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312
EP.312
#2-29 마법소녀님은 클럽에 행차하셨습니다(3)
한찬득… 아니, 한수호의 뒤를 따라 들어가니, 나름 흥이 겨운 플로어의 소파에 대여섯은 되는 한량들이 앉아있었다.
한량들이다. 한량들이 분명하다.
다들 익히 알고 있는 얼굴들이었으니까.
“응? 그 여자는 누구… 알파야?!”
“으와아~! 알파잖아? 이게 얼마만이야?!”
“끄하하하~~~!!! 뭐야 그 머리는?! 이 놈 염색 같은 건 죽어도 안하겠다더니?!”
경박한 말투로 이쪽에 아는 척해대는 녀석들은 과거에 마찬가지로 친했던 녀석들.
…친했는지 아닌지는 둘째치더라도, 어쨌든 쓸데 없이 이곳저곳 불러대서 돌아다녔던 질 나쁜 동료긴 하다.
‘…그보다 이 놈들에게 알파라고 불리는 게 어째 기분이 묘하네… 원래 이름도 까먹었지만.’
처음에 몸이 변했을 때는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었다!’ 하는 자각이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기억이 침식되는 것처럼 군데군데 이상하게 바뀌어 간다.
남자들이니까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던 건데, 그 사이에 자신이 이 여자인 알파의 몸으로 함께 있었던 것처럼 기억이 덧씌워져있다.
위화감 넘치는 그림인데도, 스스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져 당혹스럽다.
“(주의하라냥. 정말 친한 친구였다면 기억이 변조 되면서 우정이 연애감정으로 바뀌기도 하니까냥)”
“(X끼야… 제발 남의 인생을 왜 그렇게 조져놓는데….)”
몰래 속삭이는 쿠키의 말에 알파가 포옥 한숨을 쉬었다.
‘상관은 없지만….’
어쨌든 우정의 감정이 사랑으로 바뀐다는 말이 사실이면.
쿠키의 때문에 없던 연애 감정 같은 걸 가질 사람은 없다.
‘흥.’
알파는 나이프처럼 가늘게 뜬 채 자리에 모인 놈들을 스윽 훑었다.
――상대가 사람이라면, 거짓말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다.
이 자리로 자신을 부른 것이 절대로 단순한 호의가 아니란 것 정도는… 아주 잘 아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쁜 감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럴 리가 없다. 왜냐면 자신과의 관계가 틀어졌다간 나중에 금전적인 손해로 다가올 테니까.
단순히 타산적인 것 뿐이다. 타산적인 관계 밖에는 가지지 못한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이들과의 관계는, 그런 낮은 온도의 관계 밖에는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이용하려면 그냥 이용하면 되니까.
“오랜만이야. 잠깐 실례할게.”
“이야 진짜 오랜만이지. 술은? 마시냐?”
“5층에 올라가 봐야 돼.”
“어차피 시간 좀 걸려. 뭐라도 시켜두지? 계산은 이놈이 한다는데.”
“흐응. 그럼 모히토로”
근처를 지나던 종업원에게 요청하자, 오래 걸리지 않아 라임이 끼워진 시원해보이는 칵테일이 나왔다.
‘…좀 센걸.’
술에 약한 편은 아니지만, 이 층의 모히토에 들어가는 럼은 일반적인 것보단 도수가 높은 모양이었다.
알파는 상관없다는 듯이 눈을 내리깐 채 홀짝였다.
이런 상황에 그다지 대화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갑작스레 난입한 오랜 친구의 모습에 반가운지 계속해서 말을 걸어온다.
“어휴, 귀찮아. 할 말 없어 이 녀석들아.”
담백하게 말해도 끊임없이 뭔가를 물어대니 한숨과 함께 짤막하게 대꾸해주었다.
알파까지 포함해 8명이 앉아있었지만, 친구는 넷에 여자들이 셋이다.
처음 보는 얼굴인 데다 달라붙은 모양새를 보니 여기서 대충 헌팅한 여자들이겠지.
