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gressed internation Students makes good money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꽃반지
“그러니까 김 비서 말은….”
제임스 황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그는 예상치도 못한 말을 김 비서에게 전해 들었다.
이 사태를 모략한 사람이 장 비서 혹은 믿기진 않지만 황제명 회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인물은 정말 의외였다.
“정확하진 않습니다. 더 확인을 해 봐야겠죠. 하지만….”
김 비서는 제임스 황이 주최 측에 확인하러 갔을 때 아군 투자자에게 연락을 취했었다.
전략적으로 그 투자자는 일부러 차현식 대표에게 투자하겠다고 선언했었는데, 그게 어찌 보면 실마리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 투자자의 말에 따르면, 어제 급하게 로드윅 바네트의 대리인에게 연락이 왔고, 반협박 비슷한 제안을 받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했다.
김 비서는 그게 어떤 제안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진정으로 궁금했던 건 왜 난데없이 로드윅 바네트가 나서서 이런 짓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로드윅 바네트.”
“네. 맞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건 저도… 잘….”
바네트 가문과 황인욱 사이에서 혼담이 오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황인욱 측의 일방적인 프러포즈에 가까웠다.
“아마 이번 혼담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뜻이 아닐까요?”
“혼담을? 갑자기?”
“그게 아니라면… 예상이 전혀 되질 않습니다.”
“흐음.”
“제 예상이 아마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솔직히 나도 그게 가장 신빙성 있다고 생각은 해. 그런데… 너무 이상하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는데. 심지어 황제명 회장님이 직접 호감을 표시했는데도 콧방귀도 끼지 않던 양반이 갑자기?”
황제명 회장은 시아 바네트의 팬이었다.
그녀의 그림을 사랑했고,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의 손자와 결혼만 할 수 있다면 그는 무엇이라도 할 기세였다.
그렇기에 대기업의 총수가 직접 먼저 연락하기도 했었는데.
로드윅 바네트 쪽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밀당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
“그게 의도였다면 성공했네요.”
“뭐?”
“지금 안달 나시지 않으셨나요?”
“내가?”
“네.”
“난 김 비서한테 말고는 안달 안 나.”
“…….”
김 비서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제임스 황은 언제나 그렇듯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네, 어쨌든. 로드윅 바네트 쪽이란 건 거의 확실한 거 같습니다.”
“흐음. 그럼 직접 확인하는 방법이 있지.”
“예?”
“시아 바네트. 그녀가 여기 있어.”
“아!”
“가지 않았다면… 아마 내 생각엔 가지 않았을 거 같으니까. 직접 가서 물어봐야지.”
제임스 황은 차현식과 시아 바네트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기류를 기억했다.
그리고 오늘 그 둘은 쉽사리 서로 헤어지지 못하리란 것도 그를 알 수 있었다.
“네, 그럼 저도 좀 더 정보를 모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다녀올게.”
* * *
“제가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최기명 변호사님.”
“네?”
“그만 됐어요.”
분개한 최기명 변호사가 어떻게든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알아내겠다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아니…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억울하죠.”
“그러면 찾아내야죠.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걱정이 있어요.”
“네? 그게 무슨…?”
“해결이 되는 걱정과 그렇지 못한 걱정. 지금은 후자입니다.”
해결이 된다면야 나도 최선을 다해서 뭐라도 하겠다.
하지만 지금 누가 우리 모르게 뒤에서 작업을 했는지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더 억울하기만 하겠지.
힘이 없었고, 눈치가 없었던 우리를 책망하면서.
그러기보다는 그냥 잊고 빨리 다음으로 전진하는 게 더 낫다.
“아.”
“아시겠죠? 최기명 변호사님도 고생하셨는데 집에 돌아가면 며칠 푹 쉬고 머리 좀 식혀요.”
“죄송합니다, 대표님.”
“아니에요. 최기명 변호사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하아… 제가 좀 이성을 잃었었나 봐요.”
“이해해요.”
최기명 변호사는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개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결 낫네요. 저는 그럼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그래요. 며칠 쉬어요.”
최기명 변호사가 나가자 그걸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홍미나.
무언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오빠도 쉬어야지.”
“그래.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자.”
“그런 의미로 우리 마라 보러 갈래?”
“마라?”
종종 홍미나 집에 들러 마라 구경하면서 쉰 적도 몇 번 있었다.
그게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홍미나를 더 편하게 대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 이후로는 더는 홍미나 집에 가지 않았다.
“응. 마라 보면서 같이 밥도 먹고. 원하면 하룻밤 자고 가도 돼.”
“아니. 괜찮아. 난 그냥 집에서 좀 쉴게.”
“흐응~ 그래 뭐.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홍미나는 순순히 물러섰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녀가 포기한 건 아니었다.
틈만 나면 내가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적극성으로 다가오니까.
“나갈까?”
“그래.”
투자 설명회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문득 아까 했던 약속이 생각났다.
정시아와 만나려고 했었는데.
그런데 난데없는 사태가 일어나 버려서 깜빡하고 있었다.
이미 시간도 많이 늦었고, 아마도 돌아갔겠지.
“어? 여기서 또 보네요?”
“황인욱 대표님?”
홍미나가 당황한 눈빛으로 제임스 황과 그 옆에 서 있는 정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아… 구나?”
그녀는 씁쓸하게 시아를 불렀다.
그러자 시아도 당황했는지 눈인사만 잠깐 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안 그래도 차현식 대표님한테 할 말이 있었거든요.”
“저한테요?”
“네. 차 대표님도 결과에 의문이 있으실 테니까요.”
결과라는 말에 정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처음엔 왜 저러나 싶었다.
