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8)
“형님.”
술잔을 기울이던 유건민은 조심스레 자신의 옆에 앉는 박경석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매제, 여긴 어쩐 일이야?”
“형님이 걱정돼서 왔죠.”
아내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유건민은 하던 일도 다 제쳐두고 사건을 파헤쳤다. 아내가 그렇게 생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나를 그렇게 두고 떠나지 않을 거라고 애써 믿었기에 끈질기게 사건을 물고 늘어졌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 혹시 내부인일까?”
“형님.”
“그만둔 사용인의 정보를 캐면 뭐가 나오지 않을까?”
“형님.”
박경석은 자조적으로 중얼거리는 말을 끊었다. 그는 혹여 유건민이 진실에 근접할까 봐 도와주는 척하며 증거를 흩뜨려놓았지만, 유건민은 다른 사람이 다 포기하라 말려도 끝내 남아있던 박경석에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이제 포기합시다.”
“······.”
“계속 찾아도 증거가 나오지 않지 않습니까. 경찰도 자살로 사건 종결하려는 것 같고요.”
“아니, 아니야.”
유건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다. 이희서는 자살이 아니어야 한다. 누군가 살해했다고, 그렇게 믿어야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형님.”
“아니라고······.”
“애들도 생각하셔야죠.”
그렇게 말리는 박경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빨리 손을 떼야 완전범죄가 될 테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제 역린인 아들들을 들먹이며 포기를 종용하고, 쓰러져 우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저 새끼 드디어 손 뗐네, 지긋지긋했다 생각하며 날 조롱했을까?
“형님.”
현실로 돌아온 유건민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옆에는 유 회장의 첫째 사위, 이영택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힘드시면 안 보시는 게······.”
“괜찮아.”
유건민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며칠 새 그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아니, 유 회장 일가의 모든 사람의 안색이 초췌했다. 매직미러 너머로 고개를 숙인 박경석과 자리에 앉는 유 회장이 보였다.
“······왜 그랬지?”
유 회장의 질문에 박경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황승준이 차곡차곡 모아둔 자료가 결정적인 증거가 되었다. 거기에 민성철이 준 자료로 쐐기를 박았고, 박경원과 양홍식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 장인어른.”
“그렇게 부르지 말게.”
유 회장은 박경석에게 그렇게 불리는 게 치욕스럽다는 듯 고개를 홱 돌렸다. 박경석은 고개를 숙이고 음습한 웃음을 흘렸다.
“저는 열심히 했습니다.”
“······.”
“당신에게 인정받으려고 제가, 제가 얼마나······.”
박경석은 노력했다.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유 회장의 눈에 들기 위해. 하지만 유 회장의 경멸하는 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게 다 당신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이 차별만 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살인을 계획해?!”
유 회장은 큰 사위인 이영택에게는 자신보다 관대했다. 그렇겠지, 이영택은 법조계 집안이었으니까.
그래서 이희서에게는 동질감이 생겼다. 나보다 못한, 그저 예쁘기만 한 연예인 출신이니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을 취급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동병상련의 심정을 자극해서 다가가야지. 약간의 흑심을 담고서.
[다 우리 며느리 덕분이지.] [그래, 마침 너에게 줄 게 있었다. 어디 보자······ 주성 물산의 지분을······.]하지만 이희서는 달랐다. 그깟 천재 장손 하나 낳았다고 어화둥둥 하는 꼴이 같잖았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툭 내뱉는 말에는 그가 생각하지 못한 사업적 감각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래서 유 회장과 박금주는 그녀를 아꼈다.
[이참에 네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니?]나보다 못한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원석이었고,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그래서 죽이고, 뺏었다. 그리고 자신의 업적으로 포장했다.
[그런데, 우리 사장님은 그거 아시나 몰라.] [둘째가 나를 봤어요. 조금만 크면 우리 희서랑 똑같아질 것 같더라.]민성철의 말을 들었을 때는 심장이 철렁했다. 하지만 유일한 목격자는 트라우마로 제대로 기억을 못 하고 발작했다. 그래서 이대로 묻히는 줄 알았다. 유연서가 갑작스럽게 연예계 데뷔를 한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연서, 걔 좀 방해해야겠어.] [어떻게 할까요?] [소문을 내. 악질적인 거로.]과해도 좋으니 그 애가 제 어미의 전철을 밟는 것을 막으라 지시했다. 설마 기억을 되찾을까 봐 지레 겁먹어서 지시한 일이었다.
그 이후에는 이희서와 닮은 얼굴의, 그녀의 유산이 언론에 이리저리 짓밟히는 것을 여흥으로 삼았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안녕하세요.]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졌던 조카가 기적적으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묘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나? 유연서가 기억을 되찾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이 실수한 겁니다.”
“그래! 그래서 너 같은 놈도 내가 사위로 받아줬지!”
유 회장은 박경석을 처음 보았을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제 막내딸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추악한 감정을 읽었다. 하지만 말릴 수 없었다. 딸이 좋아하니까.
그래서 더 혹독하게 굴렸다. 내 딸에게는 모든 걸 줄 수 있지만, 자네는 안 돼. 자네 안에 숨겨진 야욕을 없애는 게 우선이야. 그게 독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다.
“너를 받아줬던 게 내 최대 실수다! 그래, 인정해!”
“회장님.”
“하지만, 나 때문이라고? 허튼소리를!”
“회장님. 진정하십시오.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뒤에 서 있던 박상형이 유 회장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유 회장은 목까지 새빨개져서 분노의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박경석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희서, 그 아이가 죽은 건 너 때문이야! 네 썩어빠진 열등감! 네 자격지심 때문에!”
