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가만히 결계를 살피던 마크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며, 흉악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자신의 기술이 근원인 결계술의 흔적을 보자 황제와 공안에게 당했던 고문과 고통이 생각나 원한이 솟아오른 것이다.
검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주변의 마기가 호응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거대한 힘이 태동하기 시작하던 그때.
“…… 안 되지. 안 돼.”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마크의 손에서 뽑아진 한 줄기 실이 마크의 정수리로 들어갔고, 마크의 눈에 이성의 빛이 돌아왔다.
“괴물이 가까이에 있지. 큰일 날 뻔 했군.”
주변에 자욱하게 있던 마기를 흩어 버리고서는 마크는 자신의 기척을 더욱 가라앉혔다.
혈계능력 마리오네트.
콩코르 후작가의 혈족인 만큼 마크 역시 당연히 마리오네트를 사용할 줄 알았지만, 여타의 일족과는 그 응용방법이 달랐다.
타인을 조종하고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마크가 연구한 것은 자신에 대한 강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강화한다는 것이 어찌 보면 모순이지만, 대마법사에 이를 정도로 경지가 깊은 마크는 결국 방법을 찾아내었고, 이 능력의 응용으로 기나긴 고문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 올 탈출의 시간을 위해 교수들까지 포섭했을 정도니 어떻게 보면 윅에 이어서 봉인의 영향에서 벗어난 셈이다.
쉬지 않고 속삭이는 마룡의 유혹에 대비해서 마크는 자신의 몸에 상황에 맞는 세팅을 걸어 놓았고, 지금 그 안배가 빛을 발했다.
한층 더 조심스런 손짓으로 흙무더기를 뒤적거리던 마크가 눈을 빛냈다.
“찾았군.”
파손되어 버린 결계의 정중앙에 금이 간 채로 묻혀있는 큐빅을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악마를 불러내기 위한 매개체로 삼았던 큐빅의 모습은 이리저리 금이 간 모습이 당장이라도 부셔질 것 같았지만, 마크는 기꺼운 표정을 지었다.
“결국 완성해 냈군. 큭큭큭. 이거야말로 사람이 악마보다 더 악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마크의 눈에 광기가 들어찼다.
큐빅의 연구에는 마기에 관한 마크의 지식도 들어가 있었고, 후반기에 들어서는 마크에게 직접적인 자문을 할 정도였다.
큐빅의 완성에는 마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이런 걸 만들어 놓고도 봉인체가 위험하다고? 정말 위선적인 사람이야. 황제.”
마룡을 봉인하고 돌아온 12명의 용사를 잡아 가둔 황제의 명분은 대륙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이유였는데, 결국 하는 짓은 대륙의 위기를 초래하는 짓거리이니 마크는 황제를 실컷 비웃었다.
징.
손에서 뻗어 나간 실이 가볍게 진동하며 점점 고양되는 마크의 정신을 붙잡았다.
“후우.”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마크는 눈가를 찌푸렸다.
이성의 화신이라는 대마법사의 도달한 그로서는 이러한 자신의 급격한 감정변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때문에 여러 가지 대비책을 세워 두고 있었고, 근본적인 원인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우웅.
주변의 마기를 이용해 결계를 구축하고 완전히 마기에 녹아든 마크가 큐빅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웠다.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소리가 이어지고 마기가 호응하며 큐빅을 자극하니 당장이라고 부셔질 것 같이 금이 간 큐빅이 덜컥거리며 저절로 떠올랐다.
마크의 양손이 큐빅을 조심스레 감싸고 기운을 억제했다.
중요한 것은 들키지 않는 것.
결계술에 의한 은신은 일가견이 있지만, 상대가 아렌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기운을 억제하며 큐빅을 감싸기도 잠시, 큐빅의 표면이 부셔져 내리더니만 이내 안쪽에서 검은색의 보석이 나타났다.
“호오.”