그냥 이 상황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임스 황의 설명을 듣자 그녀가 왜 그토록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바네트 쪽에서 수를 쓴 거다?”
“저희가 내린 결론은 일단 그렇습니다.”
정시아가 이렇다 할 변명조차 하지 않는 걸 보니 제임스 황의 추측은 정확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와 홍미나가 나오기 전에 이미 확인 절차도 다 거친 모양이다.
제임스 황이 그저 예상하거나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 차서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확실한 증거도 있다는 뜻이니까.
그는 절대로 추측이나 예상으로 저렇게 단호하게 단정 짓는 사람이 아니니까.
“음… 저는 이만 빠져야겠네요. 홍미나 이사님?”
“네? 아아. 네.”
“같이 눈치껏 빠져 줄까요?”
제임스 황이 눈짓하자 홍미나는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제임스 황 쪽으로 붙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정시아에게 볼일이 있었다.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대표님.”
“어. 미나야. 나중에 보자.”
“네….”
* * *
부우웅.
슈퍼 카의 굉음과 함께 도로를 질주한다.
정말 오랜만에 타는 그녀의 차다.
여전히 운전은 잘하네.
몇 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심지어 머리카락 색도 꾸준히 은발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머리칼이 조금 더 길었나?
여전히 하얀 피부에 내가 알던 정시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항상 당당하고 짓궂던 그녀였는데.
전혀 다른 사람과 있는 것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잘… 지냈어?”
시작은 시아가 먼저였다.
“나야 뭐.”
나는 얼버무렸다.
“미안해. 오늘 일은.”
“아냐.”
어색한 침묵.
“저기….”
시아는 망설인다.
평소의 그녀라면 거침없이 말했을 테지만.
“얼마나 남았어?”
“어? 아. 한… 30분?”
우리는 로드윅 바네트가 있는 호텔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 그녀의 아버지도 이곳 호텔에서 지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지금 당장 로드윅 바네트를 만나게 해 달라고.
왜 만나는지는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그녀도 딱히 물어보지 않았고.
“저기….”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
“잠시만.”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저기서 멈출까?”
생리적인 현상 때문에.
“왜?”
그녀는 의문을 품었다.
평소라면 그냥 솔직하게 얘기했겠지만.
지금은 조금 어색한 상황이고 좀 진지해서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왜 그러는데?”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을 재촉하는 시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내뱉고 말았다.
“화장실.”
고속도로 쉼터에 들렀다.
화사한 꽃들이 피어 있는 들판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그곳에 덩그러니 화장실이 있었다.
시간대가 붐빌 때가 아니라서 그런지 쉼터에는 우리뿐이었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볼일부터 해결했다.
시원함과 상쾌함을 동시에 느끼며 밖으로 나오자 그녀는 들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뿐이라고 생각했다.
행동에 옮길 타이밍.
그래, 나는 결심했다.
그리고 이 결심은 얼마 전에 홍미나와 한 대화에서 내린 결심이었다.
* * *
투자 설명회 며칠 전.
차현식과 홍미나가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던 당시.
“가, 갑자기 왜 그래… 두근거리게.”
홍미나는 차현식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붉혔다.
사람은 누구나 희박한 확률에 거는 기대를 포기하지 못한다.
혹시 내가 되지 않을까?
오늘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로또든,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든.
홍미나도 그랬다.
그의 얼굴을 보면 무슨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올 건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항상 수동적이고 다가오는 사람과의 인연을 당연시 여겼기 때문에.
가장 중요할 때 그녀는 가장 원하는 사람을 빼앗기는 경험을 했다.
당연히 나에게 다가와 주겠다고 안일하게 생각하다가.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는 그녀의 모든 노력과 마음을 쏟아서 쟁취해 보고자 그의 곁에 남아 있었다.
언젠가는 그녀의 마음을 차현식도 알아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서.
그리고 드디어 차현식으로부터 진정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늘이었다.
이렇게 입 밖으로 내뱉어 준 건 오늘이 처음이었으니까.
자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럼에도 차현식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홍미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나 이제 망설이지 않으려고.”
“…….”
“인연은 찰나잖아. 준비되기만을 기다렸다가는 다 놓쳐 버릴 거야.”
“…그거 내가 한 말이잖아.”
“그래. 너를 통해서 배웠어. 고마워, 홍미나.”
홍미나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다.
드디어 차현식이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걸 직접 말로 내뱉는 순간이었는데.
그것으로도 차현식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부족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란 걸 알고 있음에도.
인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음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차현식을 붙잡고 싶었다.
단 한 순간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차였다.
항상 모든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받던 홍미나.
향년 25세에 난생처음으로 남자에게 차여 본다.
“나 진짜 차인 거네?”
“미안해. 나한테는 진짜 정시아뿐인가 봐.”
“으응. 알겠어.”
홍미나는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돌아간 차현식.
홀로 남겨진 홍미나는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 * *
“정시아.”
“어?”
바람에 날리는 은발을 쓸어 넘기며 나를 바라보는 정시아.
그녀의 모습을 보자 더더욱 확신했다.
이제 더는 망설이거나 기다리지 않겠다고.
준비되기만을 기다렸다가는 정말 시아와의 인연이 이대로 멈춰 버리거나 지나가 버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절대로 그건 안 되지.
나는 손을 움켜쥔 채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조심스럽게 손을 펼쳤다.
그러자 반짝거리던 시아의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이거 많이 해 주셨다고 했지?”
꽃반지.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들판에 핀 꽃으로 꽃반지를 만들었다.
시아와 닮은 새하얀 꽃으로.
하얀 꽃에 초록 줄기가 어우러진 예쁜 꽃반지가 내 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시아야, 나랑 결혼해 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