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3)
123 화 꿀꿀.
꿀꿀.
“그늘벌의 꿀이라니!!! 이게 여기 있을 줄이야!!!”
울피는 마치 아주 귀한 보물이라도 찾아낸 듯이 격렬하게 꼬리를 흔들어 댔지만, 우리 일행 중에는 이 국경 지대에 사는 마수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벌이 꿀을 모으는 건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아닌가?
“그늘벌의 꿀엔 무슨 좋은 효능이라도 있습니까?”
“응응!”
울피는 고개를 힘차게 위아래로 끄덕이고는 설명을 시작했다.
“이 그늘벌이란 마수는 평소엔 꿀을 안 만들거든? 하지만 이 그늘벌이 몸속에서 스스로 꿀을 만들어 낼 때가 있는데 그게 언제일 거 같아?”
나한테 되물어 봤자 뾰족한 답이 나오진 않을 텐데. 그래도 일단 울피의 기분이 너무나 좋아 보여서 장단을 맞춰 주고 싶긴 했다.
‘살해살해…’
마침, 내 옆에 있던 어머니도 흥미가 생기셨는지, 울피가 낸 문제의 답에 대해 진지하게 궁리를 하고 계시기도 했고.
평소엔 만들지 않는 꿀과 커다란 보라색 쇠꼬챙이로 꿰여 있는 여왕벌.
이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해보면 대충 답이 보였다.
“그늘벌의 꿀은 상처의 회복과 관련된 효능이 있는 거군요.”
“맞아! 와, 어떻게 맞췄어?”
“아무래도 지금 상황은 누군가 그늘벌들의 꿀을 원해서 일부러 여왕벌에게 저 커다란 쇠꼬챙이를 꿰어 둔 것으로 보이니까요.”
‘살해살해!’
나도 마침 딱 그 생각을 했다는 어머니의 맞장구. 확실히 울피의 말을 듣고 후각에 집중하니 희미한 꿀의 향이 코끝을 감돌았다.
다키아는 다친 여왕벌을 물끄러미 보곤 빙그레 웃었다.
“꿀이라··· 꿀은 잘 썩지도 않으니, 그늘벌의 꿀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챙겨 두고 틈틈이 단 게 먹고 싶을 때마다 조금씩 먹으면 좋을 거 같아요.”
울피는 나와 다키아의 얼굴을 번갈아 보곤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호, 혹시 내 몫도 조금 챙겨 줄 수 있을까?”
나는 다키아와 짧게 눈빛을 교환하고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울피 덕분에 쟈멜을 늦지 않게 구할 수 있기도 했고, 애초부터 이렇게 열성적으로 일해 주는데 따로 보상을 안 챙겨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늘벌의 꿀이 얼마나 있든 적당히 챙겨 드리겠습니다.”
“진짜? 얏호!”
짧게 폴짝 뛴 울피가 꼬리를 살랑대며 진짜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여왕벌을 향해 다가갔다. 여기까지 오면서 대부분의 그늘벌을 모조리 제거해 둔 탓에 이 방엔 여왕벌을 지켜 줄 그늘벌들이 단 한 마리도 남아 있지 않았다.
딱! 딱! 딱! 딱!
울피가 다가갈수록 그늘벌들의 여왕은 거칠게 턱을 맞부딪혀 댔지만, 당연히 그 무의미한 몸짓은 울피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질 않았다. 우리는 울피의 뒤를 따라 여왕벌의 뒤편에 뚫려 있는 굴로 들어갔다.
“와아!”
굴 안을 확인한 쟈멜이 탄성을 내질렀다. 솔직히 지금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탄성을 내지를 만한 장관이긴 했다.
거대한 공동 그 전체가 황금빛으로 빛나는 육각형 꿀통으로 가득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그 꿀통들 중 사분지 일만이 진짜 꿀이 가득 담겨 있었고, 나머지 사분지 삼은 그늘벌의 유충으로 추정되는 애벌레들이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살해!’
거대한 공동에서 진하게 피어오르는 꿀 냄새에 어머니께선 싱글벙글 웃으며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살해…?’
혹시 가서 손가락으로 한 번만 찍어 먹어 봐도 괜찮겠냐는 물음.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괜찮습니다.”
‘살해!’
방긋 웃은 어머니가 잽싸게 가까운 벌꿀 통으로 다가가서 넘실대는 꿀에 손가락을 폭 하고 찔러 넣었다 빼서 자신의 입을 향해 가져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울피는 대경실색하며 어머니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자, 잠깐만!”
‘살(殺)!!!’
졸지에 손목을 붙잡힌 어머니가 홱 하고 손을 뿌리치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머니는 지극히 불쾌한 눈빛으로 울피를 쏘아보곤 내게 돌아와서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살해살해!’
쟤가 감히 꿀을 못 먹게 한다는 분노 어린 투정에 나는 그저 쓰게 웃었다.
