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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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서주 동해국 담성.
설주는 불안 속에 감금되었다. 유비는 아직까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연일 유비의 막료들이 정청으로 불려가 이 일에 대한 논의를 밤낮으로 이어갔다. 그러나 결단에 도움이 될 만한 단서들은 더 나오지 않았으니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봤자, 나오는 결론은 어제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답답하구먼! 양자 간에 서둘러 결단을 내려야만 하오. 이러다가는 때를 놓치고 말겠어.”
유비는 가슴을 두드리며 다리를 떨었다. 방통도 시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속으로 깊이 숙고했다. 그때 누군가를 접견하던 간옹이 툭 튀어나온 배를 더 내밀고서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로 유비의 앞에 대령했다.
“사군! 희소식이올시다.”
간옹의 말에 유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빨리 말해!”
“오의 고옹, 장사의 장선, 양양의 노숙 등이 일제히 합비로 소환되었다는 전언이올시다! 합비에서 대장군부 별부사마 육의가 오군으로 급파되었다고 합니다!”
방통은 한쪽 입가만 올리며 해설해주었다.
“고옹의 소환으로 혼란스러워질 오의 사성의 일원이자 제갈찬의 측근인 육의를 보내 어떻게든 다스려보겠다는 심산이지요.”
간옹은 그 해설에 다시 토를 달았다.
“꼬맹이 하나가 오로 간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지요!”
유비는 미소를 지으며 간옹에게 물었다.
“오호라? 진등은?”
간옹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진등에게도 역시 소환장이 도착했겠지요. 그러나 여남에서는 누구도 합비로 향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배석한 문사 손건(孫乾)이 무릎을 치며 유비에게 진언했다.
“이는 제갈찬의 죽음과 진등의 이반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신호입니다! 더 머뭇거릴 까닭이 없습니다!”
유비의 곁을 지키던 조운은 허공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정녕 견조(제갈찬의 字)가 죽었는가……”
미축의 아우이자 유비의 중신인 미방 또한 손건의 말에 강한 찬성을 표했다.
“기회입니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합비 세력의 멸망을 목도할 좋은 기횝니다!”
유비는 애초부터 이런 찌꺼기들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의 귀는 오로지 방통의 입을 향해 쫑긋 세워져있었다. 방통은 한참 고심하다가 운을 뗐다.
“기회냐, 함정이냐, 둘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앞의 것이 옳겠지요. 지금 합비는 동요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두려움이 많아 눈앞의 기회를 놓치는 것은 영걸의 자질이 아니지요.”
“허면, 당장 거병하여 제갈찬을 치는 것이 옳겠소?”
방통은 짧은 한숨을 토하고 유비가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
“치십시오.”
그 말에 유비의 가신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유비의 의제(義弟)이자 그의 상장인 장비는 고리눈을 번뜩이며 좌중에게 외쳤다.
“선봉은 이 익덕의 몫이오! 넘보지들 마시오!”
유비도 벌떡 일어나 어깨춤을 췄다.
“아이고오, 북평 뽕나무마을의 비렁뱅이가 동서 오천 리를 주무르시는 대장군의 목을 따게 되었구나!”
한바탕 잔치라도 벌어질 분위기에 방통이 엄중한 목소리로 찬물을 끼얹었다.
“그러나 오로지 여남에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아니 됩니다.”
유비는 방통을 돌아봤다.
“허면?”
“여남에 주력을 배치하되, 주사(수군)를 동원하여 오군을 치십시오.”
“오? 제갈찬의 종형인 제갈근이 지키고 있는 땅이 아닌가.”
방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일 진등의 투항이 놈들이 파놓은 함정이라면, 놈들의 이목은 여남에 쏠려있을 것입니다. 오군은 제대로 방비를 해놓지 않았을 터, 게다가 그것이 책략이든 아니든 호족의 수장인 고옹이 합비로 호출되었다면 오군의 인심도 소란스러울 것입니다. 우리가 저들의 책략에 넘어가 여남에서 패전한다 하더라도, 오군을 두드려 그곳의 적병을 궤멸시킨다면 아주 글러먹은 싸움은 아니게 될 것입니다.”
“옳거니.”
유비는 시선을 허공을 향하고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방통에게 말했다.
“손책과 주유에게 이 일을 맡기면 되겠군.”
방통이 입가를 벌리고 웃었다.
“바로 그것입니다. 손책과 주유는 수전에 능합니다. 제갈근의 군재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요. 더불어 만일 오군을 함락시킨다면 그곳을 영지로 삼게 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우십시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
“훌륭한 계책이오, 정녕 훌륭하오.”
유비는 수염을 매만지면서 홀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패한다 하여도 관계는 없소.”
그는 방통을 등지고 밖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개호주(호랑이 새끼)가 자라기 전에 반드시 집안에서 내쳐야하거든……”
“무슨 일로 각지의 유력가들을 소환하신 겁니까?”
오후 고옹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고옹을 비롯하여 장사태수 장선, 형주자사 노숙 등 각지의 호족들이 내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노숙은 호족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겸사겸사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호출했다. 나는 우선 고옹의 저 쓸데없는 불안감부터 잠재워줄 필요성을 느꼈다.
“오랜만에 담소나 나누려고 청했습니다. 원로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고옹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노고는요, 무슨…… 허나 담소나 나누자고 각지의 호족들을 부르신 것은 잘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나는 권태로운 눈빛을 량이에게 쐈다.
“나는 입이 아파서 긴 말을 할 수가 없구나, 내 아우 량아……”
량이는 이미 예견했다는 듯 고옹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당신은 미끼입니다. 고옹은 그제야 말을 알아듣고 낯빛을 편안히 다스렸다. 장선 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대들은 안심하고 합비호에서 나들이나 즐기다가 제가 준비한 합비의 특산을 선물로 챙겨 돌아가시면 됩니다.”
