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lasses That I Raised RAW novel - Chapter 80
80화 마왕의 물레바퀴 (1)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혹 모르니 하루만 더 쉬라는 주위의 만류에 퇴원은 내일로 미루었다.
– 삐약 삐.
조그만 부리가 퍼즐 조각을 꽉 물고 종종종 걸어가 알맞은 자리에 내려놓는다. 퍼즐 오른쪽의 토끼 그림이 완성되자 삐약이가 감격이라도 한 듯 제 작품을 바라본다. 물론 나도 감동했다.
“우리 삐약이 역시 천재인가 봐.”
“그림 퍼즐 그거 아무나 맞춰요. 고작 100피스짜린데.”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있던 예림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고작이라니! 삐약이 아직 어리거든? 이거 권장연령 5세 이상이야.”
역시 삐약이는 머리가 좋은 거 같다. …가끔 바보짓도 하지만. 정확히는 좀 오락가락한다. 어떨 때는 얌전하고 똑똑하고 먹을 것도 안 밝히는데 또 어떨 때는 유리를 못 보고 부딪히고 밥 달라고 빽빽 난리다.
‘혹시 이중인격, 아니 조격이 아닐까.’
똑똑한 삐약이와 멍청… 먹보 삐약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머리가 둘 이상 달렸고 각각의 성격을 지닌 몬스터도 있으니까. 라우치타스만 해도 머리가 셋에 각기 다른 저주독 스킬을 써 대서 더더욱 까다로웠다.
‘새끼 때는 평범하다가 자라면서 머리가 둘이 되는 새 몬스터도 분명 있었지.’
솔직히 못생겼… 아니, 우리 삐약이는 머리 두 개라도 귀엽겠지만. 음.
“삐약아, 꼭 성장해야 할 필요는 없어. 아빠가 너 하나 못 먹여 살리겠니.”
– 삐약!
안 커도 된다. 꼭 다 커야 할 필요 있냐. 어차피 성장 조건도 모르고 스킬도 안 통하고, 그냥 이대로 살자.
삐약이를 쓰다듬어 주다가 옆에 켜 놓은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내새끼 스킬 적용창이다. (한유현-S), (피스-S). 둘 다 변동 없다.
무사하다는 뜻인데, 한유현 이름 석 자를 보자 또 속에서 울컥 화가 치민다.
“한유현 개새끼.”
“길드장님이 개새끼면 형인 아저씨도… 아니에요.”
예림이가 진정하라는 듯 손부채질을 해 준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별일 없을 거예요. 게이트석도 두 개 챙겨갔으니 영 못 해 먹겠으면 도로 나오겠죠.”
안다. 알고 있지만 역시 열 받는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하란 말도 있지만 정도가 있다. 시발, 제가 아무리 잘나신 S급 헌터라고 해도 불사신은 아닌 주제에 위험을 자청해? 안전하게 공략 준비 다 끝내 놓은 거 뒤집어엎고 기어들어가고 지랄, 진짜.
“한유현 이 미친 새끼.”
“아저씨, 심호흡을 하세요. 깊게, 흐읍 하— 흐읍 하—”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길게 숨을 삼켰다 내뱉었다. 조금 낫네.
“예림이 너, 아까부터 전화 오는데 안 받아도 돼?”
테이블에 던져 놓은 휴대폰이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걸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협회예요, 협회.”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아뇨. 제가 제일 만만하니까 지랄하는 거거든요. 이번엔 A급 던전이 S급으로 뛰어올랐잖아요. 협회야 당연히 뒤집어졌죠. 근데 들려 나온 아저씨랑 전투에 제대로 참여 안 한 성한 아저씨 빼면 제일 만만한 게 저니까 자세히 말해 달라고 귀찮게 구는 거예요. 짜증 나게.”
그러고 보니 협회도 골치깨나 아프겠구나. 던전 등급이 갑자기 널을 뛴다는 건 헌터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직 관련 발표는 안 했지?”
