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25)
225 화 일갈.
일갈.
내려앉은 정적. 다키아와 페르틸료 그 누구의 입도 열리지 않은 채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그 적막 속에서 먼저 입술을 떼어낸 건 페르틸료였다.
“다키아 이르멜, 지금부터 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둘밖에 없다. 조용히 자발적으로 눈앞의 차를 마시던지…”
사내의 붉은 눈이 가라앉았다.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 다키아의 얼굴을 가리켰다.
“한껏 반항하다 뭉개진 다음 개처럼 기어서 그 차를 핥아 마시게 되던지.”
다키아는 조용히 검 손잡이 위에 손을 올리며 대꾸했다.
“그럴 능력은 있으시고요?”
“차고 넘치지.”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페르틸료를 노려보았다. 다키아는 검손잡이를 매만지며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갔다.
당장에 검을 뽑아 저 사내를 베어낸다면, 과연 펄리를 멀쩡한 꼴로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저 남자가 정말 펄리를 치료하도록 명령한 것은 맞을까?
고민은 또 다른 고민을 불러왔고, 상념이 끊어지질 않았다. 애초에 무엇 하나 결정하기 힘들 정도로 그녀에게 주어진 정보가 너무나 적었다.
“차를 마셔라. 다키아.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마신다면 나름 최선의 대우를 약속하지.”
“하아.”
다키아는 자신의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내 그녀는 질린 눈으로 페르틸료를 바라보았다.
“당신, 정말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나는 아무것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 이 밤이 지나면 넌 날 자발적으로 따르게 될 테니.”
“만약 제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마르낙 사제님이 당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마르낙? 그게 누구지?”
그는 마치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이 답했다. 그 대답에 다키아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제 일행의 이름조차 모르는 정보력으로 감히 이런 일을 벌인 건가요?”
“사소한 이름 하나둘 따위, 내가 굳이 알 필요 없는 영역이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단 하나. 너조차 모르는 사이에 네게 붙어 있을 이르멜가의 호위였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어도 호위 비슷한 것 하나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그런 것은 애초부터 없었나 보군.”
페르틸료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다키아는 처음부터 계속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던 사내의 덩치가 의외로 단단하고 컸음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킨 사내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다키아를 내려다보았다.
“차를 마셔라.”
“펄리를 어떻게 했죠?”
“그 계집을 치료하라 한 건 사실이다. 그 보라 머리 계집의 얼굴은 꽤 반반하니 치료한 다음 적당히 굴리기만 해도 치료에 들어간 것보다 더 뽑아먹을 수 있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군요. 그 의도가 역겹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말하겠다.”
기다란 손가락이 다키아의 앞에 놓인 찻잔을 가리켰다.
“마셔라.”
“좋아요.”
다키아는 손을 뻗어 찻잔의 손잡이를 잡아들고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내용물을 페르틸료의 얼굴에 흩뿌렸다.
촤악!
페르틸료는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자신에게 뿌려진 액체를 피해냈다. 찻잔에 들었던 찻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는 젖은 바닥을 내려다보곤 짧게 혀를 찼다.
“말을 못 알아먹는 짐승 같은 계집이로군. 스스로 짐승처럼 행동하니, 어쩔 수 없이 짐승처럼 대해 줄 수밖에.”
“엿 먹으세요!”
쾅!
다키아는 몸 일으킴과 동시에 눈앞의 탁자를 걷어찼다. 붕 떠오른 탁자가 순간 페르틸료의 시야를 가렸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옆으로 반걸음 내디뎌 탁자를 피해냈다.
“하압!”
작은 틈, 그 틈을 노리고 다키아가 매섭게 검을 찔러 들어갔다.
까앙!!!
울려 퍼지는 청명한 금속음. 다키아의 검날이 위로 튕겨 나갔다. 기습이 실패했음을 깨달은 그녀는 재빨리 페르틸료와의 거리를 벌렸다.
다키아의 검을 쳐낸 것은 무척이나 얇고 길쭉한 레이피어 한 자루였다.
페르틸료는 한쪽 발을 반걸음 뒤로 빼 자세를 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째서 내가 호위 하나 두지 않고서 너와 대면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가?”
