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ld healer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1
83화〉
한걸음
키이루는 처음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사실, 그래서 자신들과 관계없는 타 조직이 정보를 알고 있다는 자체가 심기를 거스른 것.
“······.”
그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지자 장첸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무서운 눈은 하지 말지. 일본 HMCS의 정보 정도는 우리도 알아낼 수 있거든.”
“···그렇군. 우리의 타깃이 누군지는 아나?”
사실 확인은 나중에 해도 되겠단 생각에 키이루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하야카와 히카리.”
“그런데도 타깃을 바꾸자고?”
뜬금없는 제안에 키이루는 대꾸할 말조차 잊었다.
이런 딜이 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와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가 물에 잠긴 것처럼 멀게 들려왔다.
장첸은 케이스를 꺼내 키이루에게 연초를 권했다.
그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고, 장첸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궁금한 게 아무것도 없나?”
“의도가 궁금하긴 하네. 이러는 목적도 궁금하고.”
장첸은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내뱉었다.
주변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이 몇 있었지만, 장첸의 외모를 보고는 모두 자리를 피했다.
“말하기 껄끄러운 내용인데, 거짓으로 거래하는 건 좋아하지 않으니 알려 주마.”
장첸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입을 벌렸다.
“마약 사업을 하다 한국 HMCS와 엮이게 됐거든. 이번에 큰 거래가 한국에서 있는데··· 아무래도 한번 엮인 사이라 껄끄러워서.”
말은 장황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마약과 관련된 HMCS 헌터를 없애 달라 이거군.”
“그렇지.”
장첸이 손가락을 튕기며 대꾸했다.
“만약 〈아카이 카츠네〉가 HMCS 헌터를 없애 준다면···?”
“우리가 하야카와 히카리를 처리해 주지.”
“그냥 서로 자기 타깃을 죽이면 되는 거 아닌가.”
“크크. 일부러 멍청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니지?”
“······.”
“다 알고 있는 판에 떠보는 건가? 뭐 좋아. 대충 설명하자면 우리는 HMCS에 찍혀 있는 상태라 어렵고, 〈아카이 키츠네〉는 야쿠자의 짓이란 걸 들키지 않아야 해서 어려운 것 아닌가.”
키이루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상대방의 제안이 썩 나쁘지 않았다.
만약 하야카와 히카리를 제거했다 쳐도, 〈야마구치구미〉가 연관된 게 밝혀지면 조직은 초토화 될 것이다.
‘하야카와’ 가문은 그만한 힘이 있었고, 또 세이겐이 속한 ’20인방’은 능히 힘을 빌려줄 것이기 때문.
“교환 살인을 하자는 것이군.”
“그렇지. 의심 가는 범인이 있어도 정작 증거가 다른 곳을 가리킨다면 무용지물이 되지 않겠나.”
키이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딜에 응하겠다. 대신에 서로 맡은 타깃은 확실히 처리하도록 하지.”
“두말하면 입 아프지.”
장첸은 키이루와 가볍게 손을 맞잡았다.
“그래서 타깃은 누구지?”
“이놈이다.”
장첸에게 넘겨받은 서류철을 열어 보자 한 장의 사진이 나왔다.
“···설마 S급 헌터를 죽여 달란 말은 아니겠지?”
“설마. 그 옆에 있는 남자 놈이다.”
키이루는 강여화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어딘가 낯이 익은데, 어디서 봤었지?’
***
시우는 동생의 집에서 나와 새집을 구매했다.
물론 돈은 그가 낸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스승님, 다른 곳으로 이사 가요.”
“어디로?”
“마침 저, 저희 집 근처에 괜찮은 매물이 나왔더라고요. 이층집인데 거의 새집이나 다름없대요! 어떠세요?”
강여화는 ‘집 근처’라는 속내를 들키지 않게 말을 빨리했다.
사실 이 부분은 시우도 고민하던 내용이었다.
의도치 않게 식구가 늘어나다 보니 방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럴까··· 근데 거기 비싸지 않아? 내가 돈이 얼마나 있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 드릴게요!”
“그러면 나야 고맙지만··· 네가 살 집도 아닌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요! 정 그러면 저도 같이 살면 되죠··· 히히··· 히.”
강여화는 볼을 붉히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여화는 정말 그 집을 구매했고, 심지어 그 바로 옆에 있는 집마저 구매해 놀라운 재력과 행동력을 보여 주었다.
“누나, 이 동네 집 비싸지 않아? 아무리 못해도 최소 이십···.”
