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37
제237화
구르르릉.
공성병기들이 삐그덕거리며 육중한 몸체를 밀고 들어온다.
“와아아!”
“쏴라! 돌아가지 못하게 잡아!”
푸부북.
질서정연하게 서 있던 병사들이 함성과 함께 전진을 시작했고, 일부 궁병과 마법사들은 화살과 마법을 날려댔다.
“흐음.”
말 위에서 오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배도현이 살짝 창을 휘둘러 근처까지 다가온 화살 몇 대를 쳐냈다.
‘성격도 급하군. 적어도 한두 번은 더 싸울 줄 알았는데.’
그랬다면 더 확실하게 저들의 기를 꺾어 놓을 수 있었을 것을.
살짝 아쉽다고 생각하는 사이 이번엔 마법들이 근처까지 도착해 있었다.
펑! 퍼버벙!
물론 배도현에게 닿을 일은 없었다.
마나가 실린 10여 개의 단검이 배도현의 전면에서 날아오는 마법의 핵을 정확하게 꿰뚫으며 요격했으니.
터더더덩!
굳이 창대를 돌리며 화살을 쳐내는 퍼포먼스를 보인 배도현이 창을 크게 휘두르고는 외쳤다.
“경고한다! 레이선 시의 성벽에 발을 들이는 자, 그 누구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라벨의 확성 마법을 거친 배도현의 목소리가 적진을 휩쓸었다.
기세에 눌린 것인가.
저들의 발걸음이 살짝 멈칫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배도현은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굳이 여기서 무쌍을 찍을 필요는 없지. 라울도 아니고 배도현의 모습이니까.’
홀로 나선 목적은 달성했다.
주제 모르는 플레이어들에게 랭커라고 다 같은 랭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줬고, 숫자에서 밀리는 아군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굳이 유리한 성벽을 두고 평지에서 싸워줄 이유가 없었다.
뒤에서 적의 기사단 일부가 그를 쫓아오는 듯했지만, 성벽에 가까워지자 이내 포기하고 돌아갔다.
끼이익, 쿵.
“와아아!”
살짝 열려 있던 성문을 통해 귀환하자 수많은 병사와 시민들이 함성과 박수로 배도현을 맞이했다.
“대단하오, 배도현 경! 정말 멋진 솜씨였소!”
“별로 어렵지 않은 상대였습니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니 바로 성벽에 오르겠습니다.”
“오오, 역시. 잘 부탁드리오!”
가주 포레아도가 감탄했다는 표정으로 배도현에게 와인이 든 수통을 건넸다.
배도현은 살짝 고개를 숙여 그걸 받아들고는 바로 성벽으로 올랐다.
성문 위에 있던 일우와 길드원들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배치는 계획했던 대로. 아머 유저가 나타나도 쫄 필요 없어. 퍼스트 기사단에 비하면 두세 수 이상 떨어지는 놈들이니까.”
“맡겨두라고. 퍼플 길드에 배도현 말고 우리도 있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길드원들은 자신감에 차 보였고, 배도현은 그런 그들을 믿었다.
“그래. 저놈들이 누구를 적으로 삼았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자.”
“오케이!”
그들이 성벽 곳곳으로 흩어졌다.
공성전이 시작되었다.
* * *
피이잉.
“…크악!”
린다가 가볍게 쏘아낸 화살이 150m가량 떨어진 곳에서 다가오던 적병의 가슴을 꿰뚫었다.
곡사도 아닌 직사로 날아간 게, 활이 아닌 석궁을 날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흠. 확실히 수준이 높네.”
린다가 혀로 입술을 적시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물론 병사들의 수준을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녀가 얘기하는 건 병사들의 장비 수준이었다.
일반 병사로 보였는데, 겨우 한 사람의 몸을 꿰뚫고는 화살이 힘을 잃었다.
한 발에 몬스터 두셋은 꿰뚫는 그녀의 화살이었으니, 상당히 양질의 갑옷을 착용한 모양이었다.
‘대충 간은 봤으니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성벽에 접근하기 전까지는 바로 그녀의 시간.
끼리릭.
일반적인 화살촉보다 세 배 이상 커다란 특이한 화살 세 대가 한 번에 시위에 걸렸다.
‘가랏!’
투웅.
화살을 놓는 소리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소리와 함께 세 대의 화살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콰아앙!
“끄아악!”
“아악~ 내 팔!”
화살 세 대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믿기엔 너무나 파괴적인 장면이었다.
착탄 직전에 터져나간 화살촉이 마나의 힘을 빌려 연약한 인간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부채꼴 모양으로 터져나간 세 개의 화살은 단번에 병사 3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폭발에 휘말린 주변 병사 수십도 파편에 피를 흘리고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눈엔 공포가 서려 있었다.
문제는 그런 화살이 겨우 세 개 뿐이 아니라는 사실.
콰아앙! 쾅!
그녀의 화살이 날아가는 곳에서 폭발이 이어졌다.
‘쳇, …생각보다 대처가 빠르네.’
그녀의 [산탄시]는 백이 넘는 병사를 쓰러뜨렸지만, 이내 차단되기 시작했다.
