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73
00273 어른의 여유 =========================
영이의 손을 꼭 잡고 집무실로 향했다.
아버지는 흐뭇한 눈으로 나와 영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왠 일이냐?”
“아니 왠 일이냐가 아니라… 왜 말씀하지 않으신겁니까?”
영이가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이제와서 알게 되다니.
난 아버지에게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사실 영이의 서찰을 받아 읽었을 때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그냥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만 적혀 있고 이쪽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알리가 있나.
난 영이의 손을 꽉 잡으며 아버지에게 물었고 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새아기가 신신당부를 했는데 어쩌겠냐. 너에게 알리지 말라고. 귀한 새아기의 부탁인데 내가 어찌 거절하겠냐?”
아버지도 영이에게 잡혀버렸구나.
아버지는 영이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고 난 영이를 보며 물었다.
“그랬어?”
“네.”
“왜?”
내 질문에 영이는 아무렇지지 않게 대꾸했다.
“지금은 서방님께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이니까요.”
“…하아. 나한테 너보다 중요한게 뭐가 있겠니.”
“에헤헤~”
영이는 내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댔다.
은은한 창포향이 좋다.
그녀의 새까만 비단 같은 머리칼에 살짝 입맞춰 준 후 그녀의 손을 들었다.
꼬물거리는 손이 조금은 차다.
“몸은 괜찮지?”
“네.”
“다행이다. 만약 내가 안왔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우… 그치만.”
“영아.”
난 영이의 손을 꼭 잡고 그녀의 눈을 응시했다.
절대로 영이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
그녀를 마주하며 조용히 말했다.
“나한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야. 내가 목표로 하는 것도 그 배경에는 가족의 행복이 있다고. 그 행복을 버리고 목표를 위해 달리는 건… 결국은 본말전도야.”
“알겠어요.”
영이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나보다 어린 영이이지만 이제 어머니가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꽤나 어른스러워보였다.
아니, 애초에 영이는 나보다 꽤나 어른스러웠지.
그녀의 이마에 입맞춰 준 후 물었다.
“몇개월이래?”
“이제 삼개월 정도 되었다고 유 의원님이 그러셨어요. 정말 유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새아기가 계속 빈혈기가 있어서 비틀거리길래 유 의원이 보고 확인해주었다. 월경이 안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나도 멍청하지. 하아… 네 어미가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집안에 여자가 없는데다가 유모도 은퇴하고 고향인 동아현으로 가버렸다.
장연이 붙어 있기는 했지만 유모의 뒤를 이어 하녀장이 된데다가 요새 요화의 딸, 정이 때문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시자 영이는 내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아요. 전 기쁜걸요.”
누구보다 아이를 원했던 영이였다.
그런만큼 그녀는 어떤 일도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듯 보였다.
“어? 그래선가?”
“뭐가요?”
“교완의 일.”
“아…”
내 질문에 영이는 작게 탄성을 내지른 후 날 곱게 흘겨보았다.
“그럼 지금 온게 저 때문이 아니라 완이 때문에 그런거란 말이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맞았지만 어떻게 그렇다고 말하냐.
난 어쩔 줄 몰라하며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선선히 웃을 뿐 이었다.
“정말 너무해요.”
“미…미안. 아니 그렇지만 네가 말해줬으면 전쟁 중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돌아왔을거라고! 오빠 못 믿어?”
“믿어요. 후후후… 그래도 조금 질투가 나는걸요? 그러니까 벌이에요.”
영이는 샐쭉 웃은 후 내 손등을 살짝 꼬집었다.
전혀 아프지도 않았지만 영이는 곧 손등을 슬슬 문질러 주었다.
“교완을 받아들이자고 한 것은 제 의견이에요. 그녀는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그래도 괜찮아?”
“네.”
“왜?”
“강남 쪽은 꽤 오랫동안 황실, 그리고 강북과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서방님과 조공이시라면 충분히 강북을 제패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문제는 강남이죠. 그곳의 유력자들이나 호족들은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은 자는 군수마저도 내쫓고 주목이라고 하더라도 무시하기 일수에요. 하지만 교완의 아버지인 교현은 강남에서도 이름있는 명사이니만큼… 그 분의 도움을 받으면 강남으로의 진출은 충분히 쉽게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우와…
눈물 날 것 같다.
영이가 이렇게 생각을 해줄 줄이야.
