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age member of the mandol has returned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이 판, 뒤집을 수 있어
북한산 초입에 위치한 음식점 《후들후들》.
등산객이 붐비는 가운데, 울창한 산림과는 요만큼도 어울리지 않는 다섯 명의 소년이 서 있다.
이내 흙바닥에 눕혀 둔 휴대 전화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 줄곧 바라보고 있었어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네 주위를 맴돌아
I’m hesitant, I’m helpless, I’m just a bystander
식당 내부에서 식사 중이던 손님들이 문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길을 지나던 등산객 또한 발걸음을 멈추고서 시선을 던졌다.
– 다만 널 아프게 하는 녀석들과 같은 취급은 싫어서
안녕, 하고 짧은 인사를 건넸다가, 돌아오는 눈초리에 그저 눈인사만
인파가 몰려들자, 얼떨결에 춤을 추던 나도 바짝 긴장하게 된다.
– 줄곧 지켜보고 있었어
먼저 다가서지 못하고 네 곁만 맴돌아
I’m hesitant, I’m helpless, I’m just a bystander
지난 7년간, 셀 수 없을 정도로 행사를 많이 뛰었다.
데뷔 초엔 주꾸미 축제, 젓갈 축제, 참외 축제 등.
일반인일 때는 존재의 유무조차 몰랐던 축제에 초청되곤 했다.
축제의 예산에 따라 무대의 퀄리티가 상이했는데, 어느 날엔 길바닥에 카펫 한 장만 깔아 두고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진짜 흙바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그때, 엉망이 된 네가 내 이름을 부른 거야
샘솟는 Power, 느껴본 적 없는 Sense
세차게 발을 움직이자 흙먼지가 일었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가 마치 무대 위 드라이아이스 같았다.
– 지켜 줄게. 품 안 가득 끌어안아 널 감쌀게
숨을 맞댄 지금, 어느 때보다 난 완전해져
늦었지, 미안. 네게 가는 길을 조금 헤매서
무대는 흙바닥, 무대 의상은 등산복, 음향 시설은 휴대 전화가 전부였다.
공연의 대가는 파전과 묵사발뿐인데.
이 말도 안 되는 게릴라 공연이 어쩐지 무척 즐겁게 느껴졌다.
– 지켜 줄게. 품 안 가득 끌어안아 널 감쌀게
손을 잡은 지금, 어느 때보다 난 완벽해져
늦었지, 미안. 네게 가는 길을 조금 헤매서
이토록 순수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게 얼마 만인지.
– 나 아직 어리고 서투르지만, 약속해
어떤 일이 닥쳐도 놓지 않겠다고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어느덧 식당 주위로 수십 명의 등산객이 모여든 상태였다.
연령대는 다양했다. 중장년층부터 노인까지.
물론 블랙시즌의 매력을 가장 어필하기 쉬운 십 대 청소년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둘, 셋. I’ll be your seasons! 안녕하세요. 블랙시즌입니다.”
우리는 일렬로 서서 등산객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러자 연세가 지긋한 노인 한 분이 말을 걸어왔다.
“티브이에서 봤어. 우주복 입고 노래하든디? 우리 손녀딸이 아주 좋아 죽어.”
그러자 지호가 급격히 얼굴을 굳혔다.
우주복을 입고 노래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메테오였다.
아무래도 노인 분들 눈엔 아이돌 컨셉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착각하신 모양이었다.
나는 바닥에 내팽개쳐 둔 배낭을 열어 조급히 앨범을 꺼내 들었다.
“뭔가 착각하신 모양인데, 저희는 이번에 데뷔한 신인 아이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쥐고 있던 앨범을 문지호가 빼앗아 들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설마 메테오랑 착각했다고 신경질 부리는 건가?
나는 미간을 좁히며 지호의 등을 노려봤다.
지호는 검버섯이 핀 노인의 손에 앨범을 꼭 쥐여 주며 이야기했다.
“우주복 입은 놈들보다 백 배, 천 배는 더 열심히 할게요.”
“으잉?”
“……그러니까 저희 많이 예뻐해 주세요.”
지호의 손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노인이 슬그머니 운을 뗐다.
“그려, 우리 손녀딸한테 알려 줘야겄네. 블, 블랙 뭐?”
“블랙시즌이요. 앨범에도 적혀 있어요.”
“있어 봐잉. 김 서방, 등산 카페인가 뭔가에 한번 올려 봐. 얘들 블랙, 새, 뭐라고 하니까.”
