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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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군량고 습격사건(1)
우리는 출병했다. 일만의 병력은 비록 굶주렸지만 기세등등했다. 오랜만의 출병에 가슴이 떨리기도 했다. 복양에서 여남까지 짧은 거리는 아니었다. 원정이라는 이름에 걸맞도록 멀었다. 싸움을 치르고 돌아오면 여포와 조조 사이에 결착이 나게 되는 수도 있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이른 귀환을 위해 말을 재촉했다. 가는 도중에 우리는 곽공이 여포에게 반 년 치의 양초를 제공하더란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가뿐한 마음으로 예주로 향했다.
예주의 치소는 패국 초현이었다. 풍족한 지대인 예주는 그 영역이 매우 넓었는데, 곽공이 예주전역을 다스리는 것은 아니고 패국과 그 주변에만 영향력을 확보한 상태였다. 우리는 초군으로 가서 곽공을 접견했다. 그는 어찌나 오매불망 우리를 기다렸으면 우리가 들어오는 북문을 활짝 열고 성문 앞까지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의 생김새는 아주 평범했으며, 언변이나 배포도 딱 그 정도에 그치는 인물이었다.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낭야상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곽공은 노구의 손을 맞잡고 마구 흔들었다. 노구도 깍듯이 그를 대우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습니까. 이제 안심하십시오.”
“고맙소, 고맙소.”
그는 우리에게 차 한 잔 권하지도 않고 곧장 군략을 논했다. 그가 예의를 잊을 만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간다는 소리였다. 그는 큰 지도를 펼치고 예주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물 한 잔 못 얻어먹은 만지가 헛기침을 하면서 남들 다 들리게 혼잣말했다.
“어, 먼 길 왔더니 목이 타네……”
그제야 곽공이 허둥지둥 차를 내오라며 주위를 타박했다. 만지 덕분에 우리는 앞에 차 한 잔씩을 놓고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곽공이 직접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지금 문제는 여남군입니다. 여남은 물산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땅입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여남은 대도시였다. 주에서 두 번째로 많은 현을 거느린 패국이 산하에 21개 현을 거느린 것에 비해 여남은 무려 37개의 현을 거느리고 있었다. 제후 중 누군가의 거점이 된다면 크게 일어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땅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여남은 그 누구의 독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현재 여남의 동북부는 제 영향 하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지역은 유벽과 하의, 하만, 황소라는 황건잔당에 의해 점유되어 있고, 낭릉 등 여러 개의 현은 이통(李通)이라는 자가 사병 일만 여를 거느리고 점유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동쪽은 허저(許猪)라는 자가 마을 청년들을 규합하여 성벽을 쌓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으니 그 또한 녹록히 볼 수 없습니다.”
나는 허저라는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훗날 조조의 호위로서 무명을 떨친 장수다. 이통이란 이름도 바람결에 들어본 것도 같고. 어쨌든 여남의 상황은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곽공이 말한 네 개의 세력이 주력이었고, 이 외에도 이러저러한 도적들이 들끓어 골머리를 썩고 있다고 했다. 곽공이 말을 이었다.
“황건잔당은 물론 이통과 허저의 무리 역시 사나워 다스리기가 어렵습니다.”
“이통, 허저의 무리와도 반목하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곽공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예주에는 오로지 관군만이 무장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집단은 모조리 역적입니다.”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조조의 괴뢰 주제에 관군 운운하기는. 황건잔당을 쳐부술 생각으로 가뿐하게 왔건만 이통과 허저의 병마까지 맞서 싸우게 된다면 장기전은 물론이요 쉽게 승리를 자신할 수도 없다. 조금 곤란하게 됐다.
“이통, 허저와는 싸움을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그러겠지. 한 가닥 하던 무장들을 상대로 곽공 같은 범장이 이길 수는 없었을 터다. 나는 혹시나 해서 곽공 휘하의 상장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이름을 인사치레를 명목으로 한 번씩 다 물어봤는데, 다들 들어보지도 못한 잡장들이었다. 결국 곽공에게서는 물자나 뜯어내면 족하고 요행수 같은 명장의 발굴은 요원한 일이라는 뜻. 우리는 곽공에게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약속 받고 초현을 떠나 여남으로 향했다. 덕분에 우리는 오랜만에 포식하고 배를 두드리면서 여남으로 떠났다. 곽공은 넉넉한 양초와 함께 장규라는 장수와 일만의 군사를 지원해주었다. 군사 일만은 우리 본대와 같은 수효였으나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하나 같이 눈빛이 흐리고 비리비리해서 열 사람이 덤벼도 우리 졸병 하나를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장규라는 사내도 그다지 용력이나 담력이 있어보이지는 않았다. 이러니 연전연패지…… 우리는 여남 동북부에 주둔했다. 장규가 설명했다.