온 세상의 어둠을 빨아들일 것 만 같은 검은 색의 보석은 마치 심장처럼 맥동하고 있었고, 그 황홀한 자태에 마크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렸다.
– …… 누구냐.
“역시 살아 있었군. 악마.”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 의념이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고문전문가의 것이었고, 마크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에 비릿하게 미소 지었다.
– …… 인간인가? 아니군. 악마나 마물도 아니야. 누구지? 기억의 결손이 심하구나.
자신이 바라던 상태 그대로인 것을 확인한 마크의 눈가에 희열이 떠올랐다.
고문전문가는 분명히 아렌에게 죽었지만 그것이 악마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렌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 쉽게 죽는다면 악마가 그렇게 불멸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마계화 된 대지는 축이었던 고문전문가의 의념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핵을 생성한 것이다.
즉 본체는 죽음을 맞았지만 미래를 위한 씨앗을 남겨 놓은 것.
문제라면 이곳이 마계가 아닌 중간계라는 것이겠지만, 당시의 고문전문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마 이대로 뒀다면 적당한 악마가 다시 태어났을 것이고, 막 태어나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악마는 이번에야말로 메카니의 일원들에게 토벌되었을 테지만 마크의 개입으로 그 미래는 바뀌었다.
“그렇게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악마의 핵을 쓰다듬은 마크가 하얗게 웃었다.
“의미 없는 일일 테니까.”
– …… 무슨 말 …….
마크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고, 동시에 보석의 주변에 결계가 떠올라 단단히 감쌌다.
희미한 의념도 심장처럼 맥동하는 고동도 완전히 차단된 보석을 품에 집어넣고서 마크가 일어섰다.
“제 아무리 약화됐다고는 하지만 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잘만하면 봉인에서 벗어날 수도 있겠어.”
베럭과 밀드레드를 챙기고 아렌에게서 벗어난 마크는 최대한 유피테르와 멀어지는 것을 선택했고, 그렇게 자리를 잡은 곳이 메카니 공작가의 대지였다.
워낙에 대영지이니 거처로 삼을 곳도 많았고, 대마법사인 마크에게는 외려 도심지가 숨기 더 유리한 점도 있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한 선택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만들었으니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밀드레드.”
포탈 너머에서 시체처럼 서있는 밀드레드를 보면서 마크는 웃었다.
결계의 기운을 느끼고 황제가 관련되었음을 직감하고는 반사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결계에 파탄을 만들었는데, 악마의 핵을 손에 넣었으니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였다.
“지금 거점은 버려야겠지만 상관없지.”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며 포탈을 넘는 마크를 바라보는 밀드레드는 입을 열지 않았고, 그 모습이 마치 인형처럼 보였다.
* * *
아렌의 손에 악마가 쓰러지고, 그 여파로 마물들의 기세가 죽은 것을 확인한 메카니의 병력들은 더욱 가열차게 전진했고, 전선의 고착화를 이루어 낼 수 있었다.
이제 전선을 감시하면서 꾸준히 정화해 나가면 되는 일이니, 전투에 참석한 인원들을 치하한 마르틴은 성으로의 복귀를 명했다.
오만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메카니답게 마계의 침공을 저지한 영웅들을 환영하는 인파들은 화려하기 그지없었고, 전투에 참여했던 인물들은 각기 정당하고도 넘치는 보상이 쥐어졌다.
동시에 도리안과 디어뮈드를 위시한 기사들이 수상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넷이나 잡아왔으니 마르틴은 한껏 잔인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르틴은 이내 고민했다.
도대체 아렌에게 어떠한 보답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무려 귀족급의 대악마를 단신으로 참살했으니 아렌에게는 그 어떠한 보상을 하더라도 빛이 바랠 것이 분명했다.
메카니가 누대에 걸쳐서 쌓아 온 보물이 창고에 한 가득이라지만 초인의 경지에 이르고 황금의 그라인드인 아렌의 눈에 찰 만한 물건이 있느냐고 한다면 그것도 자신이 없었다.