그러자 머리털이 벗겨진 중년 남성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예? 블랙 타이거 새우요?”
“그려, 가수래.”
졸지에 새우가 되어 버렸지만, 덕분에 주변 등산객들에게 앨범을 나눠 줄 수 있었다.
텅 빈 배낭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쭉 켰다.
“해냈다!”
비록 퀘스트는 아니지만, 무사히 목적을 달성해서 마음은 뿌듯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배고픈 상태에서 몸을 움직여서인지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붙은 것만 같았다.
“학생들, 다 끝났으면 들어와서 밥 먹어!”
식당 주인의 목소리가 흡사 구세주의 음성처럼 들렸다.
우리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식당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갔다.
우리의 호객 행위 아닌 호객 행위로 인해 식당 안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렸다.
“8번 테이블, 거기 앉아.”
분명 파전하고 묵사발만 내어주신다고 했는데.
두부김치에 칼국수, 만두까지 세팅되어 있었다.
“부족하면 더 달라고 말하고. 학생들 덕분에 테이블이 꽉 찼으니까.”
꿀꺽.
침을 삼키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음식을 내려다봤다.
말없이 시선이 오가고, 이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잘 익은 김치를 부들부들한 두부에 척 얹어 입안에 욱여넣었다.
별거 없는 수수한 맛에 감동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고개를 돌리니, 다른 멤버들도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병철이는 안경을 테이블 위에 벗어 두고서, 물수건으로 눈가를 꾹꾹 눌러 닦았다.
“괴상한 음식만 먹다가, 정상적인 음식을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
괴상한 음식을 만든 장본인인 도겸이 형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는 다급히 파전을 찢어서 병철이의 입에 밀어 넣었다.
“그래, 많이 먹어. 병철아.”
주둥이 봉인, 완료.
성장기 소년 다섯 명이 한꺼번에 달려든지라 음식은 금방 바닥을 보였다.
배가 부르고 나니, 뒤늦게 걱정이 몰려왔다.
“근데, 우리 숙소로 어떻게 돌아가? 차비가 없잖아.”
하고 묻자, 하준이가 휴대 전화를 두들겨 거리를 확인했다.
“여기서 강변역까지 도보로 7시간인데요.”
“뭐야, 그게. 걷다가 죽는 거 아니야?”
“매니저 형한테 데리러 와 달라고 하면 안 돼요?”
“지금 한창 데이트 중일 텐데, 어떻게 방해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땀으로 범벅이 된 한 남자가 식당 문을 벌컥 열었다.
매니저 형이었다.
“너 이 새끼들 여기서 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북한산 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등산한다고 했지, 산에서 버스킹 한다는 말은 없었잖아!”
“그거나 그거나, 근데 형 데이트 중인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매니저 형은 이를 꽉 깨물며 벌겋게 부어오른 오른뺨을 내밀어 보였다.
“안 보이냐? 여기 오느라, 여자친구한테 뺨까지 후려 맞았다고?”
“그러게, 뺨 맞을 짓을 왜 해요. 오늘 같은 날은 여자친구랑 있어야죠.”
“너네라면 이런 거 보고도 태연하게 데이트하겠냐?”
매니저 형이 내민 휴대 전화를 가만히 들여다봤다.
커뮤니티 언덕의 게시물이었다.
[제목: 실시간 북한산 상황] [본문]엄마가 보내 준 동영상인데, 신인 남돌이 등산복 입고 밥 동냥하고 있음
냅다 일어나서 갑자기 춤추고 랩 갈기네
묵사발 어기여차 ㅅㅂ 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댓글 수가 어느덧 300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일 쳤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 * *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오른 매니저 형이 북한산까지 찾아와 준 덕분에 무사히 숙소로 귀환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땀 냄새가 장난 아니라며 대중목욕탕 이용권을 끊어 주기까지 했다.
덕분에 우리는 동네 목욕탕에서 피로를 녹이게 되었다.
“으아, 시원하다!”
열탕에 몸을 담그자,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아마 열아홉의 한선우는 이 감각을 죽어도 모를 것이다.
온수가 콸콸 쏟아지는 목욕탕이라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지져, 몸을 지져야 해.”
열탕에 몸을 담그고 있던 문지호가 경멸 어린 눈으로 나를 주시했다.
“너한테 냄새나.”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탕에 들어오기 전에 씻고 들어왔는데.”
“아저씨 냄새 난다고! 당장 민증 까! 열아홉이 아니라, 스물아홉이지?”
