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입단 시험은 유리가 지식의 관을 입학할 때 쓰였던 연무장에서 진행되었다.
지식의 관에 들어가기 전, 채럿은 떨리는 가슴을 주체 못해서 발을 굴렀다.
“어쩌죠, 오라버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정령왕이랑 계약해놓고 떨리면 안 되지.”
“으으.”
정령왕과의 계약은 서클로 힘의 단계를 정할 수 없다. 친화력에 따라 1서클만도 못할 수 있고, 뛰어나다면 10서클에 버금갔다.
그에 반해 화산 둥지에서 보았던 채럿의 정령술은 가히 8서클에 버금갔다.
이미 어지간한 마법사의 수준을 단번에 뛰어 넘었기에 시험 따윈 문제가 아녔다.
정작 걱정되는 건 그녀의 멘탈이다만.
“채럿, 내가 알기로 정령은 정령과 친하기도 해야지만 너의 의지가 중요해.”
유리는 그리 말하며 무릎을 꿇고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네가 정령과 친하고자, 부르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그들은 영영 대답하지 않아. 그러니 네가 정령왕과 계약한 의지를 잊지마. 네가 라군도와 계약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이유…….”
어느 누구에게건 갑작스러운 건 없다.
의지, 그것을 움직이게할 동기와 사연이 있다. 사소하더라도 그런 감정이 씨앗이 되어 마음에 떨어지는 순간, 선택권이 주어진다.
씨앗을 키울 것인가.
못 본 척 할 것인가.
채럿이 계약한 정령은 그와 같은 의미였다.
“알겠어요.”
채럿은 결연한 표정으로 호흡을 진정시켰다.
시간이 되었다.
그녀가 앞으로 나아가자 경비병들이 비켜서고 문이 열렸다. 육중한 문이 바닥을 끌며 열렸다.
까마득한 천장 아래 싱그러운 정원과 가운데 연무장이 보였다.
2층에 마련된 각각의 자리에는 마리와 미앵비슈, 다이올드, 오늘 초청받은 장로들이 함께 했다.
가문의 직속 기사단도 아닌, 플레온 기사단 입단식에 그들이 올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유리가 마리에게 장로들을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채럿을 플레온 기사단에 입단 시킬 겁니다. 물론, 시험을 치러서요.”
“네 수족에 넣어서 채럿이 가문에 있어도 됨을 증명하겠다? 하하, 재밌는 발상이구나.”
“그래서 한 가지 부탁드리려고요.”
“네 할아버지는 몰라도 장로들은 불러와주마.”
“……귀신 같으시네요.”
“그 이야 내가 구워삶을 수 있고. 중요한 건 다른 직계와 장로들이니까. 싫어도 오게 할 테니, 넌 그 애 준비나 잘 시키거라.”
벤헬링턴이 최종 결정권자라 해도 가문의 법도와 전통을 무시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지식의 관을 포기한 이상, 채럿은 죽어야만 했다. 설령 죽이지 않더라도 쫓아내야만 하는 입장.
고로 장로들 앞에서 채럿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만 했다.
“이리 와라.”
2층에 앉아있던 마리의 부름이 울렸다. 작은 목소리였으나 공간을 타고 퍼지며 크게 들렸다.
채럿이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연무장에 올랐다.
연무장 위에는 블레이크가 경무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 채럿은 현기증을 느꼈다.
‘오늘, 블레이크 경을 이겨야 한다고…….’
마리가 기사단 입단 시험을 받아들인 건 바로 플레온의 전통적인 시험 방식 때문이었다.
기사단장인 블레이크를 이기는 것.
보통 평범하게는 단장을 이기면 그 사람이 단장이 되어야 하지만, 플레온은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실력을 떠나 리더십과 전술 능력 등등을 갖춰야만 단장으로 인정 받았으며.
블레이크는 그런 자질을 오랫동안 인정 받아 단장직을 유지했다.
물론, 여태까지 블레이크를 이기고 입단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시험은 블레이크를 이기라는 조건을 걸었다.
채럿은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안 된다고 부정했다.
아무리 정령왕이어도 블레이크를 상대로 이기는 건 말도 안 되었다.
산전수전 전장을 누볐던 기사를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이기라고.
