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라민이 되물었다.
“서쪽 대륙?”
“예.”
사르쵸가 말한 서쪽 대륙이란 제1 대륙을 말했다.
라민은 서쪽 대륙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 보았다.
서쪽 대륙에는 제일 큰 국가인 로난테-오로반 동맹이 있었다.
서쪽 대륙을 양분했던 두 거대 국가는 연합왕국에 맞서기 위해서 힘을 합쳤다.
그 외에는 크고 작은 국가들이 로난테-오로반 동맹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황제의 영향력 아래에 완전히 통일된 제3 대륙, 영주들이 아직까지도 다툼을 하고 있지만 제왕의 이름 아래에선 꼼짝도 하지 못하는 제2 대륙, 제국과 연합왕국의 전장이 되긴 했으나 전장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안정된 정치형태를 보이는 제4 대륙에 비해 제1 대륙은 여전히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로난테-오로반 동맹이 제1 대륙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지만 그 지배력이 제2 대륙이나 제3 대륙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덕분에 시시때때로 대륙 내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병력을 운용해야 했으므로, 대륙 밖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래도 제국이나 연합왕국 보다는 좀더 살기 좋은 편 아닐까. 전쟁이 일어나도 제국과 연합왕국처럼 큰 전쟁은 아니니까.’
로난테-오로반 동맹은 제국과 연합왕국 양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현재는 제국과 전쟁 중이긴 했지만 연합왕국만큼은 아니었다. 이번 전쟁은 꽤 최근에 시작한 편인데다 전면전 수준은 아니었고, 그 이전에는 긴 휴지기가 있었다. 연합왕국과는 과거에 전쟁을 벌인적이 있으나 현재는 전쟁 중이 아니었다.
라민이 질문했다.
“스승님이 왜 서쪽 대륙으로 가신 거죠?”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친구가 있으시다더군요.”
“아니, 그 긴 세월 동안 제국에는 발 한 번 안 붙였으면서 서쪽 대륙에서도 활동했었다고?”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잘 모릅니다마는.”
라민이 어색하게 답했다.
“죄송합니다…. 그것 말고 다른 정보는 없나요?”
“글쎄요. 저는 최근까지 교화소에 있었고, 오웬 씨와 대화해본 것도 반년 전 단 한 번 뿐입니다.”
라민이 고르고타를 돌아보았다.
“이 정보만으로 괜찮을까요?”
“신들께서 저희를 돕고 계시니, 괜찮지 않을까요? 게다가 로난테-오로반 동맹에도 제국의 첩보부는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연합왕국의 영향을 받고 혁명파도 나타났다고 하고.”
“그럼 움직이죠.”
라민과 고르고타가 나가려고 하자, 사르쵸가 말했다.
“정말로 그것 뿐입니까?”
라민이 돌아보았다.
“네?”
“…제국에서 온 사람이 절 만나게 되면, 절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뭐,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긴 하겠죠. 세속주의? 신들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 옛날에는 단순한 배교자보다 더 죄악시 되었다는 말도 들었어요.”
라민이 덧붙여 말했다.
“근데 전 아니에요. 이 사람도 아닐거고.”
“그렇습니까?”
“저희 스승님도 아니었잖아요?”
사르쵸가 대꾸할 사이도 없이 두 사람이 지나쳤다.
─┼
헤게모니아는 열린 창을 노려보았다.
창에는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 있었다.
왼쪽에 서 있는 것은, 얼핏보기엔 가루다처럼 생겼다.
하지만 가루다는 아니다. 날개가 없으니까.
등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눈만 마주치면 해당 플레이어가 가루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노란 부리, 붉은 벼슬과 같은 색의 늘어진 육수.
수탉이었다.
반면 오른쪽에 서 있는 플레이어는 생물의 형태를 하지 않았다.
머리 부분에 있어야 하는 것은 붉은 빛을 쏘아내는 둥근 모노아이.
근육을 대신하는 피스톤, 관절부를 유연하게 이어주는 원형 모터, 노출된 호스에 상판을 덮는 강철판까지, 로봇의 형태였다.
“…그래서, 우리의 제안에 어떻게 답할거지, 헤게모니아?”
헤게모니아가 말했다.
“재촉하지마라, 닭대가리.”
“난 닭대가리가 아니라 수평아리다.”
“더 이상하잖아. 닉네임 바꾸라고.”
“난 옛날부터 수평아리였다. 바꿔야한다면 외형을 바꾸겠지.”
