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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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주유는 수루의 난간을 꽉 붙들었다.
“바다에 배를 띄워라.”
자명은 예상하지 못한 명령을 즉각 이행하지 않았다. 명령이 명쾌하지 않았다. 그는 납득되는 명령만 따랐다.
“어째서 바다에 배를 띄웁니까.”
주유는 그를 돌아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는 자명을 퍽 흡족이 여겼다. 다른 부관 같았으면 그 명령이 무엇이든 토를 달지 않고 따랐을 터였다. 그러나 자명은 그렇지 않았다. 상관의 명령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완벽하게 수행해낼 수 있었다. 흐릿한 이해는 반드시 실패로 귀결되었다. 주유는 자명에게 말을 풀어주었다.
“바다를 통하여 청주로 가겠다.”
자명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청주라니요.”
“담왕부는 멸망할 것이다. 나는 이제 조왕 조조에게 의탁하겠다.”
주유가 유비에게 의탁한 것은 다만 일신을 추스르기 위함이었지 티끌만큼의 의리도 없었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급히 처마 밑으로 숨어들었는데, 그 집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따지지 않는 법이다. 유비에게 혐의는 없었으나 그렇다고 호의 또한 없었다. 소나기 그치고 처마가 우지끈 무너져 머리 위로 떨어지려는데 더 버티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주유는 손씨에 종사할 때부터 자신을 따르던 병사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주 공, 어디 가십니까!”
주유의 감시 역으로 있던 서주의 호장(虎將)인 조표가 헐레벌떡 쫓아와 외쳤다. 그의 물음에 주유는 은은한 미소를 내비쳤다.
“그동안 잘 묵다 가오.”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담왕의 은택을 저버리시겠다는 겁니까!”
“이대로 가겠다면 어찌하겠소?”
조표는 퍽 험상궂은 얼굴로 주유를 겁박했다.
“칼로써 제어하겠습니다.”
그런 겁박이 주유에게 통할 리 만무했다.
“내 직속에는 오천의 병력이 있소. 정녕 싸움을 원하시오? 이대로 싸우다가 제갈찬의 사냥개들에게 물어 뜯겨도 좋겠소?”
주유는 조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거대한 함선을 향해 걸어갔다. 조표를 등지며 주유가 말했다.
“나도 아주 도리를 모르지는 않소. 숙박비는 지불해두었으니 너무 매정하게만 보지는 마시구려.”
그렇게 말을 던져놓고 주유는 오천의 직속 병력을 이끌고 바다로 나아갔다. 바다는 강과 달라서 천변(天變)이 심하고 파도가 높게 일었다. 바다를 얕봤다가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주유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먼 바다가 나를 백부에게로 데려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주유가 조표에게 말한 숙박비란 것은 그가 주둔했던 강도항(江都港)에 조성해놓은 난공불락의 수군요새였다. 강의 도읍이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강변을 따라 옹벽을 올리고 다시 옹벽을 따라 발석차를 촘촘히 배치했다. 주유는 조표에게 조언하여, 적병이 접근하면 요새의 앞에 쓰지 않는 어선을 삼중사중으로 배치하고 불을 놓도록 했다. 화공을 가하는 동시에 발석차로 돌을 마구 쏘면 적을 어느 정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표는 주유의 말을 잘 듣고 그리하겠다고 했으나 주유가 그리하는 것과 조표가 그리하는 것과는 차이가 심했다. 똑같은 육질의 쇠고기라고 해도 누구의 손을 타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요리가 돼버리고 마니까.
나는 속속 도착하는 전장의 소식을 받아보았다. 육의, 제갈근, 반림이 힘을 합한 수군의 전과도 올라왔다. 나는 몸을 비스듬히 기울이고 죽간을 폈다.
“신 남부교위 육손 아룁니다. 신이 오공(제갈근), 회계공(반림)과 더불어 적의 강도항구를 공습했습니다. 적의 저항이 퍽 강했습니다만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유가 지휘하지 않고 조표가 전군을 지휘하였습니다. 주유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적선 백오십 척을 격파하고, 적병 삼천의 수급을 베었습니다. 모(矛) 일천 자루, 극(戟) 오백 자루, 부월(斧銊) 백 자루와 전마 이백 필, 개갑(鎧甲) 오백 벌을 얻었으며 다수의 양곡을 얻었습니다. 일전에 분부하신 대로 이곳의 양곡은 최소한의 군량을 제하고 나머지는 월주로 보내어 그곳의 불우한 백성들을 구휼하도록 하겠습니다. 회계공 반림이 크게 기뻐하며 합비공의 은혜를 찬하였습니다. 회계공이 따로 합비공께 서신을 보낼 것입니다. 이제 신은 서주 남쪽의 하비국(下邳國)을 치고 서주를 모두 합비공의 경계로 하겠습니다.”
