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4)
“재미있군.”
유민택은 노형진을 바라보면서 빙그레 웃었다. 물론 새론이 요즘 잘나간다고 하지만 대룡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런데 협상이라니?
“뭐, 일단 조건을 들어 보지.”
“저희의 조건은…… 일단 수임료의 경우…….”
하나씩 조건을 말하는 노형진. 그걸 들으면서 유민택은 고개를 갸웃했다. 협상이라고 하기는 했지만 조건 자체가 많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금액 같은 게 조금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협상이 아니라 부탁해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조건이었다. 더군다나 노형진의 말로는 성화의 약점이라고 했는데 그게 맞는다면 두 배도 아깝지 않았다.
“고작 그것뿐인가?”
“아닙니다. 마지막 조건이 있습니다.”
“마지막 조건?”
“그렇습니다.”
“그게 뭔가? 건물이라도 하나 달라는 건가?”
“아닙니다. 유지연, 유미연 자매를 입적시키지는 않더라도 유민택 회장님이 할아버지로서 보호해 주고 키워 주는 것입니다.”
그 말에 순간 유민택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어찌 보면 가장 큰 조건이었던 것이다.
“그게 조건이라고?”
“네.”
“돈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두 배로 받아 간다면 그 애들을 도와주고도 남을 텐데?”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가끔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법입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
유민택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 비밀이라는 게 뭔지 들어 보기나 하도록 하지. 가치가 있어야 계약할 수 있을 거 아닌가?”
만일 가치가 있다면 자신이 자매를 받아들여서 키우는 것에 대하여 다른 주주들이나 가문 사람들이 아무런 말도 못 할 것이다. 조건이니까.
“바로 그 아이들의 신분입니다.”
“그 아이들의 신분?”
“그렇습니다. 그쪽에서 버렸다고 해도 아이들은 법적으로 계승권이 있습니다. 많은 건 아니라고 해도 충분히 싸움을 걸 만한 것이지요.”
“고작 그건가? 우리라고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닐세. 하지만 그때까지 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솔직히.”
성화와 대룡은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울 것이다. 그중 성화의 계승권은 세 명의 형제와 한 명의 딸이 가지고 있고, 두 아이는 막내딸인 김화자의 손녀다.
“애초에 김화자가 지분이 가장 작은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녀가 죽어 봐야 그마저도 이리저리 나누고 나면 두 아이에게 돌아가는 지분은 턱없이 부족하네.”
물론 그게 고작 수십만 원 수준은 아닐 것이다. 못해도 수십억은 될 것이다. 그러나 고작 수십억을 가지고 그들을 받아들여 주기에는 대룡의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걸 받기 위해서는 김화자가 죽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될 것인데, 그러려면 20년은 넘게 지나야 한다. 하지만 유민택은 그때까지 성화그룹을 살려 두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맞습니다. 성화 쪽은 솔직히 대책이 없죠. 의미도 없고.”
“그런데 그걸 가지고 받아들이라는 건가?”
“유 회장님, 회장님이 봤을 때 김화자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뭐?”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어떤가요?”
“그거야…….”
정략결혼이어서 어쩔 수 없던 거지,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재벌 2세답게 콧대 높고 배려심이라고는 없었다.
“자존심이 강하지요?”
“강하지, 아주. 솔직히 좋다고는 말 못 하겠구만.”
“그래서 그 아이들이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라니?”
“김화자는 유 회장님이 아닌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렇지요?”
“크흠…….”
불편한 얼굴이 되는 유민택. 하지만 법적으로는 불편한 경우도 감수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그런데 그런 성격의 김화자가 자기보다 못한 남자의 아이를 결혼한 상태에서 가졌을까요?”
“……!”
순간 유민택은 머리가 멍해졌다. 김화자는 재벌 2세다. 아무리 안하무인이라곤 하지만 그 정도의 판단을 못 할 리가 없다. 설령 한다 해도 그저 그런 평범한 남자의 아이를 가지기는커녕 그런 남자를 만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김화자와 유민택 회장님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그곳이 어떤 곳이든 후계자 싸움을 해야 할 시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그렇군…….”
