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 Wizard Transcendent RAW novel - Chapter 314
회귀로 초월하는 대마도사 315화
“바로 갈 생각이냐.”
“예, 안타깝게도 시간이 여유롭진 않아서 말이지요. 아버지야 알아서 잘 하실 분이잖습니까.”
난 레메게톤을 대충 둘러멘 뒤, 그렇게 말했다.
졸지에 짐짝마냥 매달린 레메게톤이 물었다.
“아니, 내 의사는?”
“그런 건 없다.”
“…….”
내 말에 레메게톤이 세상 다 산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아버지는 꽤 피곤해 보였다.
하긴, 마신이 강림한 이후로 아버지 역시도 ‘발푸르기스’로서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했으니.
“솔직히 듣고 싶은 것이 많다만, 레메게톤을 챙겨 가는 걸 보니 역시 가문과 관련된 일이겠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와도 관련이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만.”
“그것도 그렇지요.”
난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관련이 없지 않다 정도가 아니라, 이번 일은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터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그냥 제가 나중에 속성으로 요약해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이 아비는 신나게 가문의 미래를 위해 굴려지고?”
“이게, 부자지간에 이렇게 쌍으로 굴려질 기회가 흔치 않거든요. 나름 신선한 경험 아닐까요?”
“아주, 그냥…….”
아버지는 파들대다가, 이내 날 쳐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8서클이 감히 9서클의 대마도사께 뭘 하겠냐만.”
“에이, 원래 새로운 해가 뜨고 그러는 거지, 뭘 새삼스레 그러십니까.”
“은근슬쩍 자신을 새로운 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뺀질거리는 우리 피가 어디 가지는 않았구나. 참으로 장하다, 내 새끼.”
“크흠…….”
어차, 잠깐 까먹고 있었네.
이게 우리 아버지였지?
“뭐, 어쨌건 확실하게 보고는 올리겠습니다. 아무래도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서 말이지요.”
“알겠다. 그래도 가능한 한 빨리빨리 쓰고 반납하고. 해 줘야 할 일이 많거든.”
“야, 저거 못하는 말이 없네! 내가 물건이냐?! 물건이냐고!”
“마도서기는 하잖습니까.”
“인격체로 대우하라고, 인격체로! 이 미친 마법…… 켁!”
난 뭐라 더 말하려는 레메게톤을 적당히 쳐서 기절시키고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하여간 가 보겠습니다. 어차피 이번 일을 끝내고 올 때쯤이면 동료들도 전부 나올 테니…….”
“아, 그러고 보니.”
그때, 아버지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내게 말했다.
“성녀님께서는 이미 진즉에 나오셨다.”
“……예?”
그건 못 들었는데.
“아리안델이 나왔다고요?”
“그래,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는지 바로 교국으로 출발하셨다만…… 음, 이런 말을 전해 달라고 하기는 하셨지.”
아버지는 날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괜찮을 거예요.」 라고 말이다.”
이제는?
무언가 깨달았다고 하면…….
“……일단은, 알겠습니다.”
만약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어차피 내가 서두르지 않아도 아리안델은 곧 내게 찾아올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해도 상관없겠지.
지금 중요한 건 신물의 완성.
원탁의 완전한 부활이다.
그리고 곧바로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 마법을 맺기 직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미하일.”
“예.”
“혹시나 해서 말하겠다만, 너무 너 혼자 담아 두지 말아라.”
“…….”
잠깐,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의 표정은 평상시와 딱히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당연한 듯, 아버지로서 조언할 뿐.
“그건…….”
아버지에게는 아직 내 회귀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믿지 못한다거나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뭐라고 해야 할까.
회귀라는 건 결국, 내가 겪은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는데…….
‘비참하잖아.’
아버지에게는, 너무나도.
아들이 망가뜨리고, 무너뜨렸다.
그런 주제에 결국에는 실패해서 돌아온 것이 ‘회귀’의 전부다.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다.
아들로서, 아버지에게 회귀 전의 일을 이야기한다는 건…….
“미하일?”
“아, 아…… 알겠습니다. 그거야 걱정 마시고. 제가 어디, 뭐, 담아 두는 성격입니까?”
“그래, 알고 있다. 그렇겠지.”
