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293)
293 화 솜니아
솜니아.
이 자식 이거 음흉한 놈이네?
하는 말하고 행동이 전혀 맞질 않았다.
그가 한 나와 싸우고 싶지 않다는 말이 정말 진실이라면 애초에 내가 묵고 있던 방에서 쥐를 미리 치웠어야 했다.
아까 쥐새끼를 붙잡고 말했을 때 내 말이 전해진 걸 보면 청각의 공유는 되는 게 거의 확실했으니.
거기다 코렌틴에서 칼라게인이 쳐놓은 난장판 때문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는데 내가 코렌틴을 그 꼴로 만든 범인 중 하나라는 걸 안다?
이 자식은 그 광경을 직접 ‘봤던 게’ 분명했다. 내 얼굴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내가 달인이라는 사실은 칼라게인이 주변을 대충 다 날리고 난 뒤에 드러낸지라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내가 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이렇게 무방비하게 내게 거리를 허락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아니, 내가 달인이라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다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
여튼 이 두 가지 사실로 미뤄보아 녀석의 의도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했다.
저 하멜이라는 사내는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면서도 일부러 방에 쥐들을 풀어서 날 자극한 다음 이곳으로 유인했다.
도시 하나 규모를 장악할 정도로 수많은 쥐새끼들을 풀어놓은 데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참 떨어진 도시에서도 자신의 능력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악신의 숭배자라.
대충 녀석의 정체로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이미 녀석이 의도한 공간 속으로 들어왔다는 것.
베어야 하나?
나는 힐긋 시선을 옮겨 내 옆에 서서 쥐 구이 꼬챙이를 든 채 먹을까 말까 고민하는 솜니아를 바라보았다.
베기로 결정할 경우, 일검에 녀석을 일격사 시키지 못하면 솜니아는 무조건 죽는다.
주변이 뻥 뚫린 칼라게인 때와는 달랐다. 이곳은 도시의 지면 아래에 있는 하수도. 당연히 우리의 머리 위엔 라투스 시의 거리와 건물들이 있었다.
혹시라도 전투의 여파로 천장이 무너지기라도 했다간 그 위에 있는 것들도 모조리 쏟아져 내리겠지. 추가적인 붕괴는 당연한 덤이고.
거기다 싸우는 와중 설령 천장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해도 녀석이 부리는 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쥐 떼. 우리는 이곳으로 걸어오면서 시야에 닿는 모든 구역에 쥐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날 이곳으로 유인한 녀석이라면 절대 내 일행으로 보이는 솜니아가 빠져나가도록 방관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내 머리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솜니아가 멀쩡히 빠져나간다는 경우의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하, 이 짐덩이를 어쩌면 좋지?
나는 솜니아의 손에 들린 쥐구이를 뺏어 그대로 으적으적 씹어먹었다. 역시나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졸지에 쥐구이를 뺏긴 솜니아가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뭘 보냐는 듯이 솜니아를 한 번 째려봐주곤 쥐구이를 으적거리고 있는 하멜을 향해 말했다.
“찾아온 용건도 해결됐으니 이제 그만 간다. 잡지 마. 죽여버릴 거니까.”
마음 같아선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특별히 한 번 봐주는 줄 알라고.
하멜은 나를 향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쥐 구이가 많이 남았습니다. 좀 드시고 가시죠.”
네놈이 뭔 짓을 할 줄 알고 여기 더 있어.
“맛없으니 됐어.”
“이상하군요.”
하멜은 쥐구이를 한 입 더 베어물어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나 맛있는데 말이죠.”
발소리.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발소리가 하수도 너머에서 들려왔다. 이 은신처의 코앞까지 쳐들어온 자들은 그대로 문을 박살 내며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급하게 달려오느라 여기저기 오물 범벅인 갑옷들. 검을 들고 들이닥친 이들은 굉장히 잘 무장한 일련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나와 하멜을 보더니 지체 없이 소리쳤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여라!!!”
왜 날 이곳으로 끌어들였는지 이제야 알겠네. 어떻게든 나와 저들을 얽히게 하려는 건가. 솜니아는 잽싸게 내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정체불명의 무리를 향해 말했다.
“쥐 푼 놈 찾는 거면 저놈만 죽여.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하멜과 검은 장발의 사내! 전부 사전에 들었던 인물들이다! 당장 죽여!”
