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192)
192화. 고민 끝
암만 특이하고 유별난 사람이나 그의 행동이라 해도 보다 보면 그러려니 하는 게 사람이다.
같은 맥락으로 한서림의 기행은 이제 내 속에선 ‘주기적으로 이는 발작’ 정도로 자리매김했다.
특별히 뭔가를 더할 필요도 없고 덜할 필요도 없이 평소처럼 대하면 금방 사라지는 한순간의 사고라 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번에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번 주기가 유독 긴 까닭이다.
“선배, 제가 제 자리 찾아오는 거 자제해달라고 했잖아요.”
한서림이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작게 속삭인다.
“직원들이 오해한다니까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오핸데.
네 자리를 안 찾아오면 내가 어떻게 피드백을 해.
“음.”
아트 팀을 둘러봤다.
내가 고개를 들자 사냥꾼을 만난 두더지들처럼 모두 쏙쏙 파티션 뒤로 숨어들었다.
물론 직장 상사가 온다면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이런 처신을 함은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긴 항상 이런 분위긴가 싶다.
조금은 섭섭한 기분을 뒤로한 채 다시 한서림을 바라봤다.
“…맵 모델링 요청사항 있어서.”
말을 하니 한서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어쩔 수 없이 해준다’라는 뉘앙스를 진하게 풍기며 답했다.
“어디 봐봐요.”
“여기 이 부분.”
그렇게 오전 피드백이 끝났다.
물론 한서림의 발작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로도 한서림은 꽤 여러 번, 여러 형태로 그런 기행을 벌였다.
점심에 밥을 먹으러 가자고 하니.
“미안해요. 오늘은 팀원들이랑 먹으려고. 맨날 점심시간에 따로 다니면 남들 보기 좀 그렇잖아?”
“?”
오전 피드백 사항에 추가 피드백이 붙어 메일을 보낼 때도, 그걸 받지 않아 자리에 찾아갔을 때도.
“선배는 참, 사람이 숨기는 게 없어서 문제네. 이름이 천연호라서 천연인 건가?”
“???”
그리고 오후 근무가 끝나고 평소처럼 야근 전 식사를 권했을 때도.
“알겠어요, 알겠어. 내가 졌다!”
“?????”
이게 벌써 나흘 째다.
이쯤 되니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게 이상한 사람이다.
‘얘가 대체 왜 이러나.’
무슨 사건 사고가 있는 건지 혹은 외적으로 고민이라도 있는 건지.
그걸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만다.
왜, 그렇지 않나.
암만 개인사를 잘 해결해줬다고 하지만 한서림이 유리멘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까지 기행을 이어간다면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란 말이다.
예상되는 것으로는 과도한 업무 강도로 인한 스트레스.
생각해보면 연차는 ‘늦잠 자고 출근하는 날’ 정도로 인식하는 한서림이니 쉴 틈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물론 속단은 금물.
정확한 원인 파악은 본인 입으로 듣는 게 제일이다.
그런 이유로 만든 게 오늘 자리다.
“한잔해.”
째앵―
자주 가는 이자카야다.
둘이서 술을 마신다면 이곳으로 오는 게 어느새 암묵적 규칙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한서림을 유심히 관찰했다.
대체 무슨 고민이 있어 이러는 건지 원.
일단 어느정도는 취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술을 권해보니 과연… 내 생각보다 빠르게 먹기 시작한다.
뭔가 응어리진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
“한잔 더 줘요.”
“응.”
“한잔 더.”
“응.”
“더.”
녀석, 술 한병을 비우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조금 취기가 도는지 한숨에 주정이 조금 묻어 있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일 이야기 등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다보니 드디어 한서림의 속내가 튀어나왔다.
나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수림 씨 결혼한대요.”
“아.”
“다들 하러 가네….”
우리 서림이, 짝이 필요했구나!
* * *
“그걸 해결해줄 수가 없는 겁니다. 서림이가 빠지면 아트 팀 전체가 무너지니까요.”
네오 소프트의 박영준 대표는 기껏 불러내서 직원의 장래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연호를 보며 생각했다.
‘미친 새낀가?’
