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75)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75화
* * *
5년차 남자아이돌 그룹, 슬레딕스.
레오폴드가 그 아성을 위협하려 무서운 기세로 몸집을 불리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 속 유일무이한 남자 아이돌 원탑.
그 멤버 수만 16명. 그룹 앞에 ‘대형’이라는 수식이 붙는 만큼, 그들은 다양한 유닛을 갖고 있었다.
댄스 유닛, 보컬 유닛, 랩 유닛.
심지어는 각자 한 명씩 악기도 다룰 줄 아는 밴드 유닛까지.
“안녕하세요, 슬레딕스입니다!”
처음 그들이 대중 앞에 섰을 때는 다양한 우려가 뒤따랐다.
멤버가 그렇게 많으면 자기들끼리 놀고 단체로는 좀 겉도는 느낌이 생기지 않냐, 저렇게 많으면 각각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 등.
그러나, 그 우려는 생각보다 쉽게 불식되었다.
단 한 명.
슬레딕스의 최연장자, 리더로 인해서 말이다.
다른 15명의 멤버들이 ‘저 형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작 다 싸우고 나가떨어졌다’고 전부 입 모아 얘기하는 그 사람.
슬레딕스의 리더, 정신적 지주, 워커 홀릭. 차트가 공인하는 작곡 천재.
– 문 너머로 등장하는 선배들 중, 특히나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는데!
– “제, 제 롤모델이 정연우 선배님이셨거든요… 문 너머로 들어오시는데, 진짜. 너무 멋있어서 눈이 머는 줄 알았어요.”
그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인 정연우는 지금….
– “기왕이면, 저를 선택해 줬으면 좋겠네요.”
– 김춘용 연습생을 향한 대선배의 구애?! 과연, 이 팀 결정의 행방은 어디로 갈 것인지?!
“…푸핫.”
숙소에 자리한 소파에 반쯤 누워, 자기가 등장한 [타겟팅 스타>의 방영분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뭐야.’
정연우와 숙소를 공유하는 슬레딕스의 멤버, 보컬 유닛의 주영은 자기가 본 게 현실이 맞는지 확인하려 몇 번이고 두 눈을 끔뻑였다.
‘그’ 정연우가 저런 같지도 않은 예능 연출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다니.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고작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시간과 공을 들여서 보고 있다니?
‘원래도 모니터링을 광적으로 하는 형이긴 한데, 아직 데뷔도 안 한 애들을 굳이….’
슬그머니 그의 옆 소파에 주저앉은 주영은 정연우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웃다가, 정색하다가. 주도면밀하게 살피다가, 뺨을 긁적이다가.
“…진짜 흥미롭네.”
저런 말을 하기까지 하고.
주영은 자기가 알고 있던 리더 형과, 지금 약간은 느근하게 풀린 정연우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가 그저 티비를 바라보는 걸 택했다.
그 화면 속에는 정연우의 선택을 받은 한 연습생이 난감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잘생기긴 했지만 과할 정도로 날카로운 이목구비.
그게 아니라면 섭섭하다는 듯, 웃을 때마다 슬쩍슬쩍 드러나는 송곳니.
그 아래에 붙은 자막 속 연습생의 이름은….
“…김춘용? 연습생 이름이 김춘용이야?”
“어, 주영이구나.”
당황한 주영이 나지막하게 연습생의 이름을 언급하고 나서야 정연우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인사했다.
“벌써 온 줄 몰랐네. 아침에 스케줄 때문에 늦게 들어올 거라고 했잖아.”
“어? …어어. 그, 그냥. 좀 일찍 끝났어. 녹음이 그렇지 뭐.”
‘사실은, 빌리 스케줄 때문에 데이트가 파투난 거지만.’
주영은 찔리는 마음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지금 그는 신인 여자아이돌 릴리제이의 멤버, 빌리와한창의 비밀 연애를 즐기는 중이었다.
사회에서 가장 빛나는 일면이라 자부하지만, 그 실상은 고립된 섬이나 다름없는 연예계.
그 속에서 지속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택하는 가장 편하고도, 독이 되는 해결 방안이 동종 업계인과의 연애였다.
이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자신을 지지해 주는 팬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손가락질당할 거란 걸 알았다.
‘그렇지만, 안 걸리면 되는 거잖아. 난 팬들을 배신하는 게 아니야.’
그냥, 외로워서 그런 거지….
주영은 제 옆에 앉은 리더 형의 발치를 흘깃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당장 그 정연우만 해도, 걸리지 않는 선에서 음주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연우 형이라도 이것까지는 모를 거야. 나랑 빌 리가 얼마나 조심하고 있는데.’
자신과 정연우의 차이점이 어떤 건 줄도 모르고, 주영은 그렇게 속으로 단언했다.
