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AGF
AGF는 애니메이션, 게임 페스티벌이다.
축약어의 본뜻이 그러하고, 그렇기에 데몬즈 렐릭에 있어 이번 축제는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조금도 없는 행사였다.
왜 아니겠는가, 데몬즈 렐릭은 게임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데몬즈 렐릭은 애니메이션과 웹툰 및 여러 서브 컬쳐 매체 믹스미디어가 조성되어 있다.
어느 쪽으로 보나 조건을 충족한다.
하여 올해 2년의 공백을 넘어 다시 개최된 AGF에 가장 먼저 커뮤니티가 반응했었다.
『한수 더 킹 : 공식 굿즈 팔겠지?
안 팔면 감다뒤인데 참석자한테 뿌리는 웰컴 굿즈 같은 거라도 줘야 하는 게 맞잖아!!!
방배동피의군주 : 그러게, 근데 리와인드가 굿즈에 엄청 인색해서 줄진 모르겠다.』
『국가공무원 : 흠, 근천데 가볼까
그런데 AGF면 씹덕 행사 아니냐?
겜 말고는 별로 관심 없는데
헬릭5기다림 : 하씹덕 특) 씹덕 아닌 척함』
『뽀삐야산책가자 : AGF는 코스프레나 부스 관람이 메인입니다!
보통 각 부스별로 포토존이나 코스어를 배치하더라구요!
사진을 찍고 구경하는 게 메인에 스테이지 쪽에서 공연 몇 개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스타처럼 게임 체험 같은 부스는 없지만 게이머 분들이라도 근처에 사신다면 한번은 추천할 만합니다!』
이야기의 논제는 AGF가 무엇인가, 그리고 가면 무엇을 할 수 있고 게이머 집단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얼마나 되는가까지.
여러 정보가 풀린 후에 행사에 관한 여론은 흥미 쪽으로 기울었다.
일단 데몬즈 렐릭 뿐만 아니라, 서브 컬쳐류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는 꽤 많은 볼거리가 있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하나 더, 행사 참석 분위기를 달구는 스포일러 하나가 끼어 있었다.
“나도 가야지. 앰배서더니까.”
[―맑음이 입갤ㅋㅋㅋㅋ―코스하냐?
―전직 아이돌의 코스프레? 꽤 귀하거든요….]
“뭔 코스프레야? 그냥 부스 관리 인원으로 참석하는 거야. …아니, 진짜 안 한다니까?”
(전)아이돌 ‘지니’, (현)스트리머 ‘미래가안맑음’으로 활동 중인 지현의 AGF 데몬즈 렐릭 부스 참석이 오피셜로 떴다.
본인이야 코스프레를 하지 않는다고 극구 부인하지만, 회사 외부 스트리머가 스태프 측으로 참석할 일이 그 외에 뭐가 있겠는가.
그걸 떠나서라도 이쪽 분위기를 가장 잘 아는 게 지현 본인이다.
앰바고를 신경 쓰며 참석 의사만 밝혔으나, 결국은 모두가 아는 눈 가리고 아웅인 것이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암살을 하려고 들어.”
그렇게 큰 틀에서의 행사 소식이 모두 전해지고도 12월 3일, 행사 당일이 되었다.
리와인드의 첫 AGF 입성 시기인 만큼 이번은 서브 컬쳐계 게이머 외에도 행사 관심도가 꽤 높은 편이었다.
하여 직접 참석하지 않아도 소식을 모니터링하는 게이머들은 꽤 있었고, 그들에게 사뭇 충격적인 소식 하나가 전해져 왔다.
『일벌레커검사 : AGF에 니시무라랑 콥슨 떴는데?
???
방배동피의군주 : ???
새신부재희 : ???
헬릭5기다림 : ???
콥슨의해병짜장 : ???
└ 국가공무원 : ?』
데몬즈 렐릭의 디렉터들이 행사장에 친히 출두했다.
* * *
2022년의 AGF는 혼잡을 넘어 혼란스러웠다.
이유를 따지자면 많다.
