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Live Without the Law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파이 나누기 (2)
마약 때려잡기에 들어갈 것이 확실한 아이란 공화국의 재배지를 받겠다는 건, 얼핏 듣기에는 꽤나 큰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혀 양보가 아니지.’
세실리아가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카이루스는 대충 짐작이 갔다.
카이루스를 좀 활용해 먹을 속셈으로 보인다. 카이루스는 루나시커와 연이 있고, 루나시커는 공화국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까.
일단 아이란 공화국의 재배지와 사업장을 받은 다음, 루나시커와 이야기를 해서 피해를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계산이다.
이걸 할 수 있는 건, 카이루스와 최소한의 우호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세실리아뿐이다.
카이루스는 세실리아의 의도를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협조하는 대가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면 될 테니까.’
세실리아는 이미 아이란 공화국의 사업장을 받아내기로 했다.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카이루스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다.
“커피 맛있네.”
카이루스는 커피를 마시면서, 사업장 분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운영위원들을 구경했다.
다들 불만은 있지만,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합의점에 도달할 때까지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음은 타파스의 잔당들.”
루카스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카이루스에게 향했다.
“하겠다고 했잖습니까. 뭘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런 눈으로 바라봅니까.”
타파스의 죽음 이후 남아있는 잔당들은 카이루스가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카이루스는 자신의 약속을 번복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어디에서 뭘 해야 하는지나 말해주시지요.”
카이루스의 말에 세실리아가 웃었다.
“당신, 확실히 정보 쪽에는 취약점이 많네요. 알고 있죠?”
카이루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규모로 움직인다는 건 원래 이런 거다.
정보를 수집하고 취합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필요하고, 인력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유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둘 다 카이루스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찾아내면, 여기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움직이죠.”
짐 싸서 휙 하고 떠나면 며칠 안에 정리할 수 있다. 이것저것 따지고, 조직 내부의 갈등이나 조직원들 간의 서열, 일정 따위를 고려해야 하는 다른 운영위원들과의 차별점이다.
“예상하는 잔당의 숫자는 약 5,600명이다. 타파스의 죽음 이후 흩어졌지.”
도노반이 간단하게 말한 다음,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제공받은 정보를 토대로 대상을 처리하는 건 시공업자들이 일하는 방식이지, 운영위원의 방식이 아니다.”
카이루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찾아내라고?”
“그럼, 우리가 위치랑 전력을 다 말해주면 넌 가서 칼만 휘두르면 될 줄 알았어?”
루미스 바렌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쏘아붙였다. 도노반의 말도 일리가 있었고, 루미스의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찾아내서 뒤탈 없이 처리하고 와해시켜. 나중에 타파스의 잔당들이 문젯거리가 되면 네 책임이니까.”
운영위원들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공조하는 사이가 아니다. 카이루스가 운영위원이 된 이상, 이들에게 있어서는 견제해야 할 또 다른 세력이라 할 수 있다.
타파스의 잔당 처리는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기에 방해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도 없는 게 분명하다.
‘잔당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나를 비방할 건덕지가 될 테니까.’
망한 타파스의 졸개들 따위보다, 새로 운영위원이 된 카이루스를 견제하는 게 이들에게는 우선이다.
“씹새끼들. 아주 신입 곤란하게 만드는 건 도가 텄네.”
카이루스는 그렇게 짧게 내뱉은 다음 세실리아를 슥 바라봤다. 별다른 말 없이, 세실리아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보였다.
세실리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가로, 그녀가 카이루스에게 제공할 것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카이루스는 운영위원이 되었고, 타파스의 사업장을 어떻게 갈라먹을지에 대한 논의도 끝났다.
잔당의 처리는 카이루스가 전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이 임시회의에서 논의할 사안은 없다.
“잠깐 나 좀 볼래요?”
회의가 파하고,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실리아가 카이루스에게 말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카이루스는 세실리아의 말을 듣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 회의실에 남아있는 건 카이루스와 세실리아뿐이다.