약 3개월 후, 엔터 게이트 단독으로 빌리와의 비밀 연애가 세상에 까발려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그런 주영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연우는 시선을 다시 티비로 옮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영이, 네 스케줄 관리는 네가 잘하겠지.”
“그, 그럼. 당연하지. 형도 알잖아. 나 무슨 일 있으면 전부 캘린더에 적어서 기록해 놓는 거.”
“그래. 거기 내가 모르는 일정도 요즘 생긴 거 같은데, 굳이 뭔지는 묻지 않을게.”
네가 슬레딕스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야.
“난 신경 안 쓰거든.”
“…….”
정연우의 뼈가 있는 말에, 주영의 뒷목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건 정연우가 이전에도 한 적이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멤버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던 그날.
사장님과 매니저마저 자리를 비켜 주고, 홀로 연습실 거울 앞에 당당히 서서 말이다.
“우리처럼 많은 인원이 한 그룹으로 데뷔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야. 그렇지?”
“…….”
“의심을 많이 살 거야. 우려도 할 테고. 그렇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
“내 노래를 부르는 건데, 실패 같은 건 절대 있을 리가 없으니까. 우리는 무조건 1위를 할 거야. 제일 위로 갈 거고, 항상 거기 있을 거야.”
“…….”
“그러니까, 하나만 알아 둬. 그렇게 올라간 자리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슬레딕스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지 말 것. 그것만 아니면 난 너희가 뭘 하든 믿고, 지지하고, 밀어 줄게.”
“그, 그런 일이 일어나면요…?”
뒤늦게 데뷔조에 합류해, 아직 정연우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한 멤버의 질문.
거기에, 정연우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일은 아마도, 없어야 하겠지만….”
‘제일 처음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하면 될 거야.’
그런 정연우의 카리스마 때문인지, 아니면 슬레딕스 멤버들의 얌전함 때문인지.
5년이 되었음에도 슬레딕스에는 이렇다 할 잡음이 따라붙은 적이 없었다.
그 첫 잡음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 거실에서 정연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뭐.
그건 좀 나중의 일이고.
“…형이 서바이벌을 다 보네. 뭐, 노래 제공했다고 듣기는 했는데 말야. AG에서 아이돌을 또 내놓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정적이 길면 꼬리가 잡힐 거라 생각한 주영은 황급히 말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특히, 저 연습생. 형이 콕 집어서 선택했잖아. 진짜 술 잘 마실 거 같아서 그랬어?”
“아아… 김춘용 연습생.”
숙소 티비 속에서는 정연우의 팀을 택한 김춘용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 “하하, 제가 워낙 존경하던 선배님이시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세령 선배님의 곡은 제게 톤이 너무 높지 않을까 싶어서!”
– 뒤늦게 이유를 붙이는 김춘용 연습생….
– ※ 제작진은 김춘용 연습생의 연우를 향한 팬심 때문이라고 추측 중!
그 모습을 본 정연우는 얼굴에 슬며시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뭐, 술도 잘 마실 거 같았고. 저런 빤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웃겼고….”
“거짓말?”
“톤 자체는 세령 선배 곡이랑 더 잘 맞았을 거야. 곡 들어 보니까 괜찮겠던데. 이번에 내 곡은 공을 좀 들여야 하고.”
티비 리모컨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잠깐 생각에 빠진 정연우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 빠르게 덧붙였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택한 거긴 한데. 생각보다 더 괜찮았어.”
“…지금 찾아보니까 중간 순위는 8위인데. 이번 무대로 정말 잘하지 않으면 가망 없는 거 아냐?”
형은 잘하는 사람 아니면 관심 없잖아.
연애에 눈이 멀어서 살짝 나사가 빠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연우의 그룹 멤버다운 날카로움을 과시한 주영이 정론을 말했다.
이제 남은 건 내일 있을 4차 경연 무대와 생방송 무대뿐.
중간에 연습생의 개인적인 인터뷰라든가, 생방을 준비하기 위해 촬영한 방송분이 나가기야 하겠지만….
정말 그 사이에 뒤집을 수 있냐 하면.
“…형?”
“아, 어.”
정연우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주영이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며 대화를 상기시켰다.
한참을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 어째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정연우는 자신의 기다란 다리를 한 번 쭉 펴고는 키득거렸다.
“잘하겠지, 아마도. 내가 좀 더 악랄하고, 저쪽은 더 착한 편이긴 한데….”
나랑 좀 닮았거든.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는 게.”
“…….”
의미심장한 정연우의 말에 주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는 척을 할 뿐이었다.
지금 주영의 뇌를 제일 많이 차지하고 있는 부분은, 리더 형을 향한 두려움보다도 여자 친구에게서 올 메시지였으니까.
– 생방송을 앞둔 [타겟팅 스타>의 마지막 경연!
– 경연곡 음원 사이트 공식 등록이라는 베네핏이 걸려 있는 가운데, 그 1위의 행방은?