“그건 참아.”
모노아이가 말했다.
“우리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나?”
헤게모니아가 답했다.
“당연히 마음에 안 들지, 로봇대가리.”
“내 닉네임은 블라디미르다.”
“너무 길어.”
“…로봇대가리랑 글자수가 같은데.”
“시끄러워.”
헤게모니아는 강철 투구 안에서 불꽃을 뿜어댔다.
“생각해봐. 내가 왜 너희랑 동맹을 해야 하는 거야? 제국만 아니면 너희는 3년 안에 쓸어버릴 수 있어.”
수평아리가 말했다.
“기분이 나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 로난테-오로반 동맹과 너의 연합왕국 둘 다 상황이 좋지 않지. 이대로 제국이 승리하게 두지 않으려면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한다.”
“아니, 내가 더 기분 나빠.”
“초등학생이냐고.”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헤게모니아, 말은 그렇게해도 넌 멍청하지도,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제안을 한 거기도 하고. 게다가 우리가 제안한 동맹은 그냥 일시적인 동맹일 뿐이다. 진정한 동맹이 아니야.”
헤게모니아가 생각했다.
‘네뷸라가 뭐라고 생각하겠냐고.’
로난테-오로반 동맹은 수 십년 전부터 하나의 나라였지만, 두 개의 국명을 합쳐서 쓰는 것은 두 나라가 여전히 내부 갈등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약해.’
오랜 전쟁 이후 로난테, 오로반 두 나라가 동맹을 맺으며 제1 대륙의 사실상의 패권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아직도 몰사 왕국, 소르뎀 왕국 두 나라는 플레이어들의 나라였고, 그 사이에 무수한 소국들 때문에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이 중반부에 도달했는데도 자기 대륙 하나 정리 못했으면서.”
헤게모니아가 중얼거리자 블라디미르가 받아쳤다.
“…보통 플레이어들은 중반은 커녕 게임이 끝날 때까지도 대륙 정벌이 힘들기도 하다. 플레이어의 영향력을 받지 않는 NP국가가 너저분하게 남아 있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다.”
“보통의 플레이어라는 게 못하는 플레이어라는 말이야.”
“말이 심하군. 우리가 이번 게임에서 운이 좀 안 좋은 편일 뿐이지, 그런 소릴 들을 수준은 아닌데…”
수평아리가 블라디미르에게 말했다.
“됐다. 동맹 협상은 집어치우지. 내가 말했지 않나? 헤게모니아랑은 동맹을 할 수 없을 거라고.”
“…그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그 말에 헤게모니아가 비웃고는 말했다.
“웃기는 연기는 집어쳐. 다음 대사는 네뷸라한테 가서 동맹을 ‘제안해봐야겠군’이라고 말하려고? 그런 말 흉내라도 냈다간, 아니지. 귓속말만 걸어도 몇 년 뒤에 제국이 1대륙을 점령한 상태일걸.”
수평아리와 블라디미르는 잠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헤게모니아가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헤게모니아를 조급하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헤게모니아는 태연했다.
“동맹은 필요 없지만 너희는 쓸모가 있겠어.”
블라디미르가 되물었다.
“무슨 뜻이지?”
“부하로 써주겠단 말이야.”
그 말에 수평아리가 버럭 화냈다.
“우리가 봉으로 보이냐?”
헤게모니아는 예기치 못한 말장난에 웃음이 나올뻔 했지만, 진지한 상황이므로 애써 참았다.
“너희가 생각해도 동맹이라는 건 불합리하지 않아? 내가 너희랑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게? 하지만 내가 일방적으로 명령을 하고, 너희가 그걸 따른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거라면 받아들이겠어.”
수평아리가 말했다.
“됐어. 집어치우지.”
하지만 블라디미르는 그대로 멈춰서서 가만히 있었다.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그러면? 이길 수 있겠나?”
“뭐?”
“우리가 동맹이 아니라 부하로 들어가면 제국을, 네뷸라를 이길 수 있겠냐고 물었다.”
헤게모니아가 답했다.
“나도 몰라.”
“모른다?”
헤게모니아가 냉정하게 말했다.
“연합왕국은 꽤나 위기야. 주요 전선인 제4 대륙 전선이 점진적으로 밀리고 있어. 사도 하나가 죽었고, 당장 신앙 자원이 모자라니 부활은 불가능해. 전력 공백이 계속 생겨나고 있지. 뿐만 아니라 내부도 혁명파 때문에 진통이 심해. 최종적으로 의회 체제로 전환해야겠지만 지금까지의 계급주의 때문에 엄청난 진통이 있을 거야. 모든 부분에서 제국에게 밀리고 있지.”