진등과 가후가 정보를 패퇴시키고, 고순이 위연을 패퇴시키고, 육의와 제갈근과 반림이 조표를 패퇴시켰다. 장패만이 조운을 상대로 고전하는 상황이었다. 쉽게 꺾이면 조자룡이 아니지. 나는 각 전장에 건투를 비는 짧은 격려의 서신을 보냈다. 별다른 분부는 내리지 않았다. 알아서들 잘 해보라는 뜻이었다.
남들은 목숨을 걸고 분투하는데 나는 망중한을 보냈다. 제법 묵직해진 온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놀아주었다.
손관과 제갈량의 삼만 병력은 유비의 뒤를 쫓아 서쪽으로 내달렸다. 이곳은 본디 은왕부의 영토였으나 국사무쌍의 전풍이라고 해도 멸망의 위기에서 겨우 소생한 전풍이 합비공과 같은 대제후의 병력에 어깃장을 걸 만한 여유는 없었다. 손관은 급히 병력을 재촉하여 유비의 병력이 주둔하던 형양을 지나쳐 서쪽으로, 서쪽으로 갔다. 제갈량은 평소 같지 않게 여유를 유지하지 못하고 서둘렀다. 이 느긋한 선비도 불같을 때가 다 있구나. 손관은 의아하게 여겼으나 그럴 만한 상황이었으므로 구태여 입에 담지 않았다.
형양을 지나면서도 유비의 꼬리는 잡히지 않았다.
“숨는 데는 도가 튼 놈이군.”
손관은 윗니로 입술을 다졌다. 합비공이 삼만의 병력 전부를 기병으로 편제하여 반드시 유비를 사로잡으라고 신신당부를 남겨놓은 터였다. 이대로 빈손으로 돌아간다면 면이 서질 않았다. 군율에 따라 목이 잘리는 것에는 불만이 없었으나 전적으로 신임해준 벗의 뜻을 저버리고 만다는 사실이 손관으로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제갈량으로서도 마찬가지였다. 제갈량은 형양을 지나쳐도 유비가 잡히지 않자 손관에게 말했다.
“중부교위, 저는 남서쪽으로 가겠습니다.”
“음? 어째서?”
“허락해주십시오.”
형양의 서쪽으로는 한창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낙양이었다. 천병 이만이 저수의 방비를 뚫으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이대로 유비를 계속 서쪽으로 몰면, 함성소리에 놀란 참새가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달아나다가 새그물에 걸리듯 천자의 병력에 발각되고 말 터였다. 역량을 집중하여 유비를 몰아넣는 데 주력하면 그만인데 갑자기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겠다니, 손관은 제갈량의 뜻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을 바꿨다. 괜히 팔략이 아니겠지.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제갈량은 짧게 읍하고 가장 날랜 병력 오백을 거느린 채로 남서쪽으로 급히 나아갔다. 손관은 그의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새 몰이에 나섰다.
유비는 숨을 헉헉거리며 산을 넘고 있었다. 평지를 버리고 험지를 택하는 것이 일견 어리석게 보였으나 전원 기병으로 편제된 손관의 눈을 피하자면 차라리 산이 나았다. 상처투성이가 된 애마는 발을 절뚝거려 더 이상 도주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비는 짧은 칼을 꺼내 애마의 경동맥을 찔러 죽였다. 애마는 순순히 칼을 받았다. 유비는 묵묵히 말의 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버렸다. 그 다음 가죽을 벗기고 살을 발라냈다. 방통은 유비의 뒤에서 입을 살짝 벌린 채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제 애마를 친히 도살하고 발골까지 해내는 주인의 뒷모습은 냉혹하기 그지없었다. 유비는 애마의 살코기를 발라내더니 서툴게 자른 고깃덩이를 방통에게 쑥 내밀었다.
“…먹게.”
방통은 떨리는 손으로 그 고깃덩이를 받아들었다. 고기의 겉면에 흥건한 피가 방통의 손에도 끈끈하게 묻었다.
“전하……”
고깃덩이를 받아들고 방통은 유비를 바라봤다. 유비의 얼굴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있었다. 묽은 콧물이 입술을 지나 턱 끝까지 흘렀다. 두 눈에서는 개울물처럼 쏟는 눈물이 얼굴의 땟국을 지우며 흘렀다. 유비는 끅끅 울음을 참으며 말했다.
“먹게.”
