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517
515화 더 내놔 (1)
“좀 치워 놓지 않고서 맘 편히 잠이나 자고 말이야.”
대기실 바닥에는 아이템들이 널려 있었다. 사용한 벨라레의 독은 물론이요 부러진 칼, 써 버린 탄환들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채였다. 던전 아이템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더미가 아닌 진품들이었다. 독 저항을 잠시 끄고 벨라레 독 병부터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누워도 어떻게 딱 저 자리에 누웠데.”
사실은 깨어났었는데 자는 척하고 있는 거 아니냐. 그때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우승자 한유진]그래, 내가 이겼다. 이어 금색 동전 세 개가 짤랑짤랑 떨어졌다. 응? 이런 말은 못 들었는데.
[승리한 팀에게는 파티 참석 시 추가 혜택이 주어집니다. 추가 혜택은 중복 가능합니다.]“…뭔지는 모르겠다만 준다니까 감사.”
잠깐, 이런 식이면 넷이서 편먹고 이겼다 졌다 해도 되는 거 아니냐.
[팀의 조합에는 제약이 없으나 한번 승부를 낸 상대와는 다시 싸울 수 없습니다. 동일한 초대장을 두 번 빼앗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안 되는구나. 하지만 이 섬에는 초대장을 지닌 헌터들이 더 있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적당히 뜯어내야지.
시스템 메시지가 사라지고 한쪽 벽에 던전 입구 같은 문이 열렸다. 세 개의 금화를 주워 인벤토리에 넣고는 성현제에게로 다가갔다.
“슬슬 일어나시죠.”
말을 걸어 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깊이 잠든 건가. 혹시나 싶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성현제의 코밑에 손가락을 대어 보았다. 숨은 잘 쉬고 있었다.
“왜 안 일어나. 혹시 아직 B급입니까?”
성현제의 볼을 잡아당겨 보았다. 확실히 예전보다 말랑했다. S급이라고 해도 마력을 집중시켜 강화하지 않는 한 피부가 철판처럼 딱딱하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차이는 있었다. 비각성자는 가볍게 말랑 눌러지거나 잡아당겨지지만 상급쯤 되면 좀 더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하나. 손가락에 힘을 더 많이 줘야 볼을 잡을 수가 있었다. 아마도 기본적으로 품고 있는 마력의 차이인 듯했다.
“야, 성현제.”
양쪽 볼을 둘 다 잡아서 당겼다. 서른 후반 주제에 피부가 좋았다. 물론 유현이나 예림이나 노아 씨에 비하면 못하지만. 아무렴 S급도 나이 차이는 있지. 그래도 이 정도면 웬만한 이십대 뺨치긴 하겠다.
“각성 전에도 이랬을까. 아니면 각성하고 피부도 좋아졌나? 사춘기 때 여드름 같은 건 안 났어요? 유현이도 깨끗하긴 했는데. 성현제랑 사춘기라니 좀 웃기다. 그래도 한 번은 겪었겠죠.”
어린 시절도 청소년기도. 예전 호수 던전에서 봤다는 어린 모습은 진짜였을까.
“그래도 B급은 된다고 자국은 잘 안 남네. 약간은 붉어졌나? 솔직히 댁 어릴 때 귀엽긴 귀여웠겠죠. 결이만 봐도 그렇고. 지금 머리칼은 바랜 거니까, 알고 보면 분홍머리였던 거 아닙니까. 디아르마도 용인종도 핑크의 피읖 자도 없었는데.”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분홍색 좋아하는 게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흔적 같은 거 아니냐. 어릴 때는 어울려도 나이 서른, 마흔 먹고 분홍머리는… 아니지, 그 동네는 분홍머리가 검은머리 같은 위치였을지도 모른다. 막 파란머리랑 초록머리도 있고.
“내가 아는 건 여기의 이 성현제뿐이지만요. 하지만 옛날 옛적엔 첫 번째 성현제랑 두 번째 성현제…….”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같은 사람 앞에 번호가 붙는 건, 역시 이상하게 느껴졌다.
“다 같은 성현제인데 1번 2번은 좀 아니죠. 굳이 나눈다면, 번호를 붙인다면 장소에 붙어야지.”