내가 감동하며 손을 꼭 잡자 영이는 잡고 있던 손을 들어 내 손등을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손등에 닿는 것이 기분이 좋다.
“그 대신… 알죠?”
“응. 내 첫번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너야. 그리고…”
“…..”
“내 아이를 이렇게 임신해줬는데… 어떻게 널 소홀히 하겠어. 절대 그러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걱정마.”
안그래도 사랑스러웠는데 내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 덕분에 더욱 사랑스럽다.
영이의 작은 머리를 끌어당겨 그녀의 약간 부은 볼에 입맞춰 주었다.
“헤헤헤~ 오래간만이라 더 좋네요.”
“얼마든지 해줄게.”
“바로 돌아가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듣자하니 임시 서주목이 되셨다면서요. 바쁜 것 아닌가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내 마누라 두고 무슨… 그리고 당분간은 산양군에 있을 생각이야. 그리고 일이 끝나도 널 데려갈 생각이라고.”
“정말요? 기뻐라… 그렇지만 그건 사양할게요.”
영이는 조심스레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난 작게 한숨을 내쉬었고 아버지는 쓰게 웃었다.
“나도 영이와 같은 생각이다. 그렇다고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 곳으로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더냐.”
“서주는 괜찮지 않을까요?”
“네가 계속 서주목으로 있다면 모를까 그것은 임시직에 불과하잖느냐. 전과 같은 상황이라면 영이를 데리고 가라고 말하겠지만…”
“으음…”
아버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지금 천하에서 어찌보면 가장 안전한 곳이 바로 이 산양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도적이나 양아치 건달의 수도 가장 적은데다가 훈련소를 통해서 정예병이 계속 생산된다.
필요한 물품들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서주와도 가까웠다.
“남쪽의 공격을 생각한다면 산양군도 마냥 안전한게 아닌 것 같은데…”
“여남의 원술이 걸리기는 하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문제될 것이 없다. 유요를 잡지 않았느냐.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팽성군과 동평군에서 바로 병력이 올텐데 뭐가 걱정이더냐.”
아버지의 말에 난 입술을 우물거렸다.
어떻게든 영이를 옆에 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명분이 없다.
“후후후. 너무 걱정마세요. 어머님도 시녀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신다고 했으니까요.”
“그래. 차라리 이곳에 영이가 있는 것이 영이에게도 좋다. 네 욕심 때문에 영이를 위험하게 할 생각이더냐? 그리고 영이가 네 옆에 있으면 너도 걱정되어 네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장을 다녀야 하는 자가 다른 곳에 정신을 팔아서야 되겠니? 지금은 참아야 한다.”
“…알겠습니다.”
난 결국 아버지와 영이의 공격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영이나 아버지 혼자의 공격에도 힘들었는데 둘이 손을 잡아버리니 내가 감당할 수가 없다.
으…
내가 항복하자 영이는 베시시 웃었다.
…다른 사람들 말대로 확실히 내가 공처가이긴 한가보다.
아버지의 방에서 나와 영이를 부축하며 그녀의 방으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이 이렇게 두려울 줄이야.
내가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며 영이는 빙그레 웃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 환자도 아니고.”
“그렇지만.”
“자꾸 그러면 화낼거에요?”
“알았어.”
가뜩이나 영이에게 쥐여살았는데 임신까지 해버리니 더 쥐여살겠네.
내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때 쯤 영이의 방 앞에 도착했다.
전에 나와 영이가 쓰던 신혼방이다.
깨끗한 방으로 들어가 그녀를 침상에 앉혔다.
“저건 뭐에요?”
“응? 아. 이거.”
하비에서 가져 온 선물이다.
상자를 열어 비단에 감싸져 있는 작은 팔찌를 꺼내었다.
“하비의 옥과 금으로 만든 팔찌야. 예쁘지?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구해왔어.”
“헤에~ 예쁘다. 제 것만 있는건 아니죠?”
“응.”
“잘했어요.”
조금의 질투도 보이지 않는 영이의 모습에 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에는 내가 조청이나 다른 여자들에게 관심을 보이면 눈을 흘기더니 왜 이렇게 여유롭지?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내 속마음을 눈치챈 영이는 장난을 생각하는 고양이처럼 생글거렸다.
“왜요? 제가 다른 사람들 것도 사왔다고 화낼 줄 알았나요?”
“그럴리가~ 우리 영이가 그럴리 없지.”
“제 눈 똑바로 보고 말해요.”