만난다고 해도 결국은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테니 결국 그 대상이 누구든 유민택과 비슷한 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노려야 하는 것은 성화가 아니라 김화자와 바람을 피운 인간입니다. 만일 제대로만 잡으면 성화 쪽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인간일 수도 있을 겁니다.”
유민택은 한참 침묵을 지켰다. 저들이 자신에게 했던 짓 그대로 복수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에게 벌어진 일보다는 약하겠지만 지금 한창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의 동아줄이 될지도 몰랐다.
“그 말이 맞는다면…… 그 조건들을 전부 수용하지. 아니, 수임료는 두 배로 주겠네.”
“감사합니다.”
이로써 노형진은 대룡과 성화의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다.
“좀 더 준비하고 찾아뵙겠습니다.”
노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민택은 그를 불렀다.
“이보게나, 노 변호사.”
“네?”
“고맙네.”
그 말에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곳을 나왔다. 그러고는 화창한 날씨를 보면서 몸을 쭈욱 폈다.
“으으으, 이놈의 오지랖은 진짜 어쩔 수가 없다니까. 고생문이 열렸구나.”
누구의 핏줄인가?(1)
“그래서 누구일 것 같냐?”
“조사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너무 오래된 일인 데다가 증거도 없어서 쉽지 않습니다.”
새론 정보 담당자 고문학은 고개를 흔들었다. 성화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너무 오래되었기에 기록이 없었다.
“하긴.”
벌서 40년 전 사건이다. 그러니 40년 전 기록이 지금까지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있다 한들 성화가 그 기록을 놔뒀을 리가 없다.
“글쎄요…… 무작정 찾아보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노형진은 탁자를 탁탁 두들기면서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처럼 무의미하게 찾아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럼 뭐, 방법이라도 있어?”
“거꾸로 올라가는 거죠.”
“거꾸로 올라가?”
“네, 위에서 찾아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여기서 하나씩 가능성을 제하면서 올라가는 겁니다.”
“흠…….”
아직은 익숙한 개념이 아니기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이건 상당히 훈련된 사람만 아는 개념이니까. 물론 개념 자체야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그걸 실천하는 것이다.
“일단 김화자의 성격을 따져 봅시다. 김화자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기고만장하고 콧대가 높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인간 취급도 안 하는 걸로 유명하죠.”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사람들. 그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40년 전 김화자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배제하면 됩니다.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고 해도 40년 전에 존재하지 않거나 성화보다 규모가 상당히 작은 경우는 빼 버리는 거죠.”
“확실히……. 그런 식이면 숫자가 확 줄겠구만.”
아무리 생각해도 김화자가 대룡보다 작은 기업의 사람과 관계를 가질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젊은 혈기라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남상주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애초에 김화자가 바람을 피워서 출산을 한 때는 결혼하고 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즉, 결혼하고서 바람을 피웠다는 건데 젊은 혈기 때문이었다면 이혼을 선택했지, 그냥 몰래 살았을까요? 이혼해도 부족할 게 없는 부잣집 딸인데?”
“그렇군요.”
“그리고 결혼한 상태에서 바람을 피울 정도면 그 사람은 상당한 재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고 수백 개의 가능성 중에서 40년 미만의 작은 기업들은 모두 삭제되었다.
“그리고 지금 크더라도 40년 전에는 성화의 계열사거나 하청 회사인 곳은 지우죠.”
“왜? 관련이 있는 곳이잖아?”
“그러니까 지우는 겁니다. 요즘 뉴스에도 나왔지만 결국 하청 회사들은 노예로 취급합니다. 그걸 아는 김화자가 하청 회사인 곳의 남자와 바람을 피울까요?”
“그렇군…….”
하청 회사들을 노예 취급하기로 유명한 성화다. 그런데 아무리 과거라고 하지만 그들과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된다?
‘그럴 리가 없지.’
김화자의 성격을 가지고 판단한 몇 가지만으로도 벌써 숫자가 확 줄었다.
“이런 거 좋구만. 어디서 배운 건가?”
“미국요.”
“미국?”
‘아차.’
노형진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공식적으로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으니까.
“아니 아니, 미드요.”
“미드?”
“네, 미국 드라마요.”
