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156)
제156화
156. 이미 전쟁입니다.
헌터들은 후방을 견제하며 뒷걸음질로 회전교차로를 빠져나왔다. 행동은 조심스러웠으나 입은 거칠었다. 그들 사이에서 욕설이 난무했다.
“개새꺄! 그걸 왜 건드려?! 그 쉬운 오더 하나 못 지켜?!”
“네가 인간이냐? 앙? 그냥 건드리지 말라고! 건드리지만 않으면 되잖아! 귓구멍이 막혔어?!”
“어쩐지 잘 풀린다 했어. 트롤이 없나 싶었는데, 니 새끼가 트롤이구나, 씨불아!”
“띱때끼!”
욕을 먹는 헌터가 억울하다며 항변했다.
“내가 저렇게 될 줄 알았겠어? 그냥 살짝 쳤을 뿐이라고! 아니, 처음부터 경고를 하던가. 솔직히 그런 중요한 오더를 빠트리는 게 말이 안 되잖아? 헌터가 아닌 사람이 공대장을 잡아서 그런 거라고. 자세히 설명을 안 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저저, 저 두개골을 파열 낼 놈. 사냥꾼 값 못하는 너절한 쓰레기래 얻다 대고 아가리를 벌리네?! 혓바닥 뽑히고 싶네? 피탈(핑계)하지 말라.”
“갈빗대 뽑아서 아오지 탄광 곡괭이로 쓰기 전에 다물라우.”
“…….”
찰진 북쪽 욕을 야무지게 먹은 헌터는 더는 변명하지 못하고 파티 구석에 처박혔다.
“적당히 하시죠. 아직 망한 건 아닙니다. 대책이 있으니 모두 침착하게 퇴각에 집중하세요.”
강무혁은 헌터들의 비난을 중단시켰다. 실수한 헌터를 두둔하려는 게 아니었다. 공격대의 결속을 저해하는 행동을 무마시켜 또 다른 변수를 제거하려는 것이었다.
고랭크들이 후방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강무혁은 현정건을 호출했다. 현정건이 잠시 빠져나간 틈은 탱커들을 총동원해서 채워 넣었다.
“왜 불렀습니까? 바빠 디지겠는데.”
“우리, 쟤네 좀 뺑뺑이 돌립시다.”
“뺑뺑이라면…….”
“공격대를 정비할 시간을 벌어야 합니다. 현정건 헌터가 유인하세요.”
“이보세요, 단장님? 저 어쌔신 포지션입니다만.”
“예. 압니다.”
“근딜 보고 저 몬스터 떼를? 보통 뺑뺑이는 원딜 아닙니까? 그게 정석인데.”
“그럼, 여기서 원딜 누구를 대신 쓸까요?”
강무혁이 헌터들을 가리켰다.
현정건은 빙 둘러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활 든 헌터는 여럿 있었지만, 모두 미덥지 못했다. 원거리 딜러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빽 샷(이동 중 뒤돌아 쏘기)’이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었다.
상대가 말문이 막힌 틈에 강무혁이 해답을 제시했다.
“정석 아닙니까? 발 빠르고. 이동기, 탈출기, 생존기까지 골고루 가지고 있는 헌터. 근딜이지만, 비도술 능숙하고. 들고 있는 비도도 많죠. 광역 투척 스킬도 있고요. 정 힘들면 비장의 수도 있을 것 아닙니까?”
“비, 비장의 수…요?”
“그래도 한때는 마태수 부길마가 아끼던 암살대 에이스였는데. 뭐든 있으실 것 같아서.”
현정건은 식은땀을 흘렸다.
‘비장의 수’라는 말에 신의주에서 장중쉰을 잡을 때 썼던 자신의 특성이 떠올랐다.
‘강 단장이 내 비술을 알고 있는 건가? 보여준 적이 없는데? 아니야. 속으면 안 돼. 알 리가 없어. 마태수도 모르는 거라고. 그냥 떠보는 게 분명해. …그래도 강무혁인데? 설마가 사람 잡을 수도 있지.’
현정건은 강무혁의 표정을 살폈다. 포커페이스 그 자체. 전에는 그래도 좀 사람 같았는데, 지금의 강무혁은 마치 벽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상대 속을 알 수 없으니 마땅히 대꾸할 변명도 없었다. 그는 아예 화제를 돌렸다.
“우리, 솔직히 말합시다. 일 틀어지면 처음부터 이렇게 할 계획이었죠?”
“말해 뭐합니까? 잘 아시면서. 우리가 한두 해 일한 것도 아니고.”
“한두 해 일했었거든요.”
“아주 농밀한 2년이었죠. 다른 사람 10년분만큼.”
“젠장, 이런 리스크가 있었지?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어. 괜히 입단해 가지곤.”
현정건의 기억 속에서 과거 타이탄 시절 강무혁이 오버랩됐다.
자신이 전략전술팀 부팀장으로 있던 시절.
