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57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구태여 서두를 까닭이 없습니다. 서두르면 탈이 나는 법, 우리는 대군의 규모에 맞게 행군할 것입니다.”
“그러나 놈들이 전장을 택하여 우리를 맞이하는 모양새는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낙양은 그리 쉽게 돌파되지 않을 것입니다. 곽원이 사마의를 제어해준다면 놈들이 제아무리 대단한 진용을 꾸려놓는다 한들 우리를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 싸움은 틈을 보이면 지게 되어있습니다.”
나는 지도의 한 지점을 짚었다.
“북비는 낙양의 동쪽 관문인 사수관의 입구, 형양을 전장으로 선택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지요. 허면 우리도 적절한 포진을 구상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전령을 바라봤다.
“너는 바로 예주도독 고순에게 가서 하내를 굳건히 지키라 명하라. 다른 고을은 내줘도 좋다. 어차피 다시 찾아올 것이니까. 그러나 하내만큼은 목숨을 걸고 지키라고 전하라.”
“존명!”
형양을 중심으로 서쪽은 사수관, 북서쪽은 하내였다. 조조는 북동쪽에서 접근하고 나는 남쪽에서 접근해오고 있었다. 낙양과 사수관을 포함한 서쪽을 곽원이 차단하고, 북서쪽의 하내를 고순이 지킨다면 조조가 제가 원하는 대로 형양을 주전장으로 택해봤자 우리에게 결코 불리하지 않을 터였다.
“전력은 우리가 압도적이다. 굳이 무리수를 둬가며 스스로를 동요시킬 까닭이 없다. 정석대로 간다. 그래야 이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 주문을 불어넣었다.
청주 쪽을 압박하는 서주도독 진등의 세는 적절히 적의 증원을 차단하였으나 그렇다고 전격적으로 청주의 깊숙이 진입하지는 못했다. 결국 적의 청주 증원병과 서주군은 상쇄되었다. 예주도독 고순은 조조와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지고, 하내로 쫓겨가듯 물러났다. 조조의 명을 받든 하후연과 조인은 기병 2만을 이끌고 사수관의 문을 열심히 두드렸지만, 곽원은 최선을 다해 방어했다.
조조는 나의 예상대로 역시 형양을 전장으로 상정한 듯했다. 그는 내가 당도하기 전에 고순이 지키고 있는 하내를 무너뜨리려고 전력을 집중시켰지만, 고순은 그야말로 우직했다. 내 명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이를 악물고 목숨을 다해 하내를 지켜냈다.
결국 조조는 하내를 등 뒤에 두고 진을 치는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하내를 배후에 두지 않고 전장을 북쪽으로 옮겨 설정하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형양의 북쪽은 탁한 급류가 흐르는 황하였다. 황하 이북에 전장을 설정하는 것은 아무도 오지 않는 오지에 가게를 차리는 것과 같았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황하를 넘지 않고 그 이남을 묵묵히 지키고만 있을 터였다.
어차피 침략군은 조조였다. 나는 수성의 입장을 맡을 뿐이었다. 조조가 황하 이남으로 쳐들어올 용의가 없다면, 나도 구태여 응전할 용의가 없었다. 그럼 조조가 진출하여 점령한 땅을 고스란히 바치는 꼴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았다. 이 가뭄만 끝나면 신왕부는 얼마든지 빼앗긴 땅을 되찾아올 여력이 있었다. 신왕부의 입장에서 급한 것은 없다.
그러나 조조는 이번 싸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이미 량왕부가 조조에게 협력하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었다. 이 사실을 안 이상 나는 량왕부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터였다. 조조에게 그깟 몇 백 리 땅을 내주고 잠시 침잠하기야 하겠지만, 이내 세를 회복하여 량왕부를 때려잡을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장안의 장합도 별 수 없이 나에게 동조하게 될 터였고, 그렇게 되면 조조는 외로운 섬처럼 되고 만다. 영영 나를 이길 순간을 창조해내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에 조조는 이 싸움을 반드시 한쪽이 치명상을 입는 대전으로 이끌고 갈 의지가 충만했다.
그렇기에 황하의 남쪽에 반드시 전장을 설정해야 했고, 그곳이 바로 형양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조조는 형양을 전장으로 선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하! 조조가 형양에 진지를 마련했습니다!”
전령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았다.”
나는 회계공 반림에게 말했다.
“본진은 형양의 남쪽 경현에 마련하고, 서쪽으로는 사수관에 닿도록 진지를 길게 형성하고 북쪽으로는 변수를 따라 수비의 진용을 갖춰야겠습니다.”
