼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TN은 기주현이라는 작가를 놓치고 싶지 않아했다. 그러면서도 기주현이 데리고 오는 감독은 이게 별로다, 저게 별로다 하며 퇴짜를 놓았다.
이제 기주현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TN에서 제안하는 감독을 받아들이거나, 작품을 포기하거나.
‘···아, 짜증나.’
생각이 많아지니 차기작 집필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주현은 인상을 쓴 채 컴퓨터 옆에 가득 쌓여있는 박하사탕을 하나 까먹었다.
그때,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혹시 기주현 작가님 맞으신가요?
수화기 너머로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주현은 자세를 바로 한 뒤 입을 열었다.
“네, 전데요.”
– 아, 반갑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산뜻하게 말을 이었다.
– 한유일이라고 합니다.
“···네?”
기주현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유일? 그게 누구지···.’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문득 최근 정주행한 드라마 하나를 떠올렸다.
‘설마.’
“싱인하 나온 그 배우님이세요?”
– 네. 맞습니다.
“헐, 저 싱인하 진짜 재밌게 봤어요! 저 선기현 캐릭터 진짜 좋아하거든요.”
잠시 작가 모드를 끈 채 해맑게 말을 이어가던 기주현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흐흠. ···근데 무슨 일로···?”
– 직접 만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저한테요?”
한유일이 내게 할 말이 있다니?
기주현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이전까지 유일의 말은, 그 뒤에 이어질 말보다 놀랍지는 않았다.
– ,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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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 배우님
한유일이 기주현에게 연락하기 며칠 전의 일이다.
상암의 한 오피스텔.
자신의 작업실에 앉아서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던 유재호 감독은 어느새 길게 자란 부스스한 머리칼을 하나로 묶었다. 하루하루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아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이번에 그가 연출한 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뉴커런츠 상을 받았다.
보통 이와 같은 독립영화들은 아트하우스에서 개봉하는 것이 기본이나, TN ENM에서 배급을 결정하면서 이야기가 전혀 달라졌다.
든든한 배급사를 등에 업은 는 독립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벌써 관객수 10만이 넘어가고 있으니 말 다한 셈이다. 투자사가 없다시피 시작한 영화이기에 손익분기점은 2만이었을 때부터 넘었다.
유재호가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쏟아지는 문자가 그의 달라진 일상을 반증했다.
– 안녕하세요, 감독님. TEN 기자 신유리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인터뷰 요청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저번에 인사드렸던 두드림 기자 김수진 입니다. 차기작 관련하여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 연락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 사이에서 유재호가 가장 먼저 답했던 문자는 따로 있었다.
– 감독님, 잘 지내시나요? 한유일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한유일의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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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호가 유일의 문자를 받고 몇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한유일은 유재호 감독의 작업실에 있었다.
“아, 유일 씨. 커피 좋아하시죠?”
“그럼요.”
손수 커피를 내린 유재호는 깜찍한 오리 캐릭터가 그려진 머그잔에 커피를 따른 뒤 유일에게 건넸다.
적당한 산미가 기분 좋은, 예가체프 원두로 내린 커피였다.
“커피 맛있네요. 감사합니다.”
“크크, 여기가 원래 커피 맛집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일부러 여기 와서 테이크아웃 해가요. 요즘은 다른 사람들도 자주 못 만나긴 하지만.”
“요즘 많이 바쁘시죠?”
“말도 마십쇼. 태어나서 이렇게 인기 많았던 적도 처음이라 어지럽다니까.”
사람 좋게 웃어보인 그는 순식간에 눈빛을 바꿨다.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유일은 입을 여는 대신 가방을 꺼냈다. 그의 가방에서 파일 하나가 나왔다.
유재호는 테이블에 놓인 불투명한 파일을 한번 본 뒤, 다시 한유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말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무슨···”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그의 말에 처음으로 든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뭘까?’
“···일단 읽어보면 되는 거죠?”
“그럼요.”
“정말 읽어만 볼겁니다?”
그렇게 당부를 한 유재호는 한유일이 건넨 파일을 펼쳤다.
‘기획안이잖아.’
