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idden second life of the soldier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푸른 마탑의 상층부.
어린 마법사들을 육성하고 마법을 수학하는, 아카데미 기관이 대부분인 마탑의 하층부와 달리, 상층부는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바로 마법의 발전을 위한 연구.
마법의 술식을 개선하고, 마력의 효율이나 위력을 증대시키는 연구를 진행하는 마탑의 상층부 대부분은 마탑의 고위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 마탑에서도 가장 높은 곳.
마탑 최상층에서 십수 명의 노인들이 방 중앙의 화톳불 앞에 모여 있었다.
가장 젊은 사람이 중년이었고, 최고령자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스승님, 받으시지요.”
안경을 쓴 중년의 사내가 화톳불에 걸린 냄비에서 끓인 뱅쇼를 조심스럽게 꺼내 잔에 따라 진상했다.
그를 받아 든 호호백발의 노인이 한 모금 음미하며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흔들의자가 천천히 흔들리며, 노인의 무게를 지탱해주었다.
“달콤하니 좋구나. 어디 와인이지?”
“남부 푸시딘산 와인입니다.”
“나중에 방문한다면 몇 병 챙겨야겠군.”
노인의 이름은 하네른 노하스.
이 푸른 마탑의 주인이자, 최고위 권력을 가진 마법사였다.
가장 젊은 중년의 사내는 하네른의 제자였고, 주위의 노인들은 푸른 마탑의 장로들이었다.
마탑 내 위상으로는 가장 높은 이들이 한데 모인 것이었다.
장로들의 면면을 확인한 마탑주 하네른이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그러면 슬슬 교류회를 시작하지.”
교류회.
마법을 연구하는 이들의 특성상 다른 이들과 교류하기는 쉽지 않다.
누군가는 마력 흡수의 효율을 연구하고, 누군가는 마력 방출의 위력을 증대시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각자 다른 분야를 일평생 연구하는바, 같은 관심 분야가 아니고서는 만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탑주와 장로들은 정기적으로 교류회를 열어서 서로의 연구 진척도를 확인하기도 하였다.
“베일스 장로. 마력 술식의 간략화 연구는 요즘 어떤가?”
“허허, 엔치오 장로. 말도 마십시오. 수월하다 싶었는데 술식 한 곳에 문제가 있어서 처음부터 재정립 중입니다.”
“스태프를 마력 저장소로 이용하는 건 어떨 것 같소? 신체의 연장선처럼 이용하는 거지.”
“아, 그 연구 나도 들었소. 꽤 흥미롭더군.”
“최근 적색 마탑에서 새로운 술식을 만들어냈다는데, 한번 알아보는 건 어떻소?”
“쯧, 아무리 그래도 적색 마탑의 것을 말이오? 우리의 자존심이 있지. 어찌 놈들 것을 쓰겠소?”
“하긴 적색 마탑, 놈들에게 트집잡혀서 좋을 건 없지요.”
몇 차례 마법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자, 이야기의 주제는 마법에서 마탑으로, 그리고 현 대륙의 정세에 관한 이야기로 차츰 바뀌었다.
“아, 마탑주님. 이건 제국 마탑쪽 극비리 이야기인데 말 입니다.”
“극비리라고?”
장로 한 명이 꺼낸 이야기 하나가 마탑주 하네른의 이목을 끌었다.
“예, 제국 마탑 두 개 있지 않습니까? 그 둘이 합쳐서 유적 하나를 발굴한다더군요.”
“회색과 흰색 둘이 말인가? 견원지간 아니던가?”
마탑을 보유한 나라는 몇 없다.
하지만 헬리오스 제국쯤 되는 곳이라면 마탑을 두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마탑이 으레 그렇듯 서로를 견제한다지만, 그 둘은 더욱 정도가 심했다.
그런데 사이도 안 좋은 회색 마탑과 흰색 마탑이 서로 협력한다니?
둘 모두를 군침 삼키게 할, 달콤한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번에 발굴한 유적의 규모가 제법 큰가 보군.”