그게 맞지. 그냥 성현제고.
“첫 번째 세계의 성현제. 두 번째 세계의 성현제. 아니면, 그래. 호수가 많은 세계의 성현제. 해가 둘인 세계의 성현제. 구름이 파란 세계의 성현제. 케이크가 맛있는 세계의 성현제. 낚시를 배운 세계의 성현제. 축제가 즐거웠던 세계의 성현제. 저야 잘 모르지만, 댁도 잘 모르겠지만 그런 세계들도 있었겠죠.”
그리고 이곳에서는.
“여기서는, 너무 많네. 일 년도 채 안 되었는데. 그러니까- 깜짝이야!”
눈이 마주쳤다. 언제 깨어났대.
“좀 아픈데.”
“그래 봤자 F급인데요 뭘. 총도 맞아 놓고선.”
마지막으로 강하게 성현제의 볼을 당기곤 놓아주었다. 희미하게나마 붉은 자국이 남았다.
“물건 챙겨 넣고 나갑시다.”
“한유진 군이 이긴 건가? 승리한 팀에 혜택이 주어진다는 메시지가 떠 있군.”
“당연히 제가 이겼죠. 이건 내 거고, 이것도 내 거고, 요것도─”
“내거였던 것 같은데.”
“사람이 착각할 수도 있지.”
“그 장갑도.”
“아 착각할 수도 있지! 죄다 꺼내서 펼쳐 놓으니 헷갈리잖아요. 뒤집개는 왜 또 슬쩍 가져가? 잠깐만, 빨래바구니 어디 갔어.”
“털실 담기 좋아서 무심코 통으로 집어넣어 버렸군. 포션 수량이 모자라는데.”
“잘못 센 거겠죠.”
“초콜릿 맛─”
“몰라요, 몰라. 난 못 봤어.”
물건 정리를 끝내고 문 밖으로 나갔다.
– 아빠!
결이가 반갑게 외치며 내게 달라붙었다.
– 괜찮아? 아빠 맞은 거 아니지?
“괜찮아, 멀쩡하잖아.”
많이 맞기는 했다만. 유현이도 내게 다가오고 송 실장님은.
“…….”
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성현제가 눈을 빛내며 나와 송 실장님의 반응을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라봐왔다.
“어, 유현이 넌 별일 없었지?”
“응. 깨어나니 대기실이고 출구가 열려 있었어. 형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야 뭐 그냥 싸웠는데.”
“하지만 송 실장님이 내 눈을 피하던데. 진짜 아무 일 없었어?”
유현이가 의심스러워하며 말했다. 그야, 음. …돌이켜 보니 좀 쪽팔리긴 했다. 성현제 죽이길 잘했지. 남들 보기에는 진짜 막싸움이었을 거 아니냐.
“대화 좀 하고… 내가 이겼어.”
“구경하고 싶었건만 한유진 군이 내 머리에 총을 쏘았지.”
“형이 제 가슴에 총을 쏘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형을 물었죠.”
…뭘 자랑하듯이 말하고 있는 거야.
“나도 물었어야 했는데 아쉽군. 우리 송태원 실장님께선 어떠셨나.”
“…….”
송실장님이 성현제의 시선을 피했다. 성현제가 싱글거리며 송태원에게로 다가갔다.
“말도 못 하게 좋았었나 보군.”
“송 실장님 괴롭히지 마시죠. 자전거로 쳤습니다, 됐어요?”
유현이와 성현제가 동시에 그걸 봤어야 하는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지금 몇 시냐. 혹시나 싶어 시간을 확인해 보자 아직 기승수 사육 정보 발표까진 여유가 좀 있었다. 그래도 넉넉한 건 아니었다.
“성현제 씨,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오래 걸릴 거 같습니까?”
“지금 상태로는… 밤늦게나 내일 아침쯤에는 괜찮아질 듯하군. 적어도 여느 S급에게 당하지 않을 정도는 되겠지.”
“그럼 혼자 둘 수는 없고, 오늘은 음.”