헤게모니아가 덧붙였다.
“게다가, 너희들이 내 뒤통수를 때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어야지. 원래 동맹이라는 건 그렇게 망하는 법이거든.”
블라디미르가 수평아리를 돌아보았다.
“이 동맹, 받아들이지.”
“동맹이 아니라 부하…”
수평아리가 헤게모니아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이길 수 있다고 한 것도 아닌데, 왜?”
“이길 수 있다고 했으면 당연히 허세라고 생각했겠지. 이 자존심 강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부려볼려고 난장을 피우는구나 생각했을 걸. 하지만 자기 상황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하잖나?”
“으음…!”
“이건 걸어볼만한 도박 같군.”
헤게모니아가 짜증냈다.
“넌 뭔데 날 평가해?”
수평아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래. 이대로 네뷸라한테 승리를 떠안기느니, 한 번 해보는 게 좋겠지.”
블라디미르가 말했다.
“그래, 이게 우리의 의견이다. 너의 부하로 들어가도록 하지.”
헤게모니아가 웃었다.
“좋아. 2회전 시작이야.”
─┼
폴리비아.
제1 대륙 남서쪽에 있는 도시국가이자 대륙에서 손에 꼽히는 항구도시다.
바다에 반쯤 잠긴 고대 도시 위에 세워졌으며 제2 대륙은 물론이고 서쪽으로부터 온 제국의 배들이 마지막 목표로 잡는 도시다.
상업은 당연하고, 앞바다의 풍부한 어장으로 어업이 발달했고, 대륙의 곳곳으로 마찻길에, 최근엔 열차까지 이어져 교통 요충지였다.
이런 폴리비아의 중요한 부분은 바로 중립국이란 점이었다.
로난테-오로반 동맹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시장 선출은 의회 투표로 이루어졌다.
게다가 최근 혁명의 바람이 온 대륙, 전세계를 휩쓸고 있지만 폴리비아는 오래전부터 투표를 통해 의원과 시장을 선출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영향이 없었다.
세속주의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원하는 종교를 마음대로 가질 수 있었고, 극히 드물긴 하지만, 종교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부터 제1 대륙과 제2 대륙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는 등 영향력이 강했던 폴리비아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도시였다.
돈만 많다면 말이다.
“꺼져, 거렁뱅이야.”
걷어차인 솔로틀 시모는 데굴데굴 굴렀다.
시모가 중얼거렸다.
“태양이… 따갑군.”
잠시 감상에 빠져 있으려는데 지나가던 오크가 걷어찼다.
체구가 작은 솔로틀이기에 또 굴렀다.
오크가 뒤만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미안하게 됐수다!”
월세를 내지 못해 방금 막 방에서 쫓겨난 시모는 짐을 챙겨들고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연한 기분을 느낄 때가 아니었다.
거리 복판에서 누워있다간 자동차에 깔려 죽는다.
솔로틀 종족은 프로그맨의 먼 친척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생긴게 너무 달라서 아무도 프로그맨과 닮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중간 크기인 프로그맨에 비해 작은 몸집, 게다가 흰 피부에 머리 양 옆으로 노출된 분홍색 외부 아가미.
솔로틀은 두 발로 걷는 아흘로틀이다.
물론, 좀더 사납게 생긴 검은 솔로틀도 있지만 시모는 아니었다.
시모는 먼지를 털어내고 머리 위에 델루바 연고를 다시 발랐다.
수생 종족들이 물 밖에서도 생활하도록 도움을 주는 이 연고는 프로그맨과 솔로틀에게 필수였다.
하지만 연고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망했다.”
필요하다면 고향인 늪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많은 수생 생물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고향은 문명의 힘이 전혀 닿지 않는 것 같았다.
“절대 돌아갈 수는 없어.”
시모는 발명가였다.
가방에는 온갖 발명품과 시제품이 들어있어서 뒤에서 보면 가방이 혼자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비록 여기서 죽더라도…!”
어떻게든 햇볕에 닿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푹 숙이고 걷던 시모는 그림자를 보고 고개를 들며 멈춰섰다.
벽에 부딪치는건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것은 검은 비늘을 가진 리자드맨이었다.
“오랜만이군, 꼬마 발명가.”
시모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오웬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