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27
잠시 기다리니 아까의 그 여무관이 나왔다.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황후전 안으로 들어갔다.
“황후전에 들어가는 건 또 오래간만이네.”
“와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예전에 시중일 할 때 한번 와봤습니다. 전체적인 검사도 해야 했고… 또 암살자를 찾는 문제도 있었고.”
“아아. 그때를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예.”
맹달이 황궁에서 수작을 부렸을 때.
황제가 결국 체념하여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다.
그때 황궁 여기저기를 마음대로 들어갔었는데 황후전 역시도 그때 들어갔었다.
“그때 봤을 때는 몰랐지만…”
“몰랐지만?”
“쓸데없이 화려하군요.”
이런 것 때문에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거겠지.
복도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나무나 옥, 금들을 떼다가 팔면 재원을 상당히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채 사저는 이런 화려한 거 별로 안좋아하니 나중에 물어봐서 뺄 수 있는 것은 빼야겠다.
아니, 그냥 철거하는게 나으려나?
여기저기를 살피는 나를 보며 화흠은 작게 웃었다.
“승상부주. 시선을 좀 관리해주십시요.”
“예?”
“징세청구 하러 나가는 사람 같습니다.”
“아.. 하하. 죄송합니다. 요새 재원 마련이 시급해서… 이거 참. 저 정도 되는 사람이 표정관리 하나 못하다니. 감사합니다. 시중.”
“별 말씀을.”
꽤 화려한 황후전의 복도를 걸어 도착한 넓은 방 안에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고 있는 조헌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승상부주, 시중.”
그녀의 인사에 나와 화흠은 황급히 엎드렸다.
비록 조헌이 조가의 여인이고, 촌수로 따진다면 내 아래라고 하지만 그녀는 황후다.
나름의 예의는 갖춰야 하는 것이다.
“승상부주 진유하. 황후마마를 뵙습니다.”
“예. 오래간만입니다. 승상부주. 승전을 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몸을 바로 하세요.”
그녀의 말에 난 바로 일어났다.
그것을 본 몇몇 여무관들이 인상을 썼다.
왜.
기분 나쁘냐?
원래대로라면 몇번 정도 사양을 해야하고 결국 내가 못 이기는 척 일어나는 것이 예법이다.
그런데 일어나라고 했다고 바로 일어난다?
황가에 충성하는 여무관들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쁘겠지.
하지만 어쩔건데?
난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여무관들을 향해 작게 웃어보였다.
여무관 중 여무관의 수장으로 보이는 여인이 까득 이를 갈자 난 어깨를 으쓱였다.
“뭘 그리 쳐다보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흠… 자네 이름이 뭔가? 관직은?”
“황궁 효기교위 휘하 후영부 부장 양진이라 합니다.”
“양진이라… 그래. 양진.”
“예. 승상부주.”
“시선 관리는 좀 하는게 좋을거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속하. 머리가 나빠서…”
“그 눈알이 뽑히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효기교위도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로 눈을 뜨지 못하는데.”
“…”
“고작해야 부장 나부랭이가 황후마마를 곁에서 모신다고 스스로가 황후마마라 생각하는 건가? 호가호위는 적당히 하게. 전에 그 짓하다가 망한 놈들을 모르는 것이 아닐텐데.”
“…죄송합니다. 승상부주. 속하가 황후마마를 지키는데 집중하여 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양진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녀를 따라 다른 여무관들도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저건 겉치레에 불과했다.
나에 대한 명백한 적대감을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건가?
내가 그들을 보며 더더욱 즐겁게 웃자 조헌이 손을 들었다.
“감히 한의 충신이신 승상부주께 그런 시선을 보내다니. 너희들이 간이 부었구나?”
“소, 송구스럽습니다. 하오나…”
“너희는 물러나라. 괜히 승상부주와 시중의 심기나 불편하게 하려면.”
“저희는 황후마마를 지켜야 합니다…”
“뭐? 그럼 너희는 지금…”
조헌이 인상을 쓰자 난 그녀 대신 말했다.
“나나 시중이 황후마마를 어찌 할 것이다… 라는 건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자리를 피해주게나. 두번 말하게 하지 말게. 까부는 것을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어.”
“알겠습니다.”