박경석은 주성 일가의 신데렐라로, 볼품없던 평사원 시절보다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든 걸 망쳤다. 두 손자는 친어미를 잃었고, 어여쁜 막내딸은 충격받아 쓰러졌다. 졸지에 범죄자의 자식이 되어버린 손녀와 막내 손자까지 집에 틀어박혔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유 회장은 지쳐서 몸을 비틀거렸다. 박상형과 백서준이 그를 부축했다.
“선영이와는 이혼 처리가 될 걸세. 아무리 자네가 거부해도 바뀌지 않을 거야.”
“······.”
“평생 좁은 철창 안에서 살게. 내 모든 인맥과 재산을 이용해 자네를 평생 거기 가둘 거야.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 부모 친지 모두! 사는 게 지옥 같음을 느끼게 할 걸세.”
쓰러진 유연서가 아직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희서 사망 사건의 실체를 밝혀낸 것의 시작은 유연서였다. 유 회장은 유은호를 통해 왜 두 손자가 박경석을 잡으러 뛰쳐나갔는지 사태의 자초지종을 들었었다.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 왜 너희들끼리······!] [하지만, 할아버지······ 말씀드리면 달라졌을까요?] [그건······!]유 회장도 단언할 수 없었다. 주성이라는 거대 그룹을 짊어진 그는 거의 평생을 ‘유 회장’의 삶이 우선이었다.
야비한 건 알았지만 배포가 작았던 둘째 사위가 일을 도모했을까?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확실한 증거가 없었으면, 아마 우리끼리 조용히 넘어가자고 했을 수도 있었다.
그 사건이 무려 24년 전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다들 괜찮을 줄 알았다. 자신의 피를 이은 아들과 손자들이 그렇게 나약하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었다.
유은호는 그런 할아버지의 밑에서 경영을 배우면서, 할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할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끝끝내 비밀로 했다.
[연서가, 엄마를 본답니다.] [뭐?] [돌아가신 그대로의 모습으로요. 아직도 민성철을 안내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기 때문이라고 환청을 듣는답니다. 걔 잘못이 아닌데도요.]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 왔다고 했다.
[꼭 잡아야 했습니다. 우리 손으로, 종지부를 찍었어야 했어요.]힘겹게 토해내듯 말하는 장손의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유 회장은 눈가에 열이 몰리는 것을 느꼈다. 적어도 그 애들을 대할 때만큼은 ‘유 회장’이 아니라 그냥 할아버지 유창호로서 살았어야 했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만 가지.”
“네, 회장님.”
지친 유 회장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흐흐······.”
남겨진 박경석은 자조적으로 웃다가 이내 크게 웃었다.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 모습이었다.
상황을 다 듣고 있던 이영택과 유건민이 유 회장의 뒤에 소리 없이 붙었다.
“······어떻게 할까요?”
“다 들었지? 곱게 넘어가지 말게.”
“알겠습니다.”
이영택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 회장은 이어서 눈물을 훔치는 제 아들을 바라봤다.
“넌 괜찮으냐?”
“······아뇨.”
괜찮을 리가 있나. 유건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박경석에게 배신감이 들었고, 화가 치밀어 올랐으며 그때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사건을 조사했으면 달라졌을까? 하는 후회가 생각을 잠식했다.
“저는 좀, 쉬어야겠어요.”
“그래.”
유건민은 비서의 부축을 받으며 차로 향했다. 유 회장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TV를 틀면 주성에 관한 얘기로 채워졌고, 신문 기사, 인터넷 커뮤니티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주성에 관한 얘기를 했다. 주가는 일시적으로 하락했고,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성의 소식이 전달됐다.
“저······ 회장님.”
“음?”
“연서, 걔는 괜찮습니까?”
유 회장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백서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경찰청장의 아들이자 장손의 친구. 백서준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사건 조사가 빨랐다고 했지······.
“연락도 안 되고, 가족 외에는 면회도 안 된다고 해서요.”
“······곧 깨어날 걸세.”
죽은 듯이 자고 있었지만,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그동안 많이 고생했을 테니 남은 건 어른들에게 맡겨야지.
“그래, 은호 친구라고?”
“네, 회장님.”
“우리 애들이······ 저놈을 의심한 지 오래됐나?”
백서준은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저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냥, 조금 손만 거든 거라서요.”
의리도 있는 친구로군. 점점 마음에 들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좋은 친구를 사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유 회장은 그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고맙군, 조금만 더 고생해주게. 나중에 자네 아버지와 식사라도 하지.”
“살펴 가십시오.”
유 회장과 이영택은 백서준의 배웅을 받고서는 차에 올라탔다. 이영택은 심란한 유 회장의 심기를 건들지 않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먼저 침묵을 깬 건 유 회장이었다.
“······자네도 내게 불만이 있으면 말하게.”
“아닙니다. 장인어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조금 잘못됐다 뿐이지, 유 회장은 그래도 나름 사위 대접을 해 주었다. 게다가 조금 차별당했다고 사람을 죽이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빨리 은퇴하든가 해야겠어······.”
유 회장은 눈을 감았다.
***
그리고 그 시간, 유연서는 드디어 병상에서 눈을 떴다.
“이······ 쓰레기 같은 몸.”
첫 마디는 자신의 몸덩어리에 관한 극찬이었다. 그는 침대 옆 작은 탁자에 올려진 제 핸드폰을 들었다. 배터리가 다 됐는지 켜지지도 않았다.
“베타?”
“이번엔 얼마나 흘렀지?”
꽤 길었네, 그래서 몸이 개운한 건가. 유연서는 어려움 없이 상체를 일으키고 기지개를 켰다. 원래라면 후유증이 남았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몸이 가벼웠다.
“그동안 어떻게 됐어?”
할아버지가? 아니면 아버지가? 어쨌든, 그 한마디로 족했다. 그는 그제야 안심한 듯 숨을 토해냈다.
“왜?”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