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cribe with the magic sword remembers his past life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유리는 빠르게 인파에 섞여서 관리인들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탈출했다.
좁은 통로로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입구가 나오길 기다렸다. 혼돈에 휩싸였던 분위기는 어느 샌가 질서를 찾았다.
[미뭉이라. 참 그리운 이름이네.]갑자기 티르빙이 그리 운을 뗐다.
[그 놈이나 나나 참 기구한 운명이었지. 우리 둘 다 어리석은 왕들이 제 욕심으로 만들어졌거든.]‘마검이 감상에 빠질 줄도 아네.’
[놀리지 말렴. 이건 엄청 슬픈 사연이란다.]‘알아. 그냥 해본 소리야.’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미뭉은 이쪽 세계관에선 ‘대지’라는 이름의 신이 벼렸다.
이름 그대로 땅을 주관하는 ‘대지’는 인간들이 자신을 섬기던 옛 시절, 인간들에게 황금으로 만든 검을 선물해줬다고 한다.
그게 바로 미뭉.
특이한 건 손잡이나 별다른 장식이 없다. 오로지 검신만이 있으며 잡는 부분만 뭉툭한 것이 특징이다.
‘미뭉도 너처럼 마나 전도성이 좋은가?’
[카이라는 애도 주인으로 인정받았을 테니 그렇지 않을까.]카이는 미뭉의 주인으로 인정받아 자아를 깨운 상태였다.
반대로 말하자면 카이는 그 잠재성이 말도 안 되게 강력했다.
드래곤 하트? 솔직히 카이에 비하면 우스웠다.
왜냐하면 그는 무한 환생자이기 때문이다.
‘1000년의 삶 동안 악마들과 대항하는 운명을 타고난 자. 이번이 44번째 환생이던가.’
1000년 전, 다른 이름의 카이는 미뭉의 선택을 받으며 무한 환생이라는 능력을 얻게 된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며 그가 얻은 지식과 무예는 감히 유리가 견줄 바가 못 되었다.
특히 그의 마나 코어는 죽고 환생하면서 계속 유지가 되었다.
애초에 마나 코어란 육체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곧 영혼의 그릇이기에 육체의 죽음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직전의 환생에서 악마에게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지금 마나 코어는 엉망일 터.
때문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노예장에 갇혀 있던 것이다.
‘이번 생에는 난 그 옆에서 도움을 준다.’
유리가 정한 목표는 이랬다.
자신이 할 수 있다면 악마를 죽이고 싶지만, 그럴 바엔 원작대로 주인공이 죽이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만 변수가 없고, 위험도도 줄어든다.
유리로선 옆에서 딱 도움을 주는 정도여야 한다.
그게 최선이자 최고.
“자, 자! 이리로 오십시오! 이쪽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입구가 가까워지자 안내인의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이럴 때는 아이라는 점이 참으로 편리했다. 눈에 띄지도 않고, 들켜도 의심을 사지 않았다.
이번에도 사람들 사이에 작은 덩치로 편승해서 빠져나갔다.
유리는 입구에서 한 발짝 나와서 숨은 인기척을 둘러봤다.
‘대기하고 있는 병력이 꽤나 있어. 암살에 능하지 않아서 기척이 노출 되고 있는 걸 봐선, 기사나 일반 사병들이네.’
[근데 왜 가만히 있지? 지금이 딱 기습하기엔 적기 아니니?]‘…….’
유리도 아까부터 그 점이 신경 쓰였다.
벌써 암시장을 빠져나간 수가 꽤나 되었다. 밖에 포위망에서 걸렸을 테지만, 본격적인 습격으로 일망타진 하는 편이 낫다.
헌데 기사단은 몸을 숨긴 채 미동도 안 했다.
‘명령을 아직 내리지 않았어. 왜?’
유리는 혹시나 하는 가정 하나를 세웠다.
그들은 공격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섣불리 공격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늦어지는 기습을 설명할 수 없었다.
유리는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지 살피다가 인파에서 벗어나 다른 쪽 골목으로 한달음에 뛰어갔다.
모퉁이를 돌자마자 몸을 숨겼고.
타닥!
다급한 발걸음이 그를 따라오더니, 이어서 쇠붙이 하나가 둥근 궤적을 그렸다.