다키아는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신경은 지금 오롯이 눈앞의 사내를 어떻게 고꾸라뜨릴지 계산하는데 쏠려 있었다.
레이피어의 뾰족한 검 끝이 정확하게 다키아의 목을 겨냥했다.
“너 같은 계집 하나 정도는 나 혼자서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지.”
“전부 마음에 안 들지만, 단 하나는 그나마 마음에 드네요.”
다키아는 검 끝의 흔들림을 붙잡았다.
“저는 당신이 펄리를 인질로 붙잡고서 절 겁박할 줄 알았거든요.”
“그럴 필요가 없는데 내가 무엇하ㄹ…”
낮은 뇌까림. 다키아의 바람을 담아 마력이 요동쳤다. 다키아가 왼손을 가볍게 흩뿌리자 그 궤적을 따라 피어난 샛노란 불꽃이 환히 빛났다. 그렇게 불줄기는 날 선 화살이 되어 공기를 가르고 그대로 페르틸료를 향해 쏘아졌다.
“이 계집이!!!”
그는 재빨리 입고 있던 겉옷을 휘둘러 눈앞의 불길을 쳐냈다. 힘의 방향이 꺾인 불꽃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분수처럼 피어올랐다.
산산이 흩어져 내리는 불티들. 페르틸료가 고개를 돌려 다키아가 서 있던 장소를 바라보았을 때, 다키아는 이미 도망쳐 사라진 뒤였다.
그는 이를 앙다물고 낮게 으르렁댔다.
“빌어먹을 계집이! 감히 내 말을 끊다니, 이거 오랜만에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겠군.”
***
다키아는 복도를 내달렸다.
싸우자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고려해본 결과, 한가락 해 보이던 그 페르틸료라는 사내를 상처 없이 제압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특히나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그 검을 모조리 막아내기에는 자신의 검술적 소양이 조금 부족함을 다키아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 한 번이라도 찔려서 상처가 생긴다면, 적들로 가득한 이 저택에서 펄리를 구해내 같이 도망치는 일이 물거품이 될 게 분명했다.
‘펄리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정보. 정보가 필요했다. 다행히 다키아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 확률이 높은 이들이 어디에 있을지 알았다.
저 멀리 일렁이는 등잔 빛.
그곳에는 하녀 하나가 조용히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역시 날 안내해주고 어디로 가는지 눈여겨봐두길 잘했어.’
다키아는 거침없이 내달려 하녀를 붙잡고 그녀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물어보는 말에만 제대로 답해준다면 다치지 않을 거예요.”
“네.”
의외로 순순히 튀어나온 대답. 다키아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오늘 많이 다친 채로 이 저택에 끌려온 보라색 머리칼의 여자를 본 적이 있어요?”
“네.”
“지금 그 여자는 어디에 있죠?”
“이층 객실에서 치료받고 있어요.”
몇 가지 상황을 고려한 끝에 다키아는 짧게 답했다.
“거기가 어디죠?”
“직접 안내해드릴게요. 잠시만 놓아주실래요?”
너무나 평온한 말투에 다키아는 지금 자신이 검을 들고서 이 여자를 겁박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잠깐 헷갈렸다. 기세에 넘어간 다키아가 하녀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그녀는 잠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따라오세요.”
다키아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서 하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제가 당신을 어떻게 믿죠?”
“직접 방을 하나하나 뒤져보실 생각이라면 말리지 않을게요.”
“왜 절 도와주시는 거죠?”
그 질문에 우뚝 멈춰선 하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을 들고 절 위협하고 계시잖아요?”
“…”
불편한 침묵 속에서 하녀가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빠르지도 느리지 않은 속도로 적막한 복도를 가로질렀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도달한 끝에 하녀는 한 방으로 다키아를 안내했다.
“이곳이에요. 제가 문을 열어드릴까요?”
“그러세요.”
끼이익.
하녀가 문을 열자, 다키아는 단숨에 뛰어들어 방 안에 있을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몸을 한껏 긴장시켰다.
문이 열리고, 다키아를 반긴 건 의자에 몸을 파묻고 있는 페르틸료였다. 그는 우묵한 눈빛으로 다키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건 순진하다 부르기보다 멍청하다고 하는 것이 옳겠군.”