당시의 강무혁은 지금보다 좀 더 사교적이었지만, 날카로운 건 마찬가지였고 작전 중에는 그 누구보다 냉철했다.
그 냉철함으로 내리는 오더는 아무리 힘든 임무라 하더라도 타이탄 단원 누구도 감히 거부하지 못했다. 일반인 팀장이라고 무시하던 자들조차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
딱히 헌터들의 약점을 잡은 건 아니었다. 감정에 호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농담 하나 던지지 못하는 사교성 제로인 사람이 친분으로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단지 거부하지 못할 상황을 들이댔을 뿐.
강무혁은 헌터를 상대로 해서 논리로 설득하는 법이 없었다. 그냥 보여주고 선택하게 했다. 그 선택지가 ‘A or A’이지만.
현정건은 참으로 오랜만에 당해보는 강무혁식 명령에 항복했다.
“그래서 어디로, 얼마만큼 돌리면 됩니까?”
“대홍단군 외곽으로. 비도 다 쓸 때까지.”
현정건은 자기 몸을 더듬으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벨트, 부츠, 아머 코트 안쪽 조끼 등등 온갖 헌터 장구류에 꽂혀 있는 손가락 크기의 비도들.
“이걸 다?”
“예. 다.”
“이 사람아. 이거 다 쓰려면, 하루 종일도 돌릴 수 있어!”
* * *
“헉헉…. 이젠 안 쫓아오지?”
“다른 데로 몰고 갔습네다.”
이숙영을 비롯한 헌터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몬스터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도로를 내달리는 광경은 악몽이 따로 없었다. 그 가운데 거대한 몬스터와 그보단 약간 작지만 속씨들과는 덩치부터 다른 세 마리의 몬스터는 일대일로 붙었다간 X 될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드는 괴물들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 뭐였지?”
누군가 ‘그 사람’을 말하자 헌터들은 모두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몬스터들한테 쫓기던 남자. 아니, 유인하던 남자.
처음엔 몬스터 떼에 놀랐지만, 그 몬스터들을 약 올리듯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며 달리던 남자를 발견한 순간 헛것을 봤나 싶어 여러 차례 눈을 비볐다.
자유자재로 치고 빠지는 타이밍과 과감하면서도 적절하게 사용되는 스킬도 대단했지만, 몬스터 대군을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간담이 아니고선 엄두도 못 낼 일이기 때문이었다.
헌터들의 의문에 답한 건 이숙영이었다.
“현정건 헌터입네다. 북포천, 아이언윌 길드 소속. 우리 단장님 직속입네다.”
“우리 단장님?”
“제가 이번에 아이언윌에 들어갔습네다, 부조합장님.”
이숙영의 말에 부조합장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북쪽 출신 헌터가 남쪽 연고 길드에 입단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나 다름없는 탓이었다.
“겨우 그 정도로 놀랄 일 없습네다. 신의주 동무들도 이번에 중국 놈들한테 해방 됐습네다. 한국 헌터로 인정받고 독립된 길드도 만들었습네다.”
이어진 이숙영의 말은 부조합장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북쪽 출신 헌터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모두 턱뼈가 빠진 듯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숙영은 자랑스러운 듯 턱을 치켜들었다.
“이게 다 우리 위대한 단장 동지의 빛나는 업적이십네다. 여기 동무들도 살고 싶으면 우리 단장님만 믿고 따르시라요. 단장님의 영도를 받들면, 자다가도 떡이 떨어집네다.”
이숙영의 말에 북쪽 헌터들은 혹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남쪽 출신들은 이게 무슨 시대착오적인 선전 공작인지 어이없어했다. 모르는 이가 보면 강무혁이 무슨 북한 지도자인 줄 착각할 지경이었다.
남쪽 헌터들도 강무혁이란 사람의 이름값만큼은 인정했다.
주세아가 길마로 있는 길드의 단장. 실질적으론 부길마와 같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니, 아무리 일반인이라 해도 무시할 순 없었다.
게다가 아이언윌 길드가 비상한 시기가 강무혁이 단장이 된 이후이고, 북포천 연고지 선언부터 라이더 늑대, 오크 부족 레이드, 헌터촌 오픈까지 최근 대한민국 헌터계의 이슈를 모조리 휩쓸고 있으니 뭔가 비범한 게 있다는 소문이 프리랜서 사이에서 나돌고 있었다.
“그럼, 빨리 군청으로 갑세다. 단장님이 뭐든 방도를 마련해뒀을 겁네다.”
프리랜서 헌터들은 태생부터 길드 눈치를 보고 대세를 따르는 데 익숙했기에 별 탈 없이 이숙영을 따랐다.
영 아니다 싶으면 바로 손절하고 다른 지역으로 나를 속셈이었지만, 헌터계의 격언처럼 먼저 움직이는 자를 따르는 게 일종의 룰이었기에 다른 대안이 없는 자들은 이숙영을 따라 군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 선택이 그들의 목숨을 살렸다.
* * *
현정건 덕분에 시간을 번 강무혁은 군청 건물을 중심으로 방어 태세를 갖췄다.