“시끄러워.”
민시준의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강여화는 날카로운 눈빛을 보냈다.
스승님 듣는 자리에서 괜한 헛소리를 하지 말란 신호였다.
“깡화, 고맙다.”
“헤헤헤, 뭘요. 저도 자주 갈 거니까 각오하세요!”
“네가 여기 자주 올 필요가···?”
【좁밥은 눈치도 없는 것이다! 사 주면 그냥 받는 것이다!】
강여화가 프레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고, 프레도 그녀를 향해 날개를 치켜들었다.
“그··· 미안. 그런데 집을 두 채나 산 이유는 뭐야?”
“아무래도 여자랑 남자랑 같이 살면 불편하잖아요.”
첫 번째 집에는 시온과 2호.
두 번째 집에는 적귀, 볼크, 아술(3호).
“아하. 그럼 나는 두 번째 집에서 살면 되나?”
“아니요. 스승님은 첫 번째 집에서 사세요.”
“방금은 남자랑 여자랑 따로 지내라며.”
“그렇긴 한데 둘 다 너무 어려서 보호자가 필요하잖아요. 제가 물어봤는데 스승님이면 괜찮대요.”
“아··· 그 둘이 괜찮다면야.”
“그리고 그편이 저도 놀러 가기 더 편하고ㅡ. 아무튼 제가 산 집이니까 제 결정대로 하세요!”
그렇게 강여화의 뜻대로 이사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모던한 느낌의 2층 전원주택 두 채.
시우는 짐을 옮기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내 사람을 다시 만들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처음엔 그저 제자들이 보고 싶었고, 그 뒤에는 민준이의 죽음을 파헤치고 싶었다.
그러다 여화와 재회를 했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게 됐다.
이 일들이 기꺼우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서웠다.
만약 다시 잃게 되면 어떡하나.
손에 쥐었다 생각했던 것들이 신기루처럼 흩어져 사라지면 그땐一.
다시 인고의 시간을 견뎌 낼 수 있을까.
가진 게 없던 옛 시절보다, 가진 게 늘어난 지금이 더 겁이 난다고 한다면.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내게 뭐라고 할까.
“축하해.”
시우는 시선을 돌렸다.
동생 시준이가 흐뭇한 미소로 그를 돌아보고 있었다.
“축하해요.”
강여화가 소심하게 팔짱을 끼며 웃었다.
【염병 그만 떨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
진심으로 죽이고 싶구나.
시우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심호흡을 골랐다.
이 웃음이 다시 한번 보고 싶어 백 년간 싸워 온 거면서, 그 시간을 도로 두려워하다니.
‘충분히 보상받은 삶인데 말이지.’
뒤를 돌아보지 말자.
앞장서서 걸어가자.
누군가 막아서면 죽도록 싸워 때려눕힐 뿐.
‘이게 내 방식이잖아.’
시우는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뎠다.
***
인천 외곽에 있는 지하 클럽, 〈나락〉.
불법으로 개조된 이곳은 범죄자들이 만든 곳으로써 현재는 인근 일대마저 슬럼가가 되어 일반인들은 찾지 않는 곳이었다.
매월 15일이 되는 밤.
〈나락〉에선 어둠의 축제가 개최됐는데 옥션이나 불법 격투장, 마약, 무기 및 ‘흑천락’에서나 팔 법한 것들을 거래하고는 했다.
이런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경찰과 군을 비롯한 HMCS는 이 문제를 쉬쉬하며 회피해 왔다.
어차피 지하 클럽을 급습해서 없애 봐야 다른 곳에서 또 생겨나기 때문에 차라리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감독하겠다는 뜻.
물론 그 이면에는 뇌물과 로비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비합법의 ‘언터처블’이 된 장소가 바로 〈나락〉이었다.
짓다 말아 철골이 드러난 대형 상가의 입구.
그곳을 서성이는 부랑자 같은 자들에게 흰색 정장을 입은 누군가가 다가갔다.
“···무슨 일이쇼?”
너저분한 수염의 부랑자가 쭈그려 앉은 채 물었다.
“안에 볼일이 있는데, 들어가겠다.”
“《그림자는 색깔이 없습니다.》”
“《오직 붉은 피만 같을 뿐.》”
간단한 암구호로 테스트가 끝나자 부랑자는 정장 남자의 뒤에 선 일련의 무리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느 조직이지?”
“홍콩의 ‘장첸’이다.”
부랑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텐트 입구를 걷어 내 안쪽을 가리켰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고맙군.”
