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 scholar can read swords RAW novel - Chapter 171
169화. 폭풍전야의 땅으로(2)
기억 속인데도 매캐한 연기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날이다! 우리 가족이 헤어진 그날이 맞아!’
이윽고 아비규환 속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나타났다.
공손무는 그들을 보자마자 단번에 눈치챘다.
‘내 가족이다! 이들이 바로 내 가족이야!’
삼십 대로 보이는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사내가 선두에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이분이 설마 내 아버지?’
그의 품에는 두 살배기 어린아이가 안겨 있었다.
아이를 본 공손무는 확신했다.
‘내 아버지가 확실해. 이분이 바로 공손호라고!’
한참을 달리던 근육질 사내가 갑자기 뒤쪽을 보더니 다급히 손짓했다.
“어서 따라오거라! 어서!!”
“콜록! 콜록! 아, 아버지! 조금만 천천히 가요!”
삼십 대로 보이는 수려한 외모의 여인과 십 대로 보이는 사내 둘이 검은 연기를 뚫으며 공손호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모습을 본 공손무는 울컥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머니다! 그리고 내 형들! 저렇게 생겼었구나! 이제야 생각났어!’
공손호가 지친 가족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이 숲만 벗어나면 안전해. 그러니 모두 힘들 내라고.”
희망에 찬 목소리로 그들을 고무시키려 했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사방이 화염으로 가득 찼고 포위망은 점점 좁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눈치챈 여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이렇게 한꺼번에 움직이다간 모두 다 잡히고 말 거라고요.”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오자 공손호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니.”
“이게 왜 당신 탓이에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공손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후우. 이렇게 하지. 내가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저쪽으로 갈게. 당신은 첫째와 함께 반대쪽으로 가. 우리가 해돋이를 봤던 그 산봉우리. 거기에서 만나자.”
“알겠어요.”
공손호가 여인의 손을 꼭 붙잡으며 속삭였다.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거야. 알겠지?”
“물론이죠. 우리 거기서 꼭 만나요.”
대화가 끝나자 여인이 첫째를 데리고 먼저 사라졌다.
“자, 우리도 어서 가자.”
“네! 아버지!”
두 살배기 아기를 품은 공손호와 그의 둘째 아들은 화염을 뚫으며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하지만 단련이 되어 있어 힘차게 뛰는 공손호와는 달리 둘째 아들은 얼마 가지 못해 주저앉고 말았다.
“허억! 허억! 아버지!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어서 일어나거라! 놈들이 지척에 있어!”
공손호가 재촉했지만 둘째 아들은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공손호는 두 살배기 어린아이를 품은 채 둘째 아들까지 등에 업어야 했다.
“후욱! 후욱!”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전력을 다해 뛰었지만, 체력을 많이 소진한 탓인지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저쪽이다! 어서 잡아라!”
그 사이 추격대가 공손호를 발견하였다.
“젠장! 벌써 놈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말인가!”
공손호는 미친 듯이 달렸지만, 추격대와의 거리 차가 빠르게 좁혀졌다.
“이거나 먹어라!”
사정거리에 들자 추격대들이 일제히 화살을 발사했다.
퍼버벅!
두 발의 화살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공손호의 팔과 다리에 꽂혔다.
“아버지!”
“크윽!”
둘째 아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공손호를 신음을 흘리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러고는 둘째에게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내밀었다.
“경승아.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라.”
“왜 이러시는 거예요?”
“동생을 데리고 먼저 도망쳐라. 절대 뒤를 돌아 봐서는 안 되느니라. 앞만 보고 달려. 알았느냐?”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공손경승이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버지를 두고 혼자 떠난다는 말입니까?”
“이대로라면 우리 모두 다 죽는다. 내가 저들의 주의를 끌 테니 너는 그 틈에 이 숲을 빠져나가라. 어서!”
“하지만!”
“어허! 어서 가래도!”
공손호가 엄한 표정으로 소리치자 공손경승이 마지못해 어린 공손무를 안았다.
“동생을 잘 부탁한다.”
“꼭 살아오셔야 합니다! 아셨죠?”
눈물 섞인 아들의 간절한 말에 공손호는 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윽고 그가 허리춤에서 검을 빼 들며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지금부터 이 공손호가 상대해 주마! 내가 바로 너희가 그토록 원하던 화산검마의 제자이니라!”
공손호가 적들의 시선을 끄는 사이 공손경승은 동생을 안은 채 반대편으로 내달렸다.
“허억! 허억!”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며 뛰고 또 뛰었다.
그리고 잠시 후.
피부를 따갑게 하던 화마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선선한 공기가 밀려왔다.
“후아!”
그제야 살았다는 듯 그가 가쁜 숨을 토해 냈다.
“흐아아앙! 으아아앙!”
하지만 그것도 잠시, 품에 안겨 있던 어린 공손무가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 서럽게 울어댔지만 무슨 일인지 공손경승은 그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 눈빛에는 놀랍게도 경멸과 분노가 담겨 있었다.
“뭘 잘했다고 우는 거야.”
그가 품에 안겨 있던 어린 공손무를 떼어 내며 절벽 쪽으로 내밀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벌어진 거라고.”
“흐아아앙!”
어린 공손무가 서럽게 울며 허공에다가 발길질했다.
그의 발밑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만이 존재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공손무의 자아는 충격에 휩싸였다.
‘말도 안 돼. 형이 나에게 저런 짓을 했다고?’