“마기가 짙고 대규모의 마수 무리가 잠들어 있었답니다. 심지어 제국군 일부가 차출되었다더군요? 마이어스 재무관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천천히 잔을 홀짝이던 하네른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이어스? 그자가? ······설마?’
그러는 사이에도 장로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튼, 이 정보를 알려준 이가 흰색 마탑의 친분 있는 마법사인데 그자의 말로는······ 그 유적은 마치 왕을 숭배하는 궁전 같았다더군요.”
“마수들의 궁전, 그리고 마수들의 왕이라······ 재미있군.”
커피를 홀짝이던 한 장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마탑주. 전황 이야기는 들으셨습니까? 루퍼스의 군대가 글레바 백작의 군대를 쓰러트렸다더군요.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사실인가 봅니다.”
“백작이 아니라, 후작이요.”
“크흠, 제가 실수했군요.”
마탑주 하네른이 눈총을 보내자 주제를 꺼낸 장로가 헛기침했다.
하네른이 코하르펜과 글레바를 지지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그래서······ 그게 어떻게 된 거랍니까?”
하지만 그것을 제쳐두더라도 흥미로운 주제였기에 다른 장로가 조심스레 물었다.
마탑의 최고위 권력을 가진 이들로서 마누스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루퍼스를 제치고 왕위에 오른 코하르펜, 그리고 왕국 동부에서 군세를 일으킨 1왕자 루퍼스.
페르딤 공화국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내전이다.
“루퍼스가 삼천 명의 군세를 박살 내고, 후작을 수도로 쫓아냈었다는군.”
“그게 가능한 겁니까?”
“저 역시 들은 적 있습니다. 그란디스 백작의 군대와 사막의 전사들을 원군으로 불러 세를 불렸다지? 지금은 수도로 진격을 시작했다던데······ 벌써 육천에 가까운 군세가 되었다더군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장로들이 하나둘 입을 모았다.
“맙소사, 빈손으로 쫓기던 왕자가 육천의 군세를 모으다니······.”
“이거야 원, 당분간 수도에서 피바람이 불겠군.”
“검문을 더욱 단단히 해야겠소.”
그 목소리는 점차 우려로 향했다.
“다들,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시오?”
그 모습에 마탑주가 코웃음 치며 고개를 저었다.
“루퍼스가 다시 왕관을 되찾는다? 당치도 않지. 고작 1만도 되지 않는 군대요. 수도 포이닉스. 아니, 왕성에 있는 결계를 뚫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오? 게다가─”
모두의 시선을 받은 마탑주가 밤하늘이 비치는 창밖을 가리켰다.
추운 바깥과 따뜻한 방 안의 기온 차로 인해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곧 겨울이 오고 있소. 그 겨울에 왕성을 둘러싸고, 그들이 장기전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소? 결계를 뚫기 전에 동사자나 아사자가 속출하겠지. 마탑의 도움도 없이 놈들은 결계를 뚫지 못할 것이오.”
루퍼스의 군대는 왕성의 성벽을 넘지 못한다.
그것이 하네른의 자신감이었고, 그가 코하르펜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장로들에게도 암묵적으로 두둔한 것이다.
루퍼스. 그가 도움을 구하더라도 절대 돕지 말라고.
“큼. 마탑주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지당하십니다.”
곧장 수긍하는 이도 있었고, 못마땅히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장로들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것이 마탑주가 가지는 권위였으니 말이다.
그에 만족하며 웃던 하네른의 오른편, 지팡이에 박힌 푸른 보석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음? 이건?”
마탑주 뿐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이것이 왜······?”
장로들의 반지나 팔찌, 목걸이 등 각자 지니고 있던 푸른 보석이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네른의 제자 중 한 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가디언이 보내는 경고 신호······ 맞습니까?”
이 푸른 보석들은 마탑의 지하 창고를 지키는 가디언, 그 코어와 연결된 신호기였다.