“멋대로 나이 높여서 부르지 마!”
그것도 세 살이나 높여 부르다니.
스물여섯과 스물아홉은 엄연히 다르다고?
열탕 안에서 언성을 높이자, 묵묵히 목욕을 즐기던 병철이가 조용히 일어나 냉탕으로 옮겨 갔다.
“아저씨는 말이야! 저런 사람을 보고 아저씨라고 하는 거라고!”
나는 좌식 세면 부스에 앉아 있는 도겸이 형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형은 모르는 아저씨들 사이에 섞여 서로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하하, 갑자기 내 머리채는 왜 잡지?”
도겸이 형의 팔근육이 볼록 도드라졌다.
그러자 형에게 등을 밀리고 있던 민머리 아저씨가 비명을 꽥 내질렀다.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구나, 하고 혀를 차던 그때.
“대박, 대박이에요!”
잽싸게 샤워를 끝마치고 탈의실 평상에 앉아 있던 하준이가 헐레벌떡 유리문 안으로 들어섰다.
왼손에는 바나나 우유를 들고, 오른손엔 휴대 전화를 쥐고 있었다.
“혀, 형들, 놀라지 말고 들어요. 우리 팬 카페 완전 대박 났어요!”
“뭐?”
하준이는 뿌옇게 김이 서린 휴대 전화 액정을 손으로 벅벅 닦아 내게로 건넸다.
기하급수로 늘어난 회원 수가 눈에 들어왔다.
“우왓!”
하마터면 손이 미끄러져 휴대 전화를 열탕에 빠뜨릴 뻔했다.
“뭐, 뭔데? 갑자기 왜 이러는데?”
아침까지만 해도 천 명대에 머무르던 회원 수가 급속도로 증폭했다.
만 구천 명. 고작 반나절 만에 일궈 낸 숫자라곤 믿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근데 카페 분위기가 좀 이상해졌어요.”
“이상하다니?”
“뭐랄까, 진짜 등산 카페처럼 됐거든요.”
뒤늦게 게시글을 둘러보자, 하준이의 말대로 그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았다.
[자연과싸나이] 가입합니다. [청풍명월] 가입 인사 올립니다. [다연공주아빠] 여기 가입하면 등산 양말 준다던데, 맞나요? [한잔하실분] 가입합니다. 양말은 어디서 신청하면 되나요?“가, 갑자기 웬 등산 양말?”
“그렇지 않아도 찾아봤거든요. 어떤 산악회 카페에 저희 팬 카페 주소가 찍힌 것 같아요.”
무려 회원 수 13만 명에 달하는 ‘4050산들산악회’ 카페의 한 회원이 블랙시즌에 관한 게시물을 업로드한 모양이었다.
팬 카페에 가입하면 등산 양말을 나눠 준다는 헛소리는 누가 먼저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신규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쩌면…….”
퀘스트 종료까지 앞으로 세 시간 남짓.
시리우스 팬 카페 회원 20,634명.
블랙시즌 팬 카페 회원 19,248명.
총 1,386명 차이.
“이 판,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몰라.”
열탕 안에 몸을 담그고서, 초 단위로 새로고침을 하며 회원 수를 확인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목욕을 끝마친 멤버들이 내 얼굴을 힐끔 훔쳐보며 이야기했다.
“근데 회원 수에 왜 저렇게 집착하는 거야?”
“몰라, 시리우스 윈이랑 내기라도 했나 보지.”
나는 벌겋게 익은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다들 조용히 좀 해봐! 지금 딱 중요한 순간이란 말이야.”
20,631, 20,632, 20,633…….
마침내, 블랙시즌은 시리우스를 추월한다.
“20,635명! 해냈다아아악!”
[알림! 메인 퀘스트 ‘타도 시리우스’를 완료했습니다.] [완료 보상을 지급합니다.] [능력치 강화 카드 획득!]“내가 블랙시즌의 미래를 지켜 냈, 꾸루루룩…….”
열탕 안에서 흥분했더니, 눈앞에 현기증이 핑 돌았다.
풍덩.
균형을 잃고 탕 안에 머리를 처박자, 사색이 된 멤버들이 내 몸을 건져 냈다.
“한선우, 미친놈아! 정신 좀 차려 봐!”
“콜록, 콜록, 구웨에엑…….”
얼굴에 뚫린 구멍이란 구멍에선 전부 물이 새어 나왔지만, 씰룩이는 입꼬리를 감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