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696
694화 런던, 24시간 (2)
“드론 전부 띄워!”
“포털 위치 계속해서 내보내고, 아니, 헬기는 대피용으로 써야지!”
“전기 끊기기 전까진 계속 간다.”
아직 통신망은 살아 있다. 모든 방송국이 구역별 대피 경로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해 주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로열 병원 앞! 도로 꽉 막혔으니 가까우면 도보 이용하세요. 경찰들이 줄 정리하고 있습니다.”
“메이페어 디○니 샵, 그러니까 도.깨.비 라고?”
“아임 도깨비! 유 영국 김서방! 하우 아 유! 나 영국 돈 없는데 이 오리 가지고 싶어!”
개인 방송도 런던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곳곳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경찰차와 응급차가 혼자 대피하기 힘든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사이 공기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공기 중 마나 농도가 높아지고 있다. 마치 던전 안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백 개가 채 못 되는 탈출구는 천만에 가까운 인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상당수는 육로로 빠져나간다 해도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았다.
“진짜 다 털어도 되는 거지?”
윤윤이 한결을 돌아보았다. 한결은 자신의 어깨 위에 앉은 미니 성현제를 흘끔 쳐다보았다. 성현제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말고 털어 버리게. 책임은 내가 지지.”
“그럼 갔다 올게! 우선은!”
윤윤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을 훌쩍 넘어 윤윤이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얘들아, 대왕님이 왔다!”
대영박물관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쓸어 모은 유물들이 가득한 장소. 도깨비화하기 힘든 물건도 많았지만 충분히 사용되었고 충분히 오래된 물건 또한 많았다. 그 가운데 서서 윤윤이 두루마기 자락을 흔들었다. 빙글빙글 춤을 춘다.
“나무주걱 도깨비 옥가락지 도깨비 깨진 항아리 도깨비 황금왕관 도깨비 온갖 도깨비 다 나와라~ 이리 오너라 저리 오너라 한판 신나게 놀자꾸나!”
도깨비 대왕이 부른다. 함께 놀자고 부른다. 여기저기서 하품 소리가 들려왔다. 지상에도 지하에도 전시라는 이름 아래 더는 쓰이지 않는 물건들이 눈을 떴다.
“큰 놈 작은 놈 깨진 놈 멀쩡한 놈 밭에서 구른 놈 비단에 감긴 놈 하늘에 있든 땅에 있든 전부 도깨비다! 김서방들과 신나게 놀았던 녀석들아 다시 나와 놀자~ 노래를 불러라 춤을 춰라 번쩍번쩍 나타났다 사라졌다 같이 놀 도깨비들 여기여기 다 모여라!”
“내 옆구리에 구멍 났어!”
“나랑 같이 차 마실 김서방!”
“난 체스! 체스 두자!”
“으아앙, 내 몸에 피 묻었어! 천 년쯤 전에!”
도깨비들이 모여들었다. 덩실덩실 몸을 흔들며 대왕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돈다. 윤윤이 북채를 높게 들었다.
“공간이동 스킬 있는 도깨비!”
“저요!”
“나!”
“나도 있어!”
도깨비의 능력은 오래 묵을수록, 인간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고 많이 쓰였을수록 높았다. 덕분에 이곳에 있는 도깨비들은 상당수가 공간이동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도깨비들아, 내 백성들아. 지금 이 동네 김서방들이 위험에 처했어.”
윤윤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김서방들이?”
“난 이 동네 도깨비 아닌데. 우리 집 엄청 멀어.”
“그래도 위험하다잖아.”
“무서워? 피 나?”
“조용, 조용!”
북채를 크게 휘두르며 윤윤이 말을 이었다.
“공간이동 있는 도깨비들! 런던 구석구석으로 가 도깨비 문을 이어라! 다른 도깨비들도 문 열고 있어! 이 동네 지리 알지?”
“저요, 저요! 나 잃어버린 관광지도 도깨비! 아무도 발견 못 했어!”
작고 어린 도깨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래돼서 많이 달라졌지만 지도 스킬 있어!”
“좋아! 관광지도 도깨비, 공유해 줘! 공간이동 없는 도깨비들은 도깨비 문 통해서 마을로 가야 해! 위험하니까! 공간이동 있는 도깨비들도 몬스터 조심해. 위험하면 바로 도망치기!”
“걱정 마, 대왕님! 우린 못 잡아!”
“싸움은 못해도 도망은 잘 치지~.”
“한판 잘 놀고 가면 우리 마을에 잔치 벌여 준댔다! 대장 김서방이 먹고 싶은 거 다 사준댔어!”
“잔치 좋아!”
