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36)
236 화 다급한 협상.
다급한 협상.
“쿨럭!”
데스페라시오가 가면 뒤에서 한 움큼 토해낸 피가 반쯤 망가진 가면의 금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 모습을 느긋하게 관찰했다.
이대로 목을 베면 죽을까? 아니면 데스페라시오도 리베라티오의 선지자니만큼 펄리의 인형처럼 저 나름의 구명 수단을 가지고 있을까?
어쨌거나 답은 직접 베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꽤…”
검을 내리쳐보려던 찰나, 내 흐름을 끊고 데스페라시오가 적절하게 입을 열었다.
“…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군요.”
잠깐 홀로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데스페라시오의 대답이 방금 내가 물었던 질문의 답이란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
“같이 일할 상대라면 적어도 두부처럼 무른 것보다야 칼 같은 분이 낫지 않겠습니까? 쿨럭!”
한 번 더 각혈한 그가 ‘너무 칼 같아서 완전 깜짝 놀랐군요.’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딱히 너랑 같이 일할 생각이 없는데. 어차피 너 없어도 내 계획은 이미 진행 중이었어.”
정확하게는 펄리의 계획이긴 하지만.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겠습니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
“한마디를 안 지시는군요.”
“이제는 져줄 이유를 못 찾았거든.”
나는 틀어쥐고 있던 그의 목을 압박했다.
“이야기는 이제 끝?”
“아직, 아직입니다. 잠시만요.”
그 한마디를 끝으로 데스페라시오는 잠깐 침묵하며 무언가를 골똘히 고민했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건지 그의 답이 튀어나오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교단에 있는 다른 성물을 내어드린다는 이야기는…”
“나보고 그걸 지금 믿으라고?”
“…당연히 믿기 힘드시겠죠. 사실, 그쪽 성물들은 제 관할이 아니라서 제 마음대로 드리기도 애매하긴 해요. 이번 건의 성물처럼 말이죠.”
“기껏 생각한 게 그게 끝이야?”
“아니죠!”
그는 부서진 가면을 툭툭 두드리곤 나지막이 웃었다.
“그럼 다른 성물이 있을 거로 추정되는 지역을 알려드리는 거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
“그걸 아는데 너희가 회수 안 한 이유는?”
“저희도 정확한 장소는 몰라서 지금 찾고 있는 중이거든요. 아쉽게도 저희 리베라티오는 정확하게 성물이 있는 장소를 탐지하는 능력이 없어서요. 하지만 마르낙 사제님은 다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했다. 내게는 어머니가 있으니 지역만 특정된다면 어머니를 데리고 그 지역을 쏘다니기만 해도 성물을 찾을 확률이 무척 높았다.
하지만 내게 그럴 능력이 있는지 이 녀석이 어떻게 알았지?
가면 뒤에서 내 눈빛을 확인하기라도 한 듯 그는 잽싸게 입을 열었다.
“조직적으로 찾은 저희도 몇 개 못 찾은 성물을 쏙쏙 찾아 신성을 회수하신 걸 보면 나름의 방법이 있지 않나 당연한 추리를 한 것뿐이에요.”
“신성을 회수했다?”
“나름 저희도 성물이 온전한 상태인지 아닌지 정도는 파악할 능력이 있거든요! 사제님께선 여섯 개의 신성을 회수하셨잖아요. 이곳, 북제국 수도의 성물까지 회수하시면 일곱 개고요.”
내가 회수한 신성을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다니. 어딘지 모르게 느껴진 막연한 불길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너 말고도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지?”
“정확하게 마르낙 사제님이 신성을 회수하고 다닌다는 건 아직 저밖에 모르죠? 남은 신성의 갯수도 저밖에 몰라요. 왜냐하면 이건 제가 모시는 분께 들은 이야기니까요!”
그가 모시는 분이라면 저 드높은 천상에 기거하는 ‘악신’을 뜻했다. 신들 사이에 이미 이야기가 퍼진 건가? 아니면 저번의 ‘죽음과 안식의 나팔’ 때처럼 어머니께 관심이 있는 신들만이 아는 이야기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저번에 베아투스에 강림했던 ‘신’ 하나가 사라지는 바람에 신들의 이목을 끌게 된 건가?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
필멸자의 몸으로 천상의 일을 알아내기란 요원한 일이니 이렇게 내가 고민해봤자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은 단 하나도 없겠지만.
“두 곳 어때요?”
내 상념을 잘라낸 건 역시나 데스페라시오였다.