“〈나락〉에서 빛나는 어둠을 보내길.”
장첸은 수하들이 먼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이어 따라 내려갔다.
칙칙하고 냄새나는 계단을 내려가자 냉동 창고 같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말 냉동 창고의 내부로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는데, 안쪽에서부터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공간을 울리는 우퍼 소리를 따라간 곳엔 놀라우리만치 커다란 홀과 여기저기에 뚫린 길, 그리고 수백의 인파가 보였다.
“정말 〈나락〉이군.”
장첸은 혀를 차며 비웃었다.
시끄럽게 귀를 괴롭히는 클럽 음악과 환호하는 사람들의 비명, 곳곳에 널린 술병과 주사기까지.
수하들은 인파를 헤집고 안쪽에 뚫린 길로 장첸을 인도했다.
도착한 곳은 사방이 붉은 장식으로 채워진 널찍한 방이었다.
“아직 안 왔나.”
장첸은 수하에게 중절모와 코트를 넘겼다.
그리고는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연초를 꺼내 피웠다.
“하야카와 가문의 계집애는 어떻게 됐나?”
“예. 현재 틈을 보면서 계속 미행하고 있습니다.”
“거래는 거래다. 세이겐에게 들키면 곱게 죽지 못할 테니 살수들에게 조심하라 일러.”
“예, 알겠습니다.”
장첸은 연초를 마저 피우며 시름에 잠겼다.
이번 거래를 끝으로 당분간은 한국과의 왕래를 중지해야 할 것 같았다.
대성에게 투자받은 게 있어 마지막으로 오긴 했지만, 평소라면 도박하듯이 무리해서 오지 않았을 터였다.
‘제2의 〈귀살단〉을 만들 때까진 몸을 사려야겠군. 대성에게서 빌린 청도복 두 명이 있어 그나마 안심이긴 한데···.’
문제는 저들이 충성하는 건 장첸이 아닌 대성이었기에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것.
장첸은 입구에 선 이들을 힐끔 쳐다봤다.
둘 다 2m는 넘을 것 같은 청도복의 치우와 리우.
그들은 멍청하게 생긴 동그란 선글라스를 쓰고 자기들끼리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각성자가 아닌 자신이 보기에도 느껴지는 섬뜩한 기운.
“무슨 일 있으십니까, 대인.”
옆에 선 ‘0호’가 물어 왔다.
1호부터 10호까지는 〈귀살단〉이라는 암살조직으로 활동하게 했지만, 가장 강한 0호는 장첸이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아니다. 너만 믿고 있다.”
“과찬의 말씀을. 목숨을 걸고 대인을 지키겠습니다.”
0호가 말하길, 치우와 리우는 본인과 비슷한 능력치를 보인다고 했다.
그렇게 연초를 거의 다 태울 때쯤.
입구가 열리며 두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광대 마스크를 쓴 정장 차림의 두 남자.
“오랜만에 보는군, 클라운.”
“오셨습니까, 대인.”
클라운이라 불린 자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으며 인사했고, 그의 뒤로 다른 광대 마스크를 쓴 자가 비서처럼 섰다.
“갑자기 무리한 양을 사 달라고 해서 미안하네.”
“큭큭큭. 아닙니다. 물건이야 어차피 팔면 되는 거니까요.”
클라운은 과한 손짓을 하며 별문제가 없음을 밝혔다.
“대성께서 하도 재촉하셔서 말이야. 다음에는 적절한 양을 가져오도록 하지.”
“호오ㅡ 대성께서 직접 챙겨 주시다니. 대인의 입지가 많이 올라갔나 보군요.”
“주둥이 조심해라.”
클라운의 말에 옆에 있던 0호가 인상을 꿈틀거렸다.
“아, 아. 괜찮아. 미안하군, 클라운. 내 부하가 충성심이 강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길 바라네.”
“아닙니다. 제가 말실수했나 보군요.”
클라운이 손가락을 튕기자 옆에 있던 다른 광대가 커다란 스포츠 가방을 건넸다.
“말씀해 주신 금액입니다. 천천히 확인하시죠.”
장첸이 눈짓하자 0호가 곧바로 가방을 열어 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 클라운은 이래서 좋아. 우리도 물건을 주지.”
장첸은 옆에 있던 까만 서류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클라운은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큭큭큭. 이거 정말ㅡ 아름답군요.”
“당연하지. 장인이 만든 물건이니까.”
가방 안에는 각각의 케이스에 담긴 수백 개의 각성자 마약이 영롱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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