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Youngest Son Is a Player RAW novel - Chapter 280
제280화
만약 정말로 커넥트의 능력을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면….
‘어째서 전생의 나는 그걸 느낄 수 없었던 거지?’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일단 배도현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캡슐 속에서 생활했다.
캡슐을 벗어나는 것은 캡슐에 식사용 영양액을 주입하거나, 방송 문제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 정도였으니.
어쩌면 현실에서 몸의 변화를 느낄 만한 시간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라면 억지로 미뤄진 시나리오 진행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전생에는 지금처럼 지구의 이상 현상이 심각하게 발현되지 않았으니까.’
빠르게 시나리오가 진행되면서, 지구의 이상 현상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시나리오 진척도이지만, 변화의 강도는 훨씬 강렬했으니 뭔가 인체에 가해지는 자극도 컸을지 몰랐다.
이유야 어쨌든 김일우의 변화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일우에 국한된 일인지, 아니면 플레이어 전체에게 나타날 변화인지는 앞으로 지켜보면 확인할 수 있으리라.
‘만약 그렇게 된다면….’
라울의 머릿속이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 * *
둥둥둥, 콰광!
와아아!
도무지 금역 내부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소란.
북소리, 나팔 소리, 징 소리 등 각종 악기 소리가 숲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방패를 앞세운 채 진형을 갖춰 천천히 걸어가는 수많은 플레이어들.
그 대열이 얼마나 긴지 끝이 보이질 않았다.
“햐, 이게 또 얼마만의 대규모 퀘스트냐? 그냥 온몸이 근질거리는데?”
“그러면 뭐해? 어차피 싸울 일도 별로 없어 보이는구만.”
“뭐가 어때서? 이렇게 함성만 지르면서 걸어가는데 경험치 들어오지, 돈 벌지. 그리고 운 좋으면 개척 지분도 받을 수 있는데, 개꿀 아니냐?”
“그렇긴 하지.”
대열 중간을 채운 두 플레이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여든 것인지 아무리 고개를 돌려봐도 사람이 없는 곳이 없었다.
“야, 이거 도대체 얼마나 모인 걸까?”
“글쎄. 커뮤니티에서 떠도는 얘기론 적어도 100만 가까이 되지 않을까 하던데.”
“헐…. 렙제 30인 거 같던데 그렇게 많아? 대박.”
“얼마 전에 신년 발표 나왔잖아. 보급형 캡슐이 생산되면서 현재 접속자 수가 1천만을 넘겼다고. 왜 진즉에 보급형을 안 뿌렸는지 궁금할 정도라고.”
“들어보니 보급형 캡슐은 부족한 게 많은 모양이더라. 일단 싱크로율도 많이 떨어지고, 자동 급식이나 피로 회복 기능도 제한이 있는 듯.”
“햐. 그것도 복불복이라니. 사용료가 좀 비싸도 역시 고급형이 최고지.”
보급형 캡슐이 등장하며 커뮤니티에서 말이 많았다.
사람 차별하는 것도 아니고 어째서 기능이 부족하냐며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하지만 여전히 캡슐의 수요는 넘쳐났다.
전 세계 인구수는 100억을 돌파한 지 오래.
그 가운데 게임을 즐길 만한 인프라와 경제력을 갖춘 인구가 10%라고 해도 10억이었다.
그에 반해 보급은 이제 천만대.
1%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커뮤니티 반응은 보급형이든 뭐든 일단 캡슐을 보내달라는 글들로 넘쳐났다.
게다가 보급형 캡슐의 일부는 추첨이 아닌 판매가 되고 있었으니, 여유가 되는 이들은 복불복이 아닌 구매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든 이런 추세라면 커넥트 접속자가 1억을 돌파하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플레이어들이 서쪽 금역 몬스터 숲을 걷고 있었다.
「현재 상황은?」
「예비대를 제외한 플레이어 150만, 영지병 50만 투입 완료되었습니다.」
「영지 수비를 맡을 이들을 제외한 퍼스트 기사단원 5천과 애쉬튼 후작가의 각급 기사 3천 명도 투입 완료되었습니다.」
「마스터급 지휘관들과 6서클 이상 고위 마법사들도 배치 완료되었습니다.」
길드 통신을 통해 작전 진행 상황이 속속들이 보고되고 있었다.
무려 200만 이상의 대규모 병력이 투입된 작전 [해일].
왕국 내전 당시보다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지만, 해일 작전의 일차적인 목표는 전쟁이 아니었다.
