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ame's Top Troll RAW novel - Chapter 78
78화 샌드 오프 포지 (1)
대사막 슈림.
아르카디아 2대륙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광활한 모래사막.
끓어오르는 모래만이 가득한 이곳은 NPC들조차 고개를 저을 정도로 험악한 곳이었다.
“슈림 안에 들어가겠다고? 허허…… 자네, 혹시 목숨이 여러 개인가?”
“저 사막을 건너면 뭐가 있냐고? 글쎄…… 내가 35년 사는 동안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사막 인근에 자리한 마을에서조차도 고개를 저으며 절대 출입을 꺼리는 곳. 그러한 장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가진 유저 일부가 호기롭게 무작정 사막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시이발. 적당히 돌아다니다 보면 오아시스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딴 것도 없이 그냥 죄다 모래네. 결국 헤매고 헤매다 목말라 뒤졌다.
-ㅋㅋㅋㅋㅋ. 그러게 패기도 적당히 부려야지.
-거기서 나오는 몬스터들 레벨도 꽤 되는 것 같던데? 기본적으로 레벨 100 이상은 찍고 가야 할걸?
-나 레벨 100인데 이 정도로도 부족함. 이 망할 전갈 새끼들 존나 떼거지로 달려들어.
-그것보다 이거 길 어떻게 찾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는 게 그냥 노답인데?
이미 한번 찍어서 맛만 보려다가 극강의 매운맛에 호되게 당한 유저들. 여러 유저가 호기심을 가지고 이 사막에 대해서 이리저리 알아보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이곳에 관한 정보는 찾기 힘들었다.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커다란 사막 만들어서 내버려 두는 건 아닐 거 아냐. 뭔가 있을 텐데…….
-그렇다고 보기에는 관련한 떡밥도 나온 게 없고, 거기에 마을이든 오아시스든 뭐든 있어야 좀 살아서 돌아다닐 거 아냐? 거긴 진짜 말도 안 될 정도로 그냥 야생이던데.
-일단 아직 개발이 덜 끝난 곳일 수도 있지 않냐? 대충 사막만 만들어 놓고 나중에 패치로 뭐 새롭게 추가할 수도 있지.
무언가 대형 퀘스트의 떡밥이 숨어 있는 곳은 아닐까 미심쩍은 눈으로 사막을 바라보는 이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추가로 슈림에 대해 알려진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 만한 요소가 전혀 없었기에 차츰 그곳에 관심을 두는 이는 적어져만 갔다.
“나중에 뭐 게임사에서 따로 패치 하려고 막아 둔 곳이겠지.”
“언젠가는 알게 되지 않을까?”
굳이 슈림이 아니더라도 모험하고 탐험해야 할 곳은 많았기에, 그렇게 모험심 넘치던 유저들도 하나둘씩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와 비슷한 다른 4개의 구역과 함께 당당하게 5대 금역으로 선정된 대사막 슈림. 하지만 이 무시무시한 사막에 발을 들이는 두 명의 새로운 방문자가 있었다.
“으으으…… 그런데 덱스 형, 여기는 도대체 왜 온 거예요?”
이곳까지 동행하면서 그래도 꽤 격의 없이 친해진 중식. 그는 재영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신을 구제해 준 사람이 바로 덱스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부터 엄청난 호의와 존경 어린 시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너한테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줄 사람들이 있거든.”
“예? 기술이요……?”
드워프. 난쟁이 일족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다른 일반적인 판타지 세계의 설정과 비슷하게 천부적인 손재주를 이용해 온갖 기물을 만들기 좋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거래를 한 것도 수백 년 전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그들이 만든 물건들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되고 있는 사실을 보면 그들이 가지는 제작 기술과 명성은 감히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의 바다. 문명의 흔적은커녕 풀 한 포기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사막을 보고서 중식은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재영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하지?”
“예……?”
마치 자기도 모르겠다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재영. 중식은 그에 황당하다는 듯이 물어보며 대꾸했지만, 탄과 엘은 중식과 탄 옆에서 날아다니며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야, 이 악마 새끼야! 알려 줄 거면 정확히 말해야지, 여기까지 와서 위치는 잘 모른다고 하는 게 말이 돼?”
마치 엄마가 등짝 스매시를 때리듯이 손바닥으로 강하게 탄을 후려 패는 엘. 그리고 그런 그녀의 손맛에 탄은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아, 진짜……! 정확히는 나도 모른다고! 내가 위치만 안다고 했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도 안다고 했냐?”
“이 새끼가 누가 빌어먹을 박쥐 새끼 아니랄까 봐! 지금 누구 앞에서 어디 인간들한테나 먹힐 법한 말장난이야? 너 진짜 나한테 뒈져 볼래?”
“으아아! 주인! 저 미친년 좀 어떻게 해 봐!”
이 사막에 당도할 때까지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다가 막상 도착하고 나서는 정확한 위치는 자기도 모른다는 탄. 그 무책임함에 폭주한 엘이 미쳐 날뛰고 있었지만, 재영은 평상시와 같이 그저 그 둘의 추격전을 차분하게 감상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탄의 등짝을 후려 패는 엘의 손맛이 여간 매운 게 아닌지 그녀의 손이 탄의 등짝에 닿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까지 청명해지는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
“저…… 덱스 형? 진짜 여기가 맞아요? 혹시 뭐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닌가요?”
왠지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불안감에 중식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사막을 바라봤지만, 재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여기는 확실해. 다만 조금 조사가 필요할 것 같긴 한데…….”