송 실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확실히 검은 눈동자가 데굴, 옆으로 구른다. 그 모습이 평소의 송 실장님보다 훨씬 생기 있게 느껴졌다. 자기감정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꾹꾹 누르기만 하는 분이니까. 지금도 표정은 딱딱했지만 쑥스럽다거나 민망하다거나 혹은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런 불안정한 티가 났다.
안 그러던 사람이 저러니까 좀 귀엽네.
“…일단은 제가 함께 있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황림 헌터는 섬을 떠난 듯하니 괜찮습니다.”
“아니, 세성 길드장이요. 엄청 귀찮게 굴 것 같아서요. 캐물으려 들걸요.”
지금도 우리가 어떻게 싸웠는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심지어 유현이도 듣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다.
“익숙하니 괜찮습니다.”
“착하게 잘 있을 테니 걱정 말게나.”
황림이, 정확히는 그 흙이 없는 한 성현제를 맡길 사람으로는 송 실장님이 최고긴 한데.
“그럼 황림과 황림 뒤의 초월자에 대해서는 일정 마치고 저녁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황림의 연락처도 수소문해 달라고 말해 두겠습니다.”
리처드 황이라는 사람이 아예 만들어 낸 가짜는 아닌 듯했으니 찾긴 쉬울 것 같았다. 최소한 담배 거래를 위한 거래처 전화번호 정도는 퍼뜨리고 다녔겠지. 명함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고.
성현제에게 진짜 얌전히 있어야 한다고 재차 당부하곤 방을 나섰다.
– 아빠, 저거한테 총 쐈어?
“응. 아빠가 쐈지.”
– 아빠가 다 이긴 거야?
“다 이겼지.”
결이가 신나하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 결이도 총 쏘는 거 배울래.
“그거 괜찮겠다. 총이야 마력만 있으면 되니까.”
나만 해도 살쾡이 총으로 중상급 헌터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비록 상급쯤 되면 맞추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지만.
“나도 배울래. 형이 가르쳐 줘.”
“응? 나보다야 전문가를 초청하는 편이 나을 텐데. 난 진짜 기초적인 수준이라.”
“형이 좋아. 기초 정도만 알아두면 충분하고.”
하긴 어차피 이런 식으로 아이템이 아닌 총기를 쓸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일정 준비를 위해 회의실로 가는 길에 예림이와 마주쳤다. 예림이가 대뜸 유현이에게 물었다.
“황림 죽였어?”
“아니.”
“뭐? 나 있으면 아저씨가 신경 쓴다고 억지로 보내 놓고선!”
그래서 예림이가 안 보였구나. 황림 놈 그냥 밖으로 나왔으면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유현이에게 목 따였을지도.
“그럼 도망친 거야? 멀쩡하게?”
“아마도. 대신 형이 나를 죽였어.”
유현이가 자랑하듯 말하고 예림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결이가 한마디 덧붙였다.
– 그거랑 송 실장님도 아빠가 죽였어요.
“뭔…진 모르겠지만 나만 빼놓고! 아저씨 나도 죽…는 건 싫은데.”
“진짜는 아니고 채터박스 초대장 놓고 대결하는 게 있거든.”
예림이에게 초대장 결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다만 송 실장님과 인형술사에 대한 이야기는 적당히 빼두었다. 저녁에 듣게 될 테니까.
“저도 할래요!”
“그래, 그래. 예림이 너도 추가 혜택 받아야지.”
우리 중에선 예림이에게 가장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총은 열다섯 살짜리 손에 들려도 총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더욱 철저히 준비를 해 가야지.
* * *
이래저래 꽤 피곤하긴 했기에 잠깐 휴식을 취하면서 발표 준비를 마무리했다. 기승수 사육 정보를 목적으로 한 헌터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섬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도 시간 맞추어 돌아왔다. 그중에는 시시오도 있었다. 주최 보조를 한 관계자로서 맨 앞줄에 자리 잡은 시시오가 나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그래, 그래.
‘제발 이상한 소리는 하지 마라.’
