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784
783화 파도와 파도 (3)
우뚝 선 산과 같은 파도였다. 반투명한 산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출렁이는 속으로 건물의 잔해와 부러진 나무 따위가 비쳐 보였다. 귀를 멍멍 하게 만드는 울림과 함께 그것이 우리를 향해 몸을 숙인다. 하늘을 가리고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며.
“막을게요!”
예림이가 난간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숄이 길게 몸을 휘감고 그 손에 물의 보석을 품은 창이 들렸다. 반짝거리는 귀걸이에 물의 정령이 매달리고 물방울들이 예림이의 주위로 맺히고 뭉치며 어지럽게 움직인다.
“예림아!”
“괜찮아요!”
내가 걱정 어린 말을 잇기도 전에 예림이가 외쳤다. 세성 길드 주위로 고여 있던 물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쏴아아아- 마치 썰물을 촬영한 영상을 수십 배 빠르게 돌린 듯 고속으로 이끌려간 물이 예림이의 앞으로 또 다른 거대한 파도를 이루었다.
예림이의 작은 몸은 저 정도의 물을, 그것도 평범하지 않은 바다를 다루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 마력을 지녔다. 하지만 물에 깃든 힘은 예림이의 마력에 한껏 동조해 주고 있었다. 비록 바다의 주인은 잠들었지만 그녀가 인정한 후계자를 감싸 주듯.
구구구궁-
까마득한 파도가 만들어 내는 그림자가 공중 정원을 뒤덮는다. 반쯤은 꿈결에 가까운 무게감 극히 적은 물이었지만 한곳으로 모이자 그 아래가 금이 가고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윽고.
쾅!
파도와 파도가 맞부딪쳤다.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크게 떨렸다. 동시에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윽!”
덮쳐든 물이 시야를 가렸다. 밀려나는 나를 누군가의 손이 급히 붙잡는다. 머리 위쪽에서도 치솟은 물이 비가 되어 쏟아졌다. 쏴아아- 거센 소나기 소리가 울림과 뒤섞여 귀를 꽉 막았다.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예림, 아! 괜찮아?!”
눈에 물이 흘러들어가 뜨기가 힘들었다. 얼룩진 시야로 서로를 두들기며 구웅 큰 북소리 같은 울림을 내는 두 개의 파도가 들어왔다. 하늘을 꿰뚫을 듯 높이 솟아 오른 물의 탑의 끝에 구름이 휘감겨 젹셔든다.
“막을 만은 해요! 근데, 아저씰 도와주긴 힘들 거 같아요!”
“난 괜찮으니까 네 몸을 물로 보호해, 아예 들어가!”
급히 선생님 스킬을 예림이와 다른 사람들에게 걸며 소리쳤다. 언제 공격이 가해질지 모른다. 상대의 파도를 막느라 꼼짝 못 하는 예림이는 차라리 물속에 잠겨 있는 편이 안전할 터였다. 스킬은 물론 웬만한 공격도 막아 줄 테니까.
예림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이 베일처럼 흘러내려 예림이를 감싸 안는다. 얼굴에 흥건한 물과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또한 물에 흠뻑 젖었다. 피스가 열기를 내뿜으며 털을 말린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진 모르겠지만요. 계획이 좀 틀어지게 되었네요.”
인어여왕의 물과 함께 예림이의 발을 묶어 놓았다. 수 속성 스킬을 지닌 종속자인가? 하지만 어제의 고래는 분명 저 정도의 힘을 지니진 못했었는데. 일단 예림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허니 동생 왔네.”
리에트가 정원 난간 위로 올라서며 말했다. 흠뻑 젖은 빌딩 사이로 검은 나비 떼가 날아든다. 그 위로 가볍게 내려서는 남자가 있었다. 유현이였다. 다만 스물한 살의 유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직 다른 종속자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박하율, 보이는 정보는 다 알려 줘.”
작게 말했다. 이내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종속자들이 접근해 오고 있어요. 버들잎 동생은 안 보이고요. 제가 못 보는 걸 수도 있지만요!]유현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바닥은 아직 젖었고 곳곳에 물이 고여 있었지만 저 정도쯤은 유현이의 불에 순식간에 증발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종속자들 역시 어제보다 더 강해졌겠지. 상황이 꽤나 나빠졌다.