광활한 사막. 모래만이 가득한 이 끝없는 대지는 이곳저곳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숱한 모험가들도 일찌감치 포기하고 돌아선 곳. 중식은 혹여나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막을 오랫동안 방황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봤지만, 재영의 얼굴은 그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크게 걱정하지 마. 다 잘 풀릴 테니까.”
천천히 미지의 사막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재영과 그의 뒤를 불안한 표정으로 뒤따르기 시작한 중식. 그런 사막에서는 그들의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듯 알 수 없는 찰싹거리는 소리와 분노와 고통이 뒤섞인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만 좀 때려, 이 빌어먹을 치킨 새끼야!”
* * *
(주)아르카디아의 한국 지부.
매일같이 터지는 여러 가지 사건을 해결하고 또 수습하느라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직원들은 동시에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준비와 미래 계획들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내년도 하반기에 추진될 시나리오, ‘종족 전쟁’에 관한 중간 점검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시까지 아직 1년도 더 남은 시나리오. 하지만 시나리오의 규모가 그 어느 때보다도 방대하기에 퀘스트 기획 팀과 개발 팀은 강태훈 부장의 지휘 아래에서 사활을 걸고 이번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시나리오의 기본적인 개념은 선택의 양면성입니다. 엘프와 드워프라는 두 이종족의 세력이 등장하고, 유저들은 이 두 종족 사이에서 한쪽만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선택한 진영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분쟁들을 통해 유저들은 더욱 흥미롭고 다채로운 이야기 속에서 아르카디아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엘프 그리고 드워프의 출현.
이들의 등장을 위한 시나리오가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연 사장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두툼한 보고서를 천천히 살펴보며 물었다.
“이 두 종족 중에서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는 건가요?”
“그 두 종족 사이에 설정된 호감도 수치가 –999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갈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 수준입니다. 그런 두 진영을 지지하겠다고 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긴 합니다만…… 그랬다가는 박쥐 같은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두 진영 모두에게 배척받을 것입니다.”
발표자의 말에 이미연 사장은 의아하다는 듯이 눈썹을 구부리며 물었다.
“음…… 도대체 왜 그렇게 사이가 안 좋게 기획된 거죠?”
“아, 이 부분은 저희가 개발한 게 아닙니다. 원래부터 초기 설정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는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했었는데, 너무 사이가 적대적이라서 전쟁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여러 국지전 같은 갈등 상황을 기획한 것입니다.”
초기 설정.
본사로부터 아르카디아의 담당 영역에 대한 개발권을 위임받을 때부터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그들의 사이. 그렇기에 이미연 사장도 별 불만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시나리오 공개 전까지 발생 가능한 예상 돌발 상황은 없나요?”
“현재까지는 특별히 우려되는 문제점은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딱히 없다고 단언하는 발표자. 하지만 이미연 사장은 못 믿겠다는 듯이 다시 한번 그에게 물었다.
“정말로 없나요? 최근 일어나는 상황들을 보면 의도하지 않은 돌발 상황이 너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서요.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또 수습 불가능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솔직히 우려되는군요.”
슬라임 사태로 초보자 마을이 박살 난 것을 시작으로, 세인트 제국의 광기 어린 폭주와 죽창대전으로 말도 안 되고 어처구니없는 개사기 아이템을 유저의 손에 쥐여 준 것까지.
“그, 그게…… 하나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그들이 은둔하고 있는 거주지가 유저들에게 우연히 발견되는 상황이기는 한데…… 그 부분에서는 철저히 방책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방책이요?”
아르카디아에는 존재하는 다섯 개의 금역.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와 지옥 같은 더위만이 가득한 대사막 슈림.
빽빽하게 늘어선 밀림 속에서 튀어나오는 온갖 위험한 생물들과 그것들로 가득한 대수림 아밀.
몬스터들의 영역이자 드래곤들의 쉼터로 불리는 드래고니아.
뼛속까지 치밀어 오는 한기로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는 지역, 아이스버그.
마지막으로 온갖 해적이 들끓는 범죄자들의 해역, 캐러비안.
이 다섯 개의 금지 구역은,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 지역에는 몇몇 유저들이 추측하는 바와 같이 (주)아르카디아 개발진의 입김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드워프들이 숨어 있는 슈림은 모든 오아시스를 모조리 말라 버리게 해서 그들의 활동 영역까지 유저들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접근할 수 없게 해 두었고, 상대하기 까다롭고 강력한 몬스터들도 집중적으로 배치해 두었습니다. 엘프들의 영역인 아밀 역시 마찬가지고요.”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들과 까다로운 지형의 특성으로 접근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도록 설정해 둔 개발자들의 꼼수.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연 사장은 미심쩍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흐음…… 그 말은 저에게는 이들이 노출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라고 들리는데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들이 있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찾아 나서는 자들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유저는 금방 포기하거나 몬스터들에게 죽어서 나가떨어질 것입니다. 실제로 예전에 이 두 곳에 무언가 있다는 의심을 하며 집중적으로 조사하던 유저들도 몇 있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포기하고 돌아선 것을 보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직 1년도 더 남은 시나리오. 혹시나 모를 돌발 변수가 생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기에 이미연 사장은 발표자의 확신에 찬 발언에도 묘하게 가슴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그리고 이들이 시나리오의 전개와 그 파급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하고 있는 그 순간.
아르카디아에서는 두 사람이 계속해서 휘몰아치는 모래의 폭풍을 뚫으며 대사막 슈림 깊숙한 곳까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드워프들이 만들어 놓은 지저 도시.
샌드 오브 포지(Sand of Forge)를 향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