도깨비들이 까르르 웃으며 박물관을 떠나갔다. 윤윤이 기지개를 크게 키곤 마나 포션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다른 박물관도 다 털어야지!”
백 개가 채 못 되던 탈출구가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번쩍번쩍 도시 곳곳이 새로운 빛이 솟아오른다.
“차례로, 차례로 들어가요!”
“노약자 먼저! 차는 안 돼요! 놓고 오십시오!”
도깨비 문과 이어진 포털 앞에 줄이 길게 늘어졌다. 대부분이 비각성자였지만 각성자들도 섞여 있었다. 자진해서 뒤에 남은 헌터들도 있었지만 눈치를 살피는 헌터들이 더 많았다. 특히 상급 헌터들은 빠르게 전해진 정보에 망설였다.
‘일본 때와 비슷한 상황일 거라는데.’
‘A급도 위험한데 S급에 SS급도 나타날 수 있다니.’
‘SS급 앞에서는 A급이나 F급이나 별 차이도 없을 텐데 남아야 하나.’
‘중급은 도망쳐도 되는 거 아닐까.’
빠져나가고자 한다면 비각성자를 제치고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다. 그때 템스 강 위, 런던 아이 근처 하늘이 크게 일그러졌다. 마치 색이 빠지듯 하늘의 일부가 흑백으로 변하며 틈이 생겨난다.
– 삐르르르.
“몬스터다!”
날카로운 황금색 부리가 허공을 가르고 붉은 깃털 날개가 크게 펼쳐진다. A급 상위 던전 보스급 몬스터, 황금부리 마이야. A급이지만 상위 보스로 준 S급이었다. 심지어 비행종에 불의 비를 내리는 괴조다. 도심에 나타난다면 S급 몬스터 이상으로 위협적인 것이다.
드론과 카메라가 일제히 괴조를 비추고 모두가 긴장하는 그때.
– 크르르르!
한층 우렁찬 으르렁거림이 하늘 위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도깨비 문에서 튀어나온 시커먼 그림자가 날갯짓하는 괴조를 단숨에 덮쳤다.
– 삐이익!
콰득! 날카로운 송곳니가 괴조의 목을 파고들었다. 발톱이 날개를 찢고 단숨에 물속으로 처박는다. 피할 틈은커녕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기다란 흑색의 날개가 우아하게 수면 위를 훑고 그 아래로 핏물과 붉은 깃털이 떠오른다.
칠흑의 비룡, 가시날개암룡 코메트. 그 등 위에서 강소영이 몸을 일으켰다. 하나로 올려 묶은 긴 금발이 깃발처럼 흔들린다.
“들어라!”
쩌렁쩌렁한 외침이 퍼져 나갔다. 온갖 방송을 통해 런던 전역으로, 그 밖으로 넓게 넓게.
“나는 A급 헌터, 드래곤 나이트 강소영- 엘라 로즈 힐이다!”
– 삐르르륵.
새로운 괴조가 공간을 넘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암룡과 마주치고 머뭇머뭇 굳어 버렸다. 가시로 무장한 검은 용과 깃털을 흩날리는 붉은 새가 템스 강 위에서 대치했다. 강소영이 다시금 목청을 높였다.
“나와 함께할 자는 어디 있나! 런던의 헌터들이여, 브리튼의 기사들이여! 진흙 속에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마라! 이곳은 이제 던전이며 헌터가 있을 곳은 던전이다!”
강소영의 손에 창이 들렸다. 괴조는 여전히 코메트만을 경계하고 있었다. 조그만 A급에게는 방심한 그 순간, 창이 쏘아졌다. 드래곤 라이더의 기승수, S급 암룡의 스탯이 더해진 창날이.
우드득!
괴조의 목을 뚫고 몸통 깊숙이 파고든다. 추락하는 몬스터 위로 암룡이 길게 울부짖었다.
“우리의 삶은 이미 진흙 속에서 꽃피우고 있으니!”
비록 한국의 세성 길드에 소속되어 있으나 최초의 드래곤 나이트인 강소영은 고향인 영국에서도 유명했다. 아직 어리며 S급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S급 드래곤과 함께하는, 세성 길드장이 공인한 S급과 맞먹는 헌터였다.
영국이 사랑하는 젊은 용의 기사.
강소영이 새로운 창을 높이 들어 올렸다. 흐린 하늘 사이로 비쳐드는 옅은 햇살이 금발에 닿아 반짝거린다.
“…던전이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헌터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던전 공략과 다를 바 없어! 준비하자!”
“아, 나는 중급이긴 한데. 그래도 비각성자들보단 나을 테니까.”
“A급 공략엔 몇 번 끼어 봤지만.”