그때 청금교위 유엽이 다급한 발걸음으로 병실에 들어왔다. 주위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유엽은 내 앞에 엎드리며 아뢨다.
“합비공께 보고 드립니다! 유비의 병력 오만이 여남을 향해 남하했습니다!”
짜릿한 전율이 내 온몸을 쓸고 지나갔다. 반림의 손길보다 그 한마디가 내 병을 씻은 듯이 낫게 해주었다. 나는 내 앞을 지나가는 모기를 바라봤다. 누구의 피를 잔뜩 빨아먹었는지 모기는 느리게 비행하고 있었다. 나는 팔을 뻗어 그것을 향해 손뼉을 쳤다.
“잡았다!”
흥건한 피가 내 손바닥에 고였다.
유엽은 세세한 내용을 보고했다.
“전군 오만, 주장은 유비의 상장 관우가 이끌고 선봉에는 장비가 섰습니다!”
“관우라……”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유엽의 보고를 듣고 가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말했다.
“이상합니다.”
나는 가후를 돌아봤다.
“무엇이 말이오?”
“유비가 미끼를 물었다지만 방통이 이를 의심스러워하여 유비가 아끼는 관우와 장비를 전면에 내세웠을 리 없습니다.”
량이가 이 말을 받았다.
“그야말로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손책이나 주유를 내세워야 옳지요.”
좌자도 그 말을 듣고 어울리지 않게 진중한 고갯짓을 했다.
“거 확실히 이상허우……”
그때 북부교위 왕수가 급히 들었다. 나는 손짓으로 그의 예를 생략하게 하고 그의 말문을 터주었다. 왕수는 읍한 채로 말했다.
“합비공께 보고 드립니다! 손책과 주유가 이끄는 적선 백오십 여 척이 도하를 시도, 오군공(제갈근)께서 즉각 응전에 들어갔습니다!”
“뭐라!”
모골이 송연해졌다. 유비가 내 아가리 안으로 들어오면서도 단도를 지니고 들어왔구나. 오군은 장강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가로막고 있는데다가 오의 사성이 나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고 있는 덕택으로 안심하고 있던 지역이었다. 내가 와병 중인 동안 나의 책사들은 여남의 책략에만 주력했지 오군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터.
가후는 입맛을 쩝 다셨다.
“손책과 주유는 오를 탈환하려는 의지가 강하니, 쉽사리 물리칠 수 없을 것입니다. 유비로서는 손책이 이기면 우리가 약해지는 것이니 좋고, 손책이 패하더라도 우리에게 일정의 타격을 입히면서 껄끄러운 야심가를 제거할 수 있으니 또한 좋습니다. 이거야 원, 그야말로 꽃놀이패로군요.”
나는 고옹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오후, 오군의 병력은 어느 정도 되오.”
“일만 오천 남짓입니다.”
“분명히 적은 수효는 아니지만……”
량이는 어느새 심각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오군을 방비하는 병력이 얼마나 많든 간에, 손책과 주유라는 이름은 물 위에서, 또 오에서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여포는 이를 악물고 분개했다.
“도망가는 꽁무니를 붙잡아 목을 베었어야 옳았거늘……!”
나는 합비태수 유복에게 물었다.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합비의 기병이 얼마나 되오?”
“삼천 가량 됩니다.”
“겨우?”
유복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기병 삼천을 동원할 수 있는 일개 군은 합비밖에 없습니다.”
“아쉬운 대로 어쩔 수 없군요. 남부교위(진도)께서 수고해주셔야겠습니다.”
진도는 명랑하게 대답했다.
“알았슈.”
량이는 애먼 곳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님이 얼마나 군재를 발휘할지……”
나도 솔직히 제갈근이 엄청 미덥지는 않았다. 원래대로의 역사라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던 위인이셨으니까. 인품이나 정략에는 밝은 인물이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잘 버텨주기를 바라야지.
이 와중에 잠자코 얘기를 듣던 반림이 입을 열었다.
“허면 나도 속히 회계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오군공이 오군에서 어느 정도 버텨준다면 우리 산월도 원병을 보내 빌어먹을 손책과 주유를 토멸하는 데 기여하겠소.”
듣던 중 반가운 소리! 나는 반림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위아래로 흔들었다.
“고맙습니다, 산월수!”
이에 반림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 슬그머니 손을 뺐다.
“손은 좀……”
엿이나 먹어라.
일단 급한 쪽은 여남이었다. 여남에서 성공적으로 적의 주력을 궤멸시킨다면 오군에서 패배한다 하여도 유비에게 치명타를 가하게 되는 터. 우선 합비의 병력을 쉽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다 잡은 유비를 놓치게 된다. 유비의 세작들이 우리 군의 동향을 발 빠르게 알린다면 얄미운 유비는 즉각 발을 빼버릴 테니까. 결국 일의 성패는 진등에게 달려 있었다.
“적병이 오만이나 되니, 아무리 적을 함정에 빠트린다 해도 도리어 당하는 것은 우리 쪽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끼 자격으로 합비에 납신 노숙이 한마디 했다. 그 말에 절대 동감했다. 다 자란 멧돼지의 이마에 연약한 새총을 쏴봤자 놈의 화만 돋우는 법이다. 여남의 병력이 적지 않고, 또한 진등과 장료, 고순은 신뢰할 만한 무장들이었지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도리어 당해버릴 공산이 있었다.
“손책과 적의 주력 오만을 동시에 잡아버리면 유비는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잡아야 한다. 잡아야……”
나는 내 손바닥에 묻은 모기의 피를 소매로 슥 닦았다. 나와 악수를 나눴던 반림은 더욱 께름칙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 손을 무릎에 마구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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