2년의 공백을 넘어 재개된 축제, 여느 집단이든 사람이 모이는 축제를 그리워하는 법일진대 거기에 공룡급 기업이 이래저래 끼어들며 관심도가 한층 더 올라가기까지 했다.
하여 입장부터 철야를 하지 않으면 한참은 기다려야 하는 수준.
막상 행사장에 입장했다 한들 소란을 뚫고 원하는 걸 관람하는 것도 꽤 힘에 부치는 일이다.
대체로 불만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장내 분위기는 밝았다.
뭐가 됐든 볼거리는 확실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닉네임 ‘일벌레커검사’ 호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헬릭이 처음 출시할 때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이제 사회에 적응을 끝마친 어엿한 사회인이었다.
그러니까, 주말에 자기 시간을 가질 정도는 되어 이곳에 온 것이었고 나름의 만족을 얻고 있었다.
“오….”
호영은 낮게 탄성을 흘렸다.
‘분위기 꽤 괜찮네.’
뭐랄까, 알록달록하고 동화적이다.
하기야 온통 만화 캐릭터 같은 것이 도배 되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지스타처럼 직접 체험하는 부스가 영 없는 것은 낯설고 아쉬운 일이나 볼거리가 이 정도나 있다면 오케이.
스마트폰으로 대충 부스나 코스프레의 사진이나 찍는 와중이었다.
“야, 저기 봐! 저기!”
“저게 뭐야? 뭐지? 뭘까?”
마치 존재해선 안 될 충격적인 것을 본 사람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호영의 귀에까지 들렸다.
소리의 발원지가 어딘지는 너무 명확했다.
그만큼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본디 길을 가다가도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보기 시작하면 호기심을 느끼는 게 사람 심리다.
호영 또한 그런 보편적인 성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었다.
발걸음이 절로 인파 속을 향한다.
그렇게 호영은 마주한 순간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으악!”
괴성이 절로 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인파가 몰려있던 부스의 정체는 바로 데몬즈 렐릭.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체지방률이 한자리수에 달할 게 당연해 보이는 두 남자.
젤렌 콥슨과 니시무라 케이스케였기 때문이다.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 어째서…!’
저 두 사람이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메인 히로인인 루시퍼와 메타트론의 코스프레를!!!
데몬즈 렐릭은 남성향 미소녀 게임인 만큼, 히로인들의 복장도 몸매를 부각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일종의 상업적인 어필이랄까.
개중 특히 그런 점이 부각되는 것은 1의 메인 히로인인 루시퍼와 2의 메인 히로인인 메타트론이다.
한데 그것들을 근육이 쩍쩍 갈라진 남자가 흉내 내고 있으니 기함을 토할 수밖에.
호영은 방금 본 광경을 잊고 싶었다.
눈을 뽑아 씻어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한데도 손은 절로 카메라를 향하고 있었다.
‘추, 추천글 각이긴 해…!’
오랜 커뮤니티 관성이 이렇게나 무섭다.
일단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추천글 한 번 먹을 수 있다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찰칵!
사진이 찍혔고 두 남자의 코스프레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호영은 그 즉시 갤러리에서 두 사람의 사진을 지웠다.
후처리까지 완벽.
온통 물음표 투성이가 된 댓글창과 추천글에 올라간 제목이 호영의 심신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켜줬다.
그제야 호영은 평온을 되찾고 두 디렉터를 볼 수 있었다.
‘음, 끔찍하군.’
희극이라면 희극이고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아니, 비극이랄 건 딱히 없나?
호영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왜, 처음 본 순간의 충격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나.
일단 몸 자체가 워낙 커다랗고 군살이 없다 보니 미관상으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소가 없다.
그나마 따질 걸 따지자면 복장.
하지만 그것도 곧 희화화가 됐다.
“와아아아아!!!”
함성이 터진다.
두 사람이 보디빌딩 포즈를 취했기 때문이다!
울끈불끈 솟아나며 얇은 천 위로 도드라지는 근육이 남성성을 부각했다.
라미네이트라도 한 것인지 새하얗게 빛나는 건치는 절대 놓칠 수 없는 포인트 중 하나였다.
씹덕도 게이머도 스태프도 예외가 없다.