그 말인즉슨, 감히 누군가 경비병들을 뚫고 창고에 침입했단 소리가 아니던가?
“지금 제가 즉시!”
“허허, 뭘 그러나? 앉아 있게.”
분노한 제자는 즉시 자리를 박차려 했다.
하지만 마탑주와 장로들은 태연히 그를 막아섰다.
“허허. 웬 벌레가 기어들어 왔나 봅니다.”
“그래봐야 잡놈이겠지요. 별일 아닐 겁니다.”
오히려 태연자약한 모습에 제자가 당황할 정도.
그 모습에 하네른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뭘 그리 전전긍긍한 것이냐? 버러지 같은 놈들이 푸른 마탑의 보안을 어떻게 뚫고 온 것은 불쾌하지만······ 가디언을 마주쳤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으냐?”
푸른 마탑, 3대 마탑주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골렘.
그 가디언 앞에서는 웬만한 마법도, 오러도 소용이 없다.
누군지 몰라도, 가디언의 존재를 예상하지 못한 좀도둑일 터.
자신의 선택을 원망하며 무력하게 짓뭉개졌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우우우웅─!
장로들과 마탑주의 푸른 보석들이 전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붉은빛을 내며 강렬히 진동하는 보석들.
“이건······!”
그 모습에 하네른의 눈이 더욱 커졌다.
이 보석의 신호는 두 가지다.
침입자를 알리는 푸른 빛.
그리고 붉은 빛은······.
‘······가디언이 충격을 받았다는 뜻일 텐데?’
마법도, 오러도 통하지 않을 가디언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여유가 가득했던 하네른의 얼굴에 당혹이 차올랐다.
대체 누가?
······어떻게?
* * *
콰아아앙!
“칫!”
나는 내 앞으로 떨어진 금속 주먹에 이를 악물었다.
부서진 바닥 일부가 파편이 되어서 튀어들었다.
행여 등 뒤의 도로시한테 돌덩어리가 튈까 봐 도로시를 껴안고 숙였다.
퍼억!
운이 나쁘게 날아온 돌 하나가 내 등에 맞았다.
먹먹한 통증이 등에서 올라왔다.
“쯧.”
“아, 아저씨!”
인상을 찌푸린 내 얼굴을 본 것일까.
도로시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저씨 아니라니까.”
왜 자꾸 아저씨라고 하는 건지.
인생 3회차인 정신은 그렇게 불릴 만하지만, 이 몸은 아직 젊다고.
– 침입자를 처단합니다!
그때 한가롭게 떠들지 말라는 듯 우리를 향해 가디언이 음성을 내었다.
나는 도로시를 창고 바깥으로 밀어내고, 안쪽으로 달려들었다.
– 침입자를 처단합니다!
골렘은 안쪽으로 달려드는 나를 포착하고는 움직임을 바꾸었다.
놈의 두꺼운 팔과 몸통 사이로 발리스타를 장전하는 그룬과 로빈이 보였다.
“그룬! 로빈!”
“거의 다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끼릭! 끼릭!
캐슬 크러셔의 발포.
나는 그것을 기다리면서 다리에 마력을 집어넣고 바닥을 박찼다.
쾅! 쾅!
몇 걸음씩 바닥을 박찰 때마다 바로 뒤에서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나 강렬한지, 1회차 기억 속 전장의 포화가 떠올랐다.
“이거나 먹어라!”
나는 녀석을 향해 오러를 휘둘렀다.
공격은 아니었고, 놈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허용치 않겠다는 듯 녀석의 주먹에 오러가 닿는 순간.
검보라빛의 마력이 퍼엉 터져나가며 사라졌다.
츠스스스······.
흩어지는 힘의 잔해들.
반면, 충격을 거의 받지 않았는지, 내려꽂히는 주먹의 속도도 그대로였다.
쾅!
부서지는 창고 바닥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러니 가디언이 공포의 대상이었지.’
마법도, 오러도 안 통한다.