“근데 뭐냐? 거의 1년은 어디서도 못 봤는데.”
“그러니까. 네 위치 정도면 얼굴 안 내밀기도 힘들텐데?”
…그다지 답해주고 싶지 않은데.
“오빠오빠. 왜? 저 여자가 누군데?”
“대단한 사람? 어떻게 친구가 됐어?”
“대단한 녀석이지. 저 녀석 아버지가 ■■ 그룹 회장님이시니까.”
“근데 뭐, 어쩌다보니 또래들끼리 친해졌… 어라… 이상하네,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끼리… 어…?”
알파가 답해주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고 있자, 갑자기 친구들 사이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는지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하기사.
쿠키의 마법이 어디까지 효과를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를 아예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위화감이 생길 수 밖에 없으리라.
‘……애초에 내 소원이.’
“어? 뭐야, 너 어디가?”
알파가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자, 멤버십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말하고 떠나갔었던 한찬득… 한수호가 마침 돌아왔다.
“잠깐 화장실 좀.”
알파는 그렇게 말하고, 남들에겐 보이지 않을 쿠키의 머리를 꽉 쥔 채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 * *
쾅!
“야.”
“……포, 폭력 반대다냥….”
“일 제대로 안 하냐?”
“으으으으….”
화장실 벽에 처박힌 쿠키가 신음을 흘렸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는 화장실이라 누군가에게 들킬 염려는 없었다.
“야, 네가 말한 인지 뭔지, 어디까지 효과가 있는 거지?”
“괘, 괜찮다냥… 걱정할 만한 일은 없으니까냥… 웬만해선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어갈거다냥….”
“쯧.”
알파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 이상으로 지친다. 손쉽게 일을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니, 이런 데서 과거와 마주보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
“애초에 뭔데… 네가 『집안과 연을 끊을 수 있다』니 뭐니 말해서 마법소녀 계약을 했던 건데… 여자가 되어버리질 않나, 저 놈들을 다시 보지 않나.”
과거와도 집안과도 모든 연을 끊을 것.
그 소원이, 알파가 계약하게 된 이유였다.
“그러니까 말했잖냥. 포인트를 잔뜩 모아서 을 이루면 된다고냥.”
“칫…!”
사기꾼 자식.
애초에 계약할 당시까지 그런 말을 하나도 하지 않았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감언이설에 속아버리고 말았다.
열 받고 분하지만, 부주의했던 자신이 잘못이었다.
물론 제대로 된 판단도 내리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내몰려 있던 때이기도 하지만.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했을 때라면 이 녀석의 수상쩍은 제안 따위 절대로 듣지 않았으리라.
“…….”
“왜 말이 없냥? 무섭게 왜 그러냥?”
거기다, 마치 노린 것처럼 자신이 약해져있던 때 찾아왔던 것도 수상쩍다.
이렇게 수상쩍은 데 이 녀석을 믿었었다고?
……모종의 힘으로 최면이라도 걸렸었나? 이제는 그런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됐어…. 내가 결정한 일이고.’
이미 일은 이렇게 되어버렸고, 을 구매할만큼 포인트를 모으기만 하면 끝이다.
그 때가 되면 저 녀석들과는 정말 다시는 보지 않을 테고.
그리고――
“너보다 자리에 적합한 후계자를 만들어 달라니, 너도 참 특이한 녀석이다냥. 그 좋은 자리를 제 발로 걷어차고.”
“……닥쳐. 네가 아는 게 뭔데?”
“적어도 【메크라크】는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뭐든 좋다고 생각하는 놈들이라는 건 알고 있다냥.”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돌려 말하는 것 같아서 상당히 듣기 언짢았다.
알파는 벽에 파묻어버릴 듯 꽉 누르고 있던 쿠키를 화장실 밖으로 내던졌다.
“꾸냥!”
“볼 일 볼 거니까 꺼져. 소리 들으면 죽인다.”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흥. 나를 더 소중히 여기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다냥.”