여기서 헛소리했다간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버릴 테니. 나도 새 정장을 빼입고 피스도 목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단상에서는 서 있는 게 보통이었지만 내게는 편한 의자가 주어졌다. 자리에 가 앉자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그 시선의 대부분이 진지했다. 전처럼 가볍게 무시하는 눈빛은 거의 없었다. 미소가 살짝 맺혔다. 공포 저항을 끈다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일부러 그럴 필요까진 없지만.
“우선 간단히 시작해 볼까요. 피스야.”
– 끼앙.
내 발치에 앉아 있던 피스가 무릎 위로 폴짝 올라왔다. 피스의 턱 아래를 매만져 주며 말을 이었다.
“도담 사육소에서 가장 유명한 기승수, 2급 유니콘 아종 화염 뿔사자. 최대 S급으로 성장 가능한 이 몬스터의 성장 조건은 성체의 보조입니다.”
시원하게 밝혔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의 표정은 떨떠름해졌다.
“그럼 한유진 소장님만이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겁니까?”
“네. 이런 경우도 많습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성장 조건이 까다로워지지요.”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조작했다. 뒤쪽 화면이 켜지고 커다랗게 흑백 유니콘 한 쌍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체 시절부터 성장한 모습까지 차례로 이미지와 영상이 넘어간다.
“3급 유니콘종 그림자 유니콘. A급 기승수로 속도만큼은 S급 부럽지 않습니다. 기승수의 본래 목적을 생각한다면 웬만한 S급 몬스터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죠.”
다시 화면이 바뀌고 평원이 나타났다. 개발 중인 던전 내 촬영 아이템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그림자 유니콘의 성장 조건은 유니콘종 몬스터가 서식하는 던전에 머무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쉬운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어려운 조건 또한 아니었다. 새끼 몬스터를 유니콘종 몬스터 서식 던전 공략 때마다 동행하면 되는 것이다. 몇몇이 급하게 문자를 보내고 아예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림자 유니콘 새끼와 유니콘종 등장 던전 값이 확 오르겠구만.
그리고 다음으로 황금 그리폰의 모습이 화면 가득 나타났다. 힘차게 비행하는 블루였다. S급 몬스터. 심지어 비행종에 속도며 전투력 어디 하나 부족하지 않는 기승수다. 속성에 제한이 있는 피스였기에 오히려 블루를 탐내는 헌터가 훨씬 더 많을 것이었다. 지금도 다들 눈빛이 변했다.
“여기서부터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유료 결제 정보입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등급 대비 난이도 하.”
짧은 침묵이 흐르고.
“원하시는 게 뭡니까!”
성급한 헌터가 벌떡 일어나서 외쳤다. 다른 헌터들 또한 몸을 들썩거린다. 이러다 S급들 휘두르는 데에 재미 들리겠어.
“정보를 선점할수록 유리합니다. 우선 세 명에게 비밀유지 조건으로 판매 후 한 달 뒤 사육소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황금 그리폰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마수마종의 고기였다. 그것도 등급이 높아야만 한다. 마수마종 보스가 등장하는 던전 관리권을 빠르게 사들이는 길드가 유리해질 수밖에 없었다. 몰래 낙찰받는다 해도 얼마 못 가 들키겠지만.
“입찰은 비공개로 진행하겠습니다. 다들 전해주는 종이에 적어서 상자에 넣어 주세요. 덧붙여 내일도 A급 몬스터 사육 정보를 하나 무료 공개 예정이오니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원래라면 오늘 끝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 발목을 좀 더 오래 잡아 둘 이유가 생겼다. 그야 당연히.
“우리 팀은 저와 해연 길드장입니다.”
황금 그리폰 사육 정보 경매가 끝나고 채터박스의 표식에 크게 반응을 보였던 헌터를 불러들였다. 그리곤 비밀 계약을 하고 초대장 대결에 대해 말해 주었다. 상대 헌터가 의아해하며 나와 유현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유진 소장님이, 참가하시겠다고요.”
“네. 사실 제 동생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저야 추가 혜택을 얻으려고 끼는 덤이죠.”
우리 앞에 선 두 헌터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자기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나는 큼직한 상자 위에 걸터앉은 채 선글라스를 꼈다.
“생각 있으시다면 초대장을 꺼내십시오.”
“물론 하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인 초대장 두 개가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