– “잘해야죠, 무조건.”
– “이대로라면, 아마 데뷔는….”
– 다음 주에도 본방 사수!
– ※ 팀명 공모가 공식 사이트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스타 슈터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90분 동안 방영되던 [타겟팅 스타>의 본방송이 끝나고, 커다란 티비에는 예의 그 초코바 광고가 흘러나왔다.
“흠….”
제게서 몸을 기울이고 한껏 카톡에 열중인 주영을 한 번 바라본 정연우는, 곧 자기도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보낼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정연우: 내일 경연 잘해요
– 정연우: 보러 갈게요
– 정연우: 아 그리고 머리 말인데
– 정연우: 염색 한 번 해 보는 건 어때요
– 정연우: 이름이 이름이니까 핑크로? ^^
받는 당사자는 ‘또 중요할 때 이런 거 보내서 사람 소름 끼치게 한다’고 진저리를 쳤지만.
어쨌든 응원의 말이긴 했다.
* * *
“연습생 여러분들. 무대 올라가기 전에 스마트 워치랑 헬스 밴드는 전부 풀고 올라가실게요. 그리고 인이어랑 마이크 체크도 한 번씩 부탁드려요!”
“넵!”
막내 작가가 각 대기실을 돌며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공지 사항을 알리는 4차 경연 현장의 대기실.
“드디어 좀 뺄 수 있겠네….”
그 사이에서, 나는 내 손목에 둘러진 스마트 워치를 풀어 재끼며 한숨에 가까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모든 연습생들이 이걸 차고 있어서, 나 혼자 빼기도 애매했다고.
연우 형의 메시지가 올 때마다 심박수가 상승해서 알림이 두 배로 오기까지 일주일.
“그래도 이렇게 비싼 걸 선물로 주셨는데, 기왕 쓰는 거 잘 쓰면 좋죠.”
“그것도 그렇지만, 뭐.”
진우의 넉살 좋은 말에 나는 쩝 하고 입을 다시며 눈동자를 굴렸다.
화성이, 유찬 형. 츠바사, 공민호와 가오옌으로 이루어진 라키 선배님의 ‘Teen sprit’ 팀의 리허설이 막 끝난 지금.
이 다음에 이세령 선배님의 ‘잠수’ 팀의 리허설이 준비되고 있으니, 준비한 일을 하려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 리허설이 마지막이지? 아직 시간이 좀 있네.”
“아, 네에. 그래서 화장실 다녀올 거면, 지금 가도 괜찮다고… 작가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을 확인 차 꺼낸 건데, 우리 착한 막내는 꼬박꼬박 내게 대답을 해 주었다.
“춘용 형, 목 마르시면… 제가 음료수 사 올까요? 그, 계속 형이 사 주기만 하셨으니까.”
아직까지도 낯을 가리지만, 제게 도움을 준 내게 성의를 보이려는 걸까.
힘을 내서 열심히 말을 꺼내는 걸 보니,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치미는 기분이었다.
악성 멤버가 할 말은 아니지만….
중국으로 도망갈 녀석은 내가 제대로 치워 줄게, 시우야.
“…아냐. 화장실을 갈까 싶었거든. 그래도 고마워, 시우야. 저기, 내 가방 보면 양갱이나 약과 같은 거 있을 텐데. 먹고 싶으면 먹고.”
“앗, 가, 감사합니다….”
시우가 살금살금 내 가방 쪽으로 다가가는 걸 확인한 나는, 빠르게 대기실 문을 열고 나와 방송국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잠금이 걸려 있는 내 휴대폰 안에는 이미 커뮤니티와 각종 SNS에 로그인이 돼 있는 상태였다.
“춘용 형!”
“…가오옌.”
이제 막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온 가오옌의 얼굴은 흘러내린 땀으로 인해 반짝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빛나는 건, 가오옌의 두 눈동자였다.
기대, 그것보다도 걱정. 이대로 정말 괜찮은가에 대한 의문.
그럴 법도 했다.
처음에 내가 가오옌에게 내 계획에 대해 들려 줬을 때, 가오옌은 어딘가 살짝 불편한 눈치였으니까.
“춘용 형, 바보인가? SNS에 올려도 그렇게 소문이 빨리 퍼지지 않아! 그리고 만약 형을 특정할 수 있게 되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허술하다. 너무너무 허술해. 손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손권… 야. 나도 삼국지 대충은 알아. 혼날래? 어딜.”
“지금 형이 하는 짓이 손권이랑 다를 게 뭐다! 류웨이는 적어도 자기 뒤에 있는 사람들을 썼는데, 춘용 형은 스스로 사지에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들어가는 게 나는 맞지만, 내가 아니기도 해.”
“…뭔 소리다?”
그러나 가오옌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었다.
SNS에 올린다는 게 분명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긴 했지만….
세상 그 누구든 될 수도 있는 게 또 SNS였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