쿠키는 툴툴거리며 다시 소파 쪽으로 날아갔다.
* * *
‘……역시 저 놈은 믿을 게 못 돼.’
알파는 화장실 칸막이에 들어간 채, 스마트폰을 들어보였다.
이제 5층으로 올라가게 되면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5층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알 수가 없으며, 이렇게 쿠키의 눈에서 벗어날 기회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어디보자… 지금 믿을 수 있는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알파는 주소록에서 라는 이름을 찾아 메시지를 날렸다.
* * *
“왔어? 오래 걸렸네?”
“그런 거 묻는 거 아니야, 임마. 여자는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으니까.”
“아이고야~ 으음~ 예전의 너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음? 어라? 화장실도 같이 들어갔었던 것… 으으으음… 그럴 리가….”
“……술 너무 마셨나보다, 너.”
“안 취했어! 안 취했다고!”
친구 놈은 취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부끄러운지 두꺼운 팔로 테이블을 쾅쾅 두드려댔다.
어이구, 취했네, 취했어.
알파는 다시 소파에 앉아, 조금 전 마시다 만 모히토를 마저 홀짝였다. …상황에 어울리는 감상은 아니지만, 이 모히토, 맛있다.
느긋하게 홀짝이면서 마신 건데도 모히토는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 멤버십이라는 건 얼마나 걸리는 건데? 언제쯤 올라갈 수 있어?”
“좀 천천히 기다려~ 이쁜 언냐들 어차피 안 도망가… 응? 넌 언냐가 아니라 오빠를 잡아야겠구나? 야, 이 참에 우리는 어떠냐?”
“이게 미쳤나.”
헛소리를 하는 또 다른 친구 한 놈을 알파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자, 진정하라는 듯이 한찬득이 사이에 끼어 워워, 하고 진정시켰다.
아니, 한찬득이 아니라 한수호라고 했지… 그치만 찬득 쪽이 입에 착 달라붙어서 좋은데.
“이제 오래 안 걸릴 거니까 진짜 조금만 더 기다려 봐.”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리잖아. 고작해야 허가 좀 내주는 건데. 거기다 지인 증명 정도면 되는 거 아니야? 좀 비싸 보이는 클럽이긴 한데, 이 정도로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게 어딨어.”
“아니, 진짜 얼마 안 남았다니까?”
“……쯧. 가서 좀 물어보자. 누군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그러니까, 그게….”
한찬…한수호가 우물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왜 저렇게 쳐다봐?
“이제 슬슬일텐데.”
“슬슬이라니, 무슨―――”
휘청.
…어라?
왜 갑자기, 눈 앞이 이렇게 비뚤어지지?
“소…….리……………………………….”
일어서려던 몸에서 힘이 쭈욱 빠진다.
시야가 크게 기울어졌다.
‘…………………?’
솔직히 자만했었던 것이 있었다.
돈 관계를 생각하면 쓸데없는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인이라고 생각하니 그래도 조금쯤 마음을 느슨하게 풀고 말았던 것 같다.
거기다 상태니까, 평범한 지구의 독이나 수면제, 혹은 평범한 폭력에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고, 그렇게 자만했던 것도 있었다.
“아…………………………………………”
콰장창! 태앵―!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힘이 빠지는 바람에, 그만 앞으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앞에 놓여있던 접시나 술이 담긴 컵 같은 것들이 부딪쳐서 요란하게 울리거나 쓰러져버렸다.
‘아… 이거 뭐야… 머리가 어질… 으아… 눈 앞이… 깜깜해져…서……..’
『아이, X발, 살짝만 마셔도 훅 갈 거라더니 멀쩡해 보여서 깜짝 놀랐네.』
『낄낄. 그래도 또 이걸 멍청하게 걸리냐.』
『보고는? 드려야 되는 거 아니냐?』
『그건 좀 나중에――』
앞으로 엎어진 몸 위로 들려오는 비웃음 섞인 대화를 어질어질한 머리로 들으면서.
알파의 의식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떨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