저 골렘에게 자신 있게 나섰던 마수들도, 마법사들도, 기사들도 모두 공평하게 호떡처럼 뭉개버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디언이 천하무적이라는 건 아니었다.
물리력.
마력이 필요 없는 물리력은 저 녀석에게 통한다.
‘마왕군의 발록 3마리가 거대한 철퇴와 대검으로 녀석을 갈가리 찢어버렸지.’
그전에도 투석기로 날아온 바위를 맞고 파손되곤 했었다.
물론 지하 창고에서 그런 게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캐슬 크러셔는 다르지.”
질량 병기다.
오롯이 물리력.
그것도 성벽마저 꿰뚫는 물리력이다.
때마침 가디언 너머에서 그룬이 소리치며 발리스타를 쏘았다.
“제이드! 대가리 숙여!”
“대장한테 대가리가 뭐야!”
그룬의 외침과 동시에, 굉음과 함께 캐슬 크러셔가 가디언을 향해 쏘아졌다.
강철의 화살이 파공음을 일으켰고, 다음 순간 움직이던 금속의 거인이 휘청였다.
콰아앙!
순식간에 날아든 캐슬 크러셔는 어깨와 그 주변부를 뜯어낸 것처럼 전부 박살 내버렸다.
쿠우우웅!
철퇴처럼 무자비하게 휘두르던 팔 한 짝이 끊어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성공이다!”
“저 골렘도 별 볼 일 없구먼!?”
그 모습에 그룬과 데릭이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 신체가 파괴되었습니다.
– 복구 시스템 가동, 금속을 수급합니다.
가디언은 남은 한 팔로 부서진 팔을 들어 제 가슴팍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심장부에 난 푸른 보석이 빛을 발하더니, 떨어져 나간 금속이 몸체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부서진 어깨에서부터 금속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쩌저저저──
어느새 놈은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뭐, 뭐야? 옘병! 우리가 존나 힘들게 밧줄 감아서 쏜 게 소용이 없다고?”
이에 도로시가 소리쳤다.
“저 가디언은 역대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3대 마탑주의 역작이에요! 코어가 주변의 금속을 탐색하고 흡수해요. 코어가 무사한 이상, 무한히 재생할 거예요.”
“젠장, 그 마법사가 한 말이 사실이라니.”
“제 마법도, 아저씨의 오러도 안 통해요. 당연히 코어도 단단할 텐데······.”
입은 걱정을 말하고 있었지만, 도로시의 눈은 담담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애답지 않은 침착함을 넘어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무슨 의미인 걸까? 이 녀석이 미래의 대마법사라는 걸 알기에, 왠지 종잡을 수가 없단 말이지.
뭐가 됐든 난 그 기대에 부응해줄 생각이었다.
“걱정하지 마. 그걸 깨부수려고 온 거니까.”
‘캐슬 크러셔가 먹힌다는 건 확인했고.’
슬슬 두 번째 방법을 준비해야겠지?
“데릭, 너도 준비해줘.”
“좋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는 데릭을 바라보며 말했다.
데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한가운데에 놓인 상자를 꺼내 내려놓았다.
쿵!
그 무게가 엄청 무거웠기에 데릭도 이를 악물어야 했다.
상자에 손을 댄 도로시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아, 아저씨? 이 기운은 대체······?”
대마법사의 재능은 기운마저 쉽게 감지하는 걸까.
“도로시, 마기라고 알아?”
“······마기요? 악마들의 기운을 말하는 거죠?”
잘 아네.
미래의 대마법사께서는 숱하게 느낄 기운이니.
나는 상자를 열어 그 안을 보여주었다.
상자에 가득 찬 건 수백 킬로의 수용철 덩어리였다.
그것도 마기에 오염된 수용철들이다.
얼마 전, 이센디오를 소환하기 위해 자신을 제물로 바쳤던 흑마법사.
듀크마에게 부탁해서, 그자의 시체에서 마기를 추출했다.
그것들을 수용철에 인첸트, 쉽게 말하면 흡수시킨 것이었다.