“아는 사람들 입 꿰매 버리고 싶어 하는 투던데요? 하필 상대가 S급 헌터들이라 못 하는 거지, 중하급 헌터였으면 뒷산에 묻어 버렸을지도 몰라요.”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
“참, 아저씬 보상 뭐 받았어요?”
예림이가 눈을 빛내며 묻는다.
“전 SS급 창랑(滄浪)의 인어여왕 귀걸이 나왔어요. 요거요, 요거.”
귀에 달려 있는 우아한 푸른 보석 귀걸이가 고갯짓을 따라 찰랑찰랑 흔들린다.
SS급 장비라니, 좋은 거 나왔네. 1급, SS급 몬스터를 잡으면 높은 확률로 SS급 아이템이 나오긴 하지만 백 프로는 아니다. 장비가 아니라 특수나 재료, 소모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고.
“마력, 정신력 스탯에 물속에서 행동 자유 스킬 붙어 있어요. 또 물속에서 수계, 빙계 속성 스킬 효과 30% 증가하고요!”
“대단하네! 수중에선 따라올 헌터가 없겠는 걸?”
“그쵸? 수중전투 해야 하는 던전은 인기 없는 편인데 제가 싹 쓸어버리려고요. 빚 금방 다 갚을걸요!”
좋아 죽겠다고 헤죽헤죽 웃는다. 수중에서 빙계 스킬 효과 30% 증가라면 얼른 냉기 저항 등급 올려야겠구만. 버프에 강화까지 넣으면 S급은 되어야 감당하지 싶다.
예림이에게 주의 사항 말해 주고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뭐 얻었는지 들은 거 있어?”
“당연히 쉽게 말 안 해 주죠. 현아 언니 입 찢어지는 게 분명 좋은 거 나온 거 같은데. 세성 길드장이야 영 모르겠고, 우리 길드장님도 이미 열 받은 상태라 모르겠고. 성한 아저씨는 게이트석 받았어요. 한 거 없는데 좋은 거 나왔다고 기뻐하더라고요. 피스는 안 나왔겠죠?”
“아마도?”
잘 모르겠다. 스킬이 있으니 시스템 적용은 받는 거 같은데 인벤토리는 없는 거 같고.
“아저씨도 얼른 확인해 봐요!”
재촉 속에 인벤토리 목록을 열었다. 한동안 정리 안 하고 대충 집어넣었더니 목록이 난잡하다. 인벤토리도 한계가 있어 정리해 주긴 해야 하는데.
목록을 죽 내리자 낯선 아이템 이름이 눈에 띈다.
[이름 없는 마왕의 오래된 물레바퀴]뭐지 이게. 일단 마왕이 붙은 거 보니 등급 높은 아이템인 듯한데. 인벤토리 밖으로 아이템을 꺼내 보았다.
“…뭐예요, 그게?”
“실 잣는 물레의… 바퀴 부분 같은데.”
진짜 물레바퀴다. 사람 머리통보다 작은 크기의, 평범한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바퀴.
“설명창에는… 옛날 어떤 마왕이 사용한 물레의 바퀴, SS급. 이렇게밖에 안 써져 있네.”
“마왕 주제에 평화로운 취미를 가지고 있었나 봐요.”
그러게. 근데 이걸 뭐 어떻게 쓰는 거지. 재료인가? 물레라도 만들라고? 이걸로 물레를 만들면 지푸라기로 황금실을 자아낼 수 있다거나, 뭐 그런 겁니까.
‘공략 보상 두 배 효과도 받았을 텐데 좋은 것 좀 나오지. 기여도가 너무 낮아서인가.’
물레바퀴가 하나뿐인 걸로 보아 두 배 효과가 꼭 아이템 두 개가 나오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원래 S급 템 나올 게 SS급 나오는 식으로도 적용되는 듯했다.
나중에 명우에게 보여 주기로 하고 도로 인벤토리에 넣었다.
