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pporting characters in horror novels want to live as human beings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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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의 행사 일정을 알기는 쉬웠다.
수도 행사를 진행한다 치면 광장의 조각상 위에는 색색깔의 긴 끈이 장식된다.
행진 행렬이 있을 예정이면 길가를 반짝반짝하게 쓸어놓고 통행이 금지된다.
사냥축제가 있으면 근교 숲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러니 아른트가 소문을 수집하고 돌아와서 20분 내내 행사 일정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후에는 축하 피로연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왕족들은 참가할지 잘 모르겠네요. 원래 안 하신대요! 그리고 피로연이 끝나면 당분간 겨울까지는 휴식기간인 모양입니다.”
“겨우 끝났군.”
레안드로스가 피곤한 투로 혼잣말을 했다.
우리는 조그만 여관방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돈도 있으니 더 큰 곳으로 가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애꿎은 돈까지 쓰며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아 기각했다.
아른트가 이제까지 말한 내용은 1년 내내의 정기 행사에 관한 것이었다.
지금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간.
신년제를 비롯해 한 해의 시작부터 초봄까지 열리는 행사는 전부 지났단 이야기다.
데뷔탕트니, 봄맞이 대축성제, 사육제니 하는 행사는 스킵.
“우리가 수도에 오기 전에 사육제가 끝난거지. 그럼 앞으로 남은 건.”
“여름 전 사냥제와 명사수를 기리는 슈첸페스트, 봉헌식, 성체축제일, 국왕탄신제, 그리고 가을의 추수를 기념하는 에언테당크페스트가 있습니다.”
아른트가 우쭐거리며 줄줄 외웠다.
타이밍이 좋은 것 같다.
아른트가 말한 바에 의하면, 사육제는 지난해 늦가을이 지났을 때 열려서 이듬해 이른 봄까지 열리는 긴 축제 기간이었다.
이 때 수도에서 진탕 놀던 귀족들은 사육제가 끝나고 각자의 영지로 내려간다고 한다.
축제 기간 동안 미뤄두었던 영지도 보살펴야 하고, 긴 겨울이 지났으니 봄에 소작을 줄 토지도 봐야 하고.
영지민들이 봄을 타 이탈하진 않는지,
봄에 새끼를 친 마수종이 장원으로 들어오진 않는지.
영지에서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은 타운하우스는 주인을 떠나보내고 고용인들만 남긴 채 비어 있을 거라는 뜻.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타운하우스의 위치는 찾기 어렵지 않겠지.”
“하지만 방문도 쉽지만은 않겠습니다.”
레안드로스의 말이 맞았다.
신분을 숨긴 채라면 들어가지도 못한다.
일개 평민이 귀족가를 멋대로 방문한다는 건 있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공작인 내가 직접 가도 경계심만 심해지는 역효과만 나겠지.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뭔데요, 공작님?”
“너네 둘만 가.”
아른트와 레안드로스는 영문을 몰라서 서로를 쳐다보다가 동시에 나에게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돼요.”
“아니, 왜 그렇게 단호하게 말해? 너희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기사 작위를 가지신 분이신데 일개 시종인 저와 친분을 따지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공작님? 듣던 경께서 놀라셨을 겁니다.”
“제가 모시는 분은 공작님이십니다. 호위기사가 부재중인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두 명에게서 다다다 튀어나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전생에서는 둘이 딱 붙어 있어서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하긴, 지금은 아직 그런 사건들이 없었지.
나는 두 사람의 손을 하나씩 꼭 잡았다.
“두 사람 다 마음은 이해해.”
“그럼…….”
“그럼 내가 직접 갔다가 공작이 수도에 와서 전집사장을 비롯해 하르트만 요직에 있던 사람들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소문을 몰고 돌아올까? 그렇게 되면 왕궁에서도 무슨 수작인지 궁금해 하지 않을까? 다 같이 붙어 다니면서 새 공작이 앙심을 품고 반역을 다시 모의하고 있다고 거하게 중상모략 당해볼까?”
“…….”
아른트는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레안드로스는 비교적 성공적이었지만 움찔거리는 입매는 숨길 수 없었다.
이것들이 어디서 떼를 쓰고 있어.