[저 물을 움직이는 건요, 종속자의 힘을 넘어선 거 같은데요?]나 또한 난간 위로 올라섰다. 성현제로부터 전해진 전투예지는 아직 잠잠했다. 위협적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밤새 준비를 단단히 한 모양이네. 어떻게 한 거냐.”
내 물음에 유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붉은 열매 한 알을 꺼내들었다. 가을의 조각.
“이제라도 8년간의 기억을 지워. 형에게 겨울의 조각까지 먹이고 싶진 않아.”
“이 형은 겨울을 좋아한단다.”
몇 번을 물어도 내 대답이 바뀔 일은 없었다. 예림이는 꼼짝할 수 없으니 우리 쪽은 나를 포함해도 고작 다섯. 노아 씨와 현아 씨는 물론이고 황림까지 그리워졌다. 인형술사라도 안 와주나. 유현이의 손에서 열매가 사라지고 긴 검이 들렸다. 나 역시 살쾡이 총을 손에 쥐었다. 발끝에 무심코 힘이 들어간다.
“…안녕히, 형.”
작별인사였다.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겠다는 목소리. 이를 악 물었다. 웃기지 마라. 어떻게든 버텨낼 거다.
[형! 하늘!]그때 박하율의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뭐?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급히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키잉-
공기를 찢는 소리와 함께 비행물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잠깐만, 저거!
“전투기?”
비행 스킬이나 비행종이 따라잡기 힘든 스피드의 전투기가 세성 길드를 향해 날아오며 미사일을 발사했다. 아니 이건 아니잖아! 유현아!
쾅! 콰앙!
어떻게 대처할 겨를도 없이 폭음이 터졌다. 세성 길드 빌딩의 일부가 부서지며 불꽃이 치솟는다. 연이어 날아드는 미사일을 피해 난간을 달렸다. 다른 사람들 역시 몸을 피했다.
“이것으로 세 번째인가.”
성현제가 무너지는 빌딩 꼭대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현실에서 한 번, 중국 던전에서 한 번, 꿈 세계에서 한 번. 이 정도면 세성 길드는 반드시 무너져야 하는 랜드 마크쯤 되는 건가.
“유명세 탄다고 생각하십쇼!”
피스가 날개를 펼쳤다. 그 위로 뛰어오르기 무섭게 미사일이 내가 있던 자리를 향해 내리꽂힌다. 쾅! 충격파가 열기와 함께 밀려들었다. 성현제와 송태원, 리에트도 건물 밖으로 뛰었다. 쿠르릉, 세성 길드가 무너져 내린다.
[형! 저 전투기 진짜 전투기가 아닌가 봐요!]“뭐?”
[전투기 정보를 삼킨 종속자 같은데요? 왜요, 그런 영화 있잖아요!]몰라, 그게 뭔데. 세 사람이 도로 위에 착지했다. 낙하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아스팔트가 쩌적 갈라진다. 그와 동시에 아스팔트 바닥이 물컹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늪처럼 셋의 발목을 붙잡고 빨아들이려 한다. 스킬?
“피스야!”
– 크르르.
곧장 아래로 내려가며 피스가 입을 쩍 벌렸다. 불길이 드넓게 퍼져 나가며 땅의 물기를 증발시켰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경고가 전투예지를 통해 반짝거렸다. 하나도 아니었다. 이런 미친.
“달려요!”
피스가 바닥을 스칠 듯 낮게 날개를 펄럭이고 굳은 늪을 빠져나온 성현제, 송태원, 리에트가 그 뒤를 따랐다. 그와 동시에 땅이 갈라진다.
– 키리리릭!
– 안녕, 허니!
땅속에서 두 개의 거체가 튀어나온다. 하나는 지하철에서 본 가시 두더지, 다른 하나는 칼날 같은 다리를 가진 지네였다. 두 놈이 함께 땅을 뒤집어엎는다. 피스를 제외하면 죄다 비행 스킬이 없다. 조금 전 늪을 만들어 낸 종속자도 숨어 있을 테니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간 위험할 것이다.
“허니 동생은 구경만 하는데?”
