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2)
122 화 쟈멜 대위기!!!
쟈멜 대위기!!!
“더, 덩겨부튼 바위시여!”
“떵겨부튼 빠위시여!!!”
“뗭겨뿌튼 빠윗시여!!! 쩨빨…”
굳어서 잘 안 움직이는 혀를 겨우겨우 움직여 수차례 모시는 신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의 신은 답하지 않았다.
신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의 신들은 사제가 신의 가호와 권능을 바라는 데에 있어서 적어도 자신의 이름 정도는 정확히 부를 것을 요구했다. 물론, 고위 사제들의 경우 굳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자유자재로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쟈멜은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
묵묵부답인 신.
“띠…빨…”
뒷골목 생활을 하며 배운 외마디 욕을 중얼거렸지만, 그런다고 딱히 쟈멜이 처한 상황이 나아지진 않았다. 아니,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부우우웅.
“흡?!’
진동하는 날갯소리.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쟈멜은 입을 꾹 다물고 최대한 호흡을 규칙적으로 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의지와 달리 제멋대로 떨렸다. 아주아주 미세하게. 그래, 쟈멜은 속된 말로 완전히 쫄아 버렸다. 혹시나 저 마수에게 잡아먹힐까 봐.
마르낙 사제님을 찾는다고 중얼거린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답답한 마음에 신의 이름을 여러 차례 부른 탓일까. 수많은 상념들이 쟈멜의 머릿속을 휘저어 댔지만, 그런다고 닥친 상황이 해결되진 않았다.
부우웅.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쟈멜은 두 눈을 꼭 감고 떨림을 최대한 억누르려 했지만, 제멋대로 구는 몸이 완전히 진정하질 않았다.
부우웅. 탁.
무언가 조금 떨어진 바닥에 내려앉았다. 쟈멜은 당장에 눈을 뜨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괜히 눈을 떴다가 저 벌 모양 마수한테 걸릴까 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절대 산 채로 마수에게 잡아먹히는 체험을 해보고 싶지 않았다.
딱. 딱. 딱. 딱.
곤충의 턱이 규칙적으로 부딪혀 대며 일정한 소리를 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눈을 꼭 감고 있던 쟈멜은 그 규칙적인 부딪힘 소리 덕에 마수와의 거리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다행히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은 그녀가 있는 곳에서 조금 멀었다.
그래, 다시 생각해 보니 이곳엔 자신 말고도 수많은 먹이가 한가득 있었다. 자신처럼 싱싱한 먹이의 차례는 나중이리라. 먼저 들어온 것이 먼저 나간다. 제발 저 벌 형태의 마수들이 오래된 먹이들부터 차례대로 먹어치우길 바라고 또 바랐다.
딱. 딱. 딱. 딱.
하지만 다른 이들이 먼저 죽길 바란 괘씸한 마음 때문일까, 그게 아니라면 때마침 싱싱한 먹이가 필요한 상황이 급박하게 생긴 것일까.
턱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왔다. 등줄기에서 일어난 소름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쟈멜은 어느새 전신으로 퍼진 소름이 오소소 피어나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고 싶은 걸 꾹꾹 참았다.
그녀는 침이라도 질질 흘려서 음식이 조금 상한 것 같다는 인상을 심어 주고 싶었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입조차 쉬이 벌어지질 않았다.
딱딱딱딱.
왼쪽.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턱이 빠르게 맞부딪혔다. 쟈멜은 죽은 쟈멜이 되어야만 했다. 전혀 싱싱하지 않은 그런 쟈멜이. 쟈멜의 머리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하면 저 벌 마수에게 자신이 안 싱싱하고 먹으면 오히려 기분만 나빠질 먹이란 사실을 깨닫게 해 줄 수 있을까. 당연히 쟈멜은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딱. 딱. 딱.
소리는 한 발짝. 한 발짝. 착실하게 쟈멜에게 가까워졌다. 너무 긴장한 탓에 쟈멜의 온몸은 이미 식은땀으로 푹 젖은 뒤였다.
딱. 딱.
한 걸음. 불과 한 걸음도 안 떨어진 지척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거기서 더 가까워졌다.
딱.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의 턱 부딪힘이 만들어낸 미세한 소리가 바로 코끝에서 느껴졌으니까. 쟈멜은 신께 빌었다. 아니, 정확히는 신들께 빌었다.
‘제발. 제발. 엉겨붙는 바위시여. 제발 제 목소리가 들리면 저 좀 도와주세요. 제발요! 제발제발제발요! 아, 아니. 엉겨붙는 바위 말고 다른 신분들도 괘, 괜찮아요!!! 저, 저 이제부터 진짜 착하게 살 테니까!!! 와, 완전 착하게 살 테니까!!! 아, 악신분들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지, 진짜 어느 신이시든 살려만 주시면 개, 개종할게요! 개종한다고요오오오!!!’
