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 Director Returns from Hell RAW novel - Chapter (94)
#94화
문득 생각하길 ‘재미’라는 것의 기준을 세워보자면 그것이 참 애매하다는 걸 깨닫는 때가 있다.
인간이 즐거움을 느끼는 기전을 정리하기엔 그에 대한 주관성이 너무 강하고, 혹여 설명이 가능하다 해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내겐 모자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나는 게임 개발자지 뇌과학자가 아니다.
조금 의외의 곳에서 돌아온 호응에 생각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생활 시스템이라···.’
일단 설명하자면, 아이덴티티에는 생활과 채집 외의 수많은 제작 컨텐츠들이 존재한다.
광물 채집이나 동물 사육, 그것으로 얻은 재료를 가공하는 재봉술이나 야장술 같은 것까지 꽤 폭넓은 형태로 ‘유저가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 간다’라는 명제를 실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나는 아이덴티티를 어디까지나 서사적 장치를 통한 직선형 진행의 게임으로 생각했고, 실제 개발에서도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건 주인공의 능력과 서사적 연출이었다.
이 결과가 놀라운 건 그런 이유였다.
‘식물을 키운다는 감상은 적었을 거야. 지금 단계에서 재배 시스템은 폴리곤 하나를 길쭉하게 늘리는 형태로만 구현되어 있으니까.’
즉, QA부서의 직원들은 하얀 배경에서 웬 수수깡이 길이만 자라는 걸 보고 재미를 느끼고 있단 말이 된다.
이렇게 말하면 꽤나 기괴하나,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이 ‘이렇게만 해도 재밌는 컨텐츠’라는 말이 된다.
마냥 무시해선 안 되는 반응이었다.
경험이 있어 아는 것이 있다.
개발자인 내가 의도한 바와 유저의 감상이 다를 때, 열 중 아홉은 유저의 본능에 의거한 판단이 더 긍정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편이니까.
그렇다면 생각할 것은 하나였다.
‘왜?’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가.
QA부서 팀원들이 농사를 좋아하나?
‘···아니.’
판단키로, 농사이기에 좋아한 것은 아닐 터였다.
단순한 폴리곤 형태의 데이터를 키움으로써 좋아했다는 말은, ‘채집과 재배’라는 시스템적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고 말하는 게 더 그럴싸하다.
실제로 이런 종류의 게임이 없는 게 아니다.
도리어 말도 안 되는 파급력을 일으키며 업계를 들썩인 게임들이 있었다.
당장 생각하는 것만 해도 두 개는 된다.
‘친절한 할아버지 밑에서 농부가 되어 결혼하는 게임’이나 ‘빚쟁이부터 시작하는 농사 게임’ 같은 것들이 있지 않던가.
생활 컨텐츠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걸 어디까지 확장해도 될까.
아니, 게임의 방향성을 정하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할까.
서류를 여러 번 넘겼다.
그리고 조금 더 많은 자료의 필요성을 느꼈다.
“지석 씨.”
“예?”
“QA 부서 플레이 영상 좀 받아와 주세요. 아, 그리고 명규 형도 불러주시고. 몇 개 간단하게 테스트할 게 있습니다.”
“아, 넵!”
그렇게 명규 형을 불러 함께 QA 부서의 플레이 영상을 관찰했다.
“어때요?”
묻자 명규 형이 말했다.
“흥미롭네. 특히 게임 진행을 멈추고 길에서 농사를 해버리는 게 재밌어.”
명규 형의 말대로다.
QA부서 직원 중 한 명은 재배 컨텐츠가 해금되는 순간 그제까지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길 한복판에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7시간, 하루 업무 시간 내내 그 땅에서 농사만 지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말이다.
나는 그에 말했다.
“생활 컨텐츠가 생각보다 호응이 좋아요. 그래서 검증할 자료가 좀 필요합니다.”
“검증할 거라면 어떤 거?”
“이게 농사에만 국한되는 호응인지 아닌지.”
만약 후자라면, 떠오르는 방향이 있었다.
“오늘부터 다른 작업은 다 멈추고 생활 컨텐츠부터 다 구현해 주세요. 기획팀도 레벨 디자인 일정은 캔슬할 겁니다. 협력해서 진행하죠.”