텅, 강하게 땅을 박차며 리에트가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유현이는 검은 나비 위에서 우리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직접 나서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검은 나비가 종속자에게 한 마리씩 붙어 있어요!]나비가? 혹시 유현이가 지휘를? 종속자들도 단체 싸움은 익숙지 않을 테고 선생님 스킬 같은 것도 없으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닐 거고, 저 물을 움직이는 것도 유현이와 관계가 있나?’
쾅, 쾅! 하늘에서는 폭탄이 연이어 떨어졌다. 쏟아지는 건물 잔해에 리에트가 눈썹을 꿈틀 하더니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그 아래로 송 실장님이 달려가 두 손을 깍지 껴 힘껏 올린다. 정확한 타이밍에 리에트의 발이 송태원의 손을 딛고 올려 주는 힘에 더해 휘익- 하늘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떨어져!”
리에트의 팔이 크게 반원을 그린다. 그 끝의 검이 보이지 않는 칼날이 되어 전투기를 갈랐다. 카가각! 전투기가 회피 비행을 했으나 예상치 못한 근접 공격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결국 날개 한쪽이 크게 부서져 비틀비틀 맴을 돈다.
검을 휘두른 리에트의 몸이 공중에서 빙글 균형을 잃었다. 그대로 추락하는 리에트를 향해 피스를 날아오르게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새 하늘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먹구름.’
파도와 파도의 부딪침 속에 휘말린 구름들. 바람 또한 거대한 물의 기둥을 피하지 못하고 공기가 마구 요동치는 가운데 비구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예림이에게 더욱 강하게 부딪치고 구름을 끌어들여 달라 메시지를 보내 놓았었다. 쿠르릉, 검은 구름 안쪽으로 빛이 번득인다.
[준비됐어요!]박하율의 메시지가 외치고 성현제가 멈춰 섰다. 리에트를 낚아채며 송 실장님과 함께 계속 앞으로 달렸다. 콰가가각! 땅을 부수며 두 거체가 노도처럼 성현제 앞으로 밀려든다. 스킬을 전부 되찾아 한층 단단해진 가시와 갑주 같은 껍데기가 둔탁하게 번들거린다. 지네의 입에는 독기마저 짙게 어렸다. 저건 좀 위험한데.
“리에트! 날 성현제에게 던져!”
미니 쿠키를 입에 넣으며 외쳤다. 작아진 나를 리에트의 손이 붙들고 하늘이 번득였다.
콰과광!
박하율이 이끌어 낸 번개가 일직선으로 지상을 향해 하강한다. 전과는 다르게 예림이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마력이 한몫 거든,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힘을 품은 전류다. 동시에 금빛 사슬 가득히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귀를 쩡 울리는 굉음. 시야를 완전히 뒤덮는 빛. 던져진 내 몸이 그 빛 속으로 파고들고 성현제의 손이 정확히 낚아챈다. 그와 동시에.
퍽!
둔중한 소리와 함께 지독한 독이 터졌다. 얼른 쿠키 효과를 취소했다. 이어.
“읏-.”
캉! 카가강! 두더지의 가시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일부는 사슬에 막혔지만 전투예지로도 전부 피할 수 없는 공격에 성현제 역시 스치는 정도의 상처는 입었다. 내 몸에도 몇 개 두들겼지만 피해무효화 덕에 멍이나 좀 드는 정도로 그쳤다.
“종속자는 죽어도, 상관없다니까요.”
그럼 목숨 걸고 마지막 공격을 퍼붓겠지. 내가 막지 않았으면 성현제 또 한 번쯤 죽었을지도. 자욱한 독기가 흩어지고 성현제가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검은 나비 두 마리가 유현이의 손에 마석을 건네주고 있었다.
“이런. 한유진 군의 동생분이 내 점심을 빼돌렸군.”
“대신 제가 한턱, 아니. 애초에 그쪽 것도 아니었으면서 뭘!”
“내가 잡은 것이지 않나.”
“예, 제가 대접해 드립니다!”
유현이 녀석 마석을 수거하는 역할도 맡았구나. 하긴 그래야 종속자들이 안심하고 성현제를 공격하겠지. 그럼 유현이는 당분간 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확실했다. 콰앙! 송 실장님과 리에트 쪽에서 폭음이 울렸다. 동시에 우리가 선 땅이 다시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귀찮네! 하율아!”