그 속에서도 조용히 벗어나는 자들은 물론 있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이가 무기를 들었다.
“마이 로즈으으!!”
누군가가 템스 강에 뛰어들 듯 난간 위로 올라서서 외쳤다. 강소영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엘라도 아니고, 이름 바꿨다니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팀! 엄마랑 아빠는!”
힐 가의 차남이 활짝 웃으며 두 팔을 크게 흔들었다.
“형이 모시고 갔어! 우리 소영이 최고다아아아!”
“팀도 빨리 가!”
강소영이 혀를 쯧 차며 하늘을 한 바퀴 순찰하듯 크게 돌았다. 그녀의 형제들도 모두 각성했지만 상급 헌터는 A급인 셋째뿐이었다.
“얼마 전에 얼굴 봐서 반갑지도 않은데!”
그렇게 투덜거렸지만 입가엔 미소가 맺혀 있었다. 드래곤 라이더 특성으로 원래도 뛰어났지만 코메트의 스탯과 더해져 더욱 좋아진 강소영의 눈에 전투 준비를 하는 헌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인이어 너머에서도 관련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쪼끔 쪽팔리지만, 생각보다 기분 좋네!’
대피가 끝날 때까지 헌터들이 최대한 버텨 줘야 한다. 하나 도망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당연한 마음이다. 그렇기에 성현제는 다른 누구도 아닌 강소영에게 부탁했다. 영국 헌터들의 심장을 가장 크게 두드릴 수 있을 소녀에게. 어떻게 해요? 라는 물음에 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강소영은 외쳤다.
용이 최고니까. 기사도 멋지고 헌터도 멋지니까.
“나도 최고로 멋지지!”
– 캬르륵!
코메트가 동의하듯 소리를 냈다. 강소영은 무기를 고쳐들었다. 다시금 하늘이 흔들린다. 이제 시작이다.
* * *
“아직 몬스터가 등장하는 속도는 느립니다! 방금 지상에서도 한 마리가- 윽!”
쿠웅! 땅이 흔들렸다. 비틀거리는 기자를 누군가가 부축했다. 그리곤 떨어뜨릴 뻔한 카메라를 붙잡았다.
“피신해야지. 비각성자 같은데.”
“하지만 몬스터 출몰 상황을 전달해야 해!”
“아, 나도 기자야.”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P.P. P가 싱긋 웃으며 헌터들과 대치 중인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SF 만나러 온 김에 영국 들르길 잘했다니까. 영상보다는 사진 쪽이긴 한데, 오늘은 취향 바꿔 준다.”
세계적인 대도시가 공격받았다. 그러나 헌터들의 보호 아래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대피한다. 놓칠 수 없는 중요한 그림이었다. 상급은 물론 중하급 헌터들도 피난을 돕고 있다. 도깨비라는 이들도 나타났다.
‘그리고 앞날을 위해서도.’
P로서도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것이 발판이 되리란 사실만큼은 확실했다. 기자를 보낸 P가 건물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안녕하세요, P입니다. 유럽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이 런던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 전해 드리며~.”
– 캬아아악!
“트라팔가 광장을 중심으로 던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림자에 뒤덮이듯 땅이 거뭇하게 물들어간다. 분수의 물이 메마르고 건물이 사라져간다. 아니, 흔적만이 남았다. 던전 속의 문명들처럼 순식간에 수천 년의 세월이 덮친 듯 유물화되었다. 아스팔트 도로에 풀잎이 깔리고 전기도 통신도 뚝 떼어내진 것처럼 멈추었다.
“악!”
겁에 질려 자신의 집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사라진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땅과 충돌하기 직전.
“잡았다!”
도깨비가 그를 낚아챘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손짓을 한다.
“얼른 가자, 김서방! 여기 위험해!”
늘어난 포털과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한 헌터들 덕분에 사람들의 대피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늘을 바쁘게 오가는 헬기 위로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몬스터를 상대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빠르게 날아온 전투기에서 사람이 뛰어내린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온 헌터들이었다.
쿵, 쿵! 여기저기서 낙하의 충돌음이 들려왔다.
“정리는 잘되어 가고 있어요.”
– 꺄아우!
윤윤의 도깨비 문에서 금빛 그리폰이 나타났다. 그 등 위에 에블린이 타고 있었다.
“수백만 명이 갑자기 몰려들어 혼란스럽긴 하겠지만요. 각국의 헌터 협회가 적극 협조해 줄 테니 예산이 부족할 일은 없겠죠. 적당히 뜯어먹을 수도 있을 테고.”