너무 생각에 매몰된 탓일까. 쟈멜이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적막. 그 고요 속에서 쟈멜은 숨이 턱턱 막혔다.
갔나? 간 건가? 갔겠지? 갔어야만 해! 갔었을 거야! 온갖 바람이 제멋대로 뒤얽혔다.
한계에 달한 인내.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 버릴 것 같은 긴장을 버티지 못하고 쟈멜은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조금, 아주 조금 열었다.
새카맸다. 그리고 반짝였다.
시야를 한가득 채운 새카만 곤충의 턱. 수백 겹으로 이루어진 눈이 자신을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거대한 검은 벌이 눈이 마주친 순간.
딱딱딱딱딱딱딱!!!
턱이 고속으로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쟈멜은 깨달았다. 이건 굳이 심사숙고하지 않아도 지극히 명백한 상황이었다.
자신은 완전히 X 됐다.
쟈멜의 뇌는 스스로가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선택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당연히 그녀의 비명을 듣고 놀란 벌 마수가 꽁지 빠지게 도망친다는 기적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날카로운 턱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버둥대는 먹잇감의 숨통을 끊기 위해 더없이 크게 벌어졌다.
쟈멜은 턱 끝까지 찾아온 죽음을 향해 더없이 비굴하게 절규했다.
“하, 하 번만 사려주뗴여어어어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콰득.
턱이 닫히고 찐득한 액체가 바닥에 흘러내렸다. 그렇게 한 생명의 머리가 바닥 위로 떨어졌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리고 쟈멜의 비명은 여전히 동굴을 쩌렁쩌렁 울렸다. 쟈멜은 눈앞의 마수가 이미 죽어 버린 것도 모르고 한참을 더 펑펑 울었다. 그녀의 울음이 멎은 건 나직한 한마디가 들린 뒤였다.
“소리를 질러 주신 덕에 겨우 찾았군요.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무척이나 익숙하고 편안한 목소리. 쟈멜은 펑펑 운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눈물을 닦아 내려 해도 팔다리는 반쯤 마비된 채로 밀랍 속에 꽁꽁 묶여 있었고. 쟈멜은 잘 안 움직이는 혀를 움직여 겨우 말을 만들어 냈다.
“마드댝 땨제님…? 쥔짜 마드닥 따데님 마자여? 이거 꾸미 안니져? 녱?”
“… 못 본 사이에 발음이 무척 달라지셨군요. 일단 잠시만 가만히 있어 주십시오.”
“녱…”
마르낙은 멀리서 내던져 쟈멜이 잡아먹히기 직전, 간발의 차이로 그늘벌의 머리에 꽂아 넣었던 서리강철 검을 뽑아 냈다. 걸쭉한 마수의 체액이 머리에 난 구멍을 타고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그는 허공에 검을 몇 번 휘둘러 검신에 묻은 체액을 털어 내고는 조심스럽게 검을 내밀어 쟈멜의 몸을 덮고 있는 밀랍을 조금 베어 냈다. 그리곤 그 틈에 손을 비집어 넣고 그대로 잡아 뜯었다.
쩌억거리는 소리와 함께 더없이 단단하게 굳어 있던 밀랍이 마르낙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단숨에 반으로 갈라졌다.
“감쟈함미… 어어어엉!!!”
마침내 해방된 쟈멜은 두 발로 땅을 디디려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발 때문에 그대로 몸의 중심이 기울었다. 마르낙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가볍게 손을 뻗어 쟈멜의 몸을 받아 안아 들었다.
쟈멜은 마르낙의 품에 안긴 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감쟈함미다… 징짜진짜 감쟈함미다…”
마르낙은 하마터면 쟈멜의 코맹맹이 목소리와 너무 울어 발갛게 퉁퉁 부은 두 눈 때문에 저도 모르게 한바탕 크게 웃어 버릴 뻔했지만, 극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겨우 참아 냈다. 그는 쟈멜의 몸 상태를 대충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디 아프신 데 있습니까? 아니면 다친 곳이라든지?”
“쥐금 감갹이 듄해서 쟐 모르게써여… 긍데 일단 마니 아픙 데는 엄서여…”
“일단 제가 보기에도 딱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늦지 않아서.”
그 따뜻한 한마디와 폭신한 품에 쟈멜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히이이이이잉…”
“왜, 왜 갑자기 우십니까?”
“히이이이이이이잉… 흐아아아아아아아앙!!!”