적들이 마나를 사용하는 조장급 방패병들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그녀가 화살을 바꿨다.
특이하게 활촉부터 활대까지 전부 검은색이었다.
끼리릭, 텅!
투확!
그녀의 화살이 방패를 꿰뚫고 적 조장급 병사의 목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앙!
또다시 날아든 산탄시가 틈을 파고들어 적 진영을 휩쓸었다.
‘어디 또 막아보라고.’
활을 날리는 그녀의 손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 * *
“간격을 벌려! 방패병은 확실하게 투사체를 막으라고!”
지휘관들이 황급히 피해를 줄이기 위해 진영을 넓혔다.
기사들이 마나를 실어 화살을 날리면 방패쯤은 쉽게 꿰뚫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광범위하게 폭발하는 화살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마법을 막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수련 기사들이 투입되고서야 피해가 좀 줄었다.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어떻게 할까요?”
공성전에 피해가 발생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솔직히 병사들은 그저 성벽에 사다리를 놓고 압박을 주는 정도의 역할이 전부였다.
진짜 성벽을 점령하는 것은 최소한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수련 기사급 이상의 기사들 몫이었으니.
하지만 이대로라면 성벽에 사다리나 공성병기를 옮기기도 전에 병사들이 모두 소모될지도 몰랐다.
“용병들을 투입해.”
현장 지휘관이 미간을 찌푸린 채 결단했다.
원래는 사다리가 놓인 후, 성벽에 투입되어 공간을 확보하는 게 용병들의 역할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펄럭.
기수가 깃발을 흔들자, 병사들의 진영이 확 벌어지며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플레이어들이었다.
리플 협회의 플레이어들이 각자의 무기를 든 채 성벽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피웅!
배도현이 날린 화살이 어느 플레이어의 미간을 관통했다.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화들짝 놀라며 방패 뒤로 몸을 숨긴 채 꼼지락 댄다.
‘역시나.’
배도현은 전장의 상황을 내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세 좋게 병력을 몰고 오던 공격 측의 진영은 ‘엉망진창’이었다.
처음의 질서정연함은 어디로 가고, 아주 제멋대로 삼삼오오 흩어진 이들이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채 찔끔찔끔 다가오고 있었다.
아직도 저들과 성벽의 거리는 70~80m 정도.
하지만 이대로라면 과연 저들이 성벽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싶었다.
원거리 공격에 피해가 커지자 플레이어를 앞세운 적들의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병사들과 달리 플레이어들은 린다의 산탄시나 텐바 가문 마법사들의 마법을 상당히 준수하게 막아냈으니까.
몬스터 부산물로 만들어진 방패 및 방어구.
마법사 플레이어들의 실드 마법 및 보호 마법.
성직 계열 플레이어들의 축복 및 버프.
이들이 합쳐지자 마나가 실린 화살이나 마법 효율적으로 차단되었던 것이다.
길드 단위로 파티를 구성한 그들의 대응은 확실히 훌륭했지만….
‘균형이 깨지면 소용없지.’
피웅!
배도현의 화살이 탱커 플레이어의 방패를 꿰뚫고도 모자라 플레이어 둘을 더 관통했다.
굳이 오러까지 싣지 않아도 저 정도 방어를 뚫는 건 배도현에게 어렵지 않았다.
‘별로 티도 나지 않으니 본 실력을 발휘하기도 좋고.’
겨우 50레벨 언저리의 플레이어들이 막아내기엔 배도현의 경지가 너무 높았다.
마의 벽이라 불리는 100레벨을 넘어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상, 그가 쏘아내는 일반적인 화살도 엄청나게 위협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배도현이 탱커를 쓰러뜨리자, 마법사와 성직자 플레이어가 공세에 노출되었다.
퍼엉! 푸슝!
아니나 다를까 화염 마법과 화살 세례가 날아들어 그들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번에는 저기.’
피웅~ 퍽!
가장 앞서 있던 파티의 탱커를 배도현의 화살이 저격했다.
이어진 집중 공격이 그 파티를 쓸어버렸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공격 측의 진영이 완전히 허물어졌다.
대열의 가장 앞으로 나서는 순간, 타겟이 된다는 사실을 플레이어들이 눈치챈 것이다.
‘X발, 내가 총대를 멜 필요가 어딨어?’
‘눈치껏 걷는 척이나 하자.’
먼저 죽으면 공성전이 성공해서 퀘스트 보상을 받아도 데스 페널티가 더 크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이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누가 화살받이 역할을 자처하고 싶겠는가?
“당장 뛰라고! 성벽에 빨리 달라붙어야 피해가 적어진다는 거 몰라?”
“길마 명령이야! 빨리 튀어 나가라고!”
“길드에서 짤리고 싶어? 명령에 따르란 말이다!”
리플 협회 간부들이 아무리 소리치고 협박까지 해도 플레이어들은 눈치를 볼 뿐 요지부동이었다.
마지못해 방패를 앞세우고 슬금슬금 걸음을 옮기긴 하지만, 화살 몇 대만 날아와도 움츠러들고 다시 걸음을 멈추고 있었으니.