“음, 알겠어!”
발산되는 아이디어 탓에 머리가 뜨거워졌다.
일종의 기대감. 또한, 조급함이 차올랐다.
* * *
리와인드의 QA 부서는 사내의 다른 직군들과 꽤 유리되어있는 편이었다.
그들의 업무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테스트 업무라는 것이 결과 통보와 피드백을 제외한 일에선 다른 직군과 마주할 일이 없고, 부서 사무실 또한 방음 부스 속에 있는 터라 그곳을 나가지 않는다면 얼굴을 마주할 일조차 안 생기지 않던가.
하여 QA 부서는, 이따금 사내에 여러 괴담을 생성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그렇다.
-그 얘기 들었어? QA 부서는 버그를 발견하기 전까지 게임 내에 있는 모든 벽에 몸을 비빈대.
-QA에 박성철 팀장님 있잖아. 현실에서도 벽에 몸을 비빈다더라.
-어쩜··· 업무가 과해서 미쳐버린 걸 수도···.
-응, 우리 사장님···.
-일 엄청 시키는 편이니까···.
물론 낭설이다.
QA 부서가 캐릭터를 벽에 비비는 이유는 오브젝트 충돌에서 비롯한 버그가 인 게임 내에 비일비재한 이유고, QA 팀장인 성철이 현실에서 몸에 벽을 비비는 이유는 전날 밤 과음으로 인한 숙취 때문이었다.
여하튼, 결론은 QA 부서가 그만큼 다른 부서와 동떨어졌다는 것이고, 그런 부서의 특징이 하나 있었다.
내부적인 분위기가 여타 부서에 비해 훨씬 끈끈하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꽤 특이한 일이었다.
이직이 잦은 직군 특성상 직원들끼리 친해질 시간이 다른 부서에 비해 적은 것이 바로 QA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특히 그랬다.
그럼에도 이리될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리와인드의 이직률이 아주 낮은 편이기 때문.
높은 연봉은 대체로 직원의 충성도를 올리는 편이었다.
여하튼,
“얘들아! 새 버전 받아왔다.”
“오오! 뭐 추가됐어요?”
“광질이랑 가축 사육! 재봉이랑 대장장이··· 도축 스킬까지 뽑았대.”
QA 팀장 성철의 말에 직원들이 환호했다.
개발 기간만 되면 죽어 나가는 여타 팀과 다르게 이곳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기본적으로 게임 플레이가 업무고, 직원들 또한 플레이에 미쳐있는 하드 코어 유저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무엇보다 QA 부서 내부에서 꼽는 가장 큰 장점이 있었다.
“노잼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피드백에 노잼 한마디 적을 때가 제일 좋아.”
QA는 사내 유일무이하게 사장에게 욕을 해도 되는 직군이다!
심지어 연호가 그런 날 것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터라 QA 부서의 스트레스는 더욱 작은 편.
성철은 환히 웃는 팀원들을 보며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든든하구만!’
어떻게든 남의 흠결을 찾아 힐난하려는 악마 같은 모습!
그야말로 QA를 위해 태어난 인재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성철은 그런 팀원들을 보며 의욕을 다졌다.
‘버그 피드백은 내가 조금 더 고생하자!’
소프트웨어 공학 전공, 코딩 및 프로그래밍 경험 다수.
성철은 QA 부서에서도 유독 실무 경험이 많아 팀장으로 꼽힌 인원이었다.
굳이 프로그래밍이 아닌 QA를 고른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스스로를 판단했을 때, 본인이 무언가를 만들기보다 만들어진 것의 보완에 특출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부심이 있었다.
일을 더 해보려는 이유 또한 그런 자부심에서 오는 성취욕이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숨은 워커홀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자! 다들 일 시작하자고!”
짝짝!
박수를 치자 직원들이 새 버전을 다운로드 해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당장 파고드는 건 새로 추가된 생활 컨텐츠.
직원들은 그새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타닥타닥 패드를 두들겼다.
나름의 즐거움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근래는 계속 이랬다.
무슨 이유에선지 연호가 다른 컨텐츠 개발을 다 멈추고 생활 컨텐츠만 미친 듯이 파고들기 시작했으며, 그리 만들어지는 폴리곤 형태의 컨텐츠는 골수가 쏙 빨릴 때까지 QA가 진행됐다.