쟈멜은 마르낙의 품에 매달려 한참이나 대성통곡을 하며 울어 댔다. 마르낙은 인내심 있게 쟈멜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끝날 줄 모르던 울음이 그쳤다. 마르낙은 눈물과 콧물로 축축해진 가슴팍을 보곤 부드럽게 웃었다.
“이제 다 우셨습니까?”
쟈멜은 조금씩 마비가 풀려 가는 손을 느릿하게 움직여 대충 남아 있는 눈물을 훔쳤다. 그제야 쟈멜은 마르낙의 모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끈적거리는 체액으로 엉킨 머리. 아직도 그의 전신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그늘벌 껍질과 살점의 파편들. 감각이 둔해졌던 탓에 몰랐었지만, 마르낙의 전신은 이미 마수들의 체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군데군데 체액과는 달리 새빨간 핏자국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이 사제는 자신이 다치는 걸 도외시한 채 무작정 모조리 돌파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쟈멜은 다시 한번 눈물이 핑 돌려는 걸 겨우겨우 참아 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프로 징차 제가 잘하꼐여… 징차징짜용…”
마르낙은 쟈멜의 등을 토닥여 주며 키득키득 웃었다.
“쟈멜은 지금도 무척이나 잘하고 있으시니, 그냥 해 온 대로만 하면 됩니다.”
“힝…”
쟈멜은 코를 몇 번 더 훌쩍인 후 마르낙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긍데 따른 샤람둘은요?”
“안 그래도 희미해진 쟈멜의 냄새가 둘로 갈라지는 바람에 일단 일행을 나눴습니다. 저는 일부러 냄새가 희미한 쪽을 골랐는데, 운이 좋게도 이곳이 정답이었군요. 아무래도 몸을 결박하고 있던 밀랍 냄새가 쟈멜의 냄새를 가렸던 것 같습니다.”
사실, 마르낙의 일행은 두 갈래로 갈라진 동굴의 길에서 쟈멜의 냄새가 동시에 나는 바람에 쟈멜이 반 토막 나 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의 미친 듯한 마수 학살은 사실 반쯤은 반 토막 났을지도 모르는 쟈멜에 대한 복수도 겸하고 있었다.
“쟈멜을 찾아낸 건 울피의 덕이 무척이나 크니, 나중에 따로 감사를 표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알게써여…”
쟈멜은 앞으로 그 회색 여우 수인을 절대 배신자라 부르며 구박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긍데 이제 어뗘실 거예요?”
마르낙은 쓰게 웃으며 쟈멜을 안아 든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일단 일행이 이쪽으로 오길 기다린 다음, 이곳까지 온 김에 여왕벌도 잡아서 마수 구제를 하고서 떠날 생각입니다.”
단순한 마수 구제만이 목적이 아니라, 이 방 가득 사로잡힌 병사들의 수로 보건대 이곳을 북제국의 관리에게 신고하면 나름의 보상을 얻을 수 있으리란 계산이 섰었다. 잘만 이야기하면 굳이 몰래 넘지 않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당당하게 국경을 넘을 수 있으리라.
마르낙은 쟈멜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그러니 일단은 잠시 숨을 돌리고 조금 쉬도록 하죠.”
***
다키아를 비롯한 나머지 일행이 마르낙이 있는 굴에 도착한 건 조금 시간이 지난 뒤였다. 쟈멜의 마비가 다 풀릴 만큼의 시간이.
이제야 제대로 혀가 돌아가게 된 쟈멜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우, 울피도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드디어 제 몫을 해냈다 싶은 울피는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가 쫑긋대며 풍성한 꼬리가 살랑였다.
“이 정도쯤이야, 별거 아냐!”
연거푸 거듭된 감사의 인사가 끝나자, 마르낙은 일행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슬슬 여왕벌이 있는 방으로 가죠. 빠르게 처리하고 오늘은 그냥 국경도시로 귀환해서 푹 쉬는 편이 좋겠습니다.”
잠시 후, 울피의 코를 따라 자신들을 막아서는 그늘벌들을 모조리 도륙 내며 동굴 가장 깊숙한 심처, 그늘벌 여왕의 둥지에 도착한 마르낙 일행은 자신들이 찾아낸 여왕벌의 모습을 보곤 굉장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여왕별은 진한 보랏빛 쇠꼬챙이에 꿰인 채로 체액을 질질 흘리며 간신히 숨만 붙이고 있었다.
다키아는 참혹한 여왕벌의 상태를 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늘벌들이 갑작스럽게 이상 행동을 보인 건,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네요. 누군가 여길 먼저 다녀간 거 같아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마르낙과 다키아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코를 열심히 킁킁대고 있던 울피가 두 눈을 번쩍 뜨고서 소리쳤다.
“꿀!!!”
“예?”
“네?”
울피는 여왕벌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다시금 외쳤다.
“저기서 꿀 냄새가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