동맹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보낸다면 메카니의 자존심이 크게 손상될 터.
한참을 고민하던 마르틴은 결국 정면승부를 택했다.
“원하는 것을 말해 보게.”
“솔직해서 좋구나. 화통하기도 하고.”
자초지종을 들은 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의 아니게 악마를 물리치게 되었지만 아렌 개인으로서도 크게 발전을 했으니, 기실 메카니의 보답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거절한다면 이 오만한 공작의 마음에 상처가 될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아렌은 입을 열었다.
“지식을 다오.”
“지식?”
뜬금없는 아렌의 말에 마르틴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유서 깊은 가문이 모아온 지식은 분명 범상치 않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시간을 들여온 보물을 받는 것이니 격에 부족하지 않겠지.”
“…… 과연 그렇군.”
아렌의 말에 마르틴이 환하게 웃었다.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려는 아렌의 마음 씀씀이를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도서관을 개방하지. 원하는 만큼 보게나.”
한없이 오만하고 속이 좁쌀만 해서 작은 원한도 잊지 않는 것이 메카니다.
그리고 그런 만큼 은혜도 절대로 잊지 않으니 마르틴은 통 크게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비전까지 개방했고, 희미하게 미소 짓는 아렌의 모습에 크게 만족했다.
“원하는 만큼 보게나.”
화통한 한 마디와 함께 돌아서는 마르틴의 얼굴에는 흉흉한 기색이 줄기줄기 뻗어 나가고 있었다.
* * *
가문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귀족의 저택은 증축을 거듭한다.
처음에는 작은 장원으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성세가 계속된다면 저택으로 확장하고, 아성을 올리며 급기야는 거대한 성벽으로 도시를 감싸는 것이 귀족의 본능.
오만하고 누구보다도 귀족적인 메카니 역시 그 점은 마찬가지라서 메카니 공작가의 성은 제국에서도 손가락에 들어갈 만큼 방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당연히 온갖 시설이 다 모여 있었고, 번듯하고 화려한 외견에 방문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감탄을 금치 못하니 그 모습을 보며 메카니의 사람들은 어깨를 한껏 추켜올렸다.
하지만 세상사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이 있는 법.
성의 지하에는 노약자나 임산부가 함부로 접근하면 큰일 나는 흉악한 시설들이 있었고, 마르틴은 실로 오랜만에 지하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그래.”
곳곳에 박혀 있는 마법의 조명과 환기장치가 따로 된 것인지 쾌적한 공기는 이곳이 지하라는 것을 잊을 정도이지만, 투박하기 그지없는 방의 모습과 비릿하게 맴도는 피 냄새는 이곳이 정상적인 장소가 아님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어떤가.”
“제법 독종입니다. 쉽게 입을 열지 않는군요.”
마르틴의 물음에 중년인이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마르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래. 이 정도에 입을 열 정도면 그런 짓을 저지르지도 못했겠지.”
무려 악마를 소환해서 영지를 날려 버리려 시도한 이들이다.
잠깐의 고문만으로 쉽게 입을 열었다면 마르틴은 거꾸로 의심했을지도 몰랐다.
마르틴의 시선이 한쪽 벽면에 고깃덩이처럼 걸려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 으으으.”
이미 한바탕 손을 쓴 것인지 발가벗겨진 채로 전신에 성한 곳을 찾아보기 힘든 네 사내의 모습은 절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지만 마르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묵묵히 단추를 풀고 팔을 걷어붙이는 마르틴의 모습에 고문관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작님께서 어찌 ……. 직접 손을 쓰시려 하십니까. 이런 천한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자신을 말리는 충직한 가신의 모습에 마르틴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도 잠시 시퍼런 살기를 두 눈으로 줄기줄기 내뿜었다.
“오랜만에 옛 배움을 떠올리려 한다.”
“…… 그러시다면야.”
마르틴의 눈을 본 고문관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깨워라.”
“옛!”
살기 가득한 마르틴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