“진성아, 녹화 장비 켜고 해야지.”
“아, 네.”
플레이 녹화는 근래 더 신경 쓰기 시작한 요소였다.
이 기록이 모두 연호에게 직통으로 보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QA 부서 팀원들은 이 영상과 함께 플레이가 변하는 구간. 즉, 무언가를 해금하거나 성취할 때마다 타임라인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 일이 한창인 어느 때였다.
“와, 벌써 여섯 시간 지났네.”
직원 중 누군가의 말에 나머지가 답했다.
“뭐야, 나 하루 종일 광질만 했네?”
“나도 하루 종일 섬유만 캤어.”
“철 2,000개 모았어.”
시시덕거리는 얼굴로 업적을 말하는 QA 직원들은 사뭇 뿌듯해 보였다.
단순한 작업을 반복하는 것임에도, 심지어 얻은 아이템이 이미지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재미를 느꼈다.
그들 스스로는 그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다.
왜 재밌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QA가 아닌 기획의 일이었으니까.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반복 노동에서 오는 성취는 어느새 가득 쌓여있는 창고를 보며 얻는 충만함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일 터였다.
“노잼은 못 적겠다.”
“응, 그런데 역시 컨텐츠가 모자라. 조금만 더 추가됐으면 좋겠어.”
“그래도 버그 두 개 찾았다. 광에다가 몸 비비면서 곡괭이질 하면 모션 꼬이는 거랑 도넛 모양으로 광맥 캐면 튕기는 거.”
“근데 왜 도넛 모양일까.”
“낸들 아나. 아, 도축하다가 땅에 밀 심으면 송아지 시체 발사되는 거 알아? 로켓인 줄.”
그렇게 직원들이 수다를 떨던 중이었다.
성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겜 수준, 존나 할 거 없네.”
라고 말한 후 화장실로 떠난 그의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이 있었다.
창고 가득 쌓인 각 이천 개의 철광석과 섬유, 그리고 500개의 가죽.
“오오···!”
“역시 팀장이야! 노가다도 급이 다르다고···!”
그들은 이 순간, 피시방에서 고인물 유저가 켜둔 만렙 풀템 상태창을 보는 초등학생이 되어 있었다.
* * *
QA 보고서와 영상이 도착했다.
약 하루에 걸쳐 그 모든 영상을 확인했고, 그렇게 내린 결론이 있었다.
‘역시···.’
생각대로다.
‘농사라서 재밌어 한 게 아니야.’
QA 부서 직원들이 생활 컨텐츠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그것이 농사이기 때문이 아니다.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감각 자체가 그들의 흥미 이유였다.
전체적인 플레이 양상은 그랬다.
컨텐츠 몇 가지를 던져 놓으면 직원들은 그것들을 겉만 핥은 뒤 한 가지를 골라 플레이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더딘 작업 속도에 중간중간 휴식을 취하나, 채집을 통한 재료의 수급이 끝나고 그것으로 만들 수 있는 품목이 늘수록 집중도는 더욱 올라갔다.
단기적으로는 목적성.
상위 채집 도구를 만들기 위한 재료 수급이라는 명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고, 그것이 완료된 이후에는 창고에 아이템을 채운다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둔 후 끊임없이 채집을 이어간다.
의미 없는 반복 행위임에도 그것을 행하는 이유는 암만 봐도 ‘소유’에 관한 집착이다.
인간의 심리 기저에 깔린 욕구를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아주 유의미한 결과다.
다만 그들이 흥미를 느끼는 기전을 발견했다는 것외에도, 나는 이 결과를 통해 게임의 골자를 뒤흔들 만한 발상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채집은 즐거워. 하지만 채집을 위한 탐사는 지루하지.’
광맥으로 치면 광맥을 발견하는 순간은 즐거워도 발견하기까지의 지루함이 있었다.
또한 하나의 광맥을 다 캐면 오는, 다음 탐사에 대한 부담감이 보였다.
‘채집한 재료를 통한 물품의 제작은 확실한 재미. 하지만 품목의 부족함이 계속 문제 사항으로 꼽히고 있어.’
게임 속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그것은 분명 무언가를 이뤄낸다는 것에서 오는 카타르시스였다.