가지고 있던 폭탄들을 꺼내 위로 던졌다. 성현제의 사슬이 휘익, 맴돌며 폭탄을 두들겨 젖어드는 땅위로 흩뿌리고 동시에 하늘이 울렸다. 가닥가닥 나뉜 번개가 폭탄 위로 떨어진다. 성현제가 나를 들고 질척이는 땅을 박찬 직후 콰르릉, 폭탄이 줄줄이 터지며 진흙 위로 강한 열기가 퍼져나갔다.
“보조계는 전투예지도 잘 안 통하고 말이죠!”
얼른 송 실장님과 리에트, 피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종속자들의 우선 목표는 성현제다. 우리가 주의를 끌고 다른 셋이 뒤떨어지는 놈들을 잡는 편이 낫겠지.
‘송 실장님과 리에트는 같은 물리 근접계이기도 하고.’
성현제랑 붙어 있었다간 잘못 튄 벼락 맞을 수도 있으니까. 카가각! 어디선가 칼날이 날아들었다. 또 다른 방향에선 가느다란 화살이 파바박 내리꽂힌다. 화살을 피하는 성현제의 발 아래로 그림자가 스르르 다가왔다. 금빛 사슬이 그 위로 날아들고 단숨에 터진 빛이 암흑을 몰아낸다. 동시에 재차 공기를 가르는 칼날을 내가 팔을 들어 막았다. 아이고 아파라. 주된 공격이야 무효화되었지만 간접적인 충격만으로도 팔뚝이 욱신거렸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하늘에서 벼락이 여기저기 내리쳤다. 하율아, 힘 아껴라.
“끝이 없네. 성현제 씨, 한 방에 터뜨려 볼까 합니다만.”
전기에 망가지지 않도록 성현제 안주머니에 넣어 놨던 폰을 재빨리 확인하고 다시 넣었다.
“종속자들 대부분 끌어들이고도 버틸 수 있겠어요? 댁이 죽으면 전 바로 동생한테 납치당할 판이라.”
성현제가 죽으면 마석을 흡수하는 존재 또한 사라지는 셈이다. 그럼 유현이도 잠시나마 움직일 수 있을 거고 나 또한 보호를 잃게 되니 게임 끝이지. 몸을 낮춰 길게 미끄러지며 창을 피한 성현제가 가로등 위로 뛰어오르며 말했다.
“기억을 잃는다고 했지.”
펑! 고압의 전류를 받은 가로등이 터져 나가며 접근하던 종속자를 향해 날카로운 파편을 날린다.
“저도 한 번쯤은 그쪽을 잊어먹어 봐야 공평할 것도 같지만요.”
성현제 기억만 지워진다면 조금 혹했을지도 모른다. 저 인간도 답답함을 겪어 봐야… 지금은 감정이 없으니 또 나만 답답하려나.
“그것도 나름 재미있을 듯하지만.”
파지직, 약한 전류가 성현제의 몸을 휘감았다. 앗, 따가.
“나를 모르는 한유진 군을 붙잡고 설명을 늘어놓을 마음은 없어서.”
“아, 그 정도 공을 들일 감정은 없다 이겁니까.”
전류가 성현제의 신체 안으로 스며들었다. 응? 잠깐, 뭐야 이거. 성현제의 몸이 일순 움찔하더니.
“헉!”
그의 움직임이 급격히 빨라졌다. 속도는 물론 힘까지 상승되어 내가 말해 준 방향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뭐, 뭐예요? 자체 버프? 스킬은, 아닌 거 같은데!”
콱, 구둣발이 땅을 부수며 급격히 방향을 튼다. 종속자들의 공격을 물 흐르듯 피하며 도로를 질주했다.
“일종의 전기 자극이지. 설명하자면 복잡하니 간단히 말하자면 전류로 신체를 보조, 향상시키는 거라네.”
예전에 시그마가 전류를 흘려 나를 마비시켰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전류를 흘려 자기 몸에 버프를 넣을 수 있다는 거야? 다른 헌터는 중급만 되어도 스스로를 보호하는 마력에 막혀 불가능하겠지만 이건 자기 몸이고 마력이니까.
“…왜 그동안 안 썼어요?!”
“억지로 능력치를 올리는 것이라 부작용이 있어. 그리고 이것 또한 조종하는 셈이니.”