그저 직원의 연애사 때문에 불러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무렴, 직원은 인적 자원 아닌가.
그것도 개발의 핵심 인력이자 GOTY 수상 경력까지 있는 아티스트라면 그녀를 묶어두기 위해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아니, 자신이었다면 저 이상의 무언가를 다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게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재능이란 대체되는 것이 아님을 이 업계에 발담그며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 것이 바로 영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친놈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너한테 눈치 주는 거잖아. 어?! 나한테 관심 없냐고 어필하는 거잖아 이 새끼야!’
박영준 대표는 답답해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정말 모르는 건가?
서림과 제대로 이야기한 적도 없는 자신이 봐도 이렇게 100%의 확신이 차오르는데 당사자가 모르는 게 말이 되나?
당장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살아온 세월이 50년이 넘는 박영준 대표는 안다.
인생 짬밥이 그만큼이나 차 있으니 남의 연애사에는 함부로 간섭해 봐야 손해만 남는다는 걸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하여 입을 꾹 다물었고, 속에 천불이 났다.
덕분에 연신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기만 한다.
그러던 중 차오르는 의문이 있었다.
“…뭐, 그래도 사람인데 연애하고는 살아야지. 결혼은 추천하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서림과 연호는 대학에서 만나 둘이서 동아리를 창설해 헬릭1을 만든 사이다.
한창때의 남녀가 그렇게 한 공간에서 오래 둘만의 시간을 보냈는데 어떤 감정의 교류도 없었을까?
아니, 상대는 확실히 있어 보이니 그렇다 치고 연호는 정말 서림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걸까.
운을 띄우니 연호의 왼쪽 눈썹이 들렸다.
“연애 말입니까?”
“그치, 한서림 씨도 연애는 해야할 것 아니야. 그런 시간 여유 정도는 만들면 생겨. 다들 그러더라고.”
진심이었다.
연애를 하려고 하면 암만 바쁜 사람도 시간을 쪼개고 압축해 어떻게든 한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인간이라, 이 나이쯤 되면 그런 것들이 문득 스쳐 지나갈 때가 있었다.
가슴 한켠이 시리고 애틋해지길 잠시, 그 순간 영준은 연호의 반응을 보고야 말았다.
“흠.”
표정이 불편해 보였다.
꽤 흥미로운 반응이다.
‘오?’
혹시 서림이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스스로도 모른 채 그녀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팡! 영준의 머릿속에 폭죽이 터졌다.
남의 풋풋한 연애라고 생각하니 도파민이 터져 나온 것이다.
영준의 표정이 사뭇 음흉해졌다.
그때였다.
연호가 그런 영준의 기대를 박살 낸 것은.
“연애가 일할 시간 쪼개서 할 만큼 중요한가?”
“?”
“그 정돈가….”
영준은 문득 뇌를 거치지 않고 물었다.
“연애 안 해봤지?”
질문은 정답이었다.
“바빴습니다.”
“흠.”
“왜 그러십니까.”
“흠….”
영준은 턱수염을 쓸었다.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개중 영준이 선택한 것은 언젠가 연호와 들었던 대화를 기반으로 한 질문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서 그러는데, 동생은 여전히 결혼할 생각은 있나?”
연호가 뭐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평생 혼자 살긴 싫습니다. 불효이기도 하고.”
“어.”
“당장은 때가 아닌 거죠. 아직 한창 치고 나갈 때니까요.”
“음.”
영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잔을 들었고, 그리 말했다.
“한잔해.”
연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잔을 부딪혀 술잔을 목구멍 뒤로 넘겼다.
네오소프트 대표 박영준, 그 이전의 인간 박영준.
살아온 햇수가 50이 넘어가며 언제나 젊은 마인드를 추구하기에 깨어있는 사고로 사람을 보는 편이다.
그런 영준임에도 불구하고 연호는 참 기괴했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연애는 필요한가 싶다라….’
뭐 중매혼이라도 하려고 저러나 싶다가도 암만 해도 그건 안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연애 결혼을 원한다는 것일 텐데.
적어도 연애로 2년은 봐야 사람 됨됨이를 적당히 파악하는 게 가능하다.
