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35)
235 화 동류?
동류?
한참을 앞에서 홀로 걷던 부엉이 여인이 우뚝 멈춰 섰다.
“여기서 잠깐 대기.”
멈춰선 부엉이 로브 여인은 나와 릴리를 번갈아 바라보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뢰인 주거지 노출 허가 없이 불가능. 일단 먼저 가서 물어보고 오겠음.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름.”
“마음대로 해.”
릴리는 정말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듯이, 근처 담벼락에 기절한 데스페라시오를 기대놓고 옆에 자연스럽게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부엉이 여인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도망치지 말 것. 도망치면 내가 허풍쟁이가 됨.”
“알았어. 알았어. 절대 도망 안 칠 테니까 얼른 갔다 와. 그거 말할 시간에 출발했으면 벌써 도착했겠다. 안 그래?”
자그마한 빈정거림에 부엉이 여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는 무어라 한마디 더 하려고 하다 이내 한숨을 폭 내쉬고 자리를 떠났다.
릴리와 단둘이서 남자 나와 그녀 사이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애초에 저 까만 토끼 여자랑 만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단둘이서 대화를 해본 적도 없었기에.
릴리도 딱히 나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은 듯 벽에 기대앉자 멍하니 허공을 바라만 보았다.
고요한 가운데 까만 토끼귀만이 박자를 맞춰 바람에 살랑댔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부엉이 여인을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이름을 모르네. 뭐, 본인도 딱히 가르쳐주고 하지 않는 것 같으니 굳이 묻기도 그랬다. 이름을 교환할 만큼 좋은 상황에서 만난 적이 없기도 했고. 꼭 내가 뭔가 사고를 치거나 사고 터진 상황에서야 만났으니.
굳이 궁금한 게 있다면 그 주술이라는 게 어떤 원리로 발동하고 힘을 다루는지 조금 궁금했다. 혹시 내가 배워서 쓸 수 있다면 꽤 유용한 전투수단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전에 얼핏 스승님에게 듣기론 주술사들은 자기네들의 힘의 비밀을 노출하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니 내가 굳이 물어본다고 냉큼 대답해 줄 가능성 또한 영에 수렴하겠지.
“뭐해.”
상념 속으로 침잠하던 나를 끌어올린 건 릴리가 툭 던진 한마디였다.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새카만 눈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새카만 토끼귀를 한 번 쫑긋거리곤 턱짓으로 옆을 가리켰다.
“멍하니 서 있는데 딱히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냥 와서 앉지 그래? 너 내 시야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게 조금 거슬리거든.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굳이 서 있을 이유가 있어서 서 있던 건 아니었기에 릴리가 가리킨 대로 옆에 앉았다. 이왕 말문이 트인 김에 나는 옆에 주저앉아 툭 말을 던졌다. 그녀가 그랬듯이.
“데스페라시오의 궁극적인 목적은 뭡니까.”
“뭐?”
미간 사이로 자그마한 주름이 파였다. 그녀는 마치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살풋 인상을 찡그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나한테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데? 너 설마, 네가 묻는다고 내가 너한테 무조건 대답을 다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냥 물어본 겁니다. 되게 뾰족하게 구시는군요.”
“뭐래. 나한테 따로 물어본 의도가 뻔하잖아.”
그녀는 나를 흘겨보며 톡하고 말을 쏘았다.
“데스페라시오는 당최 그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데다 하도 능구렁이처럼 굴어대니까, 성격은 지랄 맞아도 얼굴에 다 티가 나는 내가 만만해서 정보를 캐내 보려는 거잖아.”
나는 살짝 놀랐다.
그녀의 말이 완벽하게 맞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천방지축으로 굴어대던 이 토끼 여인이 의외로 자기 자신을 꽤나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너 같은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 뭐만 하면 나한테 ‘데스페라시오는 뭘 하려는 거냐?’, ‘저 맛 간 놈이 이번엔 또 뭘 꾸미고 있냐?’, ‘이번에 터진 사건 데스페라시오가 저지른 거지 않냐?’하고 물어 대는 통에 내가 얼마나 귀찮은지 모르지? 아니, 그렇게 궁금하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빽하고 소리를 지른 릴리는 두 귀를 살짝 늘어뜨리곤 자그맣게 ‘저 개똥 같은 자식이 제 속내에 진짜 뭘 숨기고 있는지를 내가 어떻게 아냐고.’라며 중얼거렸다.
“데스페라시오가 당신에게도 모든 걸 다 말해주고 행동하진 않는가 보군요.”
“하?”
작게 숨을 뱉어낸 릴리가 아까보다 한층 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내가 아무래도 그녀가 진짜 거슬려 하는 부분을 제대로 찔러버렸나.