“아아, 요즘 그런 거 찾아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니.”
“네, 하하하.”
‘큰일 날 뻔했네.’
물론 드라마를 본다고 이렇게 되는 거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그래, 다음은 뭘 삭제할까? 삭제할 만한 것은 이것뿐인 것 같은데.”
김화자의 동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흠…….”
한참 생각하던 노형진은 힐끗 기업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 냈다.
“지금 있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작은 곳은 제외합시다.”
“왜? 그때는 큰 곳일 수도 있잖아?”
“네, 그런데 성화 측은 아예 인정하지 하고 쫓아냈단 말입니다.”
“그렇지?”
“즉, 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들을 데리고 가 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 쳐 낸 것이겠죠.”
“아!”
그들에게도 법무 팀이 있다. 양육권 분쟁 같은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쳐 냈다는 건 그 분쟁을 해 봐야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는 소리다.
“그럼 작은 곳은 지우도록 하지.”
그렇게 하고 나니 결국 남은 것은 국내 100대 기업 중 서른 곳 정도였다.
“여전히 많아.”
송정한 변호사는 그걸 보면서 턱을 만지작거렸다. 수천 개의 가능성에서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많았다.
‘접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다. 아무리 김화자라고 할지라도 바람 피운 남자를 스물네 시간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기억을 읽어야 하는데 그게 쉬울 리가 없다.
“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노형진은 한참 보다가 선을 딱 그었다.
“이 선 아래의 회사들은 지워 봅시다.”
“그 선 아래?”
“네.”
“왜?”
노형진이 지운 것은 스물다섯 곳 정도로, 순식간에 후보는 다섯 곳만 남았다.
“성화를 보세요. 대룡을 집어삼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핑계가 된다면 다른 곳에게도 그럴 거라는 건데, 친자 확인만큼 확실한 핑계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했다는 건 둘 중 하나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이제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작거나 아예 몰락했거나 아니면…….”
“건드리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는 뜻이겠군.”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성화라 할지라도 건드리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대룡을 그렇게 음모까지 짜 가면서 삼키려고 한 건 대룡조차 전면전에 나서설 경우 승패가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그런 성화조차 포기해야 할 정도로 거대할 수 있다는 거죠.”
“아니면 망했든가.”
그런데 아무리 봐도 망한 기업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 규모를 가진 기업 중 망한 곳은 딱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이거 이거…… 싸움이 너무 부담스러워지는 거 아냐?”
남은 이름을 보고 신음성을 흘리는 송정한 변호사. 그는 이름 하나하나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성산에서 미래에, 한성에…….”
주르륵 나열된 이름들은 현재 재계 순위 1위부터 5위까지였다.
“이 정도면…… 성화라고 해도 싸움을 못 걸지.”
현재 성화의 재계 순위는 11위. 대룡은 9위다. 하지만 재계 1위부터 5위까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막말로 대룡과 성화를 합친다 해도 그제야 재계 4위 정도 될까 말까다.
“이거 골 때리는데?”
남은 이름들을 보면서 변호사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성산만 해도 지금 한창 전쟁 중인 거 아냐?”
“그렇지요.”
성산은 지금 재산권 분쟁중이다. 만일 여기에 다른 아이를 데리고 끼어들면…….
“이건 우리도 반갑지 않아.”
“끙…….”
지금 대룡은 성화에게 살짝 밀리고 있다. 규모 자체는 성화보다 큰 게 사실이지만 후계자가 한 명밖에 없는 데다가 너무 나이가 어려서 모든 것이 유민택의 통제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네 명의 남매가 지배하는 성화보다 대응이 느리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이들과 싸울 수는 없어.”
만일 대룡이 아이들을 데리고 저들의 분쟁에 끼어들면 대룡은 1위부터 5위 사이의 기업들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건데, 동시에 싸울 여력이 될 리가 없다.
‘젠장…… 이렇게 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직접 닥치고 보니 눈앞이 캄캄한 노릇이었다.
“아마…… 이 다섯 개의 기업 중 하나를 뽑으라면…….”
한참 그걸 보던 고문학이 한 기업의 이름을 가리켰다.
“재계 순위 2위인 미래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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