“혹시 그늘벌의 꿀은 따로 특별한 조리법을 거치고 난 다음에 먹어야 하는 꿀입니까?”
풍겨 오는 냄새로 보면 다른 꿀들처럼 그냥 먹어도 충분히 괜찮을 거 같은데 말이지.
“그게 그냥 먹어도 아무 상관 없기는 한데, 알 건 알고 난 다음에 먹어야 할 거 같아서…”
그녀는 꿀벌 통들을 힐끔 보곤 입을 열었다.
“이 꿀이 상처를 치료하는 효능 자체는 진짜 좋거든? 진짜 정말 웬만한 약들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좋단 말이야. 맛도 엄청 있고! 근데 이 꿀의 존재에 대해 어디서 들은 적이 있어?”
그러고 보니, 그렇게 효능이 좋다면 나나 다키아가 들어 본 적이 없을 리가 없었다.
“뭔가 하자가 있긴 한 거군요.”
“응. 사실, 이 꿀들은 진짜 ‘꿀’은 아냐. 그냥 벌 형태의 마수인 그늘벌이 만들어 내서 꿀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뿐이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건 그늘벌이 ‘무언가’를 먹고 체내에서 만들어 낸 분비물이야.”
울피가 굳이 언급을 피한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안 봐도 뻔했다.
인간. 아니, 굳이 넓게 잡자면 여러 종족의 지성체들인가. 밀랍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던 피해자들 사이에는 인간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니까.
“사람들을 먹이로 섭취해서 만드는 꿀이라. 이 꿀이 어디서 왔는지 안다면 아무리 효능이 좋아도 꺼릴 사람이 많겠군요.”
“응. 그래서 내가 일단 말린 거야. 물론, 아주 효능이 뛰어난 약품이니만큼 대놓고 거래는 못 해도 원하는 곳들이 꽤 많아! 내가 이런 걸 아주 잘 처리해 줄 사람을 알거든? 나한테 맡겨만 주면 진짜 좋은 가격에 잘 처분해서 돈으로 가져다줄게! 아앗?! 머, 먹으면 안 된다니까!”
어머니는 이 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듣고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꿀에 손가락을 다시 한번 폭 하고 찍고는 입 안에 집어넣었다.
‘살해!!!’
완전 진짜 너무 달콤하다는 격렬한 반응. 어머니께선 몸을 부르르 떠시고는 꿀에 손가락을 조금씩 찍어서 핥아서 꿀맛을 즐겼다. 아무래도 어머니께선 우리가 고기를 먹을 때 그 동물이 뭘 먹고 자랐는지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그늘벌들이 사람들을 먹고 분비해 낸 분비물이라도 맛만 있으면 상관없는 듯했다.
울피는 손가락에 묻은 꿀을 할짝대는 어머니를 질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 눈빛으로 보건대 울피는 절대 직접 꿀을 맛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개를 돌려 쟈멜과 다키아의 얼굴을 살피자, 둘 모두 울피의 이야기를 듣곤 식욕이 뚝 떨어진 표정으로 꿀을 바라보았다.
찌직!
나도 굳이 맛도 못 느끼는데 단것을 챙겨 먹을 이유가 없어서 입을 대지 않았고. 결국, 일행 중에서 그늘벌이 만들어 낸 꿀을 마음껏 맛본 건 테르지오가 데려온 스트룸과 어머니 단 둘뿐이었다.
어머니가 아예 자리를 잡고 꿀을 맛보시는 사이, 나는 테르지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나머지 이들과 함께 여왕벌이 꿰여 있는 방으로 돌아왔다.
딱! 딱! 딱! 딱!
다키아는 턱만 딱딱이며 의미 없는 반항을 하는 여왕벌을 바라보곤 내게 물었다.
“그냥 바로 불태워 버릴까요?”
“조,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아주 그냥 잿가루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불태워 버려요!!!”
쟈멜은 아주 잡아먹기라도 할 기세로 여왕벌을 노려보았다. 진짜 잡아먹힐 뻔했던 그녀의 입장에선 저 거대한 여왕벌은 아주 잘근잘근 씹어먹어도 절대 분이 풀리지 않겠지.
“아, 안 돼!”
내 옆에서 눈치를 보던 울피가 잽싸게 뛰쳐나가서 다키아의 앞을 막아섰다. 다키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울피를 노려보았다.
“이미 만들어진 꿀을 챙기는 건 제가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지만, 혹시라도 사람 잡아먹는 그늘벌 꿀의 양식장 같은 걸 만들 생각이라면 당장 접으세요.”
쟈멜은 다키아의 옆에서 손을 붕붕 휘두르며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거기서 당장 비켜요!!! 이제는 그렇게 안 부르려고 했지만… 그 발칙한 여왕벌을 벌하는 공녀님을 막아서겠다면!!! 다시 배신자라고 부를 거예요!!! 알겠어요?!!!!”