“너 마냥 속 빠진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 기분 살살 긁어내는 재주가 있네?”
“그냥 물어만 본 겁니다. 무슨 한마디를 할 때마다 너무 뾰족하게 대답하셔서 말을 꺼내기가 두렵군요.”
“지금 내가 민감하게 군다 이거야?”
“릴리가 예민하게 군다? 솔직히 영 틀린 말은 아니지요.”
“야!!!”
그녀가 고함을 지른 대상은 내가 아니라 방금 막 부스럭대며 자리에서 일어난 데스페라시오였다. 그의 얼굴에 덮인 눈조차 보이지 않는 새파란 가면 때문에 데스페라시오가 대체 언제부터 깨어나 있던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이거 다 네 잘못이잖아!”
데스페라시오는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대며 우득 소리를 내더니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릴리와 항상 같이 다닌 저는 똑같은 상황을 겪고도 이렇게나 여유롭고 마음에 평온이 가득한데, 릴리만 성격이 뾰족해졌다면 그건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그는 무척이나 짓궂은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릴리의 마음이 원래 뾰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냥 나가 뒤져!”
펄쩍 뛰어오른 릴리는 한 마리의 맹수처럼 데스페라시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능숙한 연계로 데스페라시오에게 끔찍한 관절기를 걸었다. 졸지에 목이 졸린 채로 관절기가 걸린 데스페라시오는 연신 바닥을 쳐대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항복! 항복! 진짜 항복입니다! 켁.”
릴리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데스페라시오를 조금 더 괴롭히고서야 그를 풀어줬다. 겨우 풀려난 데스페라시오는 거칠게 숨을 들이셨다 내쉬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아니, 이번엔 진짜 죽을 뻔했습니다.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면서 저 드높은 천상에 계신 그분을 만나러 반쯤 갔다 왔다니까요?”
“왕복으로 끊어줘서 고맙지? 왜? 불만 있어? 편도로 다시 보내줘?”
“아이고… 이래서 딸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더니… 제가 릴리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주 주먹만 할 때부터 등에 업고 젖동냥을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요!”
업어 키워? 저 둘이 부녀였던 건가? 그것보다 데스페라시오는 생각보다 나이가 있는 편인가?
주저앉은 데스페라시오가 땅을 치며 통곡하는 시늉을 하자 릴리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개소리하지마!!! 쟤 진짠 줄 알고 믿는 눈치잖아!”
데스페라시오는 그제야 키득키득 다시 웃어댔다.
“그래도 제 허리춤만 할 때 하도 업어달라 해서 자주 업고 다닌 것도 사실이지 않아요? 그때 아빠아빠하고 따라다니던 릴리는 참 귀여웠는데 말이죠.”
“그런 적 없거든!!!”
“두 분 부녀관계였습니까?”
내 질문에 데스페라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비슷하죠. 릴리가 어렸을 때, 제가 릴리를 데려다 길렀으니까요. 참 어렸을 때는 어른을 잘 따르고 순한 아이였는데 말이에요. 어쩌다 저렇게나…”
“전부 네 사고만 치는 가정교육 때문이겠지!!!”
“…훌륭하게 자랐는지. 정말이지 누가 키웠는지 몰라도 참으로 잘 키웠군요. 그 사람은 100점짜리 부모일 게 분명해요. 암요.”
“하?”
단숨에 자신의 칭찬을 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주억대는 데스페라시오를 릴리는 얼빠진 눈으로 바라만 보았다.
그는 여운을 음미하듯 몇 번 더 고개를 주억거리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마르낙 사제님은 정말 혼자 따라오셨군요.”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 있으니까요.”
“잘됐습니다. 아주 잘 됐어요.”
그는 만족스럽게 손가락을 까닥이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이제 보니 그 두드리는 모습이 아까 내게 자리에 앉으라던 릴리의 모습과 무척이나 분위기가 비슷했다.
“사제님하고는 이렇게 단둘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허심탄회하게, 주변에 동료분들 없이 말이죠.”
나는 엉덩이를 떼고 그의 옆으로 가서 다시 앉았다.
“제게 따로 단둘이 할 말이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할 말이라기보단 질문이 있다는 편이 정확하겠죠.”
“뭡니까?”
“물어보면 솔직하게 대답해주실 건가요?”
“질문에 따라 다르지 않겠습니까?”
무늬만 그려진 민둥 가면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데스페라시오가 자신의 가면을 툭툭 두드리자 매끈하던 가면의 한쪽 눈구멍이 열리며 처음으로 그의 눈이 드러났다.
깊게 침잠해 언뜻 보기에 검은색에 가까워 보이는 푸른 눈동자. 다만, 언뜻 빛이 비쳐들 때마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푸른 빛이 끊임없이 일렁댔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코 급하지 않게.