잠시 후 공손경승이 어린 공손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너만 없었으면, 너만 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뺏기지 않았겠지. 너 때문에 나란 존재의 의미는 사라졌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 간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가족을 전부 죽이려 들다니!”
그가 어린 공손무를 잡고 있던 손을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네가 죽으면 우리 가족은 더는 쫓기지 않을 거야. 아버지의 사랑도 다시 돌아오겠지. 너만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될 일이다. 미안하지만, 너의 저주받은 인생은 여기서 끝나야 해.”
말을 끝낸 공손경승이 두 손을 완전히 놓아 버렸다.
어린 공손무는 포대기에 싸인 채 비명을 지르며 끝없는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형이 날 절벽 밑으로 버린 거였어?’
공손무는 가족이 자신을 실수로 놓쳤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기억.
실제로는 차디찬 절벽 아래로 버려진 것이었다.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없다고! 크윽! 크아아악!’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공손무의 자아가 극렬하게 저항하자 무의식의 공간이 급속도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아악!”
공손무가 두 눈을 감은 채 비명을 지르자 곤붕이 찬물을 한 바가지 퍼서 그대로 부어 버렸다.
촤아아악!
“푸허업!”
냉수 세례를 맞고 나서야 그는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여기는……?”
“그대는 여기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주술을 받고 있었소. 기억나시오?”
공손무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곤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참으로 다행이오. 난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소.”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주술을 받던 중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소. 도대체 무엇을 본 것이오?”
그가 두 눈을 꼭 감으며 정신을 집중했다.
머릿속에서 19년 전 공손경승이 한 행동과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나를 버리다니, 아버지가 구해 준 목숨을 어찌 그리 쉽게 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우드득!
분노로 인해 양손에 힘이 들어가자 의자 손잡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 버렸다.
“왜 이러는 것이오?”
“앗! 죄송해요.”
“대체 무엇을 봤길래 이리 화가 난 것이오?”
잠시 뜸을 들이던 공손무가 나직한 어조로 답했다.
“도적이 아니었어요.”
“도적이 아니라니? 그럼 뭐 때문에 가족과 헤어졌단 말이오?”
“난리에서 도망치던 중 둘째 형이 저를 절벽 아래로 던진 거였어요. 제가 죽기를 바라고서 말이죠.”
더는 말하기가 힘들었는지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너무나 상심한 모습에 곤붕은 위로의 말도 제대로 건넬 수 없었다.
잠시 후 공손무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후우.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형에게 가려는 것이오?”
“예. 가서 물어봐야죠. 날 왜 그토록 미워했는지, 꼭 그렇게 버려야만 했는지 말이에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구려. 부디 조심하시오.”
고개를 한차례 끄덕여 보인 공손무가 취선루를 빠져나왔다.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분노와 혼란스러움이 남아 있었지만, 적어도 목표는 뚜렷했다.
‘무한으로 가야 해. 가서 형을 만나야겠어.’
말에 올라탄 공손무가 관도를 따라 무한으로 향했다.
* * *
그 시각 무한 지역에서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감돌았다.
무림맹과 사도련이 대치한 채 서로 공격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양 진영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격하는 순간 그 전쟁이 정사대전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중원 전체에 들불처럼 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긴장된 상황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흘러도 싸움의 소식이 들리지 않자 세간의 사람들은 정사대전 같은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런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림맹이 선제공격에 나섰다.
무한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서 무림맹과 사도련이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지원 요청이 중원의 각 지방으로 전달되고 여러 정사 조직들이 얽혀들면서 마침내 정사대전이 터졌다.
공손무가 무한에 도착할 즈음, 전쟁은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드디어 무한이구나.”
제대로 쉬지도 않고 달려온 탓에 공손무는 많이 지친 상태였다.
“할아버지가 말했던 게 현실로 되었어. 진짜 정사대전이 일어나다니. 강호에 또 한 번 피바람이 불겠구나.”
어느 객잔이라도 잡아 푹 쉬고 싶었지만, 정사대전의 여파 때문인지 제대로 문을 연 곳이 없었다.
“하아. 또 노숙해야 하나?”
그는 어쩔 수 없이 도시를 벗어나 노숙할 곳을 물색했다.
그런데 적당한 곳을 찾던 와중 이상한 곳을 발견했다.
“응? 저긴 뭐지?”
허허벌판 위에 너무나도 이질적이고 거대한 무언가가 우뚝 솟아 있었다.
“영채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든 거대한 영채였다.
목책에 내걸린 깃발을 본 공손무는 영채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무림맹의 영채다!”
영채의 주인은 다름 아닌 무림맹.
그곳 안에는 청룡대의 대장 현천빙검(玄天氷劍) 공손경승이 있을 수도 있었다.
“내친김에 한번 가 볼까?”
목표물을 찾기 위해 공손무는 무림맹의 영채에 잠입하기로 했다.
영채 앞에 도착한 그는 까마득한 높이의 목책과 마주했다.
‘경비가 삼엄하여 정문으로 갈 수는 없겠어. 이 목책을 넘을 수밖에.’
공손무가 양손과 양발을 사용하여 목책을 올랐다.
이윽고 망루에 올라서자 무림맹의 무사가 횃불을 든 채 주위를 감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달밤 아래의 고요한 그림자가 된 공손무가 소리 없이 그의 등 뒤로 다가가 혈도를 점했다.
“허억!”
점혈을 당한 무사가 가쁜 숨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공손무는 기절한 감시병을 한쪽에 놓아둔 채 망루 위에 서서 영채 내부를 찬찬히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