그러나, 채럿은 받아들였다.
싫다고 좀 칭얼거렸어도 말이다.
‘이기고 싶어.’
난생 처음 승부욕이란 게 불타올랐다.
그 덕분일까.
현기증과 긴장감이 서서히 밀려났다. 떨림마저 잦아들지 못했어도 몸을 움직이긴 충분했다.
채럿은 가슴에 손을 올려 경례했다.
“나이트워커 기사단장님이신 마리 스테이트 나이트워커 님을 뵙습니다.”
“……………….”
“아, 어. 그러니까…….”
“뭘 당황해하고 있어. 경례를 했으면 내려야지.”
“아, 네!”
처음 해보는 경례여서 채럿은 마리의 습관을 전혀 몰랐다.
마리만이 아니라 벤헬링턴은 경례를 올려도 안 받았다. 그렇다고 안 하면 혼쭐을 냈다.
블레이크는 이 광경을 보고 터져나오려던 웃음기를 겨우 참았다.
“오늘 시험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네!”
“여기서 떨어지면 넌 죽는다.”
“알고 있어요.”
“하물며 오늘 특별히 장로들까지 불렀다. 다들 불만이 많아. 너 같이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한 녀석한테 무슨 기회를 주냐며 나에게 지껄였던 자도 있었지.”
“…….”
“고로 이건 기회가 아니다. 너에게 주는 다른 길이다. 그 길로 갔다간 여기 있는 모두의 눈총을 받으며 살겠지. 그래도 이 시험을 하겠느냐?”
“각오했습니다.”
“그래?”
각오를 했다는 사람에게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마리는 도로 자리에 앉아 손을 들었다.
시작하라는 뜻이었다.
채럿과 블레이크가 서로 거리를 벌렸다.
간단히 경례를 올리며 블레이크는 경고했다.
“이번 시험에서 아가씨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그럼.”
샤아아아!
블레이크의 검 끝에 청록색 마나가 깃들더니 검신과 팔까지 감쌌다.
그는 일격에 끝낼 생각이었다.
시험임을 감안하면 봐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그녀를 죽여야 한다면 단숨에 끊는 편이 나았다.
멀리서 지켜보던 유리는 피식 웃었다.
“블레이크의 결전기를 여기서 보네.”
[블레이크가 결전기를 익힌 건 한참 뒤잖아?]“나 몰래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
블레이크는 주로 빙(氷)계 원소를 섞은 검술을 썼다.
일명 얼어붙은 쐐기.
검의 기세가 마치 빙산처럼 차가우며 단단해서 붙은 별칭이었다.
나중에 한참 뒤에나 익힐 기술을 벌써 연마했다는 건 그 동안 블레이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러면 저 여자애가 못 이기는 거 아니니?]‘그럴 거라고 생각해?’
[당연하지! 블레이크가 결전기를 쓸 정도면 너보다 서클 자체는 더 높을 텐데!]그렇겠지.
원래라면 채럿이 감당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정령술을 익혀도 마찬가지.
하지만 채럿은 물러서지 않고 정령왕을 불렀다.
“불의 정령왕 라군도여. 네 주인에 응답하여 세상에 실체를 드러내거라.”
가슴께로 벌건 불길이 모여든다. 점점 크기를 키운 불꽃은 이전과 다른 형태를 띠었다.
그것은 흡사 드래곤과 닮아 있었다.
화아악!
천장에 닿을 듯 치솟은 화염 드래곤의 잇새로 불꽃이 새어나왔다.
허나 신기하기도 어느 것 하나 태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시큰둥해하던 장로들이 질겁했다. 몇몇은 벌떡 일어나서 기함을 질렀다.
“저, 저, 저건 불의 정령왕!”
“어, 어찌 저게 여기 있소!”
“낸들 아오?!”
“그, 그보다 저건 솔리드녹스에게 있어야 하거늘, 왜 채럿 저 아이에게!”
장로들 사이에선 불의 정령왕이 솔리드녹스 땅에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불의 가문이니 당연히 불의 정령왕도 그 가문 어딘가에 잠들어 있을 있을 거라고.
그런 정령왕을 채럿이 데려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장로들이 놀라 자빠지는 모습에 유리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허나 방심하긴 일렀다.