반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포진이십니다.”
변수는 형양의 남쪽 경계에 흐르는 하천이었다. 폭과 깊이가 크지 않은 작은 하천이었으나 충분히 자연적인 장애물로서는 구실할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조조의 모가지도 불알이 있는 곳으로 보내줄 때입니다.”
낙양의 곽원은 팔짱을 낀 채로 동쪽을 바라봤다. 그는 하후연과 조인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해냈다. 하후연과 조인의 기병 부대는 조조가 형양에 당도하자 다시 본대에 합류했다.
그가 맹장으로 이름이 높은 하후연과 조인을 한꺼번에 상대하여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들에 뒤지지 않는 용맹에도 기인했다. 그러나 더 주효했던 것은, 낙양으로 들어오는 관문, 난공불락이라는 수식이 가장 적절한 사수관의 덕택이었다.
곽원은 사수관에 전력을 투입하여 하후연과 조인을 적극적으로 제어했다. 그리고 그 간단한 전술로 적에게 낙양을 빼앗기지 않았다. 신왕 제갈찬은 상서 상총을 보내어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전하께서는 홍농도독께서 절륜한 전술과 빼어난 용맹으로 적을 물리치심을 크게 치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총에 말에는 퍽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곽원을 최후까지 아군으로 붙들어둬야만 생각대로 전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까닭이었다. 곽원을 이쪽에 눌러 앉힐 수만 있다면 사탕발림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험한 관문에 기대었을 뿐이오. 대단한 전공이 못 되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금 오백 냥을 하사하시어 도독의 전공을 크게 상찬하시고 형양후의 봉작을 더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잘해내주셨습니다.”
이쯤 되니 으레 하는 공치사임을 알면서도 곽원의 어깨는 어쩔 수 없이 으쓱거리게 되었다.
“전하께 황송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전해주시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적의 기병 부대가 격퇴되었으니 이 곽원의 병력도 자유자재로 운용할 수 있게 되었네. 본관이 판단하기로는 전하의 본대에 합류하여 힘을 보태는 것이 가당하다고 보는데, 혹 전하께서 따로 언질을 주신 바가 있는가?”
상총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는 도독이 형양의 본대에 힘을 합치기보다는, 서쪽을 더 신경 써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쪽?”
“그렇습니다. 량왕부의 주동 말씀입니다.”
“으음, 그런가.”
상총은 씩 웃었다.
“그 편이 도독께도 좋을 것이라고 전하께서는 덧붙이셨습니다.”
“왜지?”
“독립된 군단을 이끌고 전공을 세우시는 것이 훗날 전쟁이 끝나고도 이 일대에서의 독립된, 독점적인 권한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구태여 도독의 영지를 전하의 직할령으로 삼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본디 구렁이도 큰 노루를 잡아먹으면 꼬박 사나흘을 들여 그것을 소화시킵니다. 전하께서는 도독의 영지에 관하여 쓸데없는 소요가 벌어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상총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이미 형양에서 양적으로는 신왕 제갈찬의 병력이 조 천자 조조의 병력을 능가했다. 고작 일만이 조금 넘는 곽원의 병력이 더해져봤자 대단한 쓸모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곽원은 본디 합비의 제장과는 접점이 없어 합을 맞춰보지도 못하였으니, 본대에 합류시키면 도리어 군의 기율이 흐트러질 것이 염려되었다.
또한 사마의에 대한 신왕 제갈찬의 경험적인 공포심도 그러한 판단에 기여했다. 곽원이 그를 붙들어놓아야만 안심이 될 것만 같았다. 상총의 말에 곽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의 의중이 그러하시다면야 따르는 수밖에. 량왕부의 주동을 제어하는 데 성심을 다하겠다고 전해드리게. 동쪽의 사수관을 지켰던 것처럼, 서쪽의 동관을 쥐고 적침을 용납하지 않겠네.”
“든든합니다. 그대로 전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상총이 돌아간 후, 곽원은 사수관에 최소한의 병력만을 남기고 본래의 터전인 홍농으로 돌아갔다. 홍농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동관으로 나아갔는데, 곽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예상과는 퍽 달랐다.
“뭐지?”
응당 메뚜기 떼 같은 적의 병력이 도사리고 있어야 옳았다. 멀리서 볼 때에는 그렇게 여겨졌다. 깃발이 촘촘히 꽂혀있었고, 막사들이 여전히 빽빽이 들어서있었다.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자 곽원이 친히 기병 이천을 이끌고 동관을 박차고 나갔다. 전격적으로 적을 습격하여 얼마나 조련이 잘 되어있는지를 알아보려는 심산이었다.