두 사람의 손을 꾹 쥐자 아른트가 부르르 떨었다.
“사이좋게 다녀와라.”
까라면 까.
이 천둥벌거숭이들아.
* * *
자금이 있으니 뭐든 일사천리였다.
두 사람이 하르트만의 이름을 걸고 방문하는 만큼 격식을 차려야 했다.
초라하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옷 대신 새로운 경갑옷과 망토, 깨끗하고 품위 있는 복장으로 갈아입혔다.
망나니 기질이 다분한 말을 이용하는 대신, 타운하우스까지 타고 갈 마차도 대여했다.
이전 삶에서 죽은 덕분에 얻은 정보를 팔아 돈을 마련할 수 있다니.
어쩌면 한 번 더 죽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두 사람을 배웅했다.
마차가 멀리 떠난 후, 나는 여관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먹으려고 사둔 사과를 몇 알 챙겨서 여관 옆으로 가니 여전히 말 두 필이 매여 있었다.
갈색 말은 졸고 있었지만, 검은 말은 발소리가 들리자마자 콧김을 내뿜었다.
“여기 있으니까 갑갑하지 않냐.”
검은 말의 옆에 털썩 앉자, 흑마도 무릎을 굽혀서 꿇었다.
말에게 사과 하나, 그리고 나도 사과 하나.
아작거리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서 사과를 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동부 구덩이, 거긴 정보를 팔아먹었으니 이제 관심을 꺼도 될 듯싶었다.
아이든이 어지간히 알아서 하겠지. 보험도 하나 들어뒀으니까.
남부 어인, 그쪽은 죽기 전에도 알아낸 게 없어서 잘 모르겠다. 팔아먹을 정보도 없고.
하지만 잘 아는 사람을 찾아볼 순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처리해도 되는 일으로 분류.
마지막으로 하르트만 공작가의 멸문에 대한 배경.
이건 아른트와 레안드로스를 보냈으니 소식을 가지고 오면 생각해볼 문제다.
주인공이 갔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
뭐든 유릭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지난 삶에서 유릭은 나에게 몇 번이고 말했었다.
‘전과 같지 않다’, ‘많이 달라졌다’라고.
한 번 돌아온 지금, 유릭은 여전히 나를 아렌하이트로 생각하고 있겠지.
그러니 아렌하이트가 선택하지 않을 방향으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유릭……. 이 개자식 같으니라고.”
-푸르릉.
“맞는 말 같다고? 아이구 똑똑한 것.”
흑마에게 사과를 하나 더 던져줬다.
사과를 으적으적 먹는 눈이 빨간 흑마를 보다가 기대서 생각했다.
동부 구덩이.
뛰어내리는 사람들.
투자자들 앞에서 공개한 마수.
대체 유릭 덴 메나디아는 어떻게 마수를 길들일 수 있었을까.
* * *
덜그럭거리는 마차.
그 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하나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채 앉아 있는 기사였다.
새 것 같은 갑주를 걸치고, 어두운 색의 망토를 두른 그는 귀족가에서 막 나온 어느 영식처럼 보였다.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치밀한 설계로 보이게 하는 얼굴 덕분이었다.
얼음 같이 차가운 동시에 거대한 빙산처럼 굳건한 인상이다.
맞은 편에는 그와 정반대의 인상을 가진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약간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는 보기 싫지 않을 정도로만 다듬어져 있었다.
녹색 눈은 초여름의 나뭇잎처럼 싱그러웠고, 얼굴은 전반적으로 동그란 인상이 강했다.
어리게 본다면 그렇게밖에 안 보인다.
하지만 온화한 눈매나, 다정한 얼굴 윤곽에서는 어린이 특유의 미성숙한 태가 드러나지 않았다.
여러모로 걸출한 인상의 둘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눌 법한데.
마차 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둘이 가진 공통분모는 아렌하이트 하나 뿐이었다.
하지만 아렌하이트를 제외한다면 둘은 공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다.
아른트는 남몰래 입을 비죽였다.
‘공작님도 너무하시지.’
아렌하이트가 한창 아팠을 때야 걱정 되어서 레안드로스 경에게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만.