내 말에 아버지가 웃었다.
하지만 평상시의 웃음과는 무언가 다르다.
그 웃음이, 어쩐지 내 속마음을 읽고 있는 것만 같아.
“……하여간, 가겠습니다.”
난 곧바로 모습을 감췄다.
언젠가는 이야기할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그때의 일을 밝히게 될 날이 곧 오겠지만…….
조금, 뒤로 미루도록 하자.
아주 조금만.
* * *
“그래서 날 왜 데려왔는데?”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레메게톤이 퉁명스레 물었다.
“지금 상황에서 내가 필요한 일이라고 해 봤자…… 으응?”
“느꼈나?”
“잠깐, 너, 이거 뭐냐?”
레메게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녀석은 눈을 부릅뜬 채, 날 보더니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격이, 상승했어? 아니, 그 수준이 아닌데, 그보다 지금 네게 붙어 있는 건…….”
“아, 그건.”
– ‘와이즈’다.
와이즈는 아무런 신호 없이 레메게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계약자에 의해 탄생한 정령, ‘와이즈’라고 한다.
“와, 이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레메게톤이 와이즈를 쳐다보았다.
“아니, 분명 연결이…… 아니, 확실히 느낌은 조금 다른데…….”
“이 녀석이 ‘와이즈’라 했으니, 와이즈인 거다. 그렇게 알아 둬.”
“으, 음……?”
더 모르겠다는 표정.
물론 난 딱히 레메게톤의 의문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애초에 와이즈가 자신을 ‘와이즈’라 소개한 이상,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기도 하고.
“그보다, 네가 시조님과의 연결이 끊기기 전, 뭔가 낌새는 없었나? 좀 거슬리는 일 같은 거.”
“낌…… 새? 글쎄다. 연결이 끊겼고, 난 그걸로 창조주가 사망했다 판단했다. 딱 그 정도다만.”
“그 외에 다른 특이점은?”
“없다. 있다면 내가 진즉에 움직였겠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잖아. 애초에 내가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정말로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라고.”
최고(最古)의 마도서.
단순히 오래 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막대한 지식을 축적한 인류 지성의 정수다.
레메게톤의 말대로, 녀석이 모른다면 어지간해서는 정말로 별일이 없다는 뜻이겠지.
“흠, 모른다는 거군.”
“그래, 안타깝게도 말이지. 딱히 도움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냥 돌아가면 되는 거냐.”
“아니, 모른다니 됐어.”
난 다시 레메게톤을 들어 올렸다. 모른다면 오히려 편하지.
“……뭐 하자고?”
“뭘 하기는. 모른다며? 그냥 같이 가면 되는 거다.”
“모르니까…… 간다고?”
레메게톤의 눈동자가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내가 방금 한 말의 뜻을 이해한 것인지, 갑자기 녀석이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놔! 나, 나 갈 거야! 갈 거라고! 그냥 차라리 아이단 옆에서 굴려지는 게 낫지! 또 뭔 미친 짓을 하려고!”
“괜찮아. 위험한 짓 안 해.”
난 버둥거리는 레메게톤의 몸을 굳게 붙잡았다.
물론 이미 내 생각을 직감한 레메게톤은 더 거세게 반항하기 시작했다.
“미친놈아, 위험한 짓 한다는 뜻이잖아! 이게 제정신인가!”
“아냐, 진짜야. 난 여태까지 거짓말과는 담을 쌓았다고. 내 청렴한 일생을 믿어 줄…….”
“아, 그 평생에 철없던 시절은 포함 안 되는 거겠죠? 아무리 세탁하려고 해도 공녀 치마…….”
“아가리.”
“켁!”
개소리를 지껄이려는 레메게톤의 어리석은 행위를 지켜볼 수 없었기에, 녀석의 뒷목을 쳤다.
녀석은 간단히 픽 쓰러졌다.
그렇겠지.
그냥 뒷목을 친 것 같아도, 신격 좀 담은 거였으니까. 위대한 마도서는 그리 쉽사리 기절하지 않아요.
이 정도는 해야 기절하지.
– 기절시키겠답시고, 신격을 담는 계약자도 정상은 아니다만.
“아, 그건 상관없고.”