전투든 생활이든 모험이든 각 행위에 걸맞은 보상이 제시되어야 한단 말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무엇보다 아이덴티티라는 게임 속에 그 요소를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
고민했고, 그것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바로 기존의 게임에 생활 컨텐츠의 확장을 도모하면 생길 필연적인 괴리에 대한 것이었다.
‘생활 컨텐츠를 진행하면 게임의 스토리를 진행할 수 없어.’
E-40은 설정상 방랑자다.
많은 장소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이 잃어버렸던 미소를 다시금 되찾아주는 내용이다.
한데 생활 컨텐츠를 한다면 그것이 불가능해진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당장 QA 결과만 봐도 직원들은 생활에 집중하는 순간 메인 진행을 멈춰버리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해결 법은 하나다.
‘마을을 만드는 거야.’
달리 말해 거점이다.
언제 어디서든 텔레포트를 통해 이동할 수 있는, 그런 거점 말이다.
‘그렇게 하면 진행과 생활 컨텐츠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또한 서사적인 장치도 녹여낼 수 있어.’
전생, 인디 게임 아이덴티티를 만들 땐 미소를 되찾은 사람들이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를 조명하지 않았다.
미소가 서사 진행 내도록 특급 범죄로 치부됨에도 말이다.
게임적 허용으로 넘어갔으나, 분명 의구심이 들 일.
이번엔 그걸 해소하는 것이다.
당장의 예를 들어, 농부부터.
‘은신처에 가까운 마을을 만들어 그곳에 농부를 보내. 농부는 그곳에서 마을의 원예와 농업을 담당하는 npc로 만들어.’
그런 대사를 넣자.
-고마워! 네 덕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어! 보답으로 널 도와줄게! 농업에 대해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와!
내가 구한 인물의 행복한 미래를 옆에서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 성취와 만족을 준다.
더해서 그것을 다만 오브젝트가 아닌 내게 도움을 주는 무언가로 완성한다면, 챕터의 새로운 npc를 만나 그를 돕는 과정이 ‘내 마을의 일꾼을 찾는 일’로 인식돼 서사에 대한 집중도를 올릴 수 있다.
유기적인 연결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새로운 제작법, 그리고 제작 루트 해금과 채집 종자의 수급을 스토리에서 가능케 한다면?’
채집과 제작에 매몰되는 플레이 양상을 컨트롤할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선 메인 스토리를 진행해 레시피를 얻어야 하니, 게임의 진행 자체에 대한 목적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렇다.
‘소유에 재미를 느끼는 것이 포인트라면···.’
모든 것이 소유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스토리 진행도 소유, npc도 소유, 채집 품목도 소유, 제작 아이템도 소유, 그리고 그것들이 아우러져 만들어지는 ‘나’의 마을도 소유.
게임을 플레이하는 ‘나’는, 마을 안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이것에 이름을 붙여보자.
‘잃었던 미소를 되찾았으나 갈 곳이 없어진 이들의 마을. 모두가 웃으며 자신의 일을 하는 마을.’
그리고 게임 속의 ‘나’가 이뤄낸 성취의 결과물.
즉, 트로피의 전시관.
그렇다면 그 이름은 하나밖에 없을 터다.
‘미소 마을.’
내가 완성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다 가지게 하지 뭐.’
그것이 재밌다면 게임적으로 이뤄주는 게 디렉터의 역할이다.
이리 구상을 끝내니 전생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하나, 그것이 불안하긴커녕 머릿속을 관통하는 시원스러움을 선사해줬다.
‘달라지는 거야.’
조금 더 발전하는 것이다.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수용하면 된다.
전생의 이 게임이 나라는 개인의 아집을 담았다면, 이번엔 조금 더 큰 것을 담는 것일 뿐이다.
아이덴티티.
그 이름대로 농부든 광부든 대장장이든 모험가든, 혹은 방랑자로서의 스탠스를 유지하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사람이 원하는 내가 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러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곧장 기획팀에 말했다.
“지석 씨, 호수 씨.”
“예.”
“부르셨습니까?”
“기획 회의 들어갑니다. 다들 회의실로 오세요.”
이제 발상의 구체화다.
즉, 집단 지성의 힘이 필요한 때였다.
소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