일부 궁사와 마법사들이 방패 뒤쪽에서 성벽을 향해 반격을 해왔지만, 솔직히 별 효과가 없었다.
튼튼한 방패를 가진 건 수비병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마력포를 막아내는 대규모 방벽은 멈췄어도 성벽을 감싼 기본적인 마법 방어진은 여전히 작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지휘관들이 복장 터지겠군. 크크.’
실제로 뒤늦게 제레두 가문의 병사들이 성벽을 향해 달려가려 다시 앞 선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 플레이어들의 진형이 꼬여 있고, 장애물처럼 길을 막고 있으니 정체가 되긴 마찬가지.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아쉽다면 저 멍청한 놈들의 숫자를 크게 줄이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배도현과 퍼플 길드원들을 제외하면, 방패 뒤에 꽁꽁 몸을 숨긴 플레이어들을 처리할 만한 화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뭐, 상관없나?’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을 테니 말이다.
“와아아!”
“빨리빨리 올라가!”
“밀어붙여!”
한참을 꼼지락대던 공격 측이 마침내 성벽에 도착했다.
우습게도 운제와 공성탑이 도착하고 나서야 사다리가 걸렸으니, 병사들은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동시에 서너 명이 기어 올라갈 수 있는 크기의 운제.
계단을 통해 성벽 높이까지 걸어 올라가 가교를 통해 넘어가는 공성탑.
그런 공성 무기들이 성벽 곳곳에 달라붙었고, 병사들이 뒤늦게 개인 사다리까지 걸어 올리자 본격적인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성벽 위의 병사들은 사다리를 밀어내고, 창을 찌르는가 하면 쇠뇌를 발사하며 적들을 성벽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적들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마라!”
“죽일 필요 없다! 밀어서 떨어뜨려!”
성벽의 높이는 15m 가량.
갑옷을 입은 이가 떨어져 내리면 절대 몸이 성할 수 없는 높이였다.
한동안 병사들이 성벽을 공략하려다 밀려났고, 마침내 플레이어들이 운제와 공성탑을 통해 성벽 위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X발. 이제 다 죽었어!”
“병사들 말고 지휘관부터 잡아! 길드 공적치를 채워야 해!”
최소 레벨 30.
마나를 다룰 수 있고, 기사급 스킬로 무장한 플레이어들의 등장은 수비군들에겐 큰 위협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지만.
“에휴. 기다리다 지쳤네. 빨리 끝내자.”
파바바바밧.
“어어…?”
“…X발, 김일우.”
공성탑에 있는 플레이어들의 그림자에서 김일우의 분신들이 솟아올랐고.
푸샤삭! 서컹!
공성탑 내부에 피바람이 몰아쳤다.
회색빛 검기가 사그라들었을 때, 공성탑 상층부에 있던 플레이어 이십여 명은 핏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다음은 어디지?”
김일우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펑! 콰광!
“탱크야 뭐야!”
“누가 좀 어떻게 해봐!”
휘우웅! 콰광!
“끄아아~악.”
또 다른 공성탑 앞.
키가 2m에 가까운 거인이 그의 신장만큼이나 커다란 방패와 살벌한 돌기가 솟아 있는 모닝스타를 들고 플레이어들의 앞을 막아섰다.
퍼플 길드의 메인 탱커 매닝거였다.
그가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자, 공성탑 위에 서 있던 플레이어들이 볼링핀 쓰러지듯 밀려나 바닥을 굴렀고, 모닝스타를 휘두르자 그 궤적에 걸린 플레이어 셋이 공성탑의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퍼걱. 쾅.
“커헉.”
방패로 쓰러진 플레이어의 머리통을 찍어버린 매닝거가 스파이크가 박힌 철제 군화로 다른 플레이어의 얼굴을 짓밟자 핏물이 터져나갔다.
“…덤벼라.”
플레이어들이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끼기긱!”
“컹컹!”
운제를 기어오르는 플레이어와 병사들 사이로, 단검을 든 원숭이들이 날뛰었다.
“칼이 안 박혀!”
“아악! 털이 가시야!”
어렵사리 성벽에 오른 이들은 여우와 늑대 환수들에게 목을 물어 뜯겼다.
“플레임 샷!”
화르륵~ 퍼엉!
그리고 불새를 어깨에 얹은 한서현이 쏘아낸 불화살이 사다리를 통째로 불태웠다.
“이건 사기야! 어떻게 환수가 마스터보다 레벨이 높아?”
정보를 확인한 플레이어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한서현의 레벨이 67인데 반해 그녀의 환수들은 모두 레벨이 70을 넘겼기 때문이다.
꽈지직!
하지만 이내 그의 머리통은 거대한 백곰의 발바닥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악~ 안 돼에에!”
그리고 날개 길이가 5m는 되는 듯한 거대한 매의 발톱에 붙들린 플레이어 둘이 비명과 함께 하늘로 끌려 올라갔다.
배도현의 경고처럼 그날 성벽 위에 발을 들였던 이들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