“두 곳이라니?”
“지금 제 목을 놓아주시는 대가로 한 장소. 마르낙 사제님이 이번에 하바스의 계획을 잘 막아주시면 또 한 곳. 총 성물이 있다고 추정되는 지역 두 군데를 알려드릴게요.”
“한 번에 두 장소를 다 말하라면?”
데스페라시오는 키득키득 웃곤 답했다.
“그럼 다 듣고 지금 당장 저 죽이실 거잖아요. 그거는 조금 곤란하죠.”
“네가 말한 두 지역이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은?”
그는 손가락을 뻗어 금 간 가면에서 입 부분을 두드렸다.
“저 거짓말 안 해요. 거짓말을 하면 제가 가진 ‘말’의 힘이 약해지거든요. 그리고 정보의 정확성은 제가 모시는 분을 걸고 맹세할게요. 그러니까 이제 이거 진짜 좀 놔주시면 안 될까요? 슬슬 숨쉬기가 힘들거든요.”
“…”
나는 잠깐 고민하고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첫 번째로 알려줄 지역이 어딘데?”
“남제국 에벨튼 일대요! 그 근처 지역들 사이에 있어요!”
“거기가 어딘데?”
대부분을 북부왕국에서 지냈던 내게 있어 남제국 에벨튼 일대라고 해봤자 어딘지 알 리가 없었다.
“남제국 수도를 중심으로 남동쪽에 있는 지역이에요. 지명은 알려드렸으니 지도를 사서 찾아서 보시던가 하면 될 거예요.”
“갔는데 없으면?”
“성물이 이동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데 꽤 오랫동안 같은 지역에 있다고 감지된 곳이라 없을 확률은 낮을 거예요.”
“이번 일이 다 끝나고 약속 지킨다고 맹세해.”
“맹세할게요. 제가 모시는 분을 걸고.”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붙잡고 있던 그의 목줄기를 놓아주었다.
“켈록! 켈록!”
그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는 사이, 내가 협박한 탓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릴리가 단숨에 거리를 좁히고 데스페라시오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제 뒷주머니의 손수건을 좀 꺼내주세요.”
“응.”
그녀가 데스페라시오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자, 그는 금 간 가면을 살짝 들추고는 자신의 얼굴을 닦아냈다. 그렇게 그가 얼굴을 닦는 사이, 릴리는 나에 대한 적의를 맹렬히 드러냈다.
“이 나쁜 개자식아! 우리가 너한테 뭘 그리 잘못했다고 사람을 이렇게 만들어!!!”
나는 그녀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대충 대꾸했다.
“베아투스의 사람들은 뭘 그리 잘못했길래 그렇게 죽어 나가야 했습니까?”
“말 똑바로 해! 그건 나랑 데스페라시오가 한 게 아니라 미소공, 그 자식이 자신의 의지로 저지른 일이지! 우리는 그냥 그에게 그럴 능력을 줬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 쪽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다?”
“아니,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겠지!”
릴리는 새카만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일에 대한 처벌을 내릴 권리는 네게 없어! 네가 뭔데? 네가 이 세상의 사법관이라도 돼? 네가 판단하면 아 우리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따라야 해? 네가 판단하면 그게 무조건 옳아? 응?”
나는 느긋하게 바닥에 떨어진 검집을 주워들어 절망을 검집에 집어넣으며 대꾸했다.
“그런 합리적인 논리와 판단을 지금 할 게 아니라 베아투스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전에 했어야지요. 이미 다 저지르고, 정작 피해자들은 다 죽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본인들에게만 합리적인 판단과 타당한 절차를 바라는 것입니까? 스스로 생각해도 염치가 너무 없게 느껴지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검집에 집어넣은 절망을 툭툭 두드렸다.
“정 꼬우면 덤비십시오. 이번엔 사정 봐주지 않고 머리를 날려드릴 테니.”
간단한 도발에 릴리의 새카만 동공 한가운데서 자그마한 불티가 튀었다.
“그래, 이 개자식아! 어디 제대로 한 번 붙…”
“릴리, 그만 해요. 일단 좋게 해결됐잖아요.”
어느새 새 가면을 뒤집어쓴 데스페라시오가 릴리를 말렸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릴리의 화를 완전히 터뜨려 버렸고.
“뭘 그만해! 나는 이제 대체 네가 왜 저놈한테 그리도 설설 기는지 모르겠어! 왜냐하면 네가 항상 나한테 전부 설명을 안 해주니까! 네가 이딴 식으로 구니까 항상 나만! 나만 맨날 멍청하고 버릇 없는 데다 다혈질인 쓰레기 년이 되지!!!”