이숙영이 데려온 헌터들을 더해 공격 임무가 아닌 방어만을 위한 공격대로 재편한 뒤 다음 레이드 계획을 수립했다.
몬스터를 잡으러 나갔던 사람이 돌아오자 군청 공무원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돌아가는 분위기만으로도 레이드에 실패했음을 눈치챘다.
그나마 다행인 건 헌터들이 무사하다는 정도?
강무혁의 심각한 표정을 본 공무원들은 누구도 상황을 낙관하지 못한 채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강무혁은 이들 표정에서 불안감을 읽어냈으나 딱히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쓸데없는 참견으로 생각을 방해하지 않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를 방해한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저기…. 강무혁 단장님?”
“예. 걱정 마십시오. 새로 작전을 짜서 대응할 겁니다. 돌발상황이 발생해서 후퇴하긴 했지만, 공격대 전력은 전혀 타격이 없습니다. 레이드 대상도 일부 몬스터를 제외하면, 유인책을 써서…….”
강무혁은 사람들의 억측을 차단하려 설명을 이어가려 했으나 이내 상대가 다른 용무임을 눈치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정부에서 공문이 왔습니다. 길드협력처 이름으로 온 건데…….”
공무원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공문을 내밀었다.
강무혁은 종이를 받아 삽시간에 읽어내려갔다.
이따금 눈매를 꿈틀대며 글을 읽는 강무혁에게 곁에 있던 노송린이 물었다.
“뭔데 그럽니까? 분위기가 안 좋네.”
강무혁이 그에게 공문을 넘기면서 답했다.
“무산이 뚫렸습니다. 회령도 피해가 크고.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답니다.”
노송린은 무산이 어디인지 몰라 갸우뚱하다가 회령이 당했다는 소식에 경악했다.
“회령시 방어선이 무너지면…. 함경북도가 날아가는 거 아닙니까?”
“회령 서쪽에 있는 유선군과 무산읍이 버텨주면 그나마 낫겠지만. 이대로는 유선군도 시간문제일 겁니다. 당연히 그 아래 대홍단도 위험해지겠죠.”
“하? 이게 뭐래? 전쟁이라도 일어나려는 건가?”
“전쟁이 일어나려는 게 아닙니다. 이미 전쟁입니다.”
강무혁은 상황실 지도를 노려봤다.
두만강 라인은 백두산부터 시작해 물길을 따라 대홍단, 무산, 유선, 회령, 학포, 종성, 풍인, 아오지, 조산리로 등의 거점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한반도 최북단의 방어선이었다.
이곳이 무너지면 함경북도와 양강도가 무너진다.
‘이 두 곳은 몇 개 도시를 제외하곤 인구가 적어서 대피나 방어가 용이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양강도 서쪽의 자강도나 함경남도까지 여파가 미쳤을 때야. 거긴…….’
개마고원이 있었다.
북포천과 같은 특활지.
산세를 감싸고 흐르는 마나의 기운이 강력한 덕에 경계 밖으로 나오는 몬스터는 드물었지만, 그만큼 위험한 괴물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북포천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랄까.
‘그런 놈들이 마경에서 밀려 내려온 몬스터들과 뒤섞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마경의 몬스터들이 개마고원에 자리 잡기라도 하면, 기존 터줏대감들이 밀려나 사방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펼쳐질 수 있었다. 혹은 동종 몬스터들끼리 활발한 번식행위가 벌어져 그 규모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했다.
‘어느 쪽이든 몬스터 웨이브는 발생할 거야. 시기가 늦느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이지.’
그렇게 되면 한반도 방어선은 묘향산까지 밀릴 수 있었다.
즉, 함경도, 양강도, 자강도 등 개마고원 북부와 동부를 모조리 잃는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거기까지 흐르면, 티어 길드들까지 모조리 동원해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야. 면적도 면적이지만, 북쪽의 산과 들에 퍼진 놈들을 쫓아다니면서 잡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 없겠지. 거기다 방어선이 밀린 사이 몬스터 점령지에 게이트라도 열리는 날엔 진짜 지옥이 되는 거지. 경제는 둘째 치고, 인명 피해도 막심할 거야.’
최악의 상황에 흐르기 전에 정부에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공문을 보니 대책은 이미 글러 먹은 듯했다.
“이 양반들이 여기 급한 줄 모르는 건가? 이게 뭔 소리야?”
속독이 익숙하지 않아 이제야 공문을 다 읽은 노송린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단장님. 이거 내버려 두면, 싹 다 털려요. 백암, 청진으로 후퇴해서 방어하라니? 길드들 협조 얻어서 구원군 보낸다고 해도 때를 못 맞춥니다, 이거.”
“그건 두만강 라인 관계자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모두가 다 아는 걸 협력처 사람들은 왜 모르는 겁니까? 막으려면 죽어도 두만강에서 뼈를 묻어야지.”
노송린의 물음에 강무혁이 답변했다.
“협력처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예?”
“이건 아마 국방부 의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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