이미 그에겐 검토를 요구하는 수많은 기획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예 자신이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이걸 골라왔다는 건 생각이 있다는 거겠지.’
한유일은 단 한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 없는 배우였다.
유재호는 진지한 얼굴로 기획안을 들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기획안을 한 페이지씩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담하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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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하는 아이들이라면 모두가 꿈꿀만한 샛별 예술고등학교.
어느 날, 그곳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 한 명이 사라진 것이다. 학교는 발칵 뒤집힌다.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될 무렵··· 실종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날 밤 또 한 명의 아이가 사라진다. 사라진 아이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이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샛별예고 2학년 민호준.
어두운 아웃사이더였던 그를 경찰도, 주변 사람들도 그를 껄끄러워하며 피하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앞에 귀신을 볼 수 있다는 한 소녀가 나타나는데···.
“···!”
유재호는 입술을 깨물고 미간을 찌푸린 채 빠르게 시나리오를 넘겼다.
그는 순식간에 ‘2부 막’이라고 적힌 글씨에 다다랐다.
“이거··· 뭡니까?”
유일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의 차기작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이요.”
“···!”
유재호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기획안을 보이기 위해 유일은 장 대표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어필했다.
처음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하던 그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좋네요. 감독님과 작가님 섭외가 확실시 되면 TN 측과 미팅부터 잡도록 하죠.
장재현 대표와의 대화를 떠올린 유일은 기분 좋게 웃었다.
【이제 TN 측에 알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
TN ENM의 드라마 사업본부.
안 그래도 피곤한데, 비까지 와서 더 몸이 무거운 날이었다. 따분한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있던 드라마국 국장은 팀장이 올린 결재안을 읽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샛별예고? 이걸 지금 들어가겠다고?”
TN에서도 은 골칫거리였다. 주변에도 친한 작가들이 많은 그는 기주현 작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국장은 윗사람들의 사정을 고려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었다.
감독 이름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재호 감독이라.’
유재호.
최근 로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에 오른 감독이었다. 그냥 독립영화가 아니라 ‘잘 팔리는’ 독립영화를 찍은 감독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사실 국장은 유재호 감독에 대해선 잘 몰랐다. 알고 있는 것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했던 감독이라는 것뿐.
그가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게 끝이었을 터였다.
‘어디 소속으로 활동한 적도 없고. 이제 막 영화 찍었으니 관계가 안 좋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는 TN에서 배급한 작품이었다.
‘이 정도면 위에서도 오케이 할 것 같은데.’
국장은 당장 팀장을 호출했다.
“이거, 이야기는 다 된 거야? 유재호 감독은 만나봤어?”
“네.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
국장은 미간을 좁힌 채 물었다.
“근데 기 작가가 허락하겠어? 지금까지 그 난리를 쳤는데.”
“저 그게···”
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기주현 작가가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했답니다.”
“엉? 진짜야?!”
“네. 유재호 감독과 꼭 하고 싶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JJ에서 관련 사항으로 미팅 요청 들어왔습니다.”
연달아 이야기를 듣던 국장이 이마를 문질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대본이 갑자기 제작의 문턱을 넘기 직전까지 왔다. 이는 누군가 멱살을 잡고 끌고 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친구인지는 몰라도··· 불도저네, 불도저야.”
아무래도 JJ엔터테인먼트의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아주 마음에 들어한 게 틀림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그 ‘누군가’가 한유일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
며칠 전.
시나리오를 읽은 유재호는 당장 기주현을 만나야겠다고 외쳤다.
유일은 곧바로 그녀에게 연락을 했다. 약속은 금방 잡혔다.
그렇게 첫 미팅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좀 어색하나 싶었는데···
“여기, 이 씬 마무리가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듭니다. 쓸쓸하면서도 소름끼치는 게··· 때깔 잘 뽑히면 아주 멋있겠는데요.”
“알아주시니 감사하네요. 누군 여기다가 키스신 넣자고 그랬거든요.”
“···설마 그 감독입니까? 그 사람이 진짜 그렇게 말했습니까? 여기서 갑자기 키스신을 넣으라고요?”
“아 그렇다니까요!”
“와, 진짜 미친 놈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