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257)
257화
새하얀 눈보라가 치는 얼음 땅 북해.
그곳에 야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눈에 고고하게 서 있는 북해빙궁이 들어왔다.
“훗!”
야현은 익숙하게 북해빙궁 궁주실로 순간 이동했다.
“후우―.”
빙후에 오른 한화 빙소해는 몇 달 만에 눈에 띄게 수척해진 얼굴로 궁주 집무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었다.
“궁도들의 훈련은 어찌 되어 가나요?”
“과거 전력에 비교하여 칠 할에서 팔 할 정도는 올라선 듯합니다.”
살풍대 대주 곡화란이 무거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훈련이 고될 텐데.”
“모두 빙후의 결단이십니다.”
기존 체제를 벗어나 빙후 빙소해는 아낌없이 상위 무공서를 풀었다. 그렇기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전력을 되찾아 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지독한 훈련임에도 단 한 명의 낙오자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어디 본후 때문이겠습니까?”
빙후는 쓴웃음을 지은 후 말을 이어 갔다.
“살풍대주.”
“예, 빙후.”
“현재 북해빙궁의 가장 큰 문제는 무력 단체의 소실입니다. 살풍대를 제외하고 폭설대와 환풍대, 설풍대, 북풍단 등 모든 무력단이 이름만 있을 뿐 유명무실해졌어요.”
“송구하옵니다.”
“살풍대주가 죄송해야 할 일은 아닙니다.”
빙후는 악마와도 같았던 야현을 떠올리자 한 차례 동공이 무너지듯 흔들렸다.
“본후의 생각으로는 기존 무력 단체를 폐하고 새롭게 편재를 구성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잔존 단원들도 패배감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좋은 생각이라 사료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대와 단의 규모와 명칭을…….”
끼이익―
그때 궁주 침소와 연결된 문이 열렸다.
시녀라 여긴 둘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둘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모습에 빙후와 살풍대주는 눈살을 찌푸리며 맞은편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이야.”
“……!”
빙후는 눈은 무너지듯 요동쳤고,
창―
살풍대주는 빠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검을 뽑아 들었다.
“흡!”
야현은 웃는 얼굴로 살풍대주를 보며 살기를 폭사시켰다. 살기는 그녀의 몸을 옥죄었고, 목줄까지 파고드는 무형의 살심에 살풍대주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앉으세요. 대화를 나누려는 자리에 피가 튀어야 하겠습니까?”
“……앉으세요.”
빙후는 야현을 바라보면서 힘겹게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살풍대주에게 명을 내렸다.
“무슨 낯짝으로 다시 본궁에 발을 들인 것이냐?”
살풍대주는 착검을 하면서도 야현에 대한 살심을 거두지 않았다.
“잊은 모양인데, 본인은 북해빙궁의 엄연한 대군입니다.”
“이!”
살풍대주는 노기를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무슨 연유로 오신 건가요?”
“오면서 보니 훈련이 상당하던데.”
야현이 빙후의 말에 그제야 그녀를 바라보며 푸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정작 듣는 빙후는 그렇게 들리지 않는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상당한 도움이 되겠어.”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화를 애써 누르고 있던 살풍대주는 기어이 노기를 참지 못하고 노성을 터트렸다.
“그대들의 염원. 따뜻한 대지.”
“무슨 뜻인가요?”
빙후는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천마가 서방 대륙을 일통시켰어.”
“천마라면…….”
“마교.”
“……!”
빙후와 살풍대주의 눈이 화등잔처럼 크게 떠졌다.
“이제 그들의 칼끝이 중원으로 향할 것이야.”
“그래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본인은 그런 천마를 죽일 것이야.”
“그게 본궁과 무슨 상관이죠?”
빙후가 날카롭게 선 목소리로 물었다.
“천마가 가진 서방의 땅, 본인이 주지.”
“……!”
“솔직히 그대들의 외모. 비록 중원의 피가 흐른다고 해도 중원의 외모와는 다르지 않나? 북방 색목인들의 피가 적잖게 섞였으니.”
북해빙궁이 중원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그들의 패쇄적인 환경과 중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빙공 때문이기도 하지만, 외모 또한 적잖은 몫을 차지했다.
“서역에서 이어지는 서방의 땅. 색목인들이 살아가는 그 땅 동쪽에 넘치고 넘칠 땅을 주지.”
야현의 말에 빙후의 눈동자가 다시금 흔들렸다.
조금 전 공포와는 다른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 말 믿을 수 있나요?”
“믿어. 본인이 거짓을 말하는 것을 본 적 있나?”
“항상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았죠.”
“그 말에 부정은 하지 못하겠군.”
빙후의 쏘는 말에 야현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야현이 순순히 시인하자 오히려 따지듯 말한 빙후가 오히려 머쓱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는가 싶었지만 그 침묵은 야현의 목소리로 깨졌다.
“솔직히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은 없어. 분초를 다툴 정도로 급해. 정 의심스럽다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
딱!
야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빈 허공에서 검은 로브를 입은 흑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빙후에게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라 하고 싶지만, 그건 안 될 말이고. 그대가 직접 확인해 봐.”
야현이 빙후에게서 시선을 돌려 살풍대주를 응시했다.