여무관들이 나가자 난 한숨을 쉬었다.
조헌은 씁쓸해하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승상부주.”
“마마께서 죄송할 일은 없지요. 그나저나… 저들은 대단하군요.”
실력이나 배짱이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저들의 나쁜 머리에 감탄하는 거다.
내 뜻을 읽은 조헌은 내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얼마 남지 않은 황가의 무관들이다보니… 이해해주십시요.”
조헌이 쓴웃음을 짓자 난 화흠을 보았다.
혹시 조헌이 핍박받기라도 하는 것일까?
내가 바라보자 화흠은 고개를 저었다.
“승상부주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황후마마께선 여무관들과 그리 사이가 좋지는 않습니다.”
“이거 참. 제가 전하께 말씀드려 황후마마의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드리는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니요.”
조헌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진지한 어조로 다시 말했다.
“예의도 모르는 잡것들께 황후마마를 맡길 수야 없지요.”
침묵이 만들어진다.
그 침묵 속에서 결국 조헌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툭 내뱉듯 말했다.
“진 오라버니.”
승상부주가 아니다.
진 오라버니.
나에게 사적인 감정을 담아 그녀는 간절히 말했고 난 그녀의 말을 잘랐다.
“부디 황후마마께서는 소인의 의견을 따라주셨으면 합니다.”
내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던 조헌은 살짝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설마 황가를 치시려는 것입니까?”
“어찌 그런 불충한 일을 하겠습니까.”
그래도 조가의 피가 흐른다 이거지?
내 의도를 이렇게 빠르게 눈치챌 줄이야.
황후의 거처를 옮기게 하려는 것은 혹시 모를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황제가 말을 들어쳐먹지 않을 때 적당히 창과 칼로 압박해야 한다.
그때 조헌이 나서기라도 하면 골치아프다.
그것을 사전에 배제하는 것이 우선이다.
불안해하는 그녀를 향해 난 차분히 말했다.
“황후마마께서는 황가에 들어가신 이후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 오라버니…”
“이제 천하는 위국 아래에 들어왔습니다. 위왕 전하의 치세에 만백성들이 평화를 느끼고, 천하의 만민들이 위국과 위왕 전하를 숭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천하는 옛날과 다르게 안전합니다. 그러니 태상 전하께서 서주로 가실 때 황후마마께서도 함께 가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서주는 풍요롭고 평화로운 곳. 천하 뿐만 아니라 고구려나 왜의 문물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조헌에게 서주의 장점에 대해서 계속 말했다.
그것을 잠자코 듣던 조헌은 빙긋 웃었다.
“마치 이혼하고 처가에 가라는 것과 비슷한 말씀이시군요.”
예리하긴.
그녀의 말대로 적당히 헤어짐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다.
내가 대답 대신 웃기만 하자 조헌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라버니께서 저에게 피해가 갈 만한 일을 말씀하시지는 않겠지만… 꼭 그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예.”
예전과 다르게 한의 이용가치는 이제 완전히 없어졌다.
내버려두면 위험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폐기하는 것이 낫다.
조헌은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만약 제가 싫다고 한다면…”
“강제할 수는 없지요. 다만…”
“승상부주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조가에서는 알고 있는 겁니까?”
“일단 전하와 태상전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다른 분들이야…”
내가 설득하면 된다.
조헌이 머뭇거리자 난 웃으며 물었다.
“황후마마께서는 서주에 가보시고 싶지 않으신 것입니까? 솔직히 갈 수만 있다면 제가 가고 싶습니다만…”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태원장에서 놀고 먹으면서 매일 온천하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여름에는 시원한 냇가에 몸을 담궜다가 과일도 먹고 싶고.
완전 개꿀이네.
누구는 가고 싶어도 가지도 못하는 건데.
“그럼 승상부주께서 가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제가 가면 아마 저는 압송당할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탈주에 대한 벌로 혼자서 몇달은 낑낑대며 일해야 할거다.
조헌은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황가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 것은 태상전하, 그리고 진 오라버니셨지요.”
“그렇습니다.”
“이제와서 이리 말씀하시니. 제가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조헌에게는 미안했다.