지금은 그럴 일도 없으니 소소하게 나눌 이야기조차 없었다.
검술?
레안드로스와 아른트는 검을 논하기에는 실력차가 극심했다.
성의 생활?
레안드로스가 사냥하면 아른트가 먹을 수 있게 만드는 정도였다.
지금 가고 있는 목적지?
그거 때문에 레안드로스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아니었나.
마차 안을 감도는 어색한 공기에 아른트는 차라리 걸어가고 싶어졌다.
이대로 마차 창문을 열고 뛰어내릴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공작님께서.”
“네?”
“공작님께서 마르신 것 같던데.”
무슨 소리야.
아른트가 눈을 몇 번 깜작이자 레안드로스는 추가로 덧붙였다.
“식사를 챙겨드리고는 있나?”
“아니……. 그건 당연하죠. 제 의무인데요. 공작님께서는 원래 소화기관이 좋지 않으셔서 식사를 오랫동안 적게 하시는 거고요.”
“그럼 식사량을 늘리기 위해 좋아하는 식사를 마련해야 하지 않나?”
시비야? 시비인가?
아른트는 비록 몰락한 귀족가의 단 하나 남은 시종일지언정, 자신의 임무에 자신감이 있었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직접 돌봐온 도련님.
그러니 자신이 아렌하이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당연한데도.
아른트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답했다.
“경은 잘 모르시겠지만, 공작님…… 우리 도련님께서는 몸을 숨기고 계셨던 기간 동안 몸이 안 좋아지셨거든요. 도련님의 취향은 잘 알고 있지만, 드실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니까요.”
“흠.”
“저희 도련님에 대해 걱정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신 마님께서 아시면 기뻐하실테지요.”
“그런가.”
“확실히 신경 쓰는 사람이 많으니 좋네요. 나중에 경께서도 호위기사로서 책임이 덜어지면 좋겠습니다. 자주 피곤해 보이시잖아요.”
창밖을 보던 레안드로스가 아른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책임?”
“보통은 호위를 하나만 두지는 않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물론 경께서는 마님의 부탁을 들어드리고 싶으시겠습니다만.”
아른트가 헛기침을 햇다.
“꼭 도련님 곁에 계시지 않아도 앞으로 하르트만 공작저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게 곧 도련님을 위한 것이지요.”
나이도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공작님 곁에서 딱 붙어 있을래.
왕국에서 드높은 명성을 가진 젊고 열의에 넘치는 기사들이 넘쳐 난단다.
아른트의 우회적인 권유를 들은 레안드로스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대체할 수 있는 기사가 공작저로 온다면 말이지.”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련님께서 여간 영리한 게 아니셔서 말이죠.”
공작 부부가 죽은 이후로 걸어 다니는 시체 같던 아렌하이트가 기운을 차린 건 심하게 앓고 나서부터였다.
자리에 누워 있는 동안 마음을 달리 먹은 걸까?
아픈 사람이 개심한다는 이야기는 많으니까.
아른트는 그렇게 여기고만 있었다.
“동부 소식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궁금하기는 해도.”
어디선가 들으셨겠지.
그런데, 수도에서 성으로 오는 길 내내 그런 소문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아른트는 잠시 고개를 기웃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신 선친의 유지를 이어받으시려고 하시는 마음가짐. 얼마나 대단하십니까?”
아른트는 확신에 차서 말했지만, 반대로 레안드로스의 표정은 미묘했다.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눈빛.
결국 레안드로스가 입을 열었다.
“그런 것보다……”
그 순간 마차가 멈췄다.
밖에서 마차를 끌던 마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기다릴까요?”
레안드로스는 하려던 말을 삼켰다.
아렌하이트가 아른트에게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겠지.
언젠가는 아른트도 알게 될 것이다.
레안드로스가 먼저 마차 문을 열고 내렸다.
아른트는 궁금해 하면서도 묻지 않고 그 뒤를 따라 내렸다.
그런 두 사람의 앞에,
드높은 철창과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사병.
그리고 제법 아름다운 정원 뒤로 서 있는 회색빛 저택이 드러났다.
부집사장, 아멜리아 아놀드.
아놀드 남작가의 타운하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