“사람이 서로 눈을 마주 보면 거짓을 말하기 어렵다고들 하지요.”
“그거야 사람 나름 아니겠습니까?”
“마르낙 사제님은.”
잠깐 말을 끊었던 그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어디까지 감수하실 수 있습니까?”
“그건 왜 묻는 겁니까? 그게 굳이 이렇게 꼭 단둘이 있을 때 물어봐야 할 주제라고 보긴 힘들어 보이는데요.”
데스페라시오의 눈이 휘어졌다.
“그거야 마르낙 사제님께선 동료분들 앞에선 워낙에 착한 아이로 남고 싶어 하시는 것 같길래요. 그래서 이렇게 오붓한 자리를 마련했죠.”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적 없고 싶으신 건 아니고요?”
묘하게 사람 속을 긁어내는 어투. 나는 오히려 그 태도에 미소가 피어났다. 이런 잡술에 화날 이유 따윈 전혀 없었으니.
“대체 뭘 묻고 싶으신 겁니까?”
“저는 마르낙 사제님의 이중적인 태도를 짚고 있는 거죠. 자, 제 말을 듣고 잘 생각해보세요.”
그는 손가락을 뻗어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 누구죠?”
“리베라티오의 여섯 선지자 중 하나?”
“아니, 아니죠. 그 대답은 틀렸어요. 정답은 이거죠.”
데스페라시오는 엄지로 자신의 가슴을 쿡하고 찍었다.
“당신이 그토록 아껴 마지않는 다키아 공녀의 가문, 그 이르멜 가문의 영지 베아투스에서 미소공이 대규모 학살을 일으키도록 등 떠민 인간쓰레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 따윈 벌레처럼 여기는 잔학무도한 악적. 세 치 혀를 나불대는 구제 불능의 악. 이게 바로 정답이에요. 아주 잘 생각해보세요.”
그는 천천히 손가락을 뻗어 내 가슴을 쿡하고 찔렀다.
“선을 좇아 비참한 이들을 구하고 구제 불능의 악을 베어내던 그 정의로운 마르낙 사제님은 어째서 저를 보자마자 베어버리시지 않았을까요?”
“…”
나긋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박자가 느껴지는 어조. 그는 마치 특이한 운율을 타듯 내게 말을 건네왔다.
“그 답은 아주 간단하죠. 바로 제가 쓸모가 있어 보였으니까. 사제님은 자신이 찾는 성물 얻기 위해서라면 이런 구제 불능의 악까지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즉…”
간단한 결론을, 그는 내뱉었다.
“저는 마르낙 사제님을 두 번째로 보자마자 직감했어요. ‘아, 이 사람. 나랑 말이 통하는 부류다!’하고요. 제 말이…”
그의 말보다 내 손이 빨랐다. 전조는 없었을 터인데도 새카만 토끼귀가 간격을 좁혔다. 나는 데스페라시오의 목을 틀어쥔 채 검집째로 릴리의 강철 장화를 후려쳤다.
까앙!!!
“컥!”
청명한 금속음. 충돌로 금속 장화가 약간 우그러들었다. 나는 지체없이 발로 릴리의 배를 걷어찼다.
“큭!”
낮은 신음과 함께 릴리가 뒤로 굴러갔다. 나는 가볍게 검을 털어 검집을 내던졌다. 스산한 푸른 검날과 함께 스승님이 선물해주신 검, ‘절망’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쾅!
목줄을 틀어쥔 데스페라시오의 얼굴을 담벼락에 거칠게 한 번 처박고는 그대로 절망을 그의 목에 가져다 대며 소리쳤다.
“네가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베겠다!”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튕겨 일어난 릴리가 다시 내게 달려들려다 우뚝 멈춰 섰다. 나는 데스페라시오의 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이것도 예상했나?”
“쿨럭.”
담벼락에 처박힌 탓에 푸른 가면 위로 자그마한 균열이 가 있었다. 데스페라시오는 잠깐 침묵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상상 이상이군요. 생각보다 훨…”
“아직 대화할 준비가 덜 된 거 같네.”
“네?”
쾅!
답은 필요 없었다. 나는 그대로 데스페라시오의 얼굴을 담벼락에 한 번 더 처박았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가면의 균열이 더욱 커졌다.
“그만둬!!!”
나는 릴리의 비명 속에서 데스페라시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솔직하게 말해봐.”
“쿨럭!”
가면 틈 사이로 흐르는 얇은 핏줄기들. 나는 데스페라시오가 아까 그랬듯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씨익 웃으며 속삭였다.
“아직도 나랑 단둘이 이야기하는 게 좋은 생각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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