“이게 놈을 부숴버릴 거야.”
안티 매직 스톤으로 구성된 가디언의 신체.
그 속에 있는 마력 코어가, 3대 마탑주가 새겨 놓은 마법 술식을 작동하여 주변의 금속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놈이 몸을 수복하기 위해서 마기 범벅인 이 수용철을 흡수하게 한다면?
“펑.”
마기와 마나.
두 상반된 힘에, 수용철이 폭발한다.
제 몸속에서 일어나는 폭발을 놈이 막아낼 수 있을까?
다시금 계획을 상기한 나는 가디언을 향해 뛰쳐나갔다.
그룬과 로빈이 발리스타를 장전하는 동안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 침입자를 제거합니다!
쾅! 콰앙!
녀석이 나를 호떡처럼 뭉개기 위해 다시금 양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쳤다.
바닥을 울리는 진동이 마치 지진이 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점차 놈의 공격은 내 눈에도 익어갔고, 능숙히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두더지 잡기를 하듯, 파인 구멍들 사이로 뛰어다녔다.
“큭! 빡세네······.”
발 한 번 삐끗하는 순간, 한방에 즉사다.
그걸 알고 있기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렇게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다면, 발리스타의 장전 시간을 벌 수 있을 터.
그리고 마침내.
“제이드! 준비 끝났다!”
로빈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저격 준비를 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 즉시 입구를 향해 뛰어갔다.
쿵! 쿵!
가디언이 나를 뒤쫓기 시작했고, 녀석의 몸뚱이가 로빈의 발리스타와 일직선상에 놓였다.
“키텔로 레인저의 실력을 보여줘, 로빈!”
“알고 있다!”
다시금 격발된 캐슬 크러셔.
둔중한 가디언은 그 일격을 피해낼 수 없었다.
콰아아앙!
이번에는 녀석의 왼팔과 왼 다리가 한 번에 날아갔다.
– 신체가 파괴되었습니다. 금속을 수급합니다.
그런데도 녀석은 쓰러지지 않고, 재생하기 위해 부서진 몸뚱이를 향해 움직였다.
바로 지금이다. 주위의 금속을 삼키려는 때가 기회였다.
“지금이야, 데릭!”
“준비 끝냈다!”
나와 데릭은 상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둘이 함께 상자를 들었음에도 버거운 무게가 그대로 느껴졌다.
반면 데릭은 가뿐한 듯했다.
나는 마력으로 팔다리를 강화했다.
[돌격대장 ‘데릭’이 용력(LV. 1)을 발동합니다.]데릭 역시 용력을 사용하며 수용철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크아아압!”
데릭이 괴성을 지름과 동시에, 우리는 상자를, 아니 마기 범벅인 수용철 덩어리를 놈을 향해 던져버렸다.
“이것도 먹어보라고!”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수백 킬로의 금속을 감지한 놈은 거리낌 없이, 마치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았다.
쿠웅!
놈이 상자를 껍질 까듯이 부숴버리자 수용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 그것을 움켜쥐었고, 금속이 마치 액체처럼 변하더니 스르륵 흡수되기 시작했다.
흡수 재생을 시작한 것이다.
– 금속을 탐지했습니다. 신체를 수복합니다.
하지만 놈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먹인 것이 약이 아니라 독 덩어리나 다름없다는 걸.
– 문제 발생! 마력 코어가 오염되었습니다!
마력 코어로 마기 수용철이 흡수되기 시작한 그 순간.
녀석의 움직임이 뚝 뚝 끊기듯 부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숙여!”
내 외침과 함께.
쿠구구구구······!
놈의 몸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콰아아아앙──!
강력한 폭발이, 금고 안을.
아니, 마탑 전체를 뒤흔들었다.
성공했다는 기쁨과 함께.
“어서 움직여!”
마탑에서 가장 성가신 존재가 우리를 눈치챘다는 것을.
“마탑주가 올 거다!”
그 불길함 감각이 확신이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