유리는 그가 모퉁이를 돌자마자 단검을 들고 최대한 자세를 낮춰서 발목을 노리고 몸을 회전시켰다.
상대의 검은 허리나 가슴, 그 위를 노렸을 터. 낮은 키에 낮은 자세를 취하면서 공격을 피하고 하단부터 노리려고 했다.
그러나.
캉!
분명 머리 위로 날아들던 검은 삽시간에 진행 방향을 바꿔 바닥에 꽂혔다.
세로로 세워진 상대의 검은 유리의 검을 정확히 막았다.
‘막았다고? 이 짧은 찰나에?’
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단숨에 끝내려던 싸움이 실패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란을 피워선 곤란했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암시장 안에서 싸웠다면 신분을 감추거나 소란 속에 소란을 일으키는 게 가능했으나, 이곳은 병력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몰랐다.
유리는 검을 거두기를 포기하고 다른 단검을 빼들었다.
관성의 법칙으로 힘이 들어간 무기를 회수했다간 타이밍을 빼앗길 것만 같았다.
휘릭!
다른 단검이 더 낮은 위치에 있는 발등을 향해 찍었다.
그러자 상대는 작은 뒷걸음질 몇 번만으로 공격을 피했다.
쉽게 피한 듯하지만 오히려 유리가 노렸던 부분이다. 바닥에 꽂힌 단검을 통해 마나가 땅으로 흘러들어가고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펑!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읏!”
갑작스레 먼지가 얼굴을 덮치자 정체불명의 괴한이 주춤거렸다.
찰나의 순간이 생겼다.
유리는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뒤로 몸에 가속도를 붙여서 앞으로 나아가 괴한을 지나갔다.
그 틈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오늘은 화재 사고로 인해 출동했다.”
괴한을 지나간 유리는 곧장 빠져나왔던 인파 속으로 끼어들었다. 무리 속에 섞여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골목을 나오는 괴한을 볼 수 있었다.
괴한은 인파를 바라보다 끝내 유리를 찾지 못하고 허망한 듯 축 어깨를 늘어뜨렸다. 결국 그는 나왔던 골목으로 다시 들어가며 모습을 감췄다.
사람들 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리는 인파를 따라 움직이다가 미리 구해놨던 작은 집의 문으로 다가갔다.
똑, 또독, 또독.
신호를 주자 문이 열리고 안에서 릴림이 맞아줬다.
“어서, 오세요. 늦으셨네요?”
“뜻하지 않은 상대를 만나서.”
유리는 로브와 겉옷, 신발을 모두 벗어서 릴림에게 건네줬다.
그녀에겐 암시장을 구경 가겠다면서 미리 언질을 줬었다.
세벨의 암시장이야 소문이 워낙 자자해서 귀족들이 가끔 구경하러 가곤 했기에 릴림은 딱히 암시장행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암시장에 간다는 사실 자체와, 가주에게 받은 돈을 암시장에 쓸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바깥의 상황을 봐선 유리가 예상하지 못한 다른 일을 저질렀다는 직감이 왔다.
“혹시, 도련님께서 벌집 태우셨어요?”
“어, 참을 수 없더라고. 암거래도 역겨운데 사람을 사고팔아서 말이야.”
“괜히, 걱정했네요.”
“할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뭐 살까봐?”
유리도 릴림의 걱정을 눈치채고 있었다.
1000만 골드 들고 바로 암시장을 갔으니 당연했다.
“애도 아니고. 돈 생겼다고 아무거나 다 사는 충동습관은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도련님, 애예요. 애니까 걱정돼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그녀는 나른한 시선으로 창밖을 살폈다. 딱히 자신들에게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받아든 옷가지를 미리 피워둔 벽난로에 던져 태웠다.
“근데 뜻하지 않은 상대가 누구예요?”
“그게…….”
댕! 댕! 댕!
그때.
밖에서 종소리와 함께 우렁찬 함성 소리가 퍼졌다. 횃불이 창가를 스쳐가고, 도망치는 사람들과 잡으려는 사람들의 울림이 땅을 진동시켰다.
기습이 시작됐다.
‘어째서 괴한과 싸울 때까지 기습은 멈춰있었다. 그리고 괴한과 싸움이 끝나자마자 바로 기습이 시작됐다, 라…….’
절묘한 타이밍의 맞물림은 분명 우연이 아니었다.