하수도의 악취를 풀풀 풍기는 사내가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왔다.
“아니, 나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니까!!!”
나는 발로 사내의 손목을 걷어차 검을 튕겨낸 뒤, 솜니아를 집어 들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하멜! 너 이 자식! 빨리 니 똥 안 치워?”
“저는 잠깐 할 일이 있어서 이만.”
찍찍찍!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수많은 쥐 떼가 하멜의 몸을 뒤덮어 거대한 쥐들의 탑이 되었다. 사람 크기의 쥐의 탑은 만들어지는 것보다 더욱 빨리 무너져내렸다.
텅 빈 자리.
하멜이 마술처럼 자취를 감추고 쥐들은 틈으로 산산이 흩어져 도망쳤다.
결국 이 장소에 남은 건 일련의 무장한 사내들과 나, 그리고 솜니아 뿐.
게다가 이 은신처는 입구가 한 개뿐이라 어디 도망칠 구석도 없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하멜을 멍하니 바라보던 사내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내게 외쳤다.
“하멜이 어디로 갔지!!!”
“내가 알면 찾아가서 죽였지! 너희야말로 내가 딱 말한다. 한 번만 말할 거니까 귀 열고 딱 들어.”
허리춤에서 절망을 꺼내 빠르게 한 번 휘둘러 바닥에 선을 그려냈다. 나는 바닥의 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 명이라도 이 선 넘으면 너희 전부 죽일 거야. 도망쳐도 찾아가서 죽일 거야. 살려달라고 빌어도 무시하고 죽일 거니까 네 발에 네 동료들 목숨까지 걸렸다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한 명이 선을 대뜸 넘으려고 해서 그대로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차서 뒤로 차 날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기절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사내들을 향해 외쳤다.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라고 했잖아! 이 개자식들아! 1초도 고민 안 하고 달려들려고 하면 어떻게 해? 응? 다들 나이 좀 있어 보이는데 너네 집에 부인이나 자식 없어? 가족을 좀 생각하라고!”
내 진심이 담긴 외침은 안타깝게도 사내들의 가슴에 와닿질 못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꼴을 보니 한 번에 선을 넘어 날 치려는 게 확실했으니까.
좋아. 그럼 어쩔 수 없이 다 죽이는 수밖에 없지. 괜히 문제가 커지면 더 귀찮으니까 한 명도 살려두지 말고.
그리고 여기서 나가면 일단 감히 날 가지고 놀려고 한 하멜놈도 죽여버린다.
절망의 손잡이를 꽉 쥐던 그때, 뒤이어 나타난 제법 나이 있어 보이는 사내가 나와 솜니아를 보곤 눈을 크게 떴다.
“…솜니아님?”
“…체키타 경?”
경? 경이라면 기사란 이야기인데.
기사가 여길 왜… 오긴 왜 왔겠어. 쥐새끼들 풀어서 괴롭히는 놈 잡으러 왔겠지.
“모두 일단 검을 집어넣어라.”
늙은 기사의 말에 사내들이 검을 집어넣었다.
그제야 나는 절망을 다시 검집에 밀어 넣었다. 나는 솜니아에게 물었다.
“누군데?”
“…예전에 우리 가문에 충성하던 기사. 히르멘툼이 자기 눈에 거슬렸는지 트집 잡아서 코렌틴에서 쫓아냈어.”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솜니아님.”
솜니아는 체키타 경을 보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 못 본 거로 해줘. 아직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
“예? 어째서… 일단 알겠습니다.”
체키타는 고개를 돌려 자신과 같이 온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도 함구하도록.”
“예.”
“예.”
“예.”
일제히 이어지는 대답. 그 후, 그들 중 한 사내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체키타 경, 저자는 체포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사전에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하멜 그 자식한테 검은 장발의 남자가 동료로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다 해결된 일을 다시 어렵게 만들려는 사내를 노려보며 말했다.
“딱 봐도 몰라? 나를 어떻게든 엮으려고 하멜 그놈이 거짓 정보를 퍼뜨린 거잖아. 너 빡대가리야?”
“뭐라고?! 지금 누구 앞에서 무례한 말을 지껄이느…”
빡!!!