어느새 페르틸료 옆으로 다가간 하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담았다.
“주인님, 당신의 적을 제가 이리로 이끌었어요. 포상을 주세요.”
그녀는 마치 개처럼 ‘베에.’하며 자신의 혓바닥을 내밀고는 할딱였다. 페르틸료는 손가락을 뻗어 여인의 도톰한 혓바닥을 매만지며 웃었다.
“계집이란 자고로 이래야 하는 법이지.”
그는 하녀의 혓바닥을 몇 번 간질이고는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알약 하나를 꺼내 하녀의 혀 위에 올려주었다. 하녀는 여전히 혀를 내밀고서 잘 훈련된 개처럼 눈을 반짝였다.
“먹어도 좋다.”
“녜헤!”
혀를 내밀고 있는 탓에 잔뜩 뭉개진 발음. 하녀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알약을 삼키고는 바르르 몸을 떨었다.
페르틸료는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침을 닦아냈다. 그는 침을 닦아낸 손수건을 하녀에게 버리곤 다키아에게로 눈을 돌렸다.
“제 발로 다시 내게 왔군. 어땠나? 잠깐 품었던 희망의 맛은?”
다키아는 아직도 몸을 바르르 떨고 있는 하녀를 힐끔 보고서 답했다.
“이 저택엔 저런 약물 중독자밖에 없는 건가요?”
“네가 몇 번을 도망치든, 내 허락 없이는 먼저 잡혀 온 그 보라 머리 여자를 찾아낼 수 없을 거다.”
헛도는 대화 속에서 다키아는 깨달았다.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정말로요.”
“마지막으…”
다키아가 먼저 자리를 박찼다. 순식간에 간격을 좁힌 다키아의 검이 곧은 선을 그렸다.
까앙!
페르틸료는 기다렸다는 듯이 레이피어를 내질러 다키아의 검을 쳐냈다. 아니, 쳐내려 했다.
빙글.
순간, 다키아의 검 끝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레이피어의 검날을 타고 올랐다. 먹이를 조이는 구렁이처럼 회전하며 타고 오른 검이 레이피어의 궤도를 꺾어 밖으로 밀쳐냈다.
페르틸료의 검이 완벽하게 밀려났다. 자연히 벌어진 커다란 틈. 다키아는 정확하게 그 틈을 베어냈다.
길게 그어진 상처를 따라 붉은 선혈이 튀어 올랐다.
다키아는 페르틸료의 가슴을 베어낸 것으로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거침없이 검을 내질러 페르틸료의 오른 어깨를 찔렀다.
푹.
검날이 뽑혀 나가자 새로운 핏방울들이 바닥을 적셨다. 다키아는 페르틸료의 목 끝에 검날을 들이밀며 빙그레 웃었다.
“프리디야씨한테 한 수 배워둔 게 생각보다 잘 먹히네요.”
그녀는 검으로 페르틸료의 목을 슬쩍 그어내며 말을 이었다.
“당장 펄리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세요.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당신을 죽인 다음 방을 하나하나 직접 뒤져보겠어요.”
으득.
“…감히.”
페르틸료의 동공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며 붉게 물들었다.
“감히!!!”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깨달은 다키아는 망설임 없이 검을 그었다.
푹.
목을 베어들어 가던 검날이 마치 아주 질긴 고기를 자르다 실패한 것처럼 틀어박혔다. 흰자마저 사라지고 완전히 선홍빛으로 뒤덮인 기괴한 눈이 다키아를 바라보았다.
“감히 날 상처입히고 겁박해! 이 시건방진 년이!!!”
페르틸료가 오른 손아귀를 휘둘렀다. 다키아는 그의 목에 박혀있던 검을 빼내 그 주먹을 막아냈다.
쾅!
주먹은 막아냈지만, 그 안에 담긴 거력에 의해 다키아의 몸이 붕 떠올라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다키아가 잽싸게 바닥을 굴러 일어나자, 어느새 사내의 등 뒤에는 한 쌍의 피막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피막 날개와 날카롭게 자라난 송곳니. 단색의 눈동자. 그 선명한 박쥐의 형상에 다키아는 사내가 인간이 아님을 깨달았다.