“황건잔당을 정벌하러 가는 길목에 허저가 있습니다. 허저를 먼저 들이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따를 것이니, 그를 먼저 치십시오.”
“근데 말입니다, 내 궁금해서 뭐 하나만 여쭤보겠소.”
“그러십시오.”
“허저가 백성의 인명을 함부로 해치오?”
“어… 그렇진 않습니다.”
“아니면 재물을 약탈하고 전답을 황폐화시키오?”
“그도 아닙니다.”
“한실을 부정하고 삿된 무리를 섬기오?”
“…그도 아닙니다.”
“관청을 습격하고 국고를 빼돌리오?”
“음, 그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허저를 쳐야 하오?”
장규는 잠시 침묵하다가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음… 글쎄요?”
이런 영혼 없는 공무원 같으니라고.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노구에게 말했다.
“대장, 하루만 시간을 줘. 허저를 만나야겠어.”
이 말에 영자가 놀라서 노구보다도 먼저 반응을 보였다.
“찬, 적진에 혈혈단신으로 뛰어들겠다고?”
“도적떼도 아닌데 다짜고짜 칠 수는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놈들을 신용해.”
“이거 왜 이래? 나 제갈토역이야. 적어도 한실을 거스르는 놈이 아니면 제깟 놈이 일주의 별가이자 한실의 토역장군을 어떻게 함부로 하겠어?”
영자는 잠시 고심하다가 팔짱을 끼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럼 나랑 같이 가.”
“둘씩이나 갈 필요 있어?”
“아, 잔말 말고. 너 같은 물렁한 선비 혼자 가는 것보다 딴딴한 무사 하나가 붙는 편이 더 무게가 실리는 법이야.”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만지가 끼어들었다.
“토역, 저도 데려가시우.”
이 영감은 뭐야 또.
“노인장은 또 왜.”
“물렁한 선비와 딴딴한 무사 둘이 가는 것보다 진중한 노인 하나 붙는 편이 무게가 더 실리우.”
“틀린 말은 아닌데 노인장이 진중한 노인은 아니잖아.”
“과묵할 때는 과묵한 남자요.”
괜히 논쟁해봤자 내 골만 아플 것 같아 그도 그러시라했다. 결국 허저의 영채까지 나와 영자, 만지 셋이서 가게 되었다. 그래도 좌우에 칼을 품은 이를 둘이나 대동하니 마음이 든든하기는 했다. 우리는 모두 삿갓을 쓰고 허름한 도포를 입은 채로 말 위에 올라 털레털레 허저의 영채로 향했다. 스스로 성벽을 쌓았다더니 과연 민중들의 솜씨 치고는 제법 높고 두터운 벽이 올라 있었다. 공성무기로 들이치면 단박에 허물어지겠지만 도적들을 염두에 두었다면 효험이 충분하리라. 성벽 위의 초병이 우리를 보더니 물어왔다.
“먼 일이래유?”
생각보다 순박하고 유순한 수하에 도리어 나는 놀랐다. 원래 날카로운 말투로 누구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나도 친절하게 물어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존대말을 썼다.
“아… 저는 곽예주의 사자인데요?”
“아아… 그러셔유? 쪼매만 기다리셔유―”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내 뒤의 영자와 만지를 돌아봤다.
“그냥 돌아들 갈래? 왠지 나 혼자 있어도 될 것 같아……”
영자도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입을 빼죽 내민 채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시 후 성문이 열리고 초병이 내 말고삐를 얌전히 끌었다.
“들어오셔유. 여기 츰 오시나유?”
“아, 네… 저희는 연주에서 왔거든요?”
“그려유? 연주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디…… 욕보셨겠어유.”
“네……”
그렇게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니 어느새 초가지붕을 얹은 건물이 나왔다. 그곳이 허저의 처소인 듯 초병 여럿이 지키고 있었다. 나를 인도한 초병이 처소를 향해 언성을 높여 말했다.
“허형― 손님 왔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