걷어차여 튕겨 나간 사내가 벽에 부딪히곤 그대로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겨우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흉흉해지며 다른 사내들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들을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눈 좀 예쁘게 안 뜰래? 약골들 주제에 자존심만 살아서는. 너희 지금 흥분해서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본데 저기 기절한 두 놈 전부 나한테 한 대 맞고 기절한 거 잊었어? 그럴 실력도 안 되면서 뭘 자꾸 날 엮으려 드는 거야. 너희같이 수준 떨어지는 놈들 다 죽이고 여기 빠져나가는 거야 일도 아닌데 같이 대화해주니까 내가 만만해? 응?”
내 말에 화라도 난 듯이 사내들은 사내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당장에라도 터질듯한 긴장감이 사방을 조여왔다.
솜니아가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그녀는 날 올려보며 말했다.
“…그만해.”
“뭘 그만해라 말라야. 시작은 저쪽이 했어. 저 멍청한 빡대가리 자식들이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을 못 하잖아. 안 그래?”
빡대가리라는 단어에 사내들이 더욱 뜨거운 눈빛으로 날 노려보았다. 내겐 저런 뜨거운 눈빛들이 필요 없는데도.
나는 그들과 눈싸움하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분명 여길 덮친 걸 보면 소수정예로 타격하려고 기사급 정도만 데리고 온 거 같은데. 기사들이 움직였으면 당연히 병사들도 움직였겠지? 혹시나 놓치면 다른 하수구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걸 잡아야 하니까? 근데 병사랑 기사들을 풀면 어떻게 되겠어? 원래 저들이 있어야 할 곳이 비겠지. 근데 하멜이 저놈들이 나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뺐네?”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들이 드디어 무언가에 생각이 닿은 듯 보였다. 나는 그들의 생각에 마침표을 찍어주었다.
“그럼 나랑 이렇게 쓸데없이 입씨름하며 진을 빼는 게 아니라 당장 한 명 올려보내서 다른 사람들한테 하멜이 갈지도 모른다고 경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냐?”
물론, 그의 정체가 내가 짐작한 것이 맞다면 이 도시 전체가 달려들어도 하멜을 죽일 수 없겠지만.
아마도 하멜 그 자식한테 있어서 이 일련의 행동은 꼭 필요해서 한 것이 아닌 그저 일종의 유희에 가까운 것일 확률이 높았다.
다음에 마주치면 꼭 죽여야지 진짜.
다행히 체키타 경이라는 노기사는 제법 눈치가 있는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지체 없이 다시 올라간다.”
“그럼 저자는 어떻게 합니까?”
체키타는 내 눈을 잠깐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일단 내버려 둔다. 당장은 사라진 하멜을 추적하는 게 우선이다.”
사내들은 저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더니 마지못해 ‘예.’라고 답하고 우르르 물러났다. 체키타는 솜니아를 보며 말했다.
“그럼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 저는 먼저 물러나 보겠습니다.”
“…응.”
체키타마저 떠나고 솜니아와 나는 악취 가득한 하수도를 빠져나왔다. 하수도를 빠져나오자마자 솜니아는 ‘하압.’ 하고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신발 바닥을 길바닥에 긁어 오물을 최대한 떨어뜨렸다.
나도 솜니아를 따라 바닥에 신발을 문대고 있자 솜니아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었잖아. 그 상황에서 굳이 시비를 걸 이유는 없었어. 가만히만 있었어도 체키타가 문제를 해결해줬을 테니까.”
솜니아는 아까의 상황에 대해 내게 지적해왔다.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답했다.
“너야 이유가 없지만 나는 있었어.”
“…가만히 보면 꼭 싸우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보여.”
“맞는데? 나는 그놈들이 화나서 내게 덤벼들길 바랐어.”
“…왜?”
나는 절망의 손잡이를 툭 치며 답했다.
“덤비면 마음 편히 죽여도 되잖아.”
“…나는 이해가 안 가.”
솜니아는 고개를 올려 날 마주 보았다. 탁한 우윳빛 두 눈에 내 얼굴이 비쳐 보인다.
“…그럼 그냥 죽이면 되잖아? 왜 굳이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해? 왜 매번 죽이기 전에 구구절절 경고하는 거야? 마치 죽이기 싫다는 듯이?”
그녀는 한 걸음 더 내게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갸웃했다.