거기까지 추측한 유리는 실소를 흘렸다.
“우선 돌아가자. 내일이 되면 다 설명해줄게.”
* * *
기습이 시작되고 기사단은 단 한 시간 만에 암시장의 모든 이들을 잡아들였다.
그들은 기사들의 횃불 아래 포박 당한 채 이송을 기다렸다.
기사단장 블레이크는 복면을 벗으며 찬 밤공기를 마셨다.
“후우, 이게 다인가?”
“그렇습니다.”
“화재를 목격한 사람은?”
“전부 검은 불길을 봤다고만 합니다. 누가 지른 불인지는 불분명합니다.”
“…….”
블레이크는 좁게 뜬 눈꺼풀 사이로 시장 참가자들 면면을 살폈다.
돈이 많은 거상 혹은 귀족으로 이뤄진 고객들 중 몇몇은 낯이 익었다.
그들이 이런 작은 나라의 암시장에 모였다는 사실에 블레이크는 치를 떨었다.
다음으로 붙잡힌 노예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몰골이 말이 아니군.’
기본적으로 먹고 마시지 못해서 살집이 부족했다. 이미 몇몇은 탈수 증세를 일으켜서 의료진이 달라붙었다.
수인과 아인까지 섞여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더미였다.
그래도 사상자 없이 일망타진했다는 점에 만족했다. 도굴당했거나 빼돌릴 뻔한 상품들과 노예들도 무리 없이 확보했다.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아까 보았던 어린 소년이 뇌리에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동의 주범은 그 아이야.”
블레이크는 기습 작전이 시작되기 전, 암시장에 몰래 잠입해서 상황을 주시했다.
혹시라도 정보가 새어나가서 내부적으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길 걸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사소한 불안이라며 부관들이 걱정 말라 했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갑작스런 화재 발생과 빠져나가는 고객들로 인해 곧 현실이 되었다.
블레이크가 병력을 꼼꼼하게 배치해둔 덕에 딱히 문제는 없었다만.
다시 돌이켜봐도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블레이크는 화재를 일으킨 주범이 한 아이라고 확신했다. 단순히 뛰어난 검술 실력 때문에 드는 확신은 아니었다.
당황하지 않는 눈빛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냉정한 상황 판단.
보호자가 없는 듯했기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그 소년 때문에 엉망이 될 뻔했지만.
“이 상황이 엉망이라면 더 엉망이지.”
성공적인 작전에도 블레이크는 웃지 못했다.
이 암시장이 세벨 왕실에 의해 돌아가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암시장의 존재를 알고서도 블레이크는 왕가의 눈치 때문에 소탕하지 못했다.
그러다 인신매매가 이뤄진다는 소문이 바깥으로까지 흘러나오자 마지못해 비인가 작전을 세웠다.
책임지겠다고 각오했으나 답답한 심정을 달래지는 못했다.
‘돌아가면 시답지 않은 문책을…… 아니지. 설마?’
문득 그는 아까 아이와 싸웠을 때 아이가 남기고 갔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화재 사고로 인해 출동한 거다.”
언뜻 들으면 무예를 갖춘 정체불명의 아이가 화재 사고 때문에 암시장에 들어갔다는 말로 들렸다.
물론 말도 안 되었기에 대충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러나 문장의 주어에 기사단을 대입한다면?
“기사단이 화재 때문에 출동했다고? 그럴 리가……. 말도 안 돼……!”
“단장님?”
블레이크는 차례로 모인 조각들을 통해 나온 결론을 쉽사리 믿지 못했다.
마치 그 아이가 기습 작전을 모두 알고 있던 것 같았으니까!
아니, 냉정해지자.
블레이크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기습 작전이 노출되진 않았다. 그랬다면 당장 왕가에서 따지고 들었으리라.
다른 가능성.
블레이크는 오늘 낮에 부하들로부터 기사단을 사겠다고 찾아온 어떤 인물에 대해 들었다.
그 인물 역시 꼬마였으며 나이트워커 사람이라고 했다.
떠올릴수록 블레이크의 낯이 사색으로 변했다.
“부관. 급히 병력을 차출해라. 전부 정예로만 모아야 한다. 아니지. 외부 임무를 나간 이들 중 내일 아침까지 소집 가능한 자들까지 전부 불러.”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그는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체포해야 할 자가 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