명우는 여느 때처럼 대장간에 들어갔고 김성한은 해연 길드로 돌아갔다. 길드장이란 놈이 다짜고짜 홀몸이나 다름없이 던전에 뛰어들어 버렸으니 해연도 꽤나 뒤숭숭… 젠장, 심호흡, 심호흡.
그때 예림이가 표정을 딱딱히 굳혔다. 문 쪽을 돌아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미친 놈 왔네요.”
설마 유현이가 벌써 나온 건 아닐 테고. 이내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 문이 열리고 성현제가 들어선다.
그가 예림이를 향해 겉으로만큼은 따스한 눈길을 보냈다.
“감이 좋군.”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잊겠어요?”
예림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가볍게 목례한다. 예의 바른 모습이지만… 아까 미친놈 그거 성현제가 들을 줄 알고도 말한 거 같은데. 예림아, 조금만 입조심하자……. 문현아한테 옮은 건가.
“몸은 괜찮은가.”
“네, 멀쩡합니다. 일부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가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웃었다. 어쩌겠어. 성현제 놈도 표정만큼은 참 상냥 다정하다. 내 스킬 거부했을 때도 저 낯짝이었지만.
“한유현의 소식은 들었다네. 스트레스 받을 때는 단 게 좋다고 하더군.”
그러면서 들고 온 쇼핑백을 내민다. 먹을 건가. 예림이가 대신 받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동일 스킬의 공유는 15일의 대기 시간이 있다고 했던가.”
짧은 안부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스킬 공유부터 입에 올린다. 공격 스킬 효과 두 배를 직접 겪어 봤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안 되셨지만 관심 가져 봤자 소용없네요.
“네. 활용도가 그리 높지는 않죠. 공유 가능한 스킬도 몇 안 되고, 공격 스킬 두 배 효과는 좋긴 해도 아시다시피 제가 물몸이잖습니까. 저번의 팔찌 같은 특별한 아이템이 없는 한 근접전에서 쓰긴 힘들죠. 던전도 S급까지는 무리고요.”
저번에야 김성한의 성장이라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 없이 S급 헌터 드글드글 데리고 던전 공략하는 비효율적인 짓을 할 필요가 없다.
허니 이후로는 던전 브레이크 때 외엔 쓸 일 없을 터다.
“그건 그렇지.”
성현제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뭔가 기분이 찝찝하다.
“하나 한 번 만들어진 아이템이니 두 번이라고 없을까. 비슷한 효과를 가진 던전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고. 그때가 기대되는군.”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다. 흐뭇히 휘어지는 눈매가 재수 없어 무심코 뾰족한 소리가 튀어나온다.
“세성 길드장님께서 기대하실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만. 제 주위에 S급 헌터가 없는 것도 아니고요. 바로 옆에도 한 명 있습니다.”
유현이도 있고 예림이도 있다. 공격 스킬 빵빵한 애들이 집에 둘이나 있는데 왜 옆동네 아저씨한테 써 주겠냐.
내 말에 딱딱한 얼굴을 하고 있던 예림이가 씨익 입꼬리를 올린다. 반면에 성현제는 서운한 티를 대놓고 낸다. 아니 자기가 뭐라고 서운해해? 어차피 꾸민 표정이겠지만.
“섭섭하군. 나는 우리가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한 얼굴로 개소리 한 번 일품이다. 양심 어디다 팔아먹었냐.
“…친해질 이유가 전혀 없잖습니까. 뭘 했다고 친해집니까.”
“나름 엮인 건 많지.”
“공사 구분은 해 주시죠.”
“사적으로 받은 것도 있지 않나?”
이어링 빼서 던질까 하다가 참았다. 그래 봐야 나만 손해고 받은 건 잘 써 줘야지. 대신 웃어 줬다.
“친구 하나 잘 둔 덕에 이젠 S급 아이템 정도로는 눈에 안 차서 말입니다. 그래도 SS급 화룡 실레키아의 날개쯤 되면 사랑한다는 말도 나올 거 같은데요, 성현제 씨. 그 코트 입어 보니 참 좋더라고요.”
“값비싼 사랑이군.”
