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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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관녕의 사절단은 전속력으로 서쪽을 향했다. 송경을 출발한 관녕은 강하군을 지나 남군의 남쪽 대도시인 강릉을 경유, 장강의 지류를 따라 저강, 이도, 그리고 원래의 역사에서 이릉대전으로 유명한 이릉을 통과했다. 이후 자귀와 무현을 지났다. 무현의 다음에는 육손이 제갈량의 팔진도에 된통 당했던 어복이 나오는데, 이곳부터는 익주였으며 합비공부가 아닌 촉왕부의 세력권이었다. 이릉을 무사히 통과한 관녕의 사절단은 자귀에서 꼼꼼한 검문검색에 걸리고 말았다. 그곳의 현령은 시골의 지방관답지 않게 익주로 들어가는 까닭과 어포의 개수 등 시시콜콜한 것에 시비를 걸었다. 기실 별일 없는 와중에 잘 걸렸다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현령이 인원 하나하나를 점검하려고 들자, 관녕은 마침내 참았던 분노를 터트리고야 말았다. 이것은 유비가 들키지 않도록 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했지만 꼭 그런 것이 아니어도 그의 기질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네 이놈! 네가 감히 칙사의 앞을 가로막고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어대는구나! 본관이 누군 줄 알고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이냐!”
관녕이 목을 꼿꼿이 세우고 빽 쇳소리를 내지르자, 감히 어사대부의 존안을 뵐 일이 전무하던 현령은 겁을 집어먹었다.
“본관은 천자의 명을 받든 칙사이자 만조백관의 원로인 어사대부이니라! 감히 네가 본관을 의심하여 천자의 칙명을 거스르려 하는가! 어사대부는 만조백관의 감찰을 그 소임으로 하거늘, 정녕 본관의 손에 논핵되고 싶어 환장을 했느냐!”
그 호통에 현령은 몸 둘 바를 모르며 관녕의 통과를 허락했다. 기실 허락이라기보다는 겁박에 굴복한 것이었다. 짐꾼으로 위장한 유비는 자귀를 떠나면서 남몰래 혓바닥을 내밀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자귀에서의 소란이 전해진 무현에서도 별 다른 검문이 이뤄지지 않았다. 관녕이 칙서를 내밀면서 꼬장꼬장하게 소리를 지르니 일개 현령이 당해낼 수가 없었다. 관녕은 그렇게 당당한 모습으로 무현을 떠나 익주의 어복현에 마침내 발을 들였다. 남군태수의 이름으로 된 명령장이 도착한 것은 관녕이 익주로 들어가고 무려 닷새 뒤였다. 자귀현령은 벼락출세의 기회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을 깨닫고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는 후문이었다. 서황은 남들의 서너 배나 되는 등짐을 짊어지고 익주에 들어가며 방통의 허리를 쿡 찔렀다.
“이보오 사원, 그대는 천자가 어찌 우리를 고분고분 촉왕부로 보내줄지 알았소?”
방통은 미소를 머금었다.
“먹물들끼리 통하는 게 있는 법이외다.”
“거참 나도 글깨나 깨달은 인물인데 그대한테는 못 당하겠군……”
서황은 고개를 저었다.
양양의 노숙은 관녕의 사절단이 무사히 익주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이마를 쳤다.
“이런… 대마(大馬)를 놓치고 말았군……”
그는 제갈량으로부터의 급한 서신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다시 읽었다.
“어찌하겠는가, 공명. 하늘이 아직 유현덕을 쓰겠다는데……”
노숙은 거푸 허공을 향해 한숨을 뿜었다. 그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유비의 드넓은 영토를 얻은 기쁨보다 제 관할을 콧노래를 부르며 보란 듯 통과해버린 유비를 잃은 안타까움이 훨씬 컸다.
량이는 송경에 더 머무르지 않고 그 길로 합비공부에 당도하여 나를 만났다. 그는 이미 유비를 놓친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나는 그로부터 소식을 듣고 허허, 쓰게 웃었다. 씀바귀를 한입 가득 넣고 씹은 듯 독한 쓴맛이 내 속에서 확 퍼졌다.
“그놈, 명줄 한번 길다.”
태연하게 반응했지만 속은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량이는 내 앞에서 머리를 박았다.
“형님, 제 불찰입니다. 쓸모없는 신하를 부디 벌해주십시오.”
나는 그의 잘생긴 뒤통수를 한참 쳐다보다가 그의 몸을 직접 부축하여 일으켰다.
“불찰은 무슨. 하늘의 뜻은 당해내지 못한다.”
아무리 마음을 좋게 먹으려고 해도 그놈은 꼭 내 등 뒤에다 비수를 꽂는단 말이지…… 나는 검지를 들어 입술을 천천히 쓸었다. 이 쓰라림은 당분간은 가시지 않을 것 같다. 가시지 않으면 안고 있어야지. 보는 사람마다 사람을 골려주는 표정으로 싱글벙글한 유비의 얼굴과 겹쳐 보여 나는 모든 사람과의 접견을 거부했다. 부인들도 만나지 않고 나는 등애에게 면도를 명령했다.