블레이크는 일정량의 마나가 모이자 지체 없이 내리쳤다.
“하압!”
검이 그리는 궤적을 따라 푸른 마나가 흩어진다. 부서진 마나는 하나의 면처럼 형태를 이루다가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치 검으로 얼음을 그리는 듯했다.
키엑!
질세라 정령이 포효를 지르며 정면으로 블레이크의 검격과 부딪혔다.
콰앙! 후우우웅!!!
충격음은 작았으나 부딪히는 순간 엄청난 수증기가 정원을 가득 메웠다.
장로들은 저마다 몸을 웅크리거나 팔을 들어 수증기를 가렸다. 마리는 여유로이 앉아서 받아들였고, 유리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수증기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따듯한 안개 같았다.
뿜어져 나오던 수증기가 잠잠해지자, 정말로 안개가 깔린 듯 고요해졌다.
시야가 트이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그때까지도 잠잠하던 연무장은 앞이 보이고 나서야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채럿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땅을 짚은 채 주저 앉아있었다.
모두가 그녀의 패배임을 직감한 순간.
크르르르.
그녀 앞에 보다 작아진 드래곤이 정면을 향해 으르렁 거렸다. 그 크기가 커다란 늑대와 흡사했다.
“졌습니다.”
블레이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검이 부러져 있었다. 아니, 아예 녹아서 쇳덩어리로 변했다.
무기를 잃었고 마나도 전부 소진했다. 그에 반해 채럿의 정령은 아직 싸울 의지가 보였다.
완벽한 블레이크의 패배였다.
* * *
실전이었다면 블레이크는 얼마든지 더 싸울 수 있었다.
심지어 채럿을 죽이겠다고 했으니 실전이라 봐도 무방한 대련이었다.
그 때문일까.
대련이 끝난 뒤에도 장로들 사이에선 서로 잡음이 오갔다.
이것으로 목적은 달성했다.
말들이 많아지면 교통정리가 필요했고, 마침 마리가 그 정리를 해줬으니까.
그런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유리는 채럿, 블레이크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채럿은 정령왕을 쓴 여파로 까무룩 기절했다.
크게 다치진 않았다. 오히려 블레이크가 살짝 화상을 입어서 릴림이 만든 초콜릿으로 회복하는 중이었다.
“아깐 정말로 놀랐습니다. 그냥 정령도 아니고 정령왕이라니. 까딱했다간 온몸이 탈 뻔 했어요.”
블레이크는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정령이라고 귀뜸해줬어야 했나?”
“말씀해주셨어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전혀 싸워보지 못한 상대, 거기다 대등한 수준이라면 제가 무조건 질 수밖에요.”
솔직히 채럿의 정령술은 블레이크에 비해 한참 못 미쳤다.
제대로 훈련할 시간이 부족했거니와, 아무리 정령술이 마나와 상관없어도 체력적인 면이 받쳐줘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체력이란 육체와 정신, 마나 모두를 포함했다.
이것은 서클이 높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체력적인 면이 떨어지기 때문에, 채럿은 오랜 시간 마나와 검을 쓴 블레이크를 이길 수 없을 터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길 수 있었던 건, 블레이크가 일격으로 끝내려 했듯 단번에 모든 힘을 쏟아낸 결과였다.
“그런데 검이 부서졌으니, 미안하게 됐군.”
“아, 이건, 뭐.”
블레이크는 덩그러니 검집만 남은 허리춤을 보며 실없이 웃었다.
“수치스럽긴 하지만 정령왕한테 당했다고 하면 며칠 짜리 술 안줏감입니다. 그걸로 퉁치려고요.”
“새 검은 곧 맞춰주지.”
검을 망가뜨린 건 채럿이었지만, 두 사람의 대련을 주선한 건 유리였다.
이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검 정돈 책임져야 했다.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말이다.
‘마침 괜찮은 아이템이 나올 시기가 됐어. 슬슬 찾으러 가면……’
“어디냐! 어디야!”
그때 갑자기 밖에서 소란이 들렸다.
벽에 기대고 있던 블레이크도, 채럿을 돌보던 릴림도, 의자에 앉아 있던 유리도 동시에 방문으로 시선이 쏠렸다.
밖에서 들린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다이올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