커다란 눈망울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차올라 흘러넘쳤다.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와 데스페라시오를 번갈아 보았다.
“이젠 다 싫어! 너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다 꼴도 보기 싫다고! 다 꺼져버려!”
완전히 화난 릴리는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 기세였으나, 내가 저 릴리를 달랠 이유는 단 반 푼어치도 없었다. 데스페라시오에게나 있었지.
데스페라시오가 당장에 뛰쳐나가려는 릴리의 다리에 매달려 그녀를 무어라 달래는 사이, 먼저 떠나갔던 부엉이 여인이 돌아왔다.
그녀는 저 멀리서 길길이 날뛰는 릴리의 모습을 보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사소한 다툼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갔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상함.”
부엉이 여인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쪽 책임자가 있는 곳으로 갔음. 그런데 지금 은신처에 아무도 없음. 진짜 한 명도 없음. 사람만 깨끗하게 증발함.”
“다들 바빠서 잠시 어딜 간 건… 아니겠군요.”
부엉이 여인의 고개가 도리도리 움직였다.
“어딜 가더라도 한둘은 남음. 이건 지극히 비정상적임.”
“훌쩍.”
대체 어떻게 달랜 것인지 릴리는 새카만 한 쌍의 토끼귀를 축 늘어뜨리고서 데스페라시오의 뒤에서 훌쩍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가온 데스페라시오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역시, 우려했던 일이 터졌군요. 혹시 그 은신처로 저희를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짚이는 것이 있음?”
“제가 생각한 게 아마 맞을 겁니다.”
“그게 무엇?”
“흠.”
데스페라시오는 짧은 침음성을 흘리곤 답했다.
“아무래도 제가 늦장을 부리는 사이에 맹신의 하바스쪽에서 먼저 움직인 거 같군요. 일단 안내해주시죠. 아직 늦지 않았다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
부엉이 여인은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순히 우리를 은신처로 안내했다. 데스페라시오는 은신처에 들어서자마자 이곳저곳을 유심히 살피다 내게 말을 걸어왔다.
“리베라티오에서 사람이 필요할 때 주로 어디서 구하는지 아세요?”
나는 그의 등을 보며 답했다.
“그 ‘사람이 필요하다.’는 문장의 뜻이 손이 부족해서 사람을 구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는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제가 말한 사람은 일손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피와 살에 가깝죠. 대개 그런 급진적이고도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인간 재료를 수급하는 데 있어서 저희 조직이 누구를 납치할 거 같습니까?”
“아무래도 극빈층이 바로 그 대상 아닙니까? 법의 망 바깥에 있는 데다, 아무도 관심이 없어 한둘 사라져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데스페라시오는 몸을 돌려 날 마주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뇨. 마르낙 사제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런 극빈층이 한둘 사라져도 관심이 없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만, 그런 사람들에게만 유독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또 있어서 잘못 걸리면 진짜 귀찮아집니다. 특히나 순례 중인 사제분들 중에는 소외된 계층에 관심이 깊은 분들이 많거든요.”
푸른 가면이 흔들렸다. 그는 바닥을 손으로 한 번 쓸고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희 리베라티오가 주로 노리는 대상은 그런 하층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위치가 있으면서 한둘쯤 사라져도 절대 신고하지 않을 자들을 노리죠. 바로 저 스스로 법의 망 바깥으로 걸어 나간 자들을요.”
뒷골목 패거리나 음지의 조직을 뜻하는 건가. 하긴 누군가 알아챌지도 모르는 자들과 스스로 사라진 걸 감추는 이들 중에서 고르라면 후자를 고르는 것이 맞았다.
비록 후자의 조직들은 나름의 힘을 갖추고 있어서 납치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내가 여태 봐온 리베라티오의 무력이라면 그들에게 있어서 극빈층의 무력이나 뒷골목 패거리의 무력은 비슷할 테니.
그런 의미에서 반황제파 조직의 인사들을 납치했다? 반황제파의 윗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했으면 했지 자신들의 은신처 위치를 까발리면서 황제의 손발들에게 사람이 사라졌음을 고할 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군요.”
“하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지금의 대량 납치는 너무 급진적이에요. 이거 아무래도…”
그는 바닥을 훑던 손을 털고 일어나 나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진짜 그릇이 완성되기 일보직전인가 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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