량이의 판단이 맞다면 낙준은 나를 주적으로 지목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유비라는, 나에게 있어서는 거대한 악의 덩어리를 빼돌려 방생했다. 그렇다면 낙준 역시 그만 한 책임을 져야만 할 것이었다. 허나 막대한 병마를 동원하고도 유비의 행방을 알지 못한 일차적인 책임은 손관, 그리고 나에게 있었다. 정말 산 속을 헤매다가 이리 떼를 만나 오장육부가 파헤쳐졌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라면 도적 떼를 조우하여 피살되었다든지 혹은 기가 막힌 변설로 그들을 구워삶아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낙준과 그의 주인인 천자에게 유비를 살려 보낸 죄목을 씌우려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증거를 갖추지 않고 마냥 목에 핏대만 세우는 것은 필부지용(匹夫之勇)에 불과했다. 그러나 낙준에 대한 최소한의 적개심과 경계심은 항시 여인의 은장도처럼 품어야만 할 것이었다.
지금 당장 병마를 동원하여 천자를 쓸어버리는 것 또한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유비가 궐석인 채의 담왕부를 상대로 연전연승하고 있다지만 아직 정벌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전선만 확보했다 뿐이지 담왕부의 병력은 달달 긁어모으면 족히 십만은 되었다. 이 전선에 십오만이나 되는 대군을 동원한 내가 구태여 먼저 나서 대대적으로 천자와의 관계악화를 천명하고 나설 까닭이 없었다. 만일 천자를 정벌할 필요가 있다면 당장 정벌에 나설 것이다. 천자를 정벌하여 얻는 이익이 손해보다 크다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익보다 손해가 더 컸다. 담왕부를 토벌하려는 이때에 천자와의 갈등을 수면 위로 올릴 이유가 없거니와, 천자가 유비를 빼돌렸다는 사실은 다만 유력한 추정이기에 먼저 버럭 소리를 지르는 쪽이 불의의 오명을 뒤집어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량도 정도껏이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쓸다가 나도 모르게 손끝에 힘을 주어 손톱으로 입술의 얇은 가죽을 찢어버렸다. 맑은 핏물이 손끝에 묻어나왔다.
“네놈이 궤계로써 방자하게 군다면 나도 궤계로써 값을 치러주겠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품위를 지키며 압박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강대국이 강대국인 것은 첫째, 무력이 강한 까닭이요 둘째, 부유한 까닭이요 셋째, 문화가 창달한 까닭이요 넷째, 인재가 넘치는 까닭이요 다섯째, 땅이 넓은 까닭이었다. 가장 약발이 잘 먹히는 것은 무력으로 위압하는 것이나 이것은 품위를 지극히 해칠 염려가 있고 더군다나 신하가 천자를 치는 것은 그야말로 반역이니 가당한 패가 아니었다. 그 다음은 부유한 것으로 빈궁한 것을 제압하는 방법이 효과가 퍽 좋다. 나는 양주자사로서 이 일대의 내정을 총괄하는 염상을 불렀다. 염상은 백각의 일원도 아니요 다만 나를 대리하여 자질구레한 정사를 모두 돌보고 있어 독대하는 일이 적었는데, 내가 그를 소환하니 염상도 예사로운 일이 아님을 알고 급히 합비공부에 출두했다.
“합비공을 뵙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알은체를 했다.
“이번에 송경으로 가는 조공물목이 어떻게 됩니까?”
조공이라고 불렀지만 기실 교역이었다. 나는 천자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 퍽 적잖은 재물을 헌납하고 그 대가로 일대의 물산을 챙겨왔다. 천자의 영토는 고작해야 강하군 전체와 남양군, 그리고 여남 서부, 그밖에 크고 작은 덩어리의 땅들이었다. 그러나 천자의 격식을 갖추고 여러 차례 동병을 하자니 물산이 심히 달렸고, 나는 송경에게 필수적인 물목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있던 차였다. 그 대가를 취하기는 했으나 대개 천자의 직할령에서 나는 것은 나의 땅에서도 부족하지 않게 나는 것이었다. 나의 물음에 염상이 답변했다. 염상은 절륜한 내정가답게 줄줄 읊었다.
“전마 삼천 필, 쇠 일만 근, 베 사만 필, 무명 오천 필, 금은 삼천 냥, 소금 일천 섬 등입니다.”
“오늘부로 조공을 전면중단하도록 하세요.”
영문을 모르는 염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입니까?”
“우리도 전시이지 않습니까. 우리 쓰기에도 벅차잖아요.”
“아…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나는 핏물이 계속 배어나오는 아랫입술을 윗입술로 쓸면서 말을 이었다.
“비뚤어진 버릇을 좀 교정할 필요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염양주께서는 그대로 결행하세요.”