결국 그녀는 우리에 의해서 희생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미안한 것은 미안한 것일 뿐 그것 때문에 대계를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폐하와 상의해보겠습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예?”
“폐하께서는 전후처리와 관련된 일을 해주셔야 하는지라… 황후마마께서만 다녀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정무와 관련된 일은 아니겠지요?”
“뭐… 비슷합니다.”
조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날 바라본다.
그녀가 주먹을 꼭 쥐고 날 노려보자 난 웃었다.
“황후마마. 저는 오로지 황후마마를 위해서 이렇게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덤으로 왕부와 승상부가 일하기 편하게 하려는 거고.
왕부와 승상부는 조가에 호의적인 이들만 있었다.
그런만큼 선양을 위해 움직일 때 조헌이 나서서 막는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골치아프다.
조헌이 눈을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난 그녀를 설득하기 위해 계속 말했다.
원한다면 조가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패군으로도 보내드리겠다.
패군과 인접한 산양군은 아버지가 다스리며 백성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다른 것들.
천하 유람을 시켜 줄 수도 있다고 설득을 하자 말없이 듣던 조헌은 조심스레 말했다.
“진 오라버니.”
“말씀하십시요.”
“예전에 저에게 말씀해주셨지요. 제가 힘들때, 저를 도와주시겠다고.”
“예.”
“그런데…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습니까? 저를 봐서라도…”
난 천천히 입가에 그리고 있던 웃음을 지웠다.
조헌의 얼굴에 점차 두려움이 섞이자 황급히 웃으며 표정을 관리했다.
“이렇게까지라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난 얼굴 가득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부드러움을 담았다.
해치지 않는다.
물지 않는다.
죽이지 않는다.
그러니.
“부디 황후마마께서 소인의 충언을 받아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너도 험한 꼴 당하기 싫다면 그냥 잠자코 내 말을 따라라.
뒷말을 꺼내지 않고 난 최대한 밝게 웃었다.
나는 소인이다.
명예니 충의니, 그런 것 따위에는 관심없다.
조헌.
너 역시 조가의 사람이니 지켜주겠다.
하지만 내 호의를 거절한다면 그것을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 뒷감당은 해야 할거다.
“…충언… 입니까?”
“그렇습니다. 충언이지요. 조가에 항상 충실했던 진가의 가주가 올리는 충언입니다.”
“한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것에 답해주신다면 진 오라버니… 승상부주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한가지가 아니라 열가지도 상관없습니다.”
조헌은 머뭇거렸다.
한참동안이나 망설이던 그녀는 살짝 가슴에 손을 올리고 힘겹게 물었다.
“자환 오라버니께서는…”
“예.”
“승상부주의 충언과 호의를… 받아들이셨습니까?”
하하.
예리하군.
난 그녀를 향해 웃었다.
“비 녀석의 이야기를 꺼내실 줄이야… 그 녀석. 아주 자존심이 강한 녀석이었지요.”
“그렇지요…”
“하늘 아래 잘난 것이 자기만인 줄 아는 그 녀석이 제 호의를 받아들였을리 없잖습니까. 다른 녀석들은 전부 받아들였지만…”
조비는 내 제안과 호의를 거절했다.
끝까지 자신의 야망을 버리지 않았지.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조헌이 모를리 없었다.
조헌은 눈을 감았다.
살짝 쥐어진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난 입을 다물었고 화흠은 나와 조헌의 눈치를 살폈다.
“황후마마. 지금 이 시간도 고통받는 백성들은 많습니다.”
“…시간낭비를 하실 수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전하께 받은 명은 하루라도 빨리 전쟁으로 피폐해진 위국을 돌보는 것이니까요.”
조헌은 바보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모를리 없었다.
자꾸 까불면서 저항하면 너도 싸잡아서 쳐내겠다.
조비가 어떻게 된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면 직접 알게해주겠다.
이거 참.
돌려서 협박하려니까 가슴이 아프군.
조헌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승상부주의 호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그것과 관련된 일은 여기 시중이 도와드릴 것입니다.”
“시중께서 저를 도우시면… 폐하는 어찌합니까?”
그녀의 질문에 난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어쩔 수 없지요. 폐하께서는 부담스러워하시겠지만.”
“…”
“제가 직접 폐하를 담당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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