그 전에 경험을 쌓아야 한다.
떡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연애 자체를 성공적으로 결혼까지 이어가는 데는 인간을 보는 눈 자체를 기르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거기다가 결혼 준비는 또 어떻고, 일단 결혼하자!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결혼이 아니다.
준비에 걸리는 최소 기간이 1년이고 그 전후처리로 할 고생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음이다.
…아니, 다 떠나서 그냥 무섭다.
‘뭐야 이거.’
결혼이 효도 문제라니.
꼭 일처리를 하는 것 같지 않나.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이 있거나 집안 분위기가 보수적인 것도 아니다.
이제 이만큼 친해지니 그것도 확실히 한다.
그러니까, 이건 비혼주의도 아니고 성혼주의도 아닌 그냥 괴물인 것이다.
혹시 이 인간은 성욕이 성취욕으로 대체되어 버린 게 아닐까(맞다)?
영준의 인생에 이런 유형은 이제껏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떠오르는 감정이 있다.
연호와 결혼하게 될 여자에 대한 동정이었다.
“…씨발새끼.”
“예?”
“아니, 혼잣말이었어.”
“흠, 하여튼 고민입니다. 어떻게 연애 말고 다른 걸로 스트레스를 풀어줄 방법이 없나 싶어서.”
영준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가는 법이다.
* * *
오랜 고민이 있었다.
한서림에 관한 것이다.
그래, 생각해보면 한서림도 그렇게 오래 내 곁에서 일을 해주고 감정적인 교류를 쌓아온 사람인데 마냥 의견을 묵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무슨 독재 국가 총통도 아니고 개인의 자유를 일을 위해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러니까, 누군가와의 감정적 교류가 필요하다면 능히 그런 일을 응원하는 게 옳단 말이다.
“그래서 서림아. 너한테 할 말이 있어.”
한서림을 개인적으로 불렀다.
회사 옥상이다.
한창 근무시간, 나와 있는 것은 나와 한서림 밖에 없었고 가을 하늘은 청명했다.
“할, 말이요…?”
한서림이 왜인지 긴장한 모습이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일로 몰아세운 걸까.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차올랐고 그에 더 부드러운 어조를 사용하기로 했다.
“요즘 외로워 보이는 것 같아서. 내가 너 연애할 시간도 못 준 거 같아서 미안해지더라고.”
“갑자기?”
“너도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을 것 아니야. 살아서 한 번은.”
한서림이 움찔했다.
역시, 일을 너무 몰아줘서 못 한 게 분명하다.
“…원한다면 근무 시간을 줄여줄게.”
그 말을 하자 한서림이 묘한 표정이 됐다.
내가 읽을 수는 없는 표정이었다.
돌아오는 답이 있었다.
“제가 그걸 원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야?”
“…….”
한서림의 입이 꾹 다물렸다.
화난 것처럼도 보였고, 무언가 착잡한 것처럼도 보였다.
여하튼, 할 말은 계속해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
“영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 말해줘. 일단 무작정 만나기보단 신중해지란 거지. 일은 뭐, 네가 적당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쳐내 줄 테니까.”
그래, 이게 맞지.
원활하게 오랫동안 함께 개발하려면 이게 맞다.
나는 씁쓸함을 지우며 고개를 돌렸다.
한서림이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적당한 사람이 없으면요?”
다시 고개를 돌리니 답을 갈구하는 눈이다.
나는 기꺼이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답을 줬다.
“내가 책임져야지.”
“…네?”
“책임진다고.”
실버타운으로.
외로움이 문제라면 우리 함께 리와인드 실버타운으로 가는 거다.
뒷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한서림이 울먹거렸다.
타다닥!
직후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돌아서 옥상 출구까지 달려가 버렸다.
“?”
싫었나?
* * *
어찌저찌 일이 해결되는 어느 날이었다.
헬릭5의 기획이 점점 완성되고 이젠 그것들을 하나로 엮어 프로토타입 플레이 테스트를 수 있게 된, 딱 그런 시기.
“애니메이션 초안이랑 방영일정 잡았습니다!”
데몬즈 렐릭의 애니메이션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