「퍼플 길드와 정예 협력 길드원들은 지금 즉시 개척지를 확보하도록!」
「네, 마스터!」
「알겠습니다, 백작님.」
별도의 통신을 통해 연결되어 있던 퍼플 길드와 협력 길드장들이 라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재 작전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몬스터 숲의 동쪽.
애쉬튼 후작가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금역 초입부였다.
지난 개척 시나리오 당시 라울은 백작령과 맞닿은 남동부는 철저하게 개척하고 방어선을 형성했다.
하지만 후작가 쪽은 초입부만 개척하고 남북으로 길게 방어선을 구축했으니.
그 이유는 바로.
「a-02 섹터. 라이노 부락을 발견했습니다. 달려드는 라이노 무리는 퍼스트 기사단원들이 밀어냈고, 인원수에 놀란 놈들은 황급히 서쪽으로 도주 중입니다.」
「b-05 섹터. 미노타우르스 5개체와 조우. 마스터 데이비슨의 기세에 밀려 서쪽으로 도주함.」
「k-07 섹터….」
「f-21 섹터….」
끊임없이 들어오는 보고.
그 대상과 위치는 다를지언정,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몬스터를 만났고, 놈들을 도주시켰다.
그렇다.
작전 해일의 목표는 바로 금역 몬스터들을 서쪽으로 몰아내며 인위적인 몬스터 웨이브(해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현재 동원된 200만의 병력은 남북으로 형성된 긴 방어선을 따라 진형을 갖추고 일제히 서진 중.
NPC들은 미개척지에 진입할 수 없으니, 퍼플 길드와 협력 길드의 정예들이 투입되어 실시간으로 개척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그렇게 확보된 개척영토를 병력들이 전진하며 몬스터를 밀어내고.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중대형 고위 몬스터는 퍼스트 기사단과 초인 전력이 해결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인의 장벽을 형성하며 밀어붙이니, 아무리 금역의 몬스터들이 강하다 해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 라울은.
콰드드득! 푸슉.
“구워어….”
5m가 넘는 크기의 드래곤형 엘리트 몬스터 [레드 드레이크]가 구슬픈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내렸다.
“…여긴가?”
드레이크의 배를 가르자 여신의 조각상이 튀어나왔다.
“서둘러야겠군. 아직 세 개나 더 남았으니.”
이십여 개의 무기를 수납한 라울이 몸을 돌려 던전을 되돌아 나갔다.
S급 던전이었음에도 돌파하는 데는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역의 제한 때문에 S등급 개척지는 아직 라울의 손이 필요했다.
물론 초인의 경지에 들어선 퍼플 길드의 랭커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S등급이 아닌 A등급 개척지 확보에 동원되었다.
가능하냐를 떠나서 작전 시간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확실히 실력이 늘었어.’
어느새 라울의 레벨은 140을 넘어서 마스터 상급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검술과 염동력 등의 숙련도도 상급 9LV을 돌파하여 마스터 등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니….
이제 금역의 던전 정도로는 라울의 발목을 붙잡을 수 없었다.
「B-01 지역 클리어. 부대 진입하도록.」
「네, 마스터. 현재 진척도로 봐선 다음 포인트까지는 5시간 정도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접수 완료. 부대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율 잘 부탁한다, 버나드.」
「맡겨주십시오.」
작전 본부에서 통합 지시를 내리는 것은 퍼스트 길드의 총관 버나드였다.
이미 이런 식의 대규모 작전을 몇 번 조율해 봤던 만큼, 그의 일처리에는 빈틈이 없었다.
라울이 본부를 비워두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에는 버나드의 조력이 컸던 것이다.
“자, 그럼 다음 포인트로 가볼까?”
그렇게 해일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취, 취익! 문을 닫아라, 취익.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취익!”
몬스터 평원 중앙.
동쪽에 흐르는 강을 경계로 자리 잡은 오크 부족이 혼란에 휩싸였다.
머릿수가 만 단위가 넘는 중형 부족이었지만, 강 건너에서 몰려오는 어마어마한 몬스터의 숫자를 보고 진정할 수는 없었다.
“저, 전사들을 소집해라, 취익! 전선에 나간 전사들에게도 소식을… 취익.”
게다가 안타깝게도 북쪽의 인간 제국과 전쟁이 벌어져, 반수에 가까운 전사들이 차출된 상황.
사냥과 기본적인 마을 보호에는 충분한 전력이었지만, 이런 미지의 사태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했다.
첨벙, 첨벙!