그 사무친 슬픔과 뼈저린 절제를 느낀 방통은 말없이 질긴 고깃덩이를 씹었다. 피비린내가 방통의 입안에 확 퍼졌다. 유비는 이내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목 놓아 울지 않았다. 적의 밝은 귀에 들리지 않으려고. 유비는 소리를 내려는 제 목청을 고깃덩이로 틀어막았다. 질겅질겅 고기를 씹으며 유비는 중얼거렸다.
“불에 구워먹으면 더 맛있는데… 연기를 피우면 놈들이 알아채니까……”
유비는 과식하지 않았다. 딱 알맞게 배를 불릴 정도로만 먹고 강물을 손으로 떠먹어 입안의 피비린내를 지웠다. 얼굴에 전 땟국과 눈물자국과 콧물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통에게 말했다.
“다시 가지.”
“고기가 많이 남았습니다.”
“여름이라 쉽게 썩소. 탈이 나면 놈들에게 잡히고 말아. 또한 이 산에는 맹수가 있을까 염려되오. 운이 나쁘려면 범에게 잡아먹히고 말지. 혹시 알겠소? 이곳의 범이 저 남은 고기를 실컷 먹고 우리를 노리지 않을지.”
“…예.”
“가자, 가자……”
다시 꿋꿋이 걸어 나가던 유비는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 우뚝 멈췄다. 그는 몸을 살짝 낮추며 허리의 보검에 손을 댔다. 여차하면 뽑을 기세였다. 이런 쪽에는 둔감한 방통은 유비의 뒤에 숨는 수밖에 없었다. 유비는 수풀이 우거진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람이라면 나와라……”
그에 응답하는 소리가 수풀에서 들렸다.
“곧 죽을 놈 목소리가 건방지군.”
그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꼬락서니를 보아하니 영락없는 도적이었다. 젠장, 범을 만난 것보다 더 재수 없게 돼버렸군. 유비는 입술을 깨물었다. 도적무리의 맨 앞에 선 장골이 유비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왔다.
“겁이 없는 놈이로구나. 이 고을에 며칠만 묵었어도 이 일대를 지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을 텐데.”
장골의 목소리는 위엄이 서려있었으나 으레 도적처럼 경박스럽지 않았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유비는 직감으로 그가 단지 재물만을 노리고 사람을 해치는 잡놈은 아니란 걸 알았다. 그가 재물에 침을 질질 흘리는 이라면 응당 허리춤의 보검을 감췄겠지만, 그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유비는 도리어 잘 보이도록 손을 갖다 댔다. 장골의 시선이 유비의 의도대로 그 손을 향했다.
“오호라, 제법 좋은 칼이로구나.”
유비는 그를 노려봤다.
“내 목숨을 취하고자 하느냐.”
장골은 저벅저벅 걸어 유비를 그대로 스쳐 지나가고는 저 너머 마구 헤쳐진 말의 주검을 바라봤다.
“예사로운 말이 아니다. 명마로다.”
장골은 말의 주검에서 시선을 거두고 유비를 쏘아봤다.
“명검과 명마. 너는 누구냐.”
유비는 주눅 들지 않았다. 장골이 바로 칼을 빼앗지 않고 바로 제 목숨을 앗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흥미를 느낀 탓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주눅이 들어버리면 장골은 흥미를 잃으리라. 유비는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유비는 도리어 장골에게 반문했다.
“내가 묻겠다. 너는 누구냐.”
장골은 피식 웃었다.
“나는 말놀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네가 좋아하든 말든 내 알 바가 아니다.”
장골은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재밌는 놈인데.”
장골이 웃자 그의 좌우에 선 찌꺼기들이 따라 웃었다. 장골은 갑자기 유비에게 쇄도하여 그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눈높이를 유비와 나란히 하고 부리부리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러나 유비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물었잖나. 너는 누구냐.”
유비는 귀찮은 쉬파리를 바라보듯 경멸하는 시선으로 장골을 바라봤다. 이미 반쯤은 자기 목숨을 쥔 자신을 오만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장골은 이제 흥미를 넘어 야릇한 경외감을 느꼈다. 유비는 그 오만한 시선을 유지한 채로 장골에게 말했다.
“나는 담왕 유비이다.”
손관이 대대적으로 군사를 풀어 수색한다는 소문이 파다할 터다. 이대로 순순히 말하면 저 도적들이 사로잡아 제갈찬에게 넘겨버리고 말 것인데…… 방통은 아찔한 위기감을 느꼈지만 이미 유비는 스스로를 유비라고 말한 뒤였다. 장골은 입가를 벌리고 웃었다. 그는 유비가 거짓을 말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거……”
장골은 느릿느릿 운을 뗐다.
“뜻밖의 귀인인데.”
그는 유비의 경동맥에 겨눈 칼을 거두고 점잖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읍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이 사람, 하동(河東)의 서황(徐晃)이라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