“아, 아니. 내 말 좀 들어 봐! 나는 그런 의미로 막아선 게 아니라고! 나는 그냥 어차피 태울 거면 굳이 태우지 말고 저 벌꿀을 회수할 때까지 여왕벌을 살려 둔 다음 싱싱한 재료로 여기저기 파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뿐이야! 그, 그래! 지금 이걸 태우는 건 돈을 태우는 거나 다름없어!”
“돈…? 그거 설마… 금화 단위예요…?”
쟈멜의 기세가 한풀 죽었다. 울피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응! 금화!”
꿀꺽.
쟈멜이 침 삼키는 소리가 나한테까지 들려왔다. 쟈멜은 두 눈을 끔벅이다가 다키아의 눈치를 보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녀님. 저, 저거 그냥 안 태우면 안 될까요…? 팔면 그, 금화래요!”
다키아는 금화 이야기에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꾼 쟈멜을 내려다보았다.
“굳이 당장 불태울 필요는 없긴 한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뒤의 물음은 쟈멜이 아니라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나는 거대한 여왕벌을 살피곤 대충 판단을 끝마쳤다.
“일단은 살려 뒀다가 팔기 직전에 숨만 끊어 놓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누군가 이 여왕벌을 이용해서 양식장을 차리거나 하지는 못할 테니까요.”
“살려둔 게 아니라 사체를 팔면 살려 둔 채로 팔 때보다 가격이 조금 많이 떨어질 텐데…”
울피의 지적에 다키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의 가능성이 있는 이상, 저 마수를 살려 둔 채로 판매할 생각은 없어요. 쟈멜도 그렇게 생각하죠?”
“넷…?!”
쟈멜은 눈을 데굴 굴리곤 어색하게 웃었다.
“다, 당연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하하핫!”
분명 쟈멜은 다키아만 없었으면 저 여왕벌을 살려 둔 채로 팔았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일단 인부들이 이곳에 올 때까지 여왕벌의 목숨을 붙여 두기로 결정했다.
울피는 분주히 돌아다니며 꿀의 양과 여왕벌의 크기를 가늠하고는 뭔가를 복잡하게 계산했다. 밀랍 속에 있는 시체들을 계속 저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으니, 일단 우리는 꿀과 여왕벌의 사체를 처분한 다음 도시에 이 장소를 보고할 계획이었다.
‘살…햇…’
어머니께선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머리가 너무 어지럽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거의 꿀을 좋아하는 곰돌이처럼 꿀을 들이켜시더니. 저렇게 아프다고 곡소리를 내시는 걸 보면 앞으로 한동안 꿀 근처에도 가시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저기… 근데…”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울피가 귀를 쫑긋대며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내 몫은 어느 정도나 떼 줄 생각이야…?”
그 부분은 다른 일행들과 상의해서 결정한 뒤였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머릿수대로 나눠서 한 명 몫을 떼어 드릴 생각입니다.”
“으, 응?! 지, 진짜?!”
나, 쟈멜, 테르지오, 어머니, 다키아, 울피. 벌어들인 돈의 육 분의 일이나 준다는 말에 울피가 반색했다.
“그렇게나 마, 많이 줄 거야? 진짜? 나, 나는 그냥 여기까지 안내해 준 것밖에 없는데?! 싸우는 것도 너희들이 전부 다 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거기다 울피의 인맥을 통해서 판매를 하는 거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치면 이 정도가 적당한 몫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맡겨만 놓는 게 아니라 처분하는 것도 도와 드릴 생각입니다. 혹시 싫으십니까…?”
“꺄아아아!!! 아니, 너무 좋아!!!”
펄쩍 뛰어오른 울피가 내 목에 매달려 오자 드러누워 있던 어머니가 고개만 겨우 들고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알…햇…”
당장 거기서 떨어지라는 그 목소리는 꿀에 취한 탓에 아무런 힘이 없었다.
***
우리는 울피를 통해 고용한 인부들을 이용해 우선해서 꿀과 여왕벌을 빼돌린 다음, 병사들의 시체를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려 보내 주기 위해 북제국에 연락을 넣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거대한 망자의 무리를 이끄는 사내를 마주했다. 한 손에 백색 나팔을 든 안식의 나팔수는 우연하게도 나와 구면인 이였다. 그 옛날 에라디코에서 같이 누더기 거인을 상대했던 바로 그 나팔수.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뭔가 마뜩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하러 왔다. 두 번째 보는 얼굴이지만 그닥 반갑지는 않군. 걸어 다니는 문제 덩어리는 언제나 사절이라서.”
“그래도 저는 꽤 반갑습니다. 아, 덕분에 수도에 들러서 찾던 걸 찾았습니다.”
죽음과 안식의 나팔이 저번에 성물이 있는 장소를 뀌띔해 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자 그는 여전히 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위에서 시켜서 가르쳐 준 것뿐이니, 괜히 친한 척하지 마라. 그래서 망자들이 잠들어 있는 곳은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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