곽원이 창을 꼬나 쥐고 그것을 막사를 향해 휘두르는데, 막사는 힘없이 풀썩 넘어졌다. 막사는 텅 비어있었다.
“뭐, 뭐냐……”
곽원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그는 부장 하나를 붙잡고 급히 말했다.
“당장 형양으로 가서 전하께 아뢔라! 량의 병력이 사라졌다고! 어서!”
송경.
천자 유총과 낙준은 하루 삼시세끼를 꼬박 같이 하면서 무언가를 계속 논의했다. 그 논의는 어찌나 비장하고도 비밀스러운 것인지, 다른 이들을 감히 개입시키지 않았다. 물론 머리가 좀 돌아가는 이들, 이를 테면 서서와 마량 등은 충분히 그들의 논의를 예상했다.
“백미공(白眉公, 마량의 별명이 백미)은 끝까지 황상을 따를 것입니까?”
서서가 묻자 마량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황상께서 어떤 선택을 하시든 신하는 따를 뿐입니다.”
서서는 미소를 지었다.
“시험이라니,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백미공의 의중이. 또한 궁금하군요. 황상의 의중이.”
“명공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겠습니까?”
“저요? 글쎄올시다. 애초에 천자가 되지 않았겠지요?”
“그 대답은 반칙이군요.”
서서와 마량이 저들끼리의 시시껄렁한 논의에 시시덕거리는 사이, 유총과 낙준은 운명을 가를 선택을 앞두고 있었다. 모든 근거와 선택에 따른 장단은 명약관화해졌다. 이제 정말 선택만이 남았다. 유총은 머리를 짚었다.
“이봐, 내 군신이 아니라 벗과 벗의 관계에서 말하고 싶네. 참으로 어렵네, 참으로 어려워.”
낙준은 쓰게 웃었다.
“폐하의 성심을 어찌 신이 모르겠습니까. 어려운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너무나도 간단한 선택이지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글러버리게 될까?”
낙준은 유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영영, 영영이라. 어쩌면 지금 영영이라는 낱말을 썼던 기억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영영이라는 말은 그래도 이 땅에 발붙이고 살 날이 많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유총은 입을 천천히 다물었다.
“물론 목숨은 부지할 수 있으실 겁니다. 폐제(廢帝, 폐위된 황제)로서 말이지요. 살아도 산 것이 아닐 겁니다. 아마 폐하께선 버티지 못하시겠죠. 기회는 없습니다. 지금뿐. 폐하께서 스스로 떨쳐 일어나 무언가를 폐하의 뜻대로 해볼 기회는 지금뿐입니다. 지금이 지나면, 폐하께서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십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따라갈 뿐이지요.”
“그대는 이미 결론을 내린 듯하군.”
“제 결론은 내려졌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폐하의 결론이지요. 그것이 무엇이든, 더 말하지 않고 따르겠습니다. 그것이 제게 주어진 유일한 소임이니까요.”
“짐이 그대의 결론을 짐의 결론으로 삼는다면,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가?”
“보장 못합니다. 다만 성공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모한 결정이라고 보는가?”
“무모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
“결정하셨습니까?”
유총은 곁눈질로 낙준을 살폈다.
“결정한다면, 사마의에게 전갈을 보내어 그를 이곳 송경으로 끌어들일 것인가?”
낙준은 웃음을 지었다.
“이미 불러들였습니다.”
그 말에 유총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뭐, 뭐라고……!”
“무슨 선택을 하든지, 이 선택은 옳으니까요. 만일 폐하께서 제갈찬을 치시겠다고 결정하신다면 바로 사마의와 힘을 합해 그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때려야 합니다. 만일 폐하께서 제갈찬의 편에 서시겠다고 결정하신다면 마음을 놓고 있는 사마의를 안방까지 불러들인 연후에 그를 격멸시켜야지요. 그래야 제갈찬이 폐하의 공훈을 인정하여 감히 가혹하게 굴지 못할 것 아닙니까?”
천자의 공훈이라니. 그것이 다분히 모욕적이어서 유총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신은 사마의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장안을 경유하여 홍농으로 가려던 그를 남양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물론 제갈찬의 눈에 띄면 안 되니까 병력을 잘게 나누어 차례대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또 얼마간의 병력을 남겨두어 밥 짓는 연기를 올리게 했지요. 아마 지금쯤 그 병력까지 모두 거두어 남양으로 들어왔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