“뭘요, 염가죠. 샘플도 드릴까요? 사랑합니다, 성현제 씨.”
무려 스탯 A급을 S급으로 성장시킨 키워드다. 완전 저렴하네.
자, 이젠 어쩔 테냐. 진짜 줄 수도 없을 거고. 싱글거리며 올려다보자 어깨를 으쓱한다.
“하긴 그렇군. 별로 비싼 건 아니야. 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말이지.”
…아니, 잠깐만요. 시발 인벤토리에서 코트 꺼내지 마!
“당연히 농담이죠!”
“맞아요, 농담이죠!”
예림이가 얼른 거들어 말한다. 그리곤 성현제를 한껏 째려본다.
“환자가 피곤할 테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 주세요, 세성 길드장님.”
성현제는 우릴 보고 재미있다는 듯 웃음 짓고는 몸조리 잘하라는 말과 함께 순순히 자리를 떠났다.
젠장, 저 인간한테 키워드 적용하는 건 관두든가 해야지. 실레키아의 날개 준다는 건 빈말이었겠지만 그래도 정신 건강에 안 좋다. 어차피 키워드 효과도 없을 거 같고.
“아저씨! 고작 아이템에 홀랑 넘어가면 안 되죠!”
문이 닫히자마자 예림이가 빼액 소리쳤다. 그러면서 귀걸이는 왜 빼드는 건데. 말과 행동이 다르구나, 예림아.
“저도 SS급 장비 있어요!”
귀걸이를 내게 내미는 얼굴이, 두 볼이 잔뜩 부어 있다. 좋은 아이템 얻었다고 입 찢어졌으면서 그걸 나한테 주냐. 귀여워 죽겠다.
“그런 거 안 줘도 저 아저씨보단 예림이 네가 백배는 더 좋아.”
“진짜죠?”
“당연하지!”
비교도 안 된다. 진심 꽉꽉 눌러 담은 대답에 해사하게 웃는다. 물론 귀걸이 다시 귀에 슬쩍 챙겨 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역시 우리 예림이.
* * *
병원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탄 성현제가 휴대폰을 꺼내든다. 짧은 신호음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는다.
[와오, 미스터. 무슨 일이에요?]활기 가득한 여자 목소리다. 성현제는 긴 설명 없이 바로 용건을 내뱉었다.
“한국으로 들어올 준비 해.”
“노아에게도 연락하고. 세성 소속이 아닌 아크 길드장으로서 입국하라고 전해라.”
[엥? 그 녀석도요? 좀 이상한데, 한국은 해연에 넘기고 나올 거 아니었어요?]“계획이 바뀌었다.”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에 의아함이 잔뜩 깃든다.
[해연 길드장 꽤 귀여워하는 줄 알았더니, 뭐 거슬리기라도 했나요?]“아니, 도련님은 여전히 귀엽지. 요즘 독이 잔뜩 올라 더 귀여워졌어. 다만 그 독 오르게 만든 상대가, 약간 문제라.”
서늘한 시선이 차창 밖을 향한다. 통화가 끊어졌다. 성현제는 휴대폰을 내리며 3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가 막 각성했을 때 접촉해 온, 자칭 효도 중독자들.
‘효도라니, 웃기지도 않지.’
장난치는 것 같은 호칭이었지만 그들이 전해 준 정보는 정확했다.
그러니 계획을 바꾸는 수밖에.
* * *
밤이 제법 깊었다. 삐약이는 베개 하나를 차지한 채 잠들었다. 예림이도 기숙사로 돌아갔다. 남겠다는 명우도 돌려보내고 김성한만 환자 보호자실에 남았다.
습관적으로 상태창의 망할 놈 이름을 확인하고 티브이 리모컨을 눌렀다. 딱히 볼 건 없다. 헌터 관련 프로그램에서는 여전히 명우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때였다.
“대장 김 서방, 깨어났네!”
도깨비다. 활짝 웃는 탈이 제법 반가워, 나도 마주 웃어 주었다.
이놈도 슬슬 키워드 적용될 때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