건강한 몸과 투쟁으로 빚어진 상처들은, 못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원초적인 파괴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켜 주고 있었다.
그들은 이 순간 행사장을 지배하는 최고의 씬 스틸러인 것이다.
“으랴아아앗!!!”
“우오오오오!!!”
마이크도 달지 않은 두 디렉터의 함성이 공간에 울려 퍼지길 잠시, 이윽고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주먹을 뻗는 포즈를 취하자 함성은 공기를 찢어발기며 천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단해! 저 동작 하나하나에 숨은 묘리를 봐봐!”
“저 녀석들… 방금 진심으로 서로를 때리려다 멈췄어! 이게 살기인가…!”
하늘하늘하고 파인 드레스는 어느새 우스꽝스러운 코스프레가 아닌 검투사의 전투복처럼 보이고 있었다.
천사와 악마의 코스프레인 만큼, 그들이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는 순간 무대에선 신마대전(神魔大戰)을 연상케 하는 박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호영은 스스로가 그런 감상을 느끼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미친 듯이 뛰는 심장박동에 몸을 맡겨버렸다.
“멋있다!!!”
집단의 광기라는 것이다.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물론 이 모든 게 그저 근육질 아저씨들이 여자 캐릭터 코스프레를 해서 생긴 반응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모두가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렇다.
프로젝트를 다 책임지는 총괄 디렉터라면 행사 하나하나를 따라다니며 주관하려 들지 않는다.
만약 행사에 참여했다 해도 저렇게까지 광대 노릇을 하며 어그로를 끌지는 않는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있는 이상 구태여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한데도 그들은 이런 일들을 행하고 있었다.
왜 그렇겠는가.
결국은 게임에 대한 애정이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다.
저들이 평소에 얼마나 자신들의 게임에 진심인지 모르는 게이머는 없다.
설령 데몬즈 렐릭을 안 하는 유저라 해도 이 시장에 관심을 가지는 이상, 디렉터의 열정만큼은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그걸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니 유쾌하지 않을 리가.
“역시 리와인드는 여장이지!”
“천연호 그 녀석은 글렀어! 초심을 잃었다고!”
“미래는 저 둘이야! 저 녀석들이야말로 리와인드의 새로운 주인에 걸맞은….”
하지만 모두가 즐거운 축제는 좀처럼 있지 않은 법이다.
디렉터들이 루시퍼와 메타트론을 코스프레하며 직접 키링 따위의 작은 웰컴 굿즈를 유저들에게 하사하며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는 가운데,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야, 저기 지니 아냐? 가브리엘 코스프레 한 거 같은데?”
“지니가 뭔데 씹덕아. 빨리 키링이나 받으러 가자.”
“아, 응.”
바로 리와인드 앰버서더 지현이었다.
방송으로 한껏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은근슬쩍 코스프레 의사도 표명하며 오늘 여기까지.
그래도 전직 아이돌인 만큼 지현은 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는 자신이 있었다.
오늘 자리는 자신이 주인공일 거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단 말이다.
하지만 적이 너무 강력했다.
키링을 나눠주는 여장 검투사들은, 그저 예쁘고 잘난 것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우열을 만들어버렸다.
멀뚱멀뚱 서 있는 지현을 향한 관심은 키링을 받고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좀비들의 곁눈질이 끝.
그나마 말을 걸어온 것은 행사 주최측에서 섭외한 인터뷰어들, 그러니까 후배 아이돌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배님!”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도, 이젠 스트리머로 전향해 방구석에서 술이나 먹으며 게임 해도 전직 아이돌이다.
아이돌의 위계질서란 이렇게나 무서운 것.
하지만 지현에게 그 관심은 차라리 독이었다.
모른 척이라도 해줬으면 부끄럽지라도 않지, 후배들에게 근육질 괴한들에게 밀려 스포트라이트를 뻇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부관참시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지현의 눈동자에 빛이 꺼졌다.
그녀는 공허하게 킨텍스 천장을 바라보며 낮에 중얼거렸다.
“애X.”
리와인드, 현세에 나타난 인외마경.
(물리적으로) 약한 녀석은 살아남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