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청호, 청서호 (2)
청안광마 청서호.
금침의괴가 설명해 주기도 했지만, 사실 이강은 진작 기록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대략 4~50년 전쯤에 활동했던 고수다. 무림맹과 사도련 척살대의 합격에 의해 41년 전에 사망했다. 즉, 이강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죽었던 옛날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보다 한참 옛날 사람인 불사신검과 함께했던 이강이다. 그리 세월의 간극을 느끼지는 않았다.
청안광마가 무척 젊은 외모를 가진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죽었을 때의 나이 같은데, 아마 스물아홉이라고 했나. 그녀는 그 젊은 나이로 강자의 위치에 올랐다.
범인의 상상을 초월한 날쌘 몸놀림, 겨우 팔뚝 길이의 소검(小劍)이 번뜩이면 누군가의 목이 날아갔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청서호가 맹인 검사라는 기록이었다. 별호에 푸른 눈이라는 표현이 붙어 있는데 맹인이라니.
하지만 그런 기록이 꽤 많았기에 이강은 나름대로 추측을 했다.
‘백내장(白內障)인가?’
수정체가 혼탁해져서 종래에는 시력을 잃는 병이다. 어쩌면 청안광마는 백내장에 걸렸고, 창백한 수정체가 꼭 푸른 눈처럼 보인 것 아닐까.
그래서 맹인 검사라는 증언이 기록된 것이 아닐까 하는 제법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분노해서 중얼거리는 그녀의 눈은 누가 봐도 확연한 푸른 빛을 냈다.
「아무것도 안 한 나를 무림공적으로 삼았어. 누군지는 뻔하지…….」
“네에.”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근덕거리던 청안광마는 힐끔힐끔 이강을 보았다.
「놀랍지 않아? 무림맹 하나도 아니고 사도련까지 움직였어. 정파와 사파가 모두 나를 죽이려 모였다고.」
“그렇군요.”
「그 모든 일을 사주한 놈들……. 대단한 놈이지. 그러니까 가능한 일이었겠고.」
하지만 이강의 안색이 평온하자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안 궁금하냐? 대체 어떤 놈이 무림맹과 사도련을 전부 쥐고 흔들 수 있었는지.」
“글쎄요.”
「누가 그렇게까지 나를 죽이려 했는지도?」
“딱히 그렇게 궁금하지는…….”
이강은 곤란한 듯 그리 말했다. 뭔가 구린 것이 있겠지만 사실 그렇게 흥미가 가지는 않았다.
청안광마의 입장에서는 그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
「됐어! 어차피 말해 줄 생각도 없었어!」
“네.”
림주는 이강이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에게는 청안광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텐데, 림주는 대화를 파악한 듯 말했다.
“서호에게는 기구한 사정이 있지. 누구에게도 말해 주지 않은 비밀도 있는 듯하구나.”
“제게 이분을 알려 주신 이유는…….”
이강은 청안광마보다 림주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왜 청안광마와 이강을 소개시켜 준 것일까.
“이강 너와 서호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듯해서 그렇다.”
“도움이라면…….”
짐작 가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강이 청안광마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당당한 자세로 가슴을 펴고 있었다.
“이제 겨우 한 개의 대맥을 이은 것 아니더냐. 아홉 개 대맥 중 최소 네 개를 더 이어야 요절을 면할 것이다.”
불사신검의 거대한 영력을 전부 물려받아서 하나의 대맥을 이었다. 나머지 대맥들은 어떻게 이어야 할지 싶어서 막막했던 참이었다.
“저게……. 아니 저분이 대맥을 잇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강은 떨떠름한 말투였다. 쉽사리 믿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가 대맥을 이을 수 있던 것은 아주 운이 좋았던 것 아니었습니까.”
“분명 운이 좋았지.”
“조상님께서는 엄청난 영력을 보유하고 계셨던, 특수한 경우니까요.”
이강은 그렇게 말하고 청안광마를 슬쩍 바라봤다.
예전이라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불사신검을 성불시키고 영력에 대한 감각이 날카로워졌기에 알 수 있었다.
“저분은…… 비교가 안 될 것 같은데요?”
「……건방진 놈!」
청안광마가 씨근덕댔지만 이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척 보아도 불사신검과 청안광마 둘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불사신검은 등선지경을 눈앞에 둔 절대고수였다.