유명우로부터 연락을 받은 한결은 좌표를 찍으러 다니느라 마침 미국에 와 있던 윤윤과 함께 곧장 한국으로 돌아갔다. 비록 한결 외의 사람까진 데리고 갈 수 없었지만 윤윤의 장거리 공간이동 덕에 한국에 다다르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빠르게 대피할 구역을 정하고 게이트를 열어 도깨비들을 보낸 것이었다.
“게이트에 몬스터가 들어갈 수 없다는 건 확실하겠지.”
또 한 명의 S급 헌터가 도깨비 문 너머에서 걸어 나왔다. 한신 길드장인 박민규였다. 한결이 아래로 약간 내려가며 대답했다.
“테이밍 안 된 몬스터는요. 확인했어요.”
“A급 몬스터를 생포해 시험해 봤었지.”
“그럼 안심… 헉?!”
한결의 어깨 위에 앉은 성현제가 박민규를 향해 손 인사를 했다. 에블린이 활을 꺼내들며 고개를 돌렸다.
“기분 나빠라.”
에블린이 블루와 함께 떠나고 굳어 있던 박민규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 세성…….”
“새삼스럽긴. 작아지는 스킬이나 아이템에 대해 들어 보지 못했나.”
“…그렇긴 하지만.”
단순히 작게 나타났다면 놀람이 덜했겠지만 조그만 소년의 어깨 위에 앉은 것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박민규가 고개를 짧게 저으며 앞으로 나섰다. 가장 중요한 도깨비 문을 지키는 것. 그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햇병아리 S급보다야 내가.”
한국에는 김성한이 남았다. 박민규가 자신만만하게 방어 스킬을 발동했다.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다.
* * *
“비행형부터!”
강소영이 외쳤다. 보호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비행형 몬스터가 가장 위협적이다. 코메트가 자신보다 작은 용종을 네 다리로 붙잡았다. 검은 비늘 위를 미끄러지며 강소영이 코메트의 목을 잡고 빙글 돌아 바로 코앞의 용의 목에 창을 박아 넣었다.
– 키에엑!
또 다른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온다. 몬스터의 출몰 주기가 빨라지고 있었다. 재빠르게 코메트의 등 위로 올라가는 강소영의 위쪽으로.
쐐액!
굵디굵은 화살이 하늘을 갈랐다. 쾅! 미사일이라도 쏜 듯 폭음이 들려오고 이어 다시 쾅, 쾅, 쾅! 연사된 화살이 몬스터와 부딪치며 터져 나간다.
– 끼우욱!
블루가 반갑다는 듯 코메트를 향해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은 A급뿐인가요.”
“A급에서도 보스급이지만요!”
강소영이 대답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기가 유독 크게 흔들렸다.
“뭐더라, 가는 날이 파티다?”
“한국 속담은 잘 모르지만 틀린 것 같네요.”
“아, 말이 씨가 된다!”
– 그르르르르.
첨벙! 커다란 발 하나가 템스 강을 짓밟았다. 높게 튀어 오른 물이 몬스터의 가슴을 적신다. 뻣뻣한 털을 지닌 대형 곰과 같은 몬스터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두꺼운 가죽, 육중한 몸뚱이. S급 몬스터가 위협적으로 울부짖으려는 그때.
“안~녕!”
몬스터의 위로 조그만 형체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쿠웅!
– 크어억!
– 곰돌아~.
거대한 흑룡이 몬스터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곰이 발버둥 쳤지만 퍼져 나오는 독기와 가죽보다 단단한 가시 비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역시 드래곤 최고!”
멀리서 흑룡의 모습을 본 한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에트, 그녀가 왔다면.
“아빠!”
한결이 급히 두리번거렸다. 바로 근처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크게 갈라지는 틈 사이로 푸른 버들잎이 흩날렸다. 잎을 가볍게 밟으며 한유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박예림이 가볍게 날아 나오고 붉게 타오르는 털이 한결의 눈에 들어왔다. 화염뿔사자 피스, 그 등 위에.
“아빠아!”
“결아!”
한유진이 앉아 있었다. 한유진을 태운 피스 앞으로 한유현이, 옆으로 박예림이, 그 뒤쪽으로 노아가 황금색 날개를 펼치며 보호하듯 선다. 한결이 한유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한유진이 두 팔을 벌려 한결을 안아 주었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고?”
“무사하다네.”
“그쪽 말고!”
어리광을 부리며 안겨오는 한결을 토닥여 주며 한유진이 런던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서 공간이 일그러지며.
“한유진 소장을 위해!”
시시오를 비롯한 한유진 서브 팀 헌터들이 속속 나타났다. 채터박스의 장비로 완벽하게 무장한 그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