어쨌건 이번 무덤은 특별하다.
다른 건 몰라도, 시조 솔로몬의 마지막 목적지가 됐을 수도 있을 땅이니까.
자신을 쫓아냈던 사도의 땅에서 최후를 맞이했다고 한다면…….
“와이즈.”
– 말하라, 계약자.
“솔로몬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 ……모르겠군.
와이즈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떠올리듯.
그러고는 조금 한숨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 도착하면, 알게 되겠지.
* * *
어둠 속, 한 노인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망각이 허락되지 않기에, 해소될 일이 없는 절망과 슬픔.
– 이 죄를, 어찌해야…….
노인은 반복하고 있었다.
끝도 없이, 같은 상황을.
같은 시간에 갇혀 있다 봐도 좋으리라.
반복하고 있음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 노인의 시간은 다시 돌아간다.
어느새, 노인의 앞에는 다시금 누군가가 서 있었다.
금발의 붉은 눈.
익숙한 분위기의 한 남자가 노인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인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더 할 말은 없네, 솔로몬.”
그렇게, 몇 번째인지 모를 반복이 다시 한번 시작되었다.
* * *
– 케에에엑!
비명과 함께 거구의 몬스터가 땅바닥에 몸을 뉘었다.
블러드 자이언트(Blood Giant).
한때, 수많은 대륙인들을 학살하여 ‘무도한 학살자’라는 악명을 날렸던 끔찍한 괴물이 죽었다.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지성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거구에도 불구하고 민첩하며 카멜레온처럼 몸을 숨기는 것에도 능하다.
단 하나로, 일국의 기사단마저 상대가 가능하다 알려진 괴물이지만 그 최후는 무척 허무했다.
단 한 번의 마법.
그 마법 한번으로 블러드 자이언트의 가슴이 꿰뚫렸다.
“……후우.”
그리고 그런 블러드 자이언트를 단숨에 마법 한 번으로 정리한 마법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거인의 육중한 거구에서 내려왔다.
“확실히 좋지 않은데, 이거.”
마법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땅에 나뒹굴고 있는 블러드 자이언트를 흘겨보았다.
그리고 한때, 그 블러드 자이언트에 의해 생명의 위협을 받던 도시의 영주가 소리쳤다.
“도, 도, 도련님,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아주 그냥, 한 방에 저 전설의 마물을 처리하셨군요!”
“예전에는 정신 좀 차리라며?”
“크, 크흠! 제, 제가 그랬습니까? 이, 이것 참…….”
그 말에 발푸르기스 후작가문의 가신 중 하나인 갈라 자작이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
‘그, 그 도련님이 이렇게 성장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당장 몇 년 전만 해도 정말 꼴사나웠었는데, 그걸 어떻게 예상한단 말인가.
3서클도 간당간당 하다는 평가마저 받는 무능아였을 터…….
그런데 도대체 뭔 계시라도 받은 건지, 갑자기 용사가 되더니 이번에는 9서클이라고 한다.
가까이서 이 ‘미하일 발푸르기스’라는 인간을 보아 온 만큼,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이런 걸 보면,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는 자신이 무능한 영주라고는 생각 안 했다.
아니, 실제로 갈라 자작은 제법 유능한 영주로서 이름이 높았다.
다만 이번의 위협, ‘블러드 자이언트’는 도저히 상식이 통하지 않은 괴물이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최근 미치광이 신이 강림했다는 소문과 함께 대륙 전역이 뒤숭숭한 분위기인 와중에, 이 블러드 자이언트가 나타난 것이다.
이렇게 쉽게 잡힐 놈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냥 갑자기 나타났다.
만약 제때 저 도련님이 등장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다면, 큰 손실을 각오해야 했으리라.
“도, 도련님, 근데 도대체 여기는 웬일로…….”
아무리 봐도, 블러드 자이언트를 사냥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마치 무언가를 찾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그는 직감적으로, 이 변덕스런 도련님을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후, 도련님의 입에서 천천히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갈라 자작.”
“예, 옙!”
고심하듯, 그 도련님의 얼굴에 고뇌가 깃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련님의 입이 열렸다.
“혹시, 종교 믿는 거 있어?”
“……예?”
이 사람이 도대체 뭐라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