“어떤 제안을 할지 알 것 같네요.”
“그 제안이 맞아요.”
카이루스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아이란 공화국에서 그녀가 입게 될 피해를 최소화할 생각이다.
잠깐 회의실 천장을 보던 카이루스가 대답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신한테 이리저리 끌려다녔죠.”
“끌려다니다니. 서로 우연히 이해득실이 맞았던 것뿐이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나 서운한데.”
달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듣고 있던 카이루스는 여전히 천장을 응시한 채 말했다.
“타파스의 잔당 처리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다른 제안을 준비하시지요.”
카이루스의 단언에 세실리아가 어머, 하는 소리를 냈다. 그제서야 카이루스는 시선을 세실리아에게 던졌다.
“여기까지 와서 운영위원까지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장미정원이 던져주는 의뢰나 뜯어먹는 하바리로 있을 것 같았나요?”
서로 나름의 반존대를 하며 예의는 차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이루스와 세실리아가 무조건적인 호의를 보내는 관계라는 뜻은 아니다.
“저는 이제 세실리아 대표가 주는 사료를 좋다고 받아먹는 애완견이 아닙니다.”
“참 슬퍼요.”
세실리아가 손을 뻗어 카이루스의 뺨을 슥 쓰다듬었다. 광택 없는 붉은 눈동자가 카이루스의 눈을 바라본다.
“목줄 채워가며 잘 길들이던 개새끼가, 갑자기 사람이 돼서는 이웃사촌이 되어버리다니.”
사람이 된 것도 충분히 당황스러운 일인데, 심지어 자기가 개였던 시절의 버릇까지 완전히 벗어던졌다. 세실리아 입장에서도 참 기가 찰 노릇이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이 계절 하나 지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다.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좆같은 세상 아니겠습니까. 장미정원 관리하면서 많이 겪어보셨을 텐데.”
카이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세실리아에게 살짝 인사했다.
“이만 저도 실례하지요.”
회의실을 나온 카이루스는 후우, 하고 밤하늘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의도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도노반이 힌트를 던져주긴 했었네.”
스스로 처리해야 한다. 도노반이 말한 것처럼 카이루스는 이제 더 이상 남 아래에서 일하는 시공업자가 아니다.
‘이 일도 내가 하겠다고 한 거니. 운영위원들의 협조 없이 해결해야 한다.’
둥지의 구성원 세 명이 움직여서 처리해야 한다. 노라 같은 경우에는 루나시커 소속이지만, 담당하는 업무는 카이루스의 감시다.
카이루스가 공화국과 부딪칠 일을 만들지 않는다면 아군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일레나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사실 현 상황에서 카이루스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회의는 잘 끝난 모양이네. 네가 운영위원이 될 거라는 추측이 사실로 변했으니까.”
사무실, 그러니까 둥지에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일레나가 카이루스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게 벌써 전파된 거야?”
“이제 모르는 사람 없을걸.”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베넷 시 전체에 카이루스가 운영위원이 되었다는 소식이 퍼졌다.
다들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예정되었던 일이 실행된 것뿐이니까.
해야 할 일이 있는 카이루스에게도 굉장히 좋은 소식이었다.
“그러니까,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오천 명이 넘어가는 타파스의 잔당을 하나하나 찾아내서 제거하라?”
일레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카이루스를 바라봤다.
“많이 흩어져 있지는 않을 거다. 녀석들 믿을 거라고는 머릿수 말고 없어.”
“하지만, 그래도 한곳에 몰려있지는 않을걸?”
카이루스의 말에 곧바로 노라가 반박했다. 한 번에 오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드물기도 하거니와, 그렇게 몰려있다가 한 방에 쓸려나가면 피해가 어마어마하니까.
“그렇겠지. 아, 세실리아가 정보를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
카이루스의 말에 노라가 음? 하는 소리를 냈다.