분명하게 뜻을 밝히자 염상도 듣는 귀가 있어 그대로 수긍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염상을 물리고 나는 이어 합비태수 겸 북부교위 왕수를 불렀다. 왕수는 평소 합비공부를 왕래하지 않던 염상이 나가는 것을 보고 어느 정도 그 내막을 눈치 챈 기색이었다. 나는 미소를 띠며 왕수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부탁이 좀 있어서.”
왕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하명하시지요.”
“천자께서 어사대부 왕랑을 대사마 관녕과 직위를 교체한 것이 얼마나 되었지요?”
왕수는 허공을 바라보며 잠깐의 셈을 마치고 대답했다.
“한 두어 달 되었지요. 직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갓 마친 수준일 겁니다.”
“대장군의 이름으로 대사마 왕랑을 탄핵하겠습니다.”
왕수는 염상과 달리 별로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구실은?”
“그거야 왕합비께서 알아서 해주시고요. 탄핵문의 말미에 대장군 제갈찬의 글씨를 큼지막하게 써주시고 인주를 넉넉히 발라서 대장군의 인을 선명하게 박아주세요. 그걸 들고 송경으로 가서 천자께 상주해주시지요.”
“다소 거칠어도 됩니까?”
나는 으르렁거렸다.
“혓바닥이 사포로 된 것처럼 아주 거칠게.”
“오랜만에 제 취향에 맞는 말씀을 해주시는군요. 즐겁게 작성하겠습니다.”
왕수는 어울리지 않게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내 앞에서 물러났다. 염상과 왕수 다음은 뒷방에서 개점휴업하고 있던 장로였다.
“요즘 일거리가 변변찮으셨죠?”
장로의 배에 가득 들어찬 기름을 보아하니 대답은 들으나 마나. 장로는 수줍게 웃었다.
“일거리를 좀 드리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나는 가사에 음률을 붙여서 변변찮은 솜씨로 노래를 불렀다.
“서역의 동물이 어찌하여 여기 있느뇨. 등허리에 봉우리를 짊어졌으니 오호라, 네가 낙타로구나. 느릿한 낙타 궁둥이 씰룩거리네. 고샅길을 가로막고 씰룩거리네. 아서라, 네가 비키지 않으니 사람이 천천히 걷는구나. 서역의 동물이 어찌하여 여기 있느뇨. 갈 길은 바쁜데 느릿한 낙타 궁둥이 씰룩거리네. 사람의 걸음도 그것 따라 느리다네. 갈 길은 바쁜데. 서역의 동물이 어찌하여 여기 있느뇨. 아서라, 네가 비키지 않으니 사람이 천천히 걷는구나.”
노래의 마지막은 퍽 잔혹했다.
“비키지 않으면 목을 따서 구워먹으리……”
구지가(龜旨歌)도 아닌 노랫말이 해괴하기까지 한 데다가 나의 음정박자 무시한 끔찍한 실력까지 더해져 노래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장로의 표정에 두려움과 당혹감이 묻어나왔다. 나는 민망해져서 웃었다.
“화평도의 사백이 지은 노랫말이니 백성들이 곧잘 따라 부르겠지요?”
“요즘에는 사백의 분뇨가 외부로 나가는 것이 엄금되어 뭇 신도들이 사백의 흔적에 심한 갈증을 느낍니다. 아마 사백께서 지으신 것이라고 하면 즐겁게 불러 천하에 널리 퍼뜨릴 것입니다.”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똥 얘기는 그만하시고요. 그러하면 이것을 내 이름으로 널리 알려서 부르게 하십시오.”
“그리하겠습니다. 화화평평.”
화화평평은 무슨.
“오늘만큼은 사사악악(邪邪惡惡)인데요.”
나의 충직한 신도인 장로는 곧장 정정했다.
“사사악악.”
낙준의 이름은 한자로 낙타 낙(駱)에 준걸 준(俊)을 쓰는데, 준걸 준 자는 사람 인(人)을 변으로 삼고 천천히 걸을 준(夋)을 몸통으로 삼으니, 아주 잘나고 똑똑하신 당사자께서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다. 오오, 문화융성의 위력이여.
송경으로 향하던 조공행렬이 합비로 즉각 철수했으며, 조정의 삼원로(三元老)이자 이제 막 대사마로서 군정을 돌보기 시작한 왕랑을 탄핵하는 상주문을 지참한 왕수가 되돌아오는 조공행렬을 지나쳐 송경으로 향했다. 장로가 널리 퍼뜨린 낙타겁박가(駱駝劫迫歌)‒내가 지은 거 아니다. 장로가 지은 제목이다. 작명하는 재치하고는!‒는 합비에서 울려 퍼지다가 송경의 내로라하는 주사청루에도 유행가로서 곧잘 불려졌다.
나는 내가 동원할 수 있는, 품위 있고 고상한 방법으로 천자를 ‘질책’했다. 이제 천자가 대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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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분들의 의견은 잘 이해했습니다. 더 큰 만족을 드릴 수 있는 글을 쓰도록 경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