청안광마가 아무리 날고 기었다고 해도 격차가 존재한다. 하물며 그녀는 딱히 영력이 풍부한 것 같지도 않았다.
「누구와 비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래도 생전에는…….」
“물론 그분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
림주가 바로 이강의 말을 긍정하자 청안광마는 조금 풀이 죽었다.
“하지만 서호가 대요괴의 피를 타고난 것은 사실이야.”
“그 천뢰백미호라는 것 말이군요.”
이강은 문득 대호, 쌍두귀호를 생각했다.
그것도 범상찮은 요괴였는데. 아무리 그래 봤자 미물은 미물이었다. 대요괴라고 불리는 것들은 또 다를까?
“그들은 진정으로 상격의 요괴지. 천뢰백미호의 일족은 신검께서 남긴 영력 이상의 힘을 다룬단다.”
“……요괴가요?”
이강이 요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비교 대상이 불사신검이라는 게 문제다.
요괴가 천하제일고수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믿기 어려웠다.
“강함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요괴는 영력을 기반으로 요력을 숨 쉬듯 다루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이강 네가 서호를 돕는다면 천뢰백미호 일족이 마땅한 보상을 해 줄 것이다. 대맥을 이을 만큼의 영력이 그 대가라도.”
놀라운 이야기에 이강은 청안광마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다른 곳을 보고 있다가 이강의 시선을 눈치채고 마주 째려보았다.
그 모습이 영 믿음직하지 못했다. 애초에 요괴의 혼혈인 인간을 돕는다고 요괴가 이강을 도와준다니. 림주의 말이니 옳으리라곤 해도,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돕는다는 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성불하지 못하고 남은 것은 그만큼 미련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 다만 내가 대신 말하기보다는 직접 듣는 게 낫겠구나.”
불사신검처럼 한을 풀고 성불하면 되는 일일까.
하지만 청안광마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이강의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제 인간이 지긋지긋하다. 완전한 요괴가 되고 싶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이강이 가만히 있자, 그녀는 중언부언 보충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 할아버지가 요괴시니까 나는 절반의 절반 정도 요괴의 피를 가지고 있는 거지.」
어떻게 사람과 여우 요괴가 맺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럴 것이다.
「사분지 삼은 인간인 거잖아. 나는 인간으로 사는 게 지긋지긋했어. 인간보다는 요괴가 백배 낫지.」
이강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건 담현이 하던 말과 똑같은 내용이었다. 담현만 미친놈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한 사람, 아니 귀신이 여기 있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살았는데, 이제는 죽었으니 상관없겠지. 나를 완전한 요괴로 만들어 줘.」
인간성을 버리고 요괴로 재탄생하는 것, 그게 청안광마 청서호의 숙원이었다.
이강은 림주를 돌아봤다.
“요괴가 되고 싶다는데요?”
“허허…….”
림주는 진작 알고 있던 듯했다.
“제가 도와주려고 해도 뭘 어떻게 해 주면 되는 겁니까. 림주님도 돕지 못하신 일 아닙니까?”
여태까지 그녀가 귀신으로만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요괴가 되려면 곤륜산에 있는 일족의 거처를 방문해야겠지. 하지만 서호는 본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어. 형산의 영기로 간신히 요력을 보충하며 버티고 있거든.”
불사신검만큼의 힘이 없는 청안광마는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제가…….”
“이강 너와 함께라면 가능하지.”
그렇게 말한 림주는 이강을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는 이강의 손에 푸른 보석을 쥐여줬다.
“이것이 서호가 깃든 청안석(靑眼石)이란다. 꾸욱 쥐고 마음을 편안히 해 보아라.”
이강은 잠자코 림주의 말에 따랐다.
“우수(右手)의 장심부터 기해(氣海)까지의 대맥이 이어지지 않았느냐. 너라면 능히 내기가 아니라 진원진기 또한 인도할 수 있겠지.”
그리고 곧, 이강의 손바닥에서 무언가 쑤욱 목걸이로 빠져나갔다.
「우아앗!」
그리고 청안광마가 번쩍 일어섰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확 곤두서고 눈빛은 번뜩였다.