“장미정원의 정보력은 뛰어난 편이야. 거절할 이유가….”
노라의 말을 듣고 있던 일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건 위신 문제야. 운영위원이 같은 급의 운용위원에게 정보를 받아서 일을 처리하면 소문이 구리게 퍼져.”
귀족이라 그런지, 이런 쪽으로 굴러가는 머리는 일레나가 노라보다 더 빠삭했다.
물론 루나시커에도 사내정치는 있겠지만, 노라는 사무직이 아니라 현장직인데다가 혼자 활동하니까.
“그래서, 오빠랑 언니는 어쩔 생각이야?”
노라의 질문에 카이루스가 간단하게 대답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항상 두들기는 사람이 있었지.”
툭툭 치면서 뭐 없어? 라고 하면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를 타작질에 볍씨 떨어지는 것처럼 우수수 쏟아내는 녀석이다.
“…무슨 일로 이렇게 찾아오셨습니까. 생존자님.”
그 사람의 이름은 봄달래였고, 지금 척수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카이루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 왜 이래. 우리가 그렇게 바짝 쫄아있을 사이는 아니잖아.”
카이루스는 그렇게 말하며 근처에 놓여있는 의자를 향해 슥 손을 뻗었다.
휘이이잉,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의자가 드르륵 카이루스 쪽으로 끌려온다.
의자에 앉은 카이루스가 봄달래를 향해 활짝 웃었다.
봄달래는 그런 카이루스를 마주하고 아하하.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짝 쫄아있을 사이가 맞거든?!’
하지만 머릿속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기에는 봄달래는 더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이 강렬했다.
“제가 혹시 도와드릴 일이라도?”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 네가 알고 있는 그럭저럭 쓸만한 건축사 놈들 이름을 전부 불어봐.”
지금 카이루스가 하는 일은 봄달래 하나만 써먹어서는 부족하다. 많은 정보를 취합해야 한다.
“건축사요? 혹시 설계도가 필요하신 겁니까?”
“이젠 내가 설계도 그려달라고 건축사 부를 위치는 아니잖아.”
“그렇… 지요.”
설계도를 그리지 않을 건데 건축사가 필요하다는 건. 거꾸로 매달고 탈탈 털어서 정보를 좀 뜯어내겠다는 뜻이다.
‘기왕이면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놈. 그리고 경쟁자 관계에 있는 놈.’
봄달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린 다음 몇 명의 건축사를 추천해주었다.
“성격들은 개판이지만, 일 하나는 잘합니다. 아마 생존자님이 원하시는 정보도 물어다 줄 수 있을 겁니다.”
카이루스는 수첩에 봄달래가 말해준 정보들을 기입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댁도 나 좀 도와줘야겠어. 타파스의 잔당들에 대한 정보는 가리지 말고 싹 다 긁어모아서 가져와.”
요청은 이해했다. 잠깐 머뭇거리던 봄달래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 보수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섭섭하지 않게 쳐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해. 3일 준다.”
말을 마친 다음, 카이루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으로 가야 할 곳도 정해져 있다.
‘건축사들이 모으는 정보는 정보고.’
카이루스도 개인적으로 움직여 정보를 뜯어낼 생각이다.
“초롱불의 비호를 받고 있던 조직들.”
이 녀석들도 두들기면 분명히 뭐가 나올 거다. 그리고,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대가리가 바뀌면 아랫녀석들은 모두 바뀐 대가리 눈치만 보고 있는 법이지.’
어차피 지금 이 도시에서 사람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 카이루스의 향후 행보다.
성격이 어떤지. 자기 기분 상하게 하는 놈은 어떻게 처리하는지.
여자는 밝히는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술 같은 건 없는지. 온갖 것을 조사하는 중일 것이다.
“보여줘야지.”
타파스 대가리 따고 그 자리를 차지한 카이루스라는 새끼가 도대체 어떤 놈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