물길을 아는 소형 몬스터들은 수심이 낮은 목을 찾아 강을 건넜고, 중대형 몬스터들은 그냥 강바닥을 밟으며 경계를 넘어섰다.
구오오오오!
몬스터들과 괴수들의 함성이 평원을 뒤덮었고,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방책은 오크들을 지켜내기엔 너무나 부실했다.
“다, 달아나라, 취익! 전사들이 시간을 벌 동안 여자, 아이, 노인들은 도망치라고, 취익!”
허물어진 성벽 앞을 몸으로 막아선 전사들의 희생으로 약간의 시간을 벌었지만, 걸음이 느린 노약 오크들은 몬스터 웨이브에 휩쓸리고 말았으니….
몬스터 평원의 동쪽에 치우쳐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오크 마을들이 단숨에 함락되었다.
그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중소규모 오크 부락들은 서쪽으로 이주를 시작했다.
처음 몬스터 평원에 도착했을 때처럼 뭉쳐 있었다면 모를까.
이미 부족 단위로 펼쳐져 자리를 잡은 오크들은 그 머릿수가 얼마가 되든 간에, 몬스터 웨이브를 막을 조직력을 갖추지 못했다.
“대피하자, 취익. 전쟁에 나선 전사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취익.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취익.”
“터전을 떠나야 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취익.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다, 취익.”
애초에 유목 생활에 익숙한 오크 부족들은 마을이나 터전에 대한 집착이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었다.
몇몇 대형 부족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했지만, 중소형 부족들이 모두 떠나고 고립된 곳에서 몬스터 웨이브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 * *
몬스터 숲 동북 방향.
뼈로 구조물을 세우고 나무와 흙으로 덧대 만든 성벽.
그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이들은 제국의 병사들이었다.
“하아암. 전쟁이 한창이라는데 그래도 이곳은 조용하니 다행이야.”
“그러게. 전선이 확장돼서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이지.”
“왕국 놈들도 몬스터 숲으로 들어섰다고 하는데, 이쪽으로 오진 않겠지?”
“정찰대 얘기론 한참 남동쪽으로 가도 몬스터 무리밖에 없었다고 하니까. 우린 그냥 조용히 보초나 서다가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그러면 좋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그들의 소망은 들려오는 몬스터들의 함성 소리에 산산이 깨져나갔다.
크워어어!
콰지직! 퍼벅!
“저, 저건! 나팔 불어!”
뿌우웅!
제국군 최전방 소형 요새에 몬스터 웨이브가 도달했다.
오크 마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성벽이 버티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제국 요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필이면, 기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전쟁으로 병력과 기사들이 소모되긴 제국 또한 마찬가지.
게다가 접경지도 아닌 소형 요새에 정예 기사를 배치할 리도 없었으니.
콰지직!
“으악!”
“살려줘!”
파도처럼 밀려오는 몬스터의 물결이 손쉽게 제국 요새의 성벽을 허물어트렸다.
* * *
척척척척.
뿌우웅!
둥둥둥둥.
자신들의 진격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르는 플레이어들은 천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벌써 보름 가까이 이어진 행군에 다들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햐, 정말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나 몰라.”
“그러게. 우리 같은 소형 길드도 개척지를 가질 수 있다니!”
“그런데 정말 그렇게 기름진 땅을 내어줄까?”
“야, 퍼스트 길드야, 퍼스트 길드. 라울 백작님을 못 믿겠다는 거야?”
“아, 아니. 그럴 리가. 그냥 너무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렇게 얘기하면 로그아웃당한 우리 길드원들이 서운해한다!”
“미안. 그래도 이런 대형 퀘스트에 이 정도 피해면, 거의 공짜나 다름없으니까.”
“엄밀히 말해서 공짜는 아니지. 그리고 개척지 주인도 우리는 아니고. 뭐, 그게 불만이란 얘긴 아니지만.”
지난 보름.
대열을 갖춰 진행된 몬스터 몰이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피해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원수나 상대방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성질 더러운 몬스터.
만만치 않은 숫자가 모여 부락을 이룬 대형 몬스터 무리.
기사들도 쉽게 막아내지 못하는 엄청나게 강한 개체.
각종 변수가 전투를 불러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플레이어들이 희생되었다.
하지만 그런 희생이 아쉽지 않을 만큼, 큰 보상과 희망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머지않은 시기, 진짜 전쟁을 치르게 되겠지만 말이다.
척척척척.
그렇게 인의 장벽이 몬스터 숲을 관통했고, 마침내 몬스터 평원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