“어떻게 확인해 보라는 말이죠?”
“이 친구를 따라가 봐. 그러면 황제가 확인시켜 줄 테니.”
“화, 황제?”
“일주일의 시간을 주지.”
“무슨 말을 하는 거죠? 일주일이라니, 오가는 시간만…….”
“일주일이면 충분해. 황제를 만나고 다시 돌아오는 데 이틀이면 돼. 그리고 오 일이면 충분히 고심할 수 있는 시간일 거야.”
야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 우리가 거절하면 어찌 되나요?”
빙후의 물음.
그 물음에 처음으로 야현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대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고, 살아남은 북해빙궁 궁도들은 노예가 되어 노예병으로 출전하게 될 거야.”
“……!”
“당치도 않다! 북해빙궁은 그리…….”
살풍대주.
야현은 그녀에게 얼굴을 가져가며 음산한 웃음을 드러냈다.
“직접 가서 확인해 봐. 잘 보고 전해야 할 것이야.”
야현의 섬뜩한 미소와 날카로운 송곳니에 살풍대주가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설득하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시간이 없어. 그러니 그런 본인을 이해해.”
야현이 흑마법사를 바라보자 그가 설풍대주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가시죠.”
“지, 지금 말인가요?”
흑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으시오.”
설풍대주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흑마법사의 손을 잡았다.
쿵!
손을 잡자 흑마법사는 커다란 스태프를 바닥에 찍었다.
쏴아아아―
검은 빛무리와 함께 둘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럼 일주일 후에 보지.”
“어디로 가시나요?”
“남해태양궁.”
야현은 씨익 웃음을 보여준 후 그 자리에서 허공을 찢고 사라졌다.
* * *
나른한 오후.
남해태양궁 궁주 태양왕 적염은 시원한 차 한 잔으로 노곤한 기분을 기분 좋게 날리고 있었다.
챙그랑―
그때 날카로운 파음에 적염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시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바닥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찻물과 함께 깨진 찻주전자 파편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이, 이!”
적염은 노여움을 터트리려다가 이내 노기를 누그러트렸다.
“물러가거라.”
시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적염은 자리에 털썩 앉아 다시 찻잔을 들었다.
시원하게만 느껴지던 차 맛이 쓰디쓴 독약처럼 느껴졌다.
“후우―.”
적염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건만 적염은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했다.
새하얀 얼굴, 짐승의 것처럼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붉은 동공. 그리고 엄청난 무력과 그에 상응하는 살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적염은 그날의 공포를 잊지 못하고 자다가도 경련을 일으키며 일어나기 일쑤였다.
“젠장.”
적염은 신경질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쓴맛을 다셨다.
“차라리 빨리 모습이나 드러내지.”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몇 달째 악몽 아닌 악몽에 시달리니 심신이 지쳐 나갔다. 그렇다 보니 실상 상대가 악마라고 할지라도 만나고 속 시원하게 두 발 뻗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본인이 보고 싶으셨습니까?”
적염은 찻잔을 다시 들다가 낯선 목소리에 움찔거렸다.
동공이 하염없이 흔들리는 것만큼 찻잔을 든 손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급기야 얼마나 몸을 떨었는지 찻잔에 담긴 찻물이 바닥에 흘러내릴 정도였다.
정작 적염은 그런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다다닥― 다닥!
적염은 찻잔을 다시 다탁에 내려놓으며 시선을 들었다.
어느새 그의 앞에 야현이 앉아 있었다.
“오, 오랜만이외다.”
적염은 힘겹게 입을 뗐다.
“오랜만이기는 하군요.”
무성의하게 대답하며 야현은 다탁을 내려다보았다.
다탁에는 흥건하게 쏟긴 찻물 위로 찻잔 하나가 다였다. 자연스레 뒤쪽에 깨진 찻주전자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준비하겠소이다.”
적염은 목소리를 조금 높여 시녀를 불렀다.
그리고 잠시 후 시원한 냉차가 준비되었다.
“좋군요.”
후터분한 날씨에 시원한 냉차는 제법 색다른 맛을 주었다.
“……!”
야현은 시원하게 잔을 비우며 적염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야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묘했다.
적개심과 함께 공포도 있었으며, 투기도 담겨 있는가 하면 체념도 담겨 있었다.
“훗.”
가벼운 웃음에 적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경거망동하지는 않고 묵묵히 야현의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
“본인에게 원하는 게 있어 보이는데, 맞나요?”
“맞소이다.”
“잘되었군요.”
“……!”
적염은 다시 한 번 움찔거렸다.
“본인도 그대에게 원하는 게 있습니다.”
“무, 무엇이오?”
“그대부터.”
“…….”
적염은 그 말에 한참 동안 야현을 바라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악몽에서 깨고 싶소.”
“악몽?”
야현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반문했다.
“편히 자고 싶소. 그대가 악마일지라도, 이 순간 이후로부터는.”
“푸하하하하하하!”
적염의 말에 야현은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합니다.”
야현은 한참을 웃다가 적염을 향해 사과했다.
“악몽이라. 제법 유쾌한 말이었습니다.”
야현의 어떤 말에도 적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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