「이건!」
청안광마의 입술을 새빨간 혀가 훑고 지나갔다. 몹시도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이강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
“이강 네가 아주 미약한 진원진기를 주는 것만으로도 서호는 부족한 요력을 보충할 수 있다. 그분의 영력으로 대맥이 이어진 너라면 쉬운 일이지.”
그 말대로 빠져나간 것은 미약한 진원진기였다. 하루 정도 지나면 절로 보충될 만큼.
이강은 고개를 끄덕이곤 청안광마에게 물었다.
“이 보석을 가지고 곤륜산에 방문하면 되는 겁니까?”
「간단한 일이지? 아, 근데 하나 챙겨 가야 하는 게 있어.」
“뭘 말입니까.”
「그 보석, 원래 하나가 더 있거든. 한 쌍이라서.」
이강은 손에 들린 보석을 자세히 살폈다. 청안석이라, 불사신검의 유성아처럼 청안광마의 애정이 깃든 물건일까?
「내 눈알 속에 들어 있던 거야. 그게 왼쪽 눈에 들어 있던 거. 오른쪽 눈에 들어 있던 청안석도 챙겨 가야 해. 일족의 요력이 담긴 증표 같은 거거든.」
이강은 무심코 청안석을 던져 버릴 뻔했다.
“눈알에 보석이 들어 있다고요?”
「요력의 결정체지. 중요한 거야.」
“중요한 거라면서 왜 잃어버렸습니까.”
그렇게 중요했으면 제대로 챙겨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찾을 수는 있는데…….」
어쩐지 밑밥을 까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었거든. 예전에 곤륜산으로 탈출하기도 전에 어떤 놈한테 오른쪽 눈을 찔렸어. 칼을 쏙 빼니까 눈알이 뽁 튀어나왔다니까?」
역시 청안광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이야기를 하듯 눈알이 뽑힌 일화를 설명했다.
「그놈이 아마 무림맹 멸사추적대 대주였을 거야. 신나서 보물로 간직한다고 했으니까.」
“요점만 말하세요.”
이강은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청안광마의 입에서 나온 말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 무림맹 어딘가에 다른 청안석이 있을 거야. 그걸 챙겨 가야 해.」
이강은 물끄러미 청림주를 돌아봤다.
“무림맹, 청안석…….”
“허허.”
림주도 아는 듯했다. 그저 웃는 것을 보니.
“가서 달라고 하면 줄까요?”
“허허.”
그냥 주지 않을 듯했다.
이강은 고민했다, 불사신검을 성불시키는 일보다도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곤륜산은 멀기도 하고 무림맹에서 청안석을 찾아 훔치는 일도 터무니없게 들렸다.
이강이 고민하자 청안광마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림주가 조용히 거들었다.
“너무 큰 걱정은 하지 말거라. 당장 떠나라는 게 아니다. 우선 청림의 문도로서 수련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의 말대로였다.
이강은 이제 정식으로 청림 이대 제자로 입문했다. 운자배가 아닌 진자배로 입문한 만큼, 이강은 이대 제자 다운 자격을 갖춰야 했다.
어느 정도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청림의 무공 또한 배워야 했다.
“최소한 수년 뒤의 일이다. 적어도 이화(二花)를 달고 나서나 떠날 생각을 하거라.”
진리연이 이제 막 삼화 제자가 되었다. 이화 제자가 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청안광마는 몰라도 림주는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이강의 몸을 고쳐 줄 곳은 청림뿐이리라.
“그리고, 서호가 또 많은 도움을 주겠지.”
“도움이요?”
「내 숙원을 도와준다면 당연히.」
청안광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비전의 검술을 가르쳐 줄까. 아니면 화려한 보법이 필요하냐. 말만 해!」
이강은 어쩐지 석연찮았다.
‘할아버지가 계셨다면 뭐라고 하셨을까.’
불사신검이 있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이강이 침묵하자 청안광마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강은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네요.”
「뭐가, 뭘 모르겠어! 내 무공을 배우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데. 나 청안광마야!」
그러나 이강에게는 청안광마고 나발이고 무공은 필요 없었다.
이미 불사신검이 남긴 무공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공은 됐고요.”
「그러면…….」
불사신검이 있었다면, 일단 한번 튕겨 보라고 조언했을 듯했다.
“하나만 물어볼게요.”
청안광마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강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