“…너한테 사람들의 죽음이 필요한 거 아냐? 그것도 아주 많은 죽음이 필요한 거 같아 보이는데. 이유를 따져가면서 골라 죽일 이유가 있어?”
“닥쳐.”
솜니아는 내 말을 무시하며 재잘재잘 말을 떠들어댔다.
“…아까도 그래. 하멜, 그자는 처음부터 뻔히 들킬 거짓말들만을 줄줄이 늘어놓았어. 그런데도 너는 검을 뽑지 않았지. 왜? 거기서 싸우면 내가 죽을 게 확실하니까.”
마치 내 머릿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솜니아의 말들은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말로는 절대 구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아까 그 기사들이 들이닥쳤을 때도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감싸며 기사들을 견제했어. 왜? 그게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너는 내가 죽지 않길 바랐으니까.”
“닥치라고!”
솜니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솜니아는 캑캑대면서도 내 손아귀를 붙잡고서 말을 내뱉었다.
“…네 방식은 너무 물러터졌어.”
진실로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화가 났고.
“너, 목숨이 몇 개 더 있기라도 해? 여기까지 날 자극하는 이유가 뭐야? 응?”
새하얀 두 눈이 달빛에 비쳐 아무런 감정 없이 유리구슬처럼 빛났다. 솜니아가 날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나는 있을 곳이 필요해. 이왕이면 이 나라만큼 강한 쪽으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나도 끼워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많이 죽일 수 있어.”
“당장 내 손아귀 하나 못 푸는 그 몸으로?”
솜니아는 입을 벌리더니 그대로 자신의 멱살을 붙잡고 있는 내 팔뚝을 물어뜯었다. 진심으로. 내 질긴 피부에 얕게 이가 파고들고 핏방울들이 흘러내렸다.
“그런다고 내가 놓아줄 거 같아? 애초에 이딴 상처는 눈 한 번 깜빡하면 나아.”
“퉤.”
솜니아는 입안에 머금고 있던 피를 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에 내뱉더니 나를 향해 들이밀며 말했다.
“…하수도에서 기사 수십도 네게 못 입힌 상처를 방금 내가 냈어. 이 약한 몸뚱어리로.”
“그래서?”
“…때로는 한순간의 적절한 판단이 기사 수십보다도 더 효과적일 수 있어.”
피가 묻은 새하얀 손을 꼭 쥔다. 솜니아는 피 묻은 주먹을 내게 뻗었다. 꽉 쥔 손아귀에서 솜니아의 침과 뒤섞인 내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너보다 더 잔인하고, 더 비인간적이고, 더 무감정한 사람이야. 나는 충분히 네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어.”
저 말을 하는 그 순간에도 솜니아의 두 눈은 마치 유리알처럼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 눈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솜니아는 나를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다. 그래, 그녀는 내게 그 어떠한 종류의 친애의 감정도 느끼지 않겠지.
그저 지금의 자신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칩 삼아 도박을 걸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 한참을 함께한 끝에 어느 날 내가 죽더라도 솜니아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겠지.
그 점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붙잡고 있던 솜니아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바닥에 착지한 솜니아는 잠깐 휘청이곤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꼬맹이 주제에 주제넘게 까불지 마. 제 손으로 직접 사람 하나 죽여본 적 없으면서.”
“…그래서 내 제안에 대한 네 대답은 뭐야?”
나는 잠깐 고민한 끝에 대답했다.
“보류.”
그 대답에 솜니아가 톡하고 날 쏘았다.
“…역시 판단이 구려.”
콩!
내 매서운 꿀밤이 건방진 솜니아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아야!”
솜니아는 그제야 진짜 아이처럼 비명을 질렀다.
***
다음날, 영주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우리 숙소를 병사와 기사들이 포위했다. 어젯밤 마주쳤던 체키타 경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말했다.
“하멜 추적에 협조해주시오.”
그러자 솜니아가 내 귓가로 작게 속삭여왔다.
“…다 죽여. 너는 그럴 수 있잖아.”
나는 귓가에서 악마처럼 속삭이는 꼬맹이 사이코패스 솜니아의 얼굴을 쭉 밀어내고 체키타에게 대답했다.
“협조할게. 마침 그놈을 찾아내서 죽여버릴 참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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