“수인족?”
아니, 말이 안 됐다. 용(龍)들을 제외한 그 어떤 수인족도 완벽하게 인간으로 의태할 수 없었다. 인간의 형태를 취한 수인족은 그 부위가 어디든 눈에 띌만한 외형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야만 했다.
페르틸료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검을 집어들며 으르렁댔다.
“네년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지금부터 내가 직접 네년의 멍청한 머리통에 교훈을 새겨주지.”
쾅!
페르틸료가 자리를 박차고 다키아를 향해 레이피어를 내질렀다. 다키아는 곧게 다가오는 레이피어를 향해 검을 맞댔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궤적. 그 궤적이 다시 한번 뱀처럼 레이피어를 타고 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두 검에 담긴 힘의 차이가 너무 컸다. 페르틸료의 뾰족한 검날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그대로 부드러운 피륙을 꿰뚫었다.
푹.
“큭.”
뾰족한 검날에 다키아의 어깨가 꿰뚫렸다. 다키아가 신음 채 내뱉기도 전에 무도한 폭력이 그녀의 배를 걷어찼다.
순간, 다키아는 너무나도 강렬한 충격에 잠깐 정신이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겨우 정신을 붙잡자 처음으로 보인 건 부서진 방의 벽이었다.
자신이 벽을 뚫고 복도에 처박혔단 깨달음의 뒤를 따라 잠깐 미뤄두었던 고통이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다키아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어딘가 부서진 것인지 왼팔을 제외한 전신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그나마 움직이는 왼팔마저 어깨가 한 번 꿰뚫린 탓에 꿈틀대는 것이 한계.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다키아는 이를 앙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페르틸료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키아를 향해 다가왔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택한 걸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넌 이제 내가 허락한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짖기만 해야 할 것이다.”
다키아의 입술이 힘없이 달싹였다.
“…송해요.”
페르틸료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다키아의 목줄기를 붙잡고 들어 올렸다.
“이제 와서 빌어도 늦었다.”
고통에 자연히 차오른 눈물이 다키아의 눈을 타고 흘러내렸다.
“죄송해요. 마르낙 사제님.”
마력이 요동쳤다. 요동친 마력은 곧 불티가 되어 다키아의 왼팔을 휘감았다. 페르틸료는 망설임 없이 다키아를 바닥에 내던지고 훌쩍 거리를 벌렸다.
“끝까지 발악하는군.”
다키아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왼팔을 움직였다. 피어난 불꽃이 그녀의 팔을 조준점 삼아 화려하게 날아갔다.
퍼엉!
천장을 관통한 불꽃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페르틸료는 실소했다.
“나는 이곳에 서 있다. 계집.”
번쩍.
환한 빛이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잠시 밝히고 사라졌다. 빛을 확인한 다키아의 고개가 바닥으로 꺾여 떨어졌다. 페르틸료는 완전히 정신을 잃은 다키아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죽으면 곤란하니 교육은 다음 기회로 미뤄두는 수밖에 없나.”
페르틸료가 쓰러진 다키아를 향해 손을 뻗던 그때,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그가 다시 한번 물러서기 무섭게 천장이 부서져 내리고 새하얀 무언가가 눈앞에 내리꽂혔다. 잔해 속에서 피어난 먼지가 가라앉자 페르틸료에 눈에 비친 건 몸을 웅크린 사제였다.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내는 조용히 다키아의 목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피투성이가 된 다키아를 향해 내뻗고 있는 그의 손가락은 끊임없이 떨렸다.
그 떨림은 다키아의 피부 너머로 미약한 맥동을 찾아내고서야 멎었다.
“하아.”
짧게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 사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머니, 도와주십시오.”
흐릿한 암녹빛이 흘러나와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부패의 어머니는 조용히 다키아의 몸에 가호를 불어넣어 그녀의 상처가 악화되는 것을 막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사제가 그제야 몸을 돌려 페르틸료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마르낙의 동공에서 암녹빛 정광이 거칠게 일렁였다.
“너냐? 이 빌어먹을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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