자기가 자기 몸을 조종하는 것도 기분 나쁘다는 거구나. 쿵! 성현제의 앞을 갑주로 전신을 뒤덮은 거인이 막아섰다. 성현제의 손에 사슬 대신 창이 들렸다. 그리곤 나를 위로 던졌다. 야!
콰득, 양손으로 창을 쥔 그가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흰 코트자락이 붕 떠오르며 그대로 뻗어지는 창. 전류는 없었다. 순수한 힘과 방어 스킬이 휘감은 갑주가 부딪친다. 콰드드득- 창이 압축기에 들어간 듯 눌려 구부러지고 갑주가 움푹 패며 거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떨어지는 나를 성현제가 낚아채며 비틀거리는 거인의 머리 위로 뛰어오른다.
“근접 전투스킬도 가끔은 아쉬워.”
그의 발이 퍽,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거인의 머리를 박차며 저 앞의 건물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저 힘에 찌르기 관련 중급 스킬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갑옷을 꿰뚫었을 텐데.
“원래라면 있었겠죠.”
온갖 스킬을 지녔을 것이다. 잃어버린 모든 힘을 되찾게 된 성현제는 얼마나 강할까.
“등급도 높았을지도요.”
“단순 물리계라면 아마도. 다만 속성은 타고난 자질도 중요한 듯하더군.”
“그래요?”
“또한 나는 이미 전 속성을 지녔으니 타 속성은 잘해야 중급 정도일까.”
하긴 유현이가 수 속성 얻기 힘들고 예림이가 화 속성 얻긴 어렵겠지.
“이 빛은 처음부터 나와 함께 했을 터이니. 과거에도 다른 속성 스킬은 없거나 낮았겠지.”
퍼엉! 앞을 막은 장애물이 빛과 함께 쓸려나갔다.
“잘 어울려요.”
다른 속성력을 지닌다면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콰르릉! 표시라도 하듯 벼락이 쳤다. 종속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든다. 앞의 상가 건물도, 주위의 다른 건물들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하늘 위의 구름이 더욱 짙다. 가득 머금은 전기와 물을 계속해서 압축하듯이 꾹꾹 붙들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투예지의 경고 속에서 성현제가 움직였다. 여느 S급이라면 수백 번은 도륙당했을 공격이 이어진다.
[형!]박하율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동시에 성현제에게 스킬 두 배 효과를 전했다. 콰르릉!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번개가 쳤다. 먹구름이 모든 힘을 뿜어낸다. 성현제의 전류가 최대한으로 터진다. 뻗어나가는 빛과 솟아오르는 빛이 뒤섞이고 은혜의 등급을 더욱 높이며 성현제를 감쌌다.
콰과과광-!
몸이 붕 떠올랐다. 지하의, 미리 가져다 둔 아이템과 수영장의 물 또한 일시에 터졌다. 땅이 뒤집히고 모든 것이 강력한 힘에 노출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 또한 이내 들리지 않았다. 그저 우웅, 이명만이 낮게 울렸다. 잠깐이었겠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듯했다. 추락하는 감각이 희미하게 느껴지고 털썩, 흙바닥 위로 떨어졌다.
반경 수십 미터는 됨직한 구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백 미터가 넘나? 성현제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전신이 욱신거리는군.”
“부작용입니까? 포션 드려요?”
“단순한 신체 부상이 아니야. 포션도 별 소용이 없을 거라네. 예전에 시험 삼아 손에만 썼을 땐 회복에 사흘 정도 걸렸지.”
“아니 그럼-.”
“죽었다 되살아나면 바로 회복될 것이고.”
…좀 기분이 상했다. 안 죽는다고 해도 너무 쉽게 쓰는 거 아니냐. 예전에는 이렇게까진 안 했을 텐데 그놈의 감정은 언제 돌아오는 거냐고. 얼른 성현제를 부축해 일으켰다.
“지금 당장은 안 돼요. 성현제 씨가 죽은 걸 눈치채면 유현이가 바로 올 테니까요.”
하지만 이 위력을 본 직후엔 섣불리 접근하지 못하겠지. 다른 종속자들도 그렇고. 그러니 얼른 다른 사람들과 합류해서-.
“……!”
성현제와 내가 동시에 흠칫거렸다. 힘껏 성현제를 밀어냈다. 칼날이 내 목덜미를 스치고 땅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