“…음. 그게 뭐랄까.”
“후후후… 질투는 추한 일인걸요. 당신이 절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고… 또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지낼 수는 없잖아요.”
영이는 볼록 나온 배를 쓰다듬었다.
그 미소에 난 순간 멍해졌다.
말없이 바라보는 날 눈치챈 영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아, 아니 뭐랄까.”
“새삼 반했나요?”
“……”
족집게다!
영이의 이런 모습을 본 것에 난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영이는 손을 뻗어 내 코를 살짝 비튼 후 귀엽게 하품했다.
“아하아암~”
“졸려?”
“네. 우리 애기가 졸립다고 하네요.”
“그럼 자야지. 그… 태교에는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게 좋다던데.”
“뭔가 해주겠어요?”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다섯 아이가 있었는데…”
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가며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것을 웃으며 듣던 영이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그녀를 바로 눕혀 준 후 이불을 덮였다.
“…고마워.”
새근거리는 콧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영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늘 깨끗하고 부드러웠던 피부가 거칠어져 있었다.
화장기도 없고, 또 살도 조금 찐 모양이다.
하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씨 자꾸…”
왜 이렇게 눈에서 땀이 나려고 하지?
난 훌쩍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도련님.”
“오. 오래간만이야. 잘 있었냐? 별 일 없지?”
“하하. 네.”
영이의 방 앞에는 언제 왔는지 요화가 서 있었다.
갑옷을 입고 무기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빤히 보자 그는 싱글거렸다.
“제가 아가씨의 전담 호위입니다.”
“아 그래? 야. 고맙다. 진짜. 네가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다른 이들도 그렇지만 요화는 내 부하가 된 가장 오래된 이다.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길도 포기하고 날 따르기로 한 녀석이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이 그였다.
요화가 영이를 지켜준다는 말에 난 안도할 수 있었다.
“군수님께서도 제 임무를 모두 해제하고 아가씨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하하… 그럼 간만에 술 한잔 하자고도 못하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제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아가씨의 안전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뭐?”
“조공께서도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래?
난 궁금해하며 물었고 요화는 가볍게 손뼉을 치고 외쳤다.
“우 교위님.”
“도련님! 이거 참. 오래간만입니다! 복양에서 뵙고 처음이지요?”
“어… 야. 넌 왜 여깄냐?”
“암중호위라는 겁니다. 암중호위.”
과거 날리던 도적이었던 우금이 자신의 특기를 살려 숨어서 영이를 지키는 모양이다.
조조의 부하인 그가 여기서 영이를 지켜준다는 것에 난 놀랬다.
“네가 왜?”
“제가 아버님께 요청드렸습니다.”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난 몸을 돌렸다.
갑옷을 입은 조청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조금 머리가 긴 것일까?
단발이던 머리칼이 어깨를 조금 더 넘을 정도로 길게 내려와 곱게 땋여져 있었다.
“네가?”
“네. 아가씨… 아니, 이제는 언니라고 불러야군요. 언니께서 장군님의 아이를 배셨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버님께 요청드려 암중호위를 할 수 있는 분을 요청했고 우 교위께서 오셨습니다.”
“허어…”
그럼 조조도 알고 있는건가?
이거 참.
남편도 모르는 일들을 여기저기서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만 나왔다.
“그런데 네가 요청했다라…”
“뭔가 이상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음? 아니. 그…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영이가 임신을 해서 아들이라도 낳으면…”
“그럼 제 아들처럼 키울 생각입니다.”
“…아, 그러냐.”
“언니께서 어른의 여유를 보여주시고 계신데… 언제까지 그럴 수는 없지요. 그리고.”
조청은 영이의 방 안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로서는 언니를 감히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언니의 편이 되기로 한 겁니다.”
“……”
역시라고 해야할까.
영이가 확실히 무섭긴 하다.
자신의 적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이렇게 간단하게 포섭해버리다니.
“그… 그렇게 생각해주면 나야 편하지.”
“후후… 그렇지만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만약 장군님과 저의 아이가 나온다면 언니께서도 친 아이처럼 길러주시겠다고 하셨으니까요.”
조청은 또다시 번뜩이는 눈으로 날 보며 입술을 핥았다.
으음… 얘는 여전하군.
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럼 우금, 요화. 영이를 잘 부탁할게. 조청